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찜질방, 일본의 온천이 그리운 시절이다. 아침 저녁으로 많이 추워졌다. 햇살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바람이라도 불면 가볍게 산책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다. 사진은 엑시터에 와서 작년 이맘때 찍은 사진이다. 곳곳에 푸른색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굴러다니는 낙엽들이 곧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그 사이 여기저기에 제출할 것도 많았고, 국제학술대회 같은데 참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박사 2년차에다 학교에서 받는 장학금 때문에 학기 초에는 신입생 대상 워크숍에도 참여해야했고, 취업준비생들 모의면접하는데 가서 조언도 해줘야했다.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왜그리 많은지 영국대학 와서 받은 이런저런 증명서만 수십장은 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제, 내가, 바야흐로,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게 실감난다. 말 함부로 할게 아니라는데 나한테 해당되는 소리 같다. 방에 혼자 처박혀 해야하는 일은 절대 안 할 거고 그런 일은 관심조차 없다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그런 일에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중인 지금의 나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미국의 지인은 이렇게 사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던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펀딩을 제대로 받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면 이 생활, 그리 나쁘지 않다.

이제 2년만 있으면 또 밥벌이를 찾아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데 사실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이도 많고, 가방끈도 긴 데다 결혼안해 성격도 나쁠 것 같은 나를 한국의 어떤 조직에서 돈을 주고 데려가려 할까.  '인디펜던트 리서처 independent researcher'라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더러 만났지만 '인디' 붙은 일 중에 어디 쉬운 일이 있나. 어쨌거나 뭘로 밥벌이하며 지낼까, 생각하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커피 투어리즘 연구를 좋아하는 영국이나 유럽의 대학, 연구소 혹은 개발관련 기관에 남거나, 아니면 커피 생산국의 정부 부처나 국제기구 같은데 가는 방법이 최선일 텐데 그러면 아무때나 김치찌개, 콩나물국밥을 먹을 수 있는 생활과는 또 멀어져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또 내 끼니 걱정에 소포꾸러미를 싸들고 우체국에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써먹을 수 있는 곳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또 새로 말을 배워야하는 곳이면 그것도 골치아픈 노릇이다.  언제 밥벌이 걱정 안하면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으려나. 다른 사람들은 참 쉽게도 찾는 것 같은데 난 10년이 넘게 이나라저나라를 헤매고 있는데도 아직 그 답을 못 찾았다. 지금 하는 이 연구가 내 밥벌이가 되면 딱 좋으련만...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