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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킨카쿠지(金閣寺)에 다녀왔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의 바로 그 금각사이다. 1397년에 창건되어 약 600년 동안 잘 버텨오다 1950년 한 학승에 의해 소실이 되었는데 복원된 게 지금의 모습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가 학승의 범행동기란다. 숭례문 소실 사건이랑 아주 비슷하다. 약 50년 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되는 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교토를 찾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방문하고 싶은 장소 넘버 원이란다. 가로 세로 약 10cm 금박 20만장을 강력한 소재의 접착 재료를 사용해 작업했기 때문에 향후 600년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절을 감싸고 있는 숲에 들어가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5월의 금각사도 좋지만 겨울의 금각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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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이 도시의 중심이 되다
일본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로 유명한 ‘모리빌딩’이 도심 재개발로 건설한 롯폰기힐스는 대지 면적만 3만4000평,건축 연면적은 22만평으로 총 54층짜리 오피스빌딩인 모리타워와 21층 특급 호텔인 그랜드 하야트 도쿄,최고 43층의 고급 아파트 4개 동(840가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쿄에서도 유명한 환락가인 롯폰기는 롯폰기힐스가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문화공간으로 그 면모를 달리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모리빌딩은 2016년까지의 중장기 경영계획에서 롯폰기를 중심으로 재개발을 확대해 하루 24시간 풀 가동되는 국제금융센터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미술관
롯폰기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모리타워는 쇼핑몰과 호텔, 사무실, 영화관, 주거 공간 등이 집약된 복합 빌딩이다. 모리타워 52층에는 ‘도쿄 시티뷰’라고 하는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최신의 설비를 갖춘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 혹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모리미술관은 모리타워 53층에 자리잡고 있다. 2003년에 개관해 5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현대미술을 기본으로 한 건축, 사진, 패션, 디자인 작품들을 주로 전시, 소개 하고 있다.
롯폰기 미술관의 설계는 갤러리 공간 설계에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리차드 글럭먼(Richard Gluckman)이 담당했다. 그는 모리타워 고층부 내부에 마치 그릇을 포개놓은 것처럼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 이를 공중에 매다는 방식의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써 개관 당시 크게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편, 리차드 글럭먼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설계와 개축을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베를린의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말라가의 피카소 미술관,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이다.
동시대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미술관
데이비드 엘리엇이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현재 모리미술관은 난조우 후미오(南條史生)씨가 2대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난조우 관장은 모리미술관 설립 당시는 부관장이었고 2006년 11월에 관장으로 취임했다. 1978년부터 1986년까지 국제교류기금에서 일했는데 이 경력이 모리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리미술관이 전시와 함께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미술교육 프로그램, 홍보 프로그램, 기업참여 프로그램 3가지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초대 관장 재직 당시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물가도 비싸고 작품 제작에 필요한 넓은 공간 제공이 쉽지 않아 현재는 중지된 상태라고 한다.
모리미술관은 국제적인 프로그램과의 제휴 및 교류를 위해 모리미술관 국제자문위원회(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를 1999년 9월에 설립해서 운영 중이다. 세계를 대표하는 미술관의 관장들, 책임자급 큐레이터들이 회원이 되어 모리미술관의 국제적인 활동을 비롯해 순회기획전, 인적교류 등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3개월 베이스로 1년에 4회의 기획전시 개최
다카하시 신야(高橋信也) 국장에 따르면 관장까지 포함해 32명(2007년 12월 현재)이 미술관 운영에 참가하고 있는데 전 직원이 열심히 뛰어도 매년 약 300%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개관 초기에는 53층의 미술관이 아닌 52층의 전망대가 목적인 사람들로 인해 롯폰기힐스가 마치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모리미술관에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를 살펴보면 단체로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장애인들을 위한 전시 프로그램으로 몸이 불편한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배려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로 감상하는 아트’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귀와 손으로 보는 아트’ 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예약이 필요하며, 입장권 이외에 추가로 지불하는 돈은 없다. 또 ‘부모와 함께 하는 아트’ 의 경우 0세부터 6세의 영유아들이 부모와 함께 전시에 참가할 수 있다. 그 밖에 전람회를 수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별도로 ‘학교 프로그램’ 도 운영 중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Art Is for the Sprit
올해 기획 전시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2007년 10월 13일부터 시작된 ‘Roppongi Crossing 2007’이 1월 14일까지 개최되었다. 회화, 조각, 사진, 디자인, 영상, 만화,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활약하는 일본의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로 지난해가 2회째였다. 연령,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 36인의 작품을 엄선해 소개했는데 현존 작가뿐만 아니라 타테이시 타이거(Tateishi Tiger)와 같이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 이외에도 같은 테마로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4명의 큐레이터와의 토론시간, 연극, 영상, 음악, 워크숍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했다.
