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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몇 개나 넘어 오오이타현(大分県)의 나카츠에(中津江) 마을을 찾아갔다. 나카츠에 마을은 2002년 월드컵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당시 나카츠에는 아프리카의 카메룬 선수들이 5일 동안 묵으면서 훈련을 할 곳이었다. 그러나 카메룬 축구협회와 선수단 간의 승리수당 문제로 오기로 한 날에 선수단은 도착하지 않았다.

간신히 돈문제가 해결 된 후 선수단은 비행기에 올랐지만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영공 통과 허가를 얻지 못해 방콕에서 하루 이상을 더 머물러야 했다. 결국 5일이 아니라 하루를, 그것도 잠도 안자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만 한 채 카메룬 선수들은 떠났다.

인구 1,600명(2007년 현재는 1,200명 정도)이 사는  나카츠에 마을은 선수들이 오기 전까지 아주 분주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오기로 한 날 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묵묵히 선수들을 기다렸고 마침내 도착한 선수들을 온 마음으로 환영했다.

마을의 촌장이었던 사카모토 야스무(坂本 休)씨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해 77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훈련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유명무실해질 순간이었지만 신은 나카츠에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이 웃기지도 않은 헤프닝을 찍기 위해 미디어란 미디어가 이 마을에 다 모였고, 그들이 먹고 쓰고 간 돈이 한 두푼이 아니었단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나카츠에 마을을 보러 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아 그때 올린 수입만 약 1억엔 정도란다. 경제적인 효과는 그 몇 배이고. 일부는 시설 짓는 데 끌어 들인 빚 갚는 데 쓰고 나머지로 재단을 만들었는데 주민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두당 천엔씩을 걷었단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나카츠에마을 지구재단(中津江村地球財團)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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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오오이타현의 석유 돔에서 일본국가 대표팀과 카메룬 팀의 A매치 경기가 열렸었는데 경기 유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카모토 씨였다.

4만명 수용 인원에 이날 공식 입장객은 37,240명이었다. 돔에서 이 정도 규모의 행사가 거의 열리지 않기 때문에 이날 경기만으로 1년 장사를 끝낸 셈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 열릴 뻔한 경기를 카메룬이 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카츠에 마을이 있는 오오이타에서 열어야 한다고 사카모토 씨가 강력히 주장했단다.

운동장 한켠에는 지역주민 약 400여 명이 카메룬의 유니폼을 입고 카메룬을 응원했다. 경기는 아쉽게도(?) 2:0으로 카메룬이 졌다.

현재 시설들은 전지훈련 캠프로 이용되고 있었다. 혹시 유소년 축구팀 중에서 훈련 캠프장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후쿠오카까지만 오면 나머지는 나카츠에 마을이 다 해결한다고.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정도는 괜찮단다. 카메룬에 초등학교를 수십개 지어줬는데 앞으로도 계속 지어주겠단다.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유명한지 '일본 나카츠에 마을 사카모토 씨'라고 쓰면 전세계 어디에서나 배달이 된단다.

최근 일본은 지역간의 합병이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인구 10만이 안되는 곳은 마음에 드는 옆 동네를 찾아가 합치자, 이런 식이다. 합병이 되고 나면 지역 정체성이 없어지는 건 당연지사. 나카츠에도 옆 동네와 합병이 추진 되었지만 마을 이름만은 살아남았다. 브랜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어질 때 일본에 나카츠에 마을이 있다면 한국에는 화천이라는 곳이 있다면서 슬그머니 산천어축제 홍보 리플렛을 내밀었다. 어떤 마을이냐고해서 5년 전만 해도 사람,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곳인데 그 사람, 물이 한해에 관광객을 100만씩 불러 들인다고 소개했다.

사카모토 할아버지는 시간이 되면 화천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2007.9.5)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