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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07 일본문화기행(1)-나가사키 1

이국적인 정서가 출렁이는 일본 남부 항만 도시, 나가사키(長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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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라, 나가사키짬뽕, 그리고 원폭투하지

비행기가 도쿄의 하네다 공항을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그리 험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시간 반만에 도착한 나가사키에서는 기어코 쏟아지기 시작해 온 종일 비와 안개에 싸인 나가사키를 지치도록 보여주었다. 그러다 비가 그친 후에는 높은 습도에 눅진거리는 날씨로 쉴새 없이 땀을 훔쳐내게 만들었다.


나가사키하면 폭신폭신한 카스텔라”, 희멀건하지만 국물맛 하나는 끝내주는 나가사키짬뽕”, 그리고 "지구상의 마지막 원폭투하지"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분메이도(文明堂)의 카스텔라는 전국에 지점이 있어 일본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다. 현지에 가면 15대에 걸쳐 카스텔라만을 만들어온 후쿠사야(福砂屋)에 입이 떡 벌어지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나가사키 이외의 도시에서도 식당 메뉴판에서 나가사키 짬뽕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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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세가지가 나가사키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가사키가 왜 일본 3대 관광지의 하나로 꼽히는지, 왜 일본이 똑같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중국이나 한국이 아닌 유럽을 지금도 동경하고 있고, 또 배우자고 외치는지도 알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국적 불명의 마을은 혹시 이곳, 나가사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 어느 마을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전부 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러나 일본은 아닌 그 마을.

어디를 가나 이국적인 정서가 출렁이는 일본 남부의 항만 도시, 나가사키(
長崎)는 한국에서 배로도 올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일본이다.

 

나가사키의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가지 쪽으로, 일본이 어떻게 바깥 세상과 조우했는지에 대한 변천사와 일본 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하나는 바로 평화공원 구역으로 원폭투하지로서의 피해 실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곳이다.

 

쇄국시대 문화의 거점, 데지마(出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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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년 에도막부는 포르투갈인에 의한 기독교의 포교를 막기 위해 나가사키의 평민들로 하여금 약 1 5천평의 인공섬을 축조하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 포르투갈인들을 수용하게 되는데 펼친 부채 모양의 이 인공섬이 바로 데지마이다. 1639년에는 쇄국령으로 포르투갈 상선의 내항이 금지되어 데지마는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된다. 그러나 1641년에 히라도(平戶)에서 데지마로 네덜란드 상관이 이전한 덕분에 1859년까지 무려 218년 동안 데지마는 바깥을 향해 열려있는 일본 유일의 교류창구로서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일본이 쇄국시대에 데지마를 통해 다양한 해외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였듯이 네덜란드는 또 이 곳을 거점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문물과 정보를 수집해 서양의 또 다른 나라들로 확산시켰다. 이런 면에서 데지마는 서양과 동양의 국제교류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이후 데지마 주변은 매립이 진행되는데, 1904년의 제2기 항만개량공사로 인해 바다에 뜬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는 그 원형을 잃고 영원히 역사 속에 그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1996년부터 데지마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자 구체적인 복원정비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창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당시의 생활모습을 식탁에 오른 반찬까지 참으로 꼼꼼하게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나가사키의 해외문물교류사가 궁금한 분들에게 복원중인 데지마 이외에 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일본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외의 나라들과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그리고 조선통신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이후 국교를 재개한 한국과 어떻게 문화교류를 진행했는지 흥미진진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의 전래와 탄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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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문물의 전래와 함께 일본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일찍 기독교가 전파된 곳도 바로 나가사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전파가 초기에는 순조롭지 않았던 것처럼 일본도 초기 기독교는 탄압과 수난의 역사였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기독교에 대한 금교령이 공포되고 니시자카(西坂)에서는 26인의 성인에 대한 처형이 집행된다. 이들은 수레에 실려 이곳 저곳을 끌려 다니다가, 육로로 나가사키까지 흘러와 결국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건은 일본 최초의 대규모 순교 사건이면서 그 후로도 계속되는 기독교 박해와 수난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1864, 순교한 26인의 성인을 위한 기도를 목적으로 프랑스 신부에 의해
오우라 대성당(大浦天主堂)이 건립된다.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해 무려 300여년 동안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우라카미(浦上)지구의 그리스도교도의 자손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기독교가 인정되지 않던 시절에 신도들에 대한 탄압은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신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성물을 훼손하게 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수법들이 지극히 일본스럽다. 300년간 기독교 신자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들은 부처의 얼굴이 마리아의 얼굴과 묘하게 겹친 형태를 띠고 있다.