2008년 2월 2일부터는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인 UBS(스위스 국제투자은행)가 소장하고 있는 1,000여 점의 현대미술 콜렉션 중 140여 점이 <Art Is for the Sprit>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고 있다. 본 전시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장 미셀 바스키아,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모리무라 야스마사(森村泰昌) 등 미국,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유수의 아티스트 60인의 작품을 보고 느끼고 상상한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UBS의 현대미술 콜렉션은 1950년대의 미국, 유럽의 회화작품들과 1990년대 이후 유럽의 사진작품들이 중심이며, 최근에는 아시아와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그 시야를 넓히고 있다. 이번 전시는 1000점 이상의 UBS콜렉션에서 ‘몸Body’, ‘만들어진 세계Built World’, ‘공간Space’이라고 하는 세 가지의 테마로 작품을 선정해 각각의 작품들 속에서 아티스트의 아이디어가 세상과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오는 4월 6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Art Is for the Sprit>이 끝난 후 2008년 4월 26일부터 7월 13일까지는 영국 테이트(Tate) 갤러리가 주최하는 터너(Turner)상의 역대 수상작을 전부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History in the Making>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8월2일부터 10월 26일까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아티스트인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의 전시회가, 11월 15일부터 2009년 3월 1일까지는 인도 현대미술전시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하늘에 떠 있는 롯폰기 도서관
모리타워 49층에는 도서관 이외에도 아텔리젠트 스쿨(Artelligent school)이라는 강좌 프로그램이 있어 회원들에게 서비스되고 있다. 매월 50개 정도가 개설되고 있는데 1회 2시간 강좌로 수강료는 3,000엔이다. 내용은 악기 강습을 비롯해 풍수, 경락, 꽃꽂이, 선물포장 등 우리나라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와 아주 비슷하다.
모리미술관 찾아가는 법
도쿄메트로 히비야센(日比谷線)을 타고 롯폰기역에서 내리면 바로 롯폰기힐스와 연결된다. 도에이에도센(都営江戸線)이나 JR을 타면 조금 걸어야 한다. 모리미술관은 화요일(10:00~17:00)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0:00~22:00까지 개관한다. 모리미술관과 도쿄시티뷰 입장권이 각각 1500엔인데 두 가지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공통 입장권을 1800엔에 판매하고 있다.
모리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http://www.mori.art.museum/eng/index.html
문화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웹진 2008년 1월호
http://www.cct.go.kr/iboard/read.php?table=1037&num=62435&page=1&special_check=&period=&sel=&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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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의 뱃부에서 기차로 한 시간
츠쿠미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름의 도시에서 지난 여름 한 달을 보냈다. 츠쿠미는 일본 남단 큐슈(九州) 동쪽의 오오이타현(大分県)에 있는 인구 2만 3천 규모의 아주 작은 도시다. 한국인들이 온천욕을 즐기러 많이 찾는 뱃부(別府)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 작은 도시에 야구장이 있어 우리나라 두산베어스가 겨울이면 전지훈련을 한다고 한다. 남쪽이라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하고 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없지만 가족 중에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츠쿠미는 오오이타현 내에서는 두 번째로 작은 도시인데, 호토지마(保戸島)와 무쿠지마(無垢島)라는 두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는 반도로, 일본내 생산량 1위를 자랑하는 석회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기간산업으로는 석회석 채굴 이외에 시멘트 산업, 밀감 농업, 참치로 대표되는 어업이 중심이다. 그러나 요즘은 손이 많이 가는 밀감 농사를 접고 광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참치도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츠쿠미 대표 브랜드로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츠쿠미의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배를 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초청해 2, 3년간 연수를 시켜 배에 태우고 있다.
