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와서 가장 놀란 일 중에 하나가 상상이상으로 많은 중국인들과의 조우가 아닐까 싶다. 영국에서 중국어를 쓸 일이 생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비자 받을려면 어느 정도 재산도 증명해야하고, 학비며 생활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럭셔리한 생활을 즐기며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할 때가 많다. 한 1년 지내보니 엑시터 상권은 이런 중국인 유학생들 때문에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엑시터까지 기차로 두시간 반에서 세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개 중국 학생들은 택시를 타고 도착해서, 떠날때도 택시를 불러 런던까지 간다. 그 일만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트가 있는데 이 남자 벤츠를 몰고 다닌다. 이 사람이 데리고 있는 직원들이 여럿 있는 것 같은데 이 사람만큼 영어를 못해 런던에서 학생들을 태우고 엑시터까지 올때는 난리를 몇번 쳐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학생들의 숙소 위치를 묻기위해 나같은 레지던트 튜터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주소를 불러줘도 도통 못 알아듣는다.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정확한 주소를 문자로 찍어달래서 문자를 보내주면 제대로 찾아와야 하는데 그나마도 못찾아 야심한 밤에 학생들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와서 데려가라고 전화를 한다. 투덜대며 나가면 그 사이에 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있다. 공부하면서 런던 나갈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란다. 기차로 왔다갔다 귀찮지 않겠느냐는 거다. 중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오리엔탈 숍의 사장도 학생들이 산 물건들을 차에 싣고 배달을 해주는데 이 아주머니도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 며칠전 누가 요란하게 문을 두드려 나갔더니 중국인 식당에서 배달 온 친구였는데 이 친구도 BMW를 몰고 왔다. 중국인 상대로 하는 장사가 아주 짭짤한가 보다.
중국에서 공부할 때 베이징의 우다코에 처음 간 날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완전 코리안타운으로 생활하는 데 중국어가 전혀 필요없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10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다코 쪽에서 중국어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신뢰가 잘 안간다. 엑시터는 영국의 다른 도시보다 중국인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그게 상대적인 것이지 눈에 보이는 중국인만 해도 엄청나다. 내가 관리하는 이 기숙사만해도 거의 80%가 중국인인 것 같다. 나머지가 인도, 중앙아시아, 러시아, 중동에서 온 부자들의 자제들이다. 시내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니는 애들도 많고, 주말이 지나면 쓰레기 쌓아놓는 곳에 백화점에서 물건 산 봉투며 상자들이 한가득이다. 기숙사를 떠날 때 얘네들이 버리는 물건들이 또한 장난이 아니다. 기숙사 규정상 음식이며, 사용하던 물건들을 남기지말고 무조건 버리라고 하는데 아까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규정이니 어쩔 수가 없다. 영국에 처음 오던 날 중국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와서 중국인 이웃들 하고만 어울리며 중국식당에서 배달한 음식만 먹고 지내다 떠날 때도 중국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중국으로 떠난다. 그러다보니 도착한 날은 영어 좀 하네, 하던 애들도 체크아웃할 때 방에 문제가 생겨 설명이 필요할 때 그 설명을 영어로 제대로 못하는 애들이 많다. 결국 중국어로 하다 안되면 그냥 벌금을 내고 떠난다.
처음에 살던 기숙사에도 중국애들이 많았는데 그 애들은 사는 게 지금 이 기숙사의 중국애들과 아주 달랐다. 우선 기숙사 방값이 여기의 절반도 안된다. 여긴 일주일에 140파운드 정도로 방값이 비싼 편이다. 가재도구 중에 일회용품도 많았고, 아이스크림통 등을 재활용해서 사용하기도 했고, 거의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하는 애들이 많아 시내 커피숍이나 학교안 매점등에서 이 애들을 자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사는 기숙사 애들은 돈 걱정과는 거리가 먼 애들로 보인다. 매너도 가진 돈만큼 따라오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 사실 트러블이 많이 생긴다.
얼마 전 내 층에서 일어난 일이다. 중국인 하나가 내 사물함에 있는 후라이팬을 꺼내 쓴 것까지는 좋은데 요리하면서 뭘 사용했는지 완전히 망가뜨려놓고는 닦지도 않고 턱하니 그냥 놔둔 거다. 이런 싸가지, 하면서 그럴만한 애를 찾아서 네가 그랬니, 했더니 내가 그랬는데 하나 사줄게, 그럼 됐지, 이러는데 아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혼자 생활하는 게 다들 처음이라 공동체 생활하면서 겪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요리하다 손가락을 베어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찾아와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고 해서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와야 할 때도 있었다. 전자렌지에 음식을 넣어놓고 지켜보지않아 안에 유리가 박살이 나고, 화재경보기가 울려 구급차가 달려올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냥 벌금을 내겠으니 얼마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다.
오늘도 오후에 한건이 터졌다. 어디선가 고구마 굽는 냄새가 나서 나도 장에 가서 고구마나 사다 먹을까 그러고 있는데 순식간에 냄새의 종류가 바뀌더니 밖에서부터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방으로 들어왔다. 불이 난줄 알고 깜짝 놀라 부엌에 나가봤더니 중국인 여학생 하나가 창문도 안 열어놓고 그릇이 탔는지 연기 속에서 묵묵히 그 그릇을 닦고 있었다. 네가 그랬느냐고 했더니 안그랬단다. 여기서 만난 중국애들은 이상한 버릇이 있다. 잘못한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네가 그랬느냐고 하면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그런다. 그래서 결국은 같은 층 전체 애들한테 벌금을 물리면서 일을 마무리하게 된다. 참 알 수가 없는 애들이다. 얘네들이 중국의 미래라니 원.
*사진: 에티오피아의 바하르다르에 갔을 때 코이카 단원 숙소에서 하루 묵고 떠나던 날 찍은 사진이다. 빨리 박사과정 끝내고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으면서 한 1년 놀았으면 좋겠다. 졸릴 땐 저렇게 햇살 받으면서 잠도 자고. 사진 속의 개팔자가 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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