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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8 늦은 새해인사 6
  2. 2009.12.23 channel 24 그리고 친구 랍쇼 12
  3. 2009.12.19 가든힐 하우스 8
  4. 2009.12.15 엑시터 근황 6
  5. 2009.11.28 오죽헌 구용정 단상 10
  6. 2009.10.21 문화충격 6
  7. 2009.10.14 여기는 영국 14
  8. 2009.09.30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12
  9. 2009.09.12 영국유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4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boxing day sale 기간도 지나고, 연말도 지나고, 새해 인사 기간도 다 지났습니다. 그 사이 눈이 없다는 이곳에 며칠간 쌓여 녹지않는 눈이 몇번 왔고, 이제 이곳에서 특별할 것도 없는 비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내렸습니다. 하이티 지진참사를 돕는 모금행사가 학교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고, 오늘 연구실 앞에는 각종 핸드메이드 빵을 판매중입니다. 한번 오면 한시간 이상씩 말을 시키는 말레이지아 친구가 오늘은 그냥 오기 미안했는지 연구실 앞에서 파는 치즈 케이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보기보다 맛있었습니다.

피천득 선생이 어느 수필에선가 그랬죠. 1월이면 이제 봄이라고요. 자정이 넘으면 곧 새벽인 것처럼 1월이면 봄이 온 거라고요. 1월이 봄이면 4월 5월은 어떻하냐고 하니, 봄은 1월, 2월, 3월, 4월, 5월 전부여도 좋다고 그러셨죠. 날씨가 아직 쌀쌀하지만 마음은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여기와서 두번째 학기가 시작되었거든요. 수업과목에 Spring 뭐 이런게 들어가니 진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첫번째 학기는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시작해서 또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게 끝났는데 두번째 학기는 그래도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시작을 해 다행입니다.

그 사이 또 이사를 했습니다. 여기와서 세번째 이사입니다. 학교 안의 기숙사인데 지금까지 입주한 기숙사 중에 그래도 제일 업그레이드된 곳입니다. 이곳에서 6월말까지 공짜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방안에 샤워실까지 다 갖추어져 있지만 세탁을 안에서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빨래를 들고 길을 건너 번호를 여덟개인가 눌러야 문을 딸 수 있는 곳에 가서 세탁에 2파운드, 건조에 2파운드를 줘야 합니다. 공짜 이외에 덤으로 좋은 건 냉장고 두개를 여섯이 나눠쓰는 겁니다. 라면 20개 담을 수 있는 박스 정도 크기의 냉장 공간을 사용하다 그런 것 여러칸을 맘대로 사용하니 참 좋습니다. 저 말고 다섯명이 중국인인데 시끄럽고 담배피는 것 말고는 견딜만 합니다. 폭설이 내리던 날 택시도 안오는 곳에 같은 과의 이가랑 친구가 와서 어설프게 대충 싼 짐을 다 날라줬습니다. 짐 나르던 내내 우리가 아무래도 윤오순씨 마누라 같애, 하던 두 사람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남들 몇년씩 준비하는 유학을 한달 뚝딱 준비해서 오는 바람에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이 학교가 날 받아 줄까에 대한 고민들, 합격을 한 후에 비자가 제대로 나올까에 대한 고민들, 그런 시간들이 남들보다 짧았던 대신에 방도 많이 옮겨야했고 돈도 많이 써야 했습니다. 비자 받은 날 비행기표를 산 덕분에 남들 두배 정도의 비행기삯을 지불해야했고, 아무 준비없이 히드로 공항에 내려 학교까지 와야했기 때문에 예약하면 싸다는 할인티켓도 못 사고 역무원이 달라는대로 돈을 줘야했습니다. 도착해서도 집이 없어 홈리스 생활을 해야 했고 어디가서 필요한 걸 사야하는 지 몰라 그냥 눈에 띄는 대로 필요한 걸 사다보니 안 써도 되는 돈도 쓰게 되더라고요. 밥힘으로 사는 제가 거의 두달 동안 밥구경을 못했고, 김치는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김치없이 난 못살아, 노래를 불렀는데 살아보니 또 살아지네요. 겨울방학 기간동안 학교에 난방이 안되고 숍들이 문을 다 닫을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지인들이 보내준 이런저런 먹을거리들 덕분에 굶어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에 내가 공부할 책상이 있어 방황하지않고 공부는 쭉 해올 수 있었지만 좀더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구실의 박가는 오늘도 학비 걱정 없는 주제에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고 그럽니다.