츠쿠미에는 일본 톱 3 규모에 해당되는 태평양 시멘트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시멘트 회사 덕분에 츠쿠미 사람들은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쓰레기 처리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츠쿠미는 가정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소각해 시멘트 원료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서 시민들의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고민거리를 없애주었다.
종이류, PET병, 캔류를 제외한 모든 쓰레기는 분리할 필요 없이 한꺼번에 수거를 해 가는데 이렇게 모아진 쓰레기는 전부 소각해 몇 차례의 과정을 거친 후 품질에 전혀 차이가 없는 시멘트로 만들어진다. 태평양 시멘트 회사에서는 쓰레기가 시멘트 원료로 탄생되는 과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시멘트 회사에서도 단체 견학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사는 집을 ‘토끼장’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곳이 호토지마(保戶島)이다. 호토지마는 츠쿠미 시내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섬의 토지가 넉넉하지 않아서 6조 다다미(다다미 한 장을 1조라 하며, 1조는 0.85평 정도) 크기의 넓이로 건물을 2층, 3층 올려서 지은 주택들이 섬 여기저기에 가득하다. 6조 정도면 우리나라 아파트의 가장 작은 방 한 칸 정도 되는 넓이다. 집과 집 사이는 아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온 동네를 연결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어찌나 건강하신지 바구니들을 하나씩 지고 산비탈로 연결된 골목을 쉬지도 않고 올라 다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경사가 높아서 머리에 이기도 힘들고 들기도 힘들어서 여기 사는 할머니들은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어 그곳에 짐들을 넣어 지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1억 3천만년 전 공룡이 살았던 무쿠지마
츠쿠미가 또 하나 보유하고 있는 무쿠지마(無垢島)는 아주 특이한 섬이다. 아직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1억 3천만년 전 공룡 화석이 발견되어 학계의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인 곳이다. 매년 여름에 자연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이 이 보다 더 알찰 수가 없다. 올해가 3회째로, 운영에는 큐슈의 4개 대학과 츠쿠미시가 참여하고 있다.
이 섬에는 바닷물 이외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비를 받아 가라앉혀 쓰거나 먹는 물의 경우는 전부 시내에서 배로 실어다 마시고 있다. 체험학습에 참가하기 위해 섬에 머무는 사람들은 물 한 바가지로 샤워를 마쳐야 하는 노하우를 재빨리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곳에서 태어나 섬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한 주민에게 이 곳 생활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살면 다 살아진다는 너무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섬사람들은 늘 가족같이 살아 온 경험 때문인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해수욕을 즐긴 후에는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 샤워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화장실이든 샤워실이든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섬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라서 떠나올 때쯤에는 물 한 바가지로 샤워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수에 양치질까지 끝내는 요령은 터득했다.
호토지마처럼 무쿠지마도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이곳에 있는 중학교에는 학생이 달랑 세 명뿐이다. 이 세 명을 가르치기 위해 11명의 선생님이 근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선생님 한 사람이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칠 수 있지만 중학교부터는 과목들이 다양해지고 좀더 심화되기 때문에 선생님 혼자서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집과 학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인지 무쿠지마에서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는 일반 학교의 사제지간과는 다르게 그냥 가족 같아 보였다.
