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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3 흙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 9
서울에서 내가 살던 곳은 아파트 12층이었다. 내 집에 와 본 친구들이 더러 있어 알겠지만 베란다에서는 공원이 보였고 다용도실 창으로는 한강이 보였다. 여의도에서 불꽃 축제하는 날에는 굳이 여의도에 나가지 않아도 거실에 앉아 하늘을 수놓은 불꽃들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 있는 나무들의 키가 거실에 서 있을 때의 내 키와 거의 비슷해 한 여름에는 그것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렀다. 그래도 울 아빠는 사람은 자고로 흙이랑 가까운데 살아야 한다며 좀 불만이셨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면 빗소리도 못 듣고 얼마나 삭막하냐 그러셨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걸어올라와야 하는 것도 귀찮다 그러셨고. 사실 12층에서도 빗소리는 들린다. 바람을 맞은 비들이 땅이 아닌 벽을 때리는 소리지만.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가는 학생한테 화분을 4개 받았다. 버린다는 걸 내가 잘 기울테니 달라고 해 가져왔다. 완전 공짜는 아니었다. 근사한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을 사 먹였고 화분을 실어오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무사히 내 방에까지 모셔왔다. 화분들은 크고 내 방은 작아 다 들여놓으니 방 절반이 그것들로 꽉 찼다. 물을 주고 잎들을 다 닦아주고 나서 이것들을 보는데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며칠을 화분들과 같이 지내다 오늘 그 중 세개를 공동 키친으로 옮겼다. 나만 보기 아까워 8층의 모든 학생들과 같이 보기 위해서였다. 물은 내가 주기로 했고 장소만 제공해 달라고 8층의 플로어 리더에게 부탁했다. 대환영이란다. 필요하면 물주는 거를 비롯해 관리하는 데 필요한 걸 공동예산으로 사주겠다고 한다. 괜찮다고 그랬다. 일본에 올 때 없었다가 새로 생기는 건 귀국할 때 다 짐이다. 처분하는 데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귀찮다.

키친에 왔다가 새로 입주한 화분들을 보고 학생들이 다들 반가워한다. 아무말 없이 들여다만 보고 가는 학생들도 있고, 쪼물락거리다 가는 애들도 있고, 어떻게든 화분들에 관심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화분들이 내게 오기 전에 수경식물을 좀 키웠었는데 식물은 확실히 흙에 키워야 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흙 밟을 일이 없다가 흙이 가까이 있으니 참으로 좋다. 문득 이 지구에 내편이 생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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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