풀타임 아르바이트는 아니고 기숙사를 공짜로 쓰는 조건으로 일을 시키려는 곳에서 신원조회 양식을 보내왔는데 5년간 머물렀던 곳 주소를 모두 적으라고 하더군요. 비자가 필요했던 곳들은 조회하면 나올테니 다 적어야하는데 그 사이 참 많이도 돌아다녔더라고요. 일본 주소도 몇개 적어야했고, 에티오피아도 있었고, 영국내에서도 서로 다른 주소를 세번이나 적어야 했습니다. 무슨 구, 무슨 동, 이런 주소를 쓰다가 이제는 에비뉴도 들어가는 주소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 첫 유학지가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5년 전이라 쓸 필요가 없었지만, 주소를 적으면서 처음 베이징에 도착해 낯설어 정신못차리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국에 도착했을 때도 처음엔 막막 그자체였는데 그래도 살아보니 또 살아지네요. 가만 제 인생을 들여다보니 어디든 적응하는데 최소 3개월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잊을만하면 내리는 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주먹밥을 두개 만들어왔는데 점심에 박가의 샌드위치를 얻어먹는 바람에 아직도 두개 그대로입니다. 저녁까지 연구실에서 해결하고 집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매일 이곳에 오시는 분들, 올해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대박나도록 기원하겠습니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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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랍쇼라는 친구가 있다. 본명이 따로 있지만, 성이 '어'씨라서 어랍쇼라는 닉네임을 오랫동안 쓰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다들 어랍쇼도 귀찮은지 그냥 '랍쇼'라고 부르고 있고, 나도 친구를 '랍쇼'라고 부른다. 강원도 화천의 쪽배축제와 산천어축제를 기획했고, 축제를 주관하는 나라축제조직위원회에서 거의 10년을 기획팀장으로 일했으며, 지금도 프리랜서 형태지만 두가지 축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친구이다. 기획한 축제를 비주얼로 구현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재주꾼인데 축제 자체에는 그리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면서도 애플의 맥컴퓨터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축제에서 사용되는 모든 홍보물이 이 친구 손에서 나온다. 같이 일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때도 그게 참 신기했고, 여전히 신기하게 생각한다.  

일본으로 유학오기 전에 친구 랍쇼가 이 블로그를 만들어줬다. 어쩌다가 블로그 만드는 데까지 이야기가 흐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컴퓨터를 처음 쓰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아이디가 블로그의 도메인 주소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 channel 24가 블로그의 이름이 되었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친구들 둘이 이외수 선생님 문하생으로 있을 때다. 선생님 댁에 놀러가면 자연스럽게 두런두런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이 친구들은 다큐멘터리 채널 24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것들이라서 다큐멘터리 채널 같다는게 이유였다. 그런데 왜 채널 23도 아니고, 25도 아닌 채널 24인지는 귀신도 모른다. 그 귀신도 모르는 채널 24가 이 블로그의 이름이 되었다.

블로그 내용은 주로 중국, 일본, 에티오피아, 영국에서 경험한 내 study nomadic 기록인데 한국 이야기도 가끔 등장한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글만 올렸지만 요즘은 사진도 제법 올리고 있다. 가끔 글만 올렸을 때는 랍쇼가 글에 맞는 사진을 찾아 쥐도새도 모르게 올려준다. 좀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나오는 글들은 랍쇼가 손을 대서 완전 색다른 글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진이 너무 크거나 이상한 것도 랍쇼가 알아서 손을 봐 준다. 이 블로그에 트위터 위젯이나 다국어 위젯,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엑시터 전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웹캠사진도 랍쇼가 달아줬다. 1년에 한번인지 6개월에 한번인지 계정유지비를 내는 것 같은데 그것도 랍쇼가 다 해준다. 내 블로그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랍쇼가 없으면 안 굴러가는 블로그가 puandma.com :: channel 24 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업데이트도 잘 못하고 재미있는 내용도 없는 이 블로그를 3년째 관리해주고 있는 우렁각시 랍쇼에게 2009년이 가기 전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그저 고맙다, 는 말밖에 지금은 생각이 안난다. 

고마워, 친구! 새해에도 가족모두 건강하고, 새로 이사하는 집에서 람이, 람이 엄마랑 뭘해도 대박나도록 기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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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오자마자 시내의 Northernhay House라는 데서 살다가 학교 안의 가든힐 하우스라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특별히 나을 건 없는데 연구실이랑 가깝고 게다가 많이 싸다. 엑시터에 오기 전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기숙사를 둘러보면서 '저 곳'에서는 절대 안 살 거야 했었는데 이사 오고나서 보니 바로 '그곳' 이었다. 기숙사가 얼마나 구리면 홍보용 사진을 저딴 걸 올릴까 했었는데 기대에 딱 부응하는 집구조에 방구조이다.