‘요~야~세, 요~야~세’라고 하는 독특한 절구로 시작되는 센스오도리(扇子踊り)는 츠쿠미를 대표하는 춤이다. 오른손으로 부채를 펴 들고 8개의 문자를 그려나가는 동작이 계속 되풀이된다. 츠쿠미에 사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센스오도리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이 기본 동작이 나온다.
지금부터 약 400년 전 당시 오오토모씨(大友氏)의 지배하에 있던 츠쿠미는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참히 꺼져간 전몰용사와 농민들을 애도하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센스오도리의 기원이다. 1964년부터 시민 오도리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츠쿠미 센스오도리 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린다. 초등학교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츠쿠민(공모를 통해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시민공원’에 모여 똑같은 부채를 쥐고 ‘요~야~세, 요~야~세’의 리듬에 맞춰 미리 만들어놓은 트랙을 돌며 몇 시간에 걸쳐 춤을 춘다. 센스오도리가 시작되기 전 며칠 동안은 시내 어디에서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부채를 펴 들고 휘휘 돌리며 센스오도리의 기본동작을 연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츠쿠미 하면 밀감과 참치였는데 이것이 옛말이 되면서 자랑하며 내놓을 대표 음식이 이제는 별로 없다고 현지인들은 자신없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일본 특유의 정갈한 밥상은 시내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만날 수 있다. 마구로(참치) 스테이크, 츠쿠미 아이스(밀감 쉐이크), 가보스(라임과 비슷한 일본 과일)로 만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꼭 시식을 권한다. ‘사계’라는 상호가 붙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더니 새로 개발한 ‘마구로 짬뽕’을 권하는데 나가사키에서 먹었던 나가사키 짬뽕보다 국물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었다. 츠쿠미를 찾는 분들에게 강추다.
츠쿠미는 올해 일본에서 개봉된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의 ‘22세의 이별(22歳の別れ)’의 로케이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시 자체에서 영화 제목인 ‘22세의 이별’을 상표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 처음 탄생한 상품이 ‘22세의 이별’이라는 동명의 치즈 케이크다. 츠쿠미 시내에 있는 시장통의 빵집 딱 한군데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다.
운항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인천에서 오오이타현까지 직항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후쿠오카나 나가사키까지 일단 비행기로 도착해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다.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으로 뱃부까지 갔다가 온천욕을 즐기고 기차로 츠쿠미까지 이동해도 된다.
츠쿠미는 아직까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해변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바닷물이 아주 맑다. 해산물이 맛있는 비결이 이 맑은 물 덕분이라고 현지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1년 중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가을이라고 한다.
문화공간 2007년 11월호(세종문화회관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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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정서가 출렁이는 일본 남부 항만 도시, 나가사키(長崎)
카스텔라, 나가사키짬뽕, 그리고 원폭투하지
비행기가 도쿄의 하네다 공항을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그리 험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시간 반만에 도착한 나가사키에서는 기어코 쏟아지기 시작해 온 종일 비와 안개에 싸인 나가사키를 지치도록 보여주었다. 그러다 비가 그친 후에는 높은 습도에 눅진거리는 날씨로 쉴새 없이 땀을 훔쳐내게 만들었다.
나가사키하면 폭신폭신한 “카스텔라”, 희멀건하지만 국물맛 하나는 끝내주는 “나가사키짬뽕”, 그리고 "지구상의 마지막 원폭투하지"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분메이도(文明堂)의 카스텔라는 전국에 지점이 있어 일본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다. 현지에 가면 15대에 걸쳐 카스텔라만을 만들어온 후쿠사야(福砂屋)에 입이 떡 벌어지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나가사키 이외의 도시에서도 식당 메뉴판에서 나가사키 짬뽕을 만나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국적 불명의 마을은 혹시 이곳, 나가사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 어느 마을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전부 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러나 일본은 아닌 그 마을.
어디를 가나 이국적인 정서가 출렁이는 일본 남부의 항만 도시, 나가사키(長崎)는 한국에서 배로도 올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일본이다.