 

전쟁에 대한 반성은 없고 평화만 있는 평화공원 

1945 8 9 11 2, 나가사키에 한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당시 원폭투하지 후보에 올라있던 도쿄, 교토, 오사카 등의 대도시를 제치고 지구상 마지막 원폭투하지로 선택된 나가사키는 어마어마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게 된다. 당시 약 24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나가사키에 원폭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약 73,000, 부상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인 약 74,000명이 발생했다. 나가사키 대부분이 이때 파괴되었는데 지금은 원폭자료관에 오지 않고서는 불과 몇 십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도시는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죽은 한 소녀가 만들기 시작해 유행처럼 번진 종이학은 평화공원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기념 조형물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평화메시지들은 이방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으며, 원폭자료기념관 안의 원폭 피해 사진들은 경험하지 않은 그 사건의 참상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과 마찬가지로 온통“평화”뿐이었다. 왜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고, 우린 억울한 희생양이며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었다. 반성없는 역사도 그저 비극일 뿐이다.

 

근대 서양풍 건물의 견본시, 글로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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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 정원(グラバ)은 막부 말기에서부터 메이지시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거류지였던 미나미야마테(南山手)에 있는 일종의 테마공원이다. 나가사키 시내에 흩어져 있던 메이지시대의 서양풍 저택들을 모아 정원으로 조성한 것으로 당시 외국인들의 생활양식을 완벽하게 복원해 놓았다.

공원 내에는 무역을 통해 일본 근대화에 공헌한 스코틀랜드의 무역상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의 저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1863년에 건립된 것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공원 안에는 나가사키에 살면서 일본 산업에 공헌하고 신문물을 전래했던 외국인들의 유서 깊은 저택 8채가 더 자리잡고 있다.
 

이 저택에 살던 사람들을 비롯해 나가사키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가지고 온 선진 문물 덕분에 일본은 일찍이 아시아에서 과학과 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겁 없이 러시아, 중국을 침략했고, 나아가 미국까지 넘보다가 결국은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원폭피해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원 한가운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미우라 타마키(三浦環)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저택 한 곳에 그녀의 출연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에서 미우라 타마키는 아메리카의 해군병사 핑커톤을 기다리던 나비부인의 역할을 수 차례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글로버 정원을 나와서 오우라대성당(
大浦天主堂), 중국인거리, 코우후쿠지(興福寺), 오란도자카 (오란도 언덕)등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오란도’는 일본어로 네덜란드를 뜻하지만 당시는 동양인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오란도 사람이라 불렀다.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아직도 외국인 거류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그 옛날 이곳에 살던 외국인들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나가사키를 즐기는 법

나가사키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 도보 여행도 무난하지만 노면전차나 버스를 이용해 좀더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커뮤니티버스인 란란(らんらん)버스는 1회에 무조건 100엔이지만 1일 무제한 승차권은 300엔이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도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그리고 나가사키 시내 한복판에는 트램이 달리고 있다. 란란 버스처럼 1회에 무조건 100엔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15분에서 20분 간격으로 도심부를 순환 운행중이므로 주요 여행지를 둘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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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패스포트를 구입할 경우 글로버 정원, 데지마, 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 이 세 곳을 입장할 수 있고 란란버스는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어차피 나가사키에 와서 이 세 곳은 지나쳐서는 안되는 곳이니 강추.


한국에 네덜란드 마을로 잘 알려진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나가사키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두시간 정도는 가야 한다. 테마파크로 운영되다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리조트로 운영을 재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전혀 일본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일찍 국제화가 되어서인지 외국인들에 대한 안내가 아주 친절하므로 혼자 떠나는 나가사키 여행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국인 거리에 들러 중국을 느껴보고, 글로버 정원에 들러 유럽의 19세기를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케이블카를 타고 이나사야마(
佐山) 정상에서 나가사키 사람들이 천만불 짜리라고 자랑하는 야경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발행 <문화공간> 2007년 8월호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