홍보용 가든힐 하우스 사진.              
사진출처: http://www.exeter.ac.uk/accommodation/guide/gardenhillhouse.shtml

방은 바닥의 높낮이가 달라서 움직일 때마다 비행기를 타는 기분인데 가격대비 엄청 넓어서 좋다. Northernhay House의 두배 정도 넓은 것 같다. 이곳도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 총 21명의 입주자 중 8명이 중국인이고 전부 내가 사는 동에 산다. 집은 두 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떻게 배정을 했는지 내쪽 동의 부엌이며 샤워룸, 화장실, 거실 비스무레한 곳은 늘 지저분하고 더러운데 다른쪽 동은 샤워룸이며 부엌이 늘 깨끗하다. 심지어 얘네들은 음식도 안해먹고 샤워도 안하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화가 나셨는지 내 동 부엌에는 거의 날마다 제발 화장실이며 부엌, 냉장고 상태를 깨끗이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으시는데 소용이 없다. 사진을 찍어, 이건 'O' 이건 'X', 이런 것도 게시판에 붙여놨는데 역시나 무용지물이다.

내년 6월까지 여기서 살 생각인데 내가 이웃들과 언성 높이는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일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현관앞에 빨래들을 죽 널어놔서 짜증이 났는데 언제부터인가 안보여, 드디어 이게 별로 좋은 게 아닌가 알았나보다 그랬는데 웬걸, 복도의 난방기구에 속옷들이 뒤집어져서 널리기 시작했다. 가든힐 하우스의 기숙사는 세탁기 사용은 공짜인데 건조기 사용하는데 30분에 20펜스가 필요하다. 20펜스를 아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건조기에 넣으면 옷이 상할까 그러는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옷들이 그렇게 품질이 좋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생각에 그냥 20펜스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여학생들이 항상 생리대를 싸지 않고 뒤집어서 버리는 바람에 내가 괜히 창피하다. 부엌 싱크대에서 양치질하는 풍경은 일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익숙해져서 새로울 건 없는데 설겆이 그릇이 있어도 치우지않고 그냥 양치한 물을 내려보내니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장을 곱게하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기숙사를 나서는 여학생들을 보면 난 만감이 교차한다.

직접 사진 찍은 가든힐 하우스.

얼굴빨개지는 아이, 인가 뭐 그런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기숙사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산다. 내 동에 사는 영국인인데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 되는 것 같다. 처음에 샤워실 문을 잘 못잠그는 바람에 샤워를 마치고 나는 벗은 상태에서 그 사람은 옷을 다 입은 상태에서 문이 열려 어색하게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뭐 그게 꼭 이유는 아니지만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고 여전히 서먹하게 지낸다. 8년차 박사과정 학생인데 꿈이 캠프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거란다.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인데 별로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사람 방 옆에 세면시설이 하나 있는데 저녁 10시가 넘으면 사용을 못한다. 기숙사 룰에는 그런게 없는데 이 사람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시끄럽다고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당근 사용 못한다. 1층의 부엌에 하나밖에 없는 세탁기나 건조기도 이 사람이 쉬는 시간에는 사용을 못한다. 1시간 빨래 건조를 위해 40펜스를 넣고 시간이 되었겠거니 하고 내려가보면 전원이 꺼져있을 때가 많다. 시끄럽다고 이 사람이 끄는 거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메시지를 써서 붙여놨는데 그 앞에 보란듯이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뭐랄까, 심술궂은 어린애 같다. 싱크대에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흘려보내 싱크대 물을 철철 넘치게하는 주범인데 아무도 이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말을 못한다.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아무튼 답이 안나오는 미스테리 인물이다.

이 기숙사에서 딱 세명의 학생이 심하게 담배를 피운다. 중국인 한명, 인도인 한명, 네팔인 한명. 실내에서는 담배를 못 피게 되어 있는데 복도며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는 자기는 절대 안 피웠다고 한다. 얘네들도 나한테는 꼭 심술궂은 어린애들 같다. 이 인간들은 담뱃불을 붙일 때 꼭 부엌의 가스를 사용한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 이상한 연기만 나도 화재경보기가 울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물 구조인데 이 인간들 때문에 알람이 울리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튀어나가야 한다. 참다가 안되면 학교 기숙사 안내 부서에 연락을 할 생각이다. 피곤해서 못 살겠으니 흡연자들은 입주를 금지하게 해달라고...