나가사키의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가지 쪽으로, 일본이 어떻게 바깥 세상과 조우했는지에 대한 변천사와 일본 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하나는 바로 평화공원 구역으로 원폭투하지로서의 피해 실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곳이다.
쇄국시대 문화의 거점, 데지마(出島)
일본이 쇄국시대에 데지마를 통해 다양한 해외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였듯이 네덜란드는 또 이 곳을 거점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문물과 정보를 수집해 서양의 또 다른 나라들로 확산시켰다. 이런 면에서 데지마는 서양과 동양의 국제교류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이후 데지마 주변은 매립이 진행되는데, 1904년의 제2기 항만개량공사로 인해 바다에 뜬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는 그 원형을 잃고 영원히 역사 속에 그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1996년부터 데지마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자 구체적인 복원정비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창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당시의 생활모습을 식탁에 오른 반찬까지 참으로 꼼꼼하게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나가사키의 해외문물교류사가 궁금한 분들에게 복원중인 데지마 이외에 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일본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외의 나라들과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그리고 조선통신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이후 국교를 재개한 한국과 어떻게 문화교류를 진행했는지 흥미진진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의 전래와 탄압의 역사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1864년, 순교한 26인의 성인을 위한 기도를 목적으로 프랑스 신부에 의해 오우라 대성당(大浦天主堂)이 건립된다.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해 무려 300여년 동안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우라카미(浦上)지구의 그리스도교도의 자손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기독교가 인정되지 않던 시절에 신도들에 대한 탄압은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신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성물을 훼손하게 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수법들이 지극히 일본스럽다. 약 300년간 기독교 신자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들은 부처의 얼굴이 마리아의 얼굴과 묘하게 겹친 형태를 띠고 있다.
전쟁에 대한 반성은 없고 평화만 있는 평화공원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 한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당시 원폭투하지 후보에 올라있던 도쿄, 교토, 오사카 등의 대도시를 제치고 지구상 마지막 원폭투하지로 선택된 나가사키는 어마어마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게 된다. 당시 약 24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나가사키에 원폭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약 73,000명, 부상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인 약 74,000명이 발생했다. 나가사키 대부분이 이때 파괴되었는데 지금은 원폭자료관에 오지 않고서는 불과 몇 십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도시는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죽은 한 소녀가 만들기 시작해 유행처럼 번진 종이학은 평화공원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기념 조형물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평화메시지들은 이방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으며, 원폭자료기념관 안의 원폭 피해 사진들은 경험하지 않은 그 사건의 참상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과 마찬가지로 온통“평화”뿐이었다. 왜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고, 우린 억울한 희생양이며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었다. 반성없는 역사도 그저 비극일 뿐이다.
근대 서양풍 건물의 견본시, 글로버 정원
공원 내에는 무역을 통해 일본 근대화에 공헌한 스코틀랜드의 무역상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의 저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1863년에 건립된 것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공원 안에는 나가사키에 살면서 일본 산업에 공헌하고 신문물을 전래했던 외국인들의 유서 깊은 저택 8채가 더 자리잡고 있다.
이 저택에 살던 사람들을 비롯해 나가사키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가지고 온 선진 문물 덕분에 일본은 일찍이 아시아에서 과학과 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겁 없이 러시아, 중국을 침략했고, 나아가 미국까지 넘보다가 결국은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원폭피해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원 한가운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미우라 타마키(三浦環)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저택 한 곳에 그녀의 출연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에서 미우라 타마키는 아메리카의 해군병사 핑커톤을 기다리던 나비부인의 역할을 수 차례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글로버 정원을 나와서 오우라대성당(大浦天主堂), 중국인거리, 코우후쿠지(興福寺), 오란도자카 (오란도 언덕)등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오란도’는 일본어로 네덜란드를 뜻하지만 당시는 동양인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오란도 사람이라 불렀다.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아직도 외국인 거류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그 옛날 이곳에 살던 외국인들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나가사키를 즐기는 법
나가사키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 도보 여행도 무난하지만 노면전차나 버스를 이용해 좀더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커뮤니티버스인 란란(らんらん)버스는 1회에 무조건 100엔이지만 1일 무제한 승차권은 300엔이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도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그리고 나가사키 시내 한복판에는 트램이 달리고 있다. 란란 버스처럼 1회에 무조건 100엔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15분에서 20분 간격으로 도심부를 순환 운행중이므로 주요 여행지를 둘러 볼 수 있다.