어제는 네팔 왕자(풍모가 왕자라서가 아니라 게으르기가 이를 데 없어 혼자 그렇게 부른다. 저 정도로 게으르면 그 나라에서 왕자가 아닐까 해서...)의 생일이라고 외부인들이 이 건물을 점거해 새벽 3시가 넘도록 시끌벅적 난리를 피웠는데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기타연주를 새벽 1시에 하는 바람에 결국 꼭지가 돌아 나갔더니 벌써 여러 학생이 조용히 해달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단다. 입에서 십원짜리 욕들이 튀어나오려고 했는데 겨우 참았다. 이 기숙사는 대학원생만 입주가 가능한데 거의 날마다 파티를 즐기는 학부생들이 대학원생들의 공부며 수면을 방해할까 하는 학교의 배려 때문이다. 네팔 왕자와 그를 추종하는 두명의 흡연자들은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들인데도 생활은 꼭 학부생들처럼 한다. 날마다 시끄러워 돌아버리겠다.

입주자들에게 냉장고 한칸씩이 배정되는데(그것도 처음엔 엉망진창으로 냉장고를 사용해 입주자들이 회의를 해서 고안해 낸 방법이란다.) 냉장고 크기도 작고 뭐 별로 넣을 게 없지만 그나마 없으면 불편하니 밖에 두면 상할 것들을 몇가지씩 넣어둔다. 그런데 저 네팔 왕자의 우유가 늘 속을 썩인다. 우유병 뚜껑 똑바로 안 닫으면 그냥 안 놔두겠다고 경고를 세번이나 했는데 말을 듣지않아 오늘 드디어 1000밀리리터 우유를 그냥 버렸다. 내 윗칸과 내 칸이 저 인간의 우유로 완전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맥주 마시다 그냥 넣어둔 것, 치즈나 고기 등 먹다가 랩으로 싸지 않고 그냥 넣은 것들도 이제 내가 다 버릴 계획이다. 우유 버리면서 야채 상한 것, 음식 상한 것도 그냥 버렸다. 왜 벌레가 들끓는데도 그걸 안 버리고 그냥 지내는 지 모르겠다. 왜 먹던 음식을 그냥 넣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왜 고기를 그냥 싸지않고 냉장고에 넣느냐고 했더니 중국인 애들이 하나도 아니고 전부다 왜 그걸 싸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느냐고 되물어서 쇼크를 먹었다.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 내가 말할 입장도 아니고 말해도 달라지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뭘 끓여먹으러 부엌에 가기가 싫다. 그러니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얼마나 짜증이 나실까. 치워도 표도 안나니 말이다.

이곳에 와서 견고해진 생각이 몇 가지가 있다. 전에는 물론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다. 공부가 끝난 후 어디에 가서 정착을 할 지 잘 모르겠지만 내 빨래만 할 수 있는 세탁기, 내가 먹을 음식만 넣을 수 있는 냉장고가 있는 곳에서 살 생각이다. 자동차보다, 집보다 내겐 더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계약서를 써야할 때 요 두 가지는 꼭 집어 넣어야지, 할 정도로 세탁기, 냉장고에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그런 세탁기, 냉장고가 있을 때는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내 진정 몰랐었다.


기숙사 안은 스트레스 천지인데 그래도 밖에 나오면 행복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를 주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따라 나는 날마다 연구실에 나간다. 그래서 내년 6월말까지 잘 버텨야지, 오늘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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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엑시터에 온지 3개월째 접어든다. 온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겨울방학이란다. 영국의 박사과정은 코스워크가 없고, 난 일본에서 이미 6개월 정도 워밍업을 한 상태라 오자마자 크게 헤맬 일은 없었다. 방문제가 크게 걸렸었지만...미국처럼 코스워크가 있었다면 수강신청도 해야하고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겨울방학 동안은 지도교수에게 내 연구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없어 숨을 좀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여긴 대학이 중심이 되어 상권이 돌아가는 곳이다. 학생이 한 2만명 정도 되나? 넘나? 이 학생들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싶은 그런 곳이다. 학교 주변은 주택가에다 농지가 대부분이다. 내 친구 랍쇼가 이 블로그에 달아준 웹캠 이미지로 엑시터 시내를 보면서 이렇게 심심한 곳이었나 싶었다. 근처에 바다가 있는지 비만 오면 갈매기들이 학교 잔디밭으로 날아든다. 잔디밭을 바다로 착각하는 건지...