한국에 네덜란드 마을로 잘 알려진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나가사키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두시간 정도는 가야 한다. 테마파크로 운영되다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리조트로 운영을 재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전혀 일본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일찍 국제화가 되어서인지 외국인들에 대한 안내가 아주 친절하므로 혼자 떠나는 나가사키 여행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국인 거리에 들러 중국을 느껴보고, 글로버 정원에 들러 유럽의 19세기를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케이블카를 타고 이나사야마(稲佐山) 정상에서 나가사키 사람들이 천만불 짜리라고 자랑하는 야경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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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카츠에는 아프리카의 카메룬 선수들이 5일 동안 묵으면서 훈련을 할 곳이었다. 그러나 카메룬 축구협회와 선수단 간의 승리수당 문제로 오기로 한 날에 선수단은 도착하지 않았다.
간신히 돈문제가 해결 된 후 선수단은 비행기에 올랐지만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영공 통과 허가를 얻지 못해 방콕에서 하루 이상을 더 머물러야 했다. 결국 5일이 아니라 하루를, 그것도 잠도 안자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만 한 채 카메룬 선수들은 떠났다.
인구 1,600명(2007년 현재는 1,200명 정도)이 사는 나카츠에 마을은 선수들이 오기 전까지 아주 분주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오기로 한 날 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묵묵히 선수들을 기다렸고 마침내 도착한 선수들을 온 마음으로 환영했다.
마을의 촌장이었던 사카모토 야스무(坂本 休)씨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해 77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훈련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유명무실해질 순간이었지만 신은 나카츠에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이 웃기지도 않은 헤프닝을 찍기 위해 미디어란 미디어가 이 마을에 다 모였고, 그들이 먹고 쓰고 간 돈이 한 두푼이 아니었단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나카츠에 마을을 보러 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아 그때 올린 수입만 약 1억엔 정도란다. 경제적인 효과는 그 몇 배이고. 일부는 시설 짓는 데 끌어 들인 빚 갚는 데 쓰고 나머지로 재단을 만들었는데 주민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두당 천엔씩을 걷었단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나카츠에마을 지구재단(中津江村地球財團)이 만들어졌다.
현재 시설들은 전지훈련 캠프로 이용되고 있었다. 혹시 유소년 축구팀 중에서 훈련 캠프장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후쿠오카까지만 오면 나머지는 나카츠에 마을이 다 해결한다고.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정도는 괜찮단다. 카메룬에 초등학교를 수십개 지어줬는데 앞으로도 계속 지어주겠단다.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유명한지 '일본 나카츠에 마을 사카모토 씨'라고 쓰면 전세계 어디에서나 배달이 된단다.
최근 일본은 지역간의 합병이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인구 10만이 안되는 곳은 마음에 드는 옆 동네를 찾아가 합치자, 이런 식이다. 합병이 되고 나면 지역 정체성이 없어지는 건 당연지사. 나카츠에도 옆 동네와 합병이 추진 되었지만 마을 이름만은 살아남았다. 브랜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어질 때 일본에 나카츠에 마을이 있다면 한국에는 화천이라는 곳이 있다면서 슬그머니 산천어축제 홍보 리플렛을 내밀었다. 어떤 마을이냐고해서 5년 전만 해도 사람,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곳인데 그 사람, 물이 한해에 관광객을 100만씩 불러 들인다고 소개했다.
사카모토 할아버지는 시간이 되면 화천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200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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