학교에서 시내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 내 걸음으로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 기숙사가 캠퍼스 안에 있기 때문에 장을 보려면 시내까지 가야 한다. 학교에서 시내까지 D버스라는 게 다니는데 한번에 2파운드 정도 드는 것 같다. (안 타봤지만 버스 창에 그렇게 씌여있다.) 왕복이면 4파운드, 한국돈으로 8천원 정도 된다. 영국 물가 비싼 거 유명한데 교통비도 그렇게 비싸다. 그래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아직 눈구경은 못했다.) 시내는 늘 걸어다닌다. 학교 안에 매점이 몇군데 있는데 물품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고 많이 비싸다. 시내라고 하지만 한국의 면단위 다운타운보다 규모가 적어 보인다. 맘먹고 움직이면 한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명품 브랜드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 것 같고, 1파운드 숍도 있고, 테스코도 있고, 막스앤스펜서, 프리마크 등등도 있고. 시끌벅적한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못살 것 같은 곳이 엑시터다. 나처럼 그냥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이곳 엑시터가 천국이다.

                flickr.com/photos/48058518@N00/9465284/

이렇게 작은 도시에 스타벅스가 네곳이나 있다. 시내에 두곳, 학교 안에 두 곳. 한국처럼 대형은 아니고 동네 커피숍처럼 아주 작고 의자도 몇개 없다. 커피를 연구하는 사람이니 더 열심히 카페 투어를 해야 하는데 사실 생각처럼 잘 안된다. 한잔에 1파운드 좀 넘는 커피값도 그렇고 시내까지 걸어서 왔다갔다 하는 일도 쉽지 않고. 보스턴 티 파티라는 곳이 커피 맛도 좋고 유명하다고 해서 가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체인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인테리어를 비롯해 어떻게 정의하기 힘든 커피숍이다. 왜 사람들이 그 곳을 좋아하는지는 좀더 연구해봐야겠다. 그리고 하이스트리트(다운타운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위 사진의 중심 대로를 그렇게 부른다.)를 쭉 따라 걷다보면 도로 양쪽에 작고 아담한 서점이 두곳이 있고, 한곳은 안에 COSTA 커피숍이 들어가 있다. 한국관련 책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두 서점 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Starbucks Exeter High Street
Starbucks Exeter High Street by Glamha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해가 일찍 떨어져서 그런 건지, 영국 사람들은 밤에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 건지 대부분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5시 전에 문 닫는 스타벅스는 보다보다 처음 본다. 이곳의 모든 가게 문 앞에는 개점시간과 폐점시간이 적혀있는데 5시 전에 카페 문을 닫는다는 사실에 처음에 쇼크를 먹.었.었.더.랬.다. 아무튼 이것도 여기 문화다. 내가 식료품을 주로 사는 테스코는 평일은 10시까지 하는 것 같다. 토요일은 오후 7시, 일요일은 오후 5시. The Cooperation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국의 편의점처럼 보이지만 여기도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다. 다른 가게보다 늦게 영업하는 대신 전부 비싸다. 밤 10시가 넘어 갑자기 허기가 져도 엑시터에서는 그냥 참아야 한다. 한국의 편의점이나 일본의 편의점이 왜 여긴 안들어오는 지 모르겠다. 들어오면 장사 잘 될 텐데...대학 캠퍼스가 엄청나게 넓으니 학교 안에 편의점이 두 개 정도 들어오고 정문 근처에 두 개 정도 생기면 딱 좋겠다. 편의점 천지 일본에서 살다 여기에 오니 별개 다 불편하다.

오늘도 연구실에 늦게까지 있을 계획이라 점심 먹고 시내에 나가 장을 잔뜩 봐다 놨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주로 월요일에 어슬렁거리며 나가 장을 봐다 한주를 산다. 말이 잔뜩이지 혼자 30분 동안 걸어서 들고 올 정도여야 하고, 기숙사 냉장고가 작아서 냉장고 한칸에 딱 들어갈만큼 사온다. 생각보다 먹거리가 일찍 떨어지면 학교 구내 매점에서 한국에서라면 거저 줘도 안먹을 것들을 사다 먹는다.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나쁜 짓도 안 하지만, 이렇게 대충 먹으며 살다가 공부 끝나고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한다. 

해도 일찍 떨어지고, 날도 기분 나쁘게 춥고, 편의점도 없고,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지만, 연구실이 기숙사와 가까워서 좋고, 늘 숲을 볼 수 있어 아직까지는 엑시터가 좋다.

방학기념으로 저널을 한편 쓰기로 교수랑 약속을 한 터라 그거 쓰면서 크리스마스도 맞이하고, 연말도 맞이하고, 새해도 맞이할 계획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도 알차게 한해 마무리하시고, 새해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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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꿈에 강릉에 다녀왔다. 며칠전 받은 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만난 유학생인데 한국으로 돌아간 후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강릉이라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었다. 꿈에서, 오죽헌 입구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구용정에도 들렀고, 빈 겨울바다도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다 왔다. 바다에 가기 전에 좌측에 있는 선교장에도 갔었다. 그대로였다. 꿈속에서 다행이다, 라고 그랬었던 것 같다. 

강릉은 아무 연고도 없는데 가끔 가던 곳이었다. 다들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어느 날이었다. 터미널에서 어디로 갈까 하다 '강릉'이라는 글자가 어찌나 커 보이던지 그냥 표를 끊었다. 목적이 오죽헌은 아니었지만 오죽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터라 어떻게 찾아가는지도 모른 채 터미널에서 내려 무작정 오죽헌을 향해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르지만 마침내 오죽헌에 도착했고,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흔적을 더듬어야했는데, 그만 입구 오른쪽에 있는 구용정, 그 정자에 꽂히고 말았다. 정자에 앉아 잠깐만 쉬어야지 하다, 피곤이 몰려왔고, 그냥 대자로 누워 늘어지게 잠이 든 거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모든게 새로워진 기분이었다. 그럼 된 거였다. 구용정 앞의 연못만 한번 더 둘러보고 오죽헌을 나왔다. 바다 근처까지 갔다가 바다도 안 보고 그렇게 서둘러 강릉을 떠났었다. 

대학시절 친구 둘과 함께 도보여행하면서 다시 강릉에 갈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오죽헌 안을 제대로 둘러봐야지 했는데 그만 또 구용정에 드러눕고 말았다. 한숨자고 곧 갈게, 했는데 결국 그날도 난 구용정 감상에 그쳐야했다. 친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난 그저 정자에 앉아 있었다. 

그 이후로도 일이 잘 안풀리면 혼자 훌쩍 강릉에 다녀오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구용정만 둘러보고 오는 바람에 난 아직도 오죽헌을 잘 모른다. 선교장에도 갔었고, 강릉 해수욕장의 빈바다도 보고 왔는데 이상하게도 오죽헌 구경을 제대로 못했다. 5000원 화폐의 주인공이 신사임당으로 바뀌었다는데 오죽헌에 가면 그녀의 자취를 좀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난번 한국에 갈 때는 경주에 꼭 가고 싶었는데, 다음에 한국에 가면 강릉의 오죽헌에 다시 가고 싶다. 그때 오죽헌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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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데 가서도 잘 버텨서 여기서도 잘 버틸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내가 영국에 오기 전에 영국에서 받을 문화충격에 대해 겁을 많이 줬었는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충격은 날씨이다. 내 친구는 영국의 이런 날씨가 좋다고 그랬는데 난 아무리 노력해도 영국의 날씨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다. 거의 날마다 비다. 물론 비온 다음 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등교할 때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산은 필수다.

저녁 늦게 연구실에 있으면 몸이 으실으실 추운데 반소매에 남자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영국처자에게 히터를 틀겠다는 말을 난 도저히 못한다. 여긴 옷차림들이 정말 제각각이다. 거의 다 벗은 차림에 한겨울 방한 차림까지 다양해 옷차림만 보고는 계절을 가늠하기 힘들다. 나는 현재 약 83%정도 겨울 옷차림이다. 체감추위가 극한에 다다를 때 100%에 근접한 겨울옷을 입을 예정이다. 그래봤자 몇개 더 끼워입는 수준이겠지만...옷차림이 자유로워서 그런 건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고도 생활모습도 참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그리고 제일 큰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학생들의 사교방식이다. 일본에서는 학교 선생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내게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전공은 뭐냐, 이게 전부였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게 처음부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묻지 않는다. 지금 어떤 연구를 하느냐가 첫 질문이다. 그리고나서 대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구를 곧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하는 연구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어야 사람 사귐이 가능하다. 강의가 끝나고 파티 비스무리한 게 많은데 간단하게 차를 마시면서 오늘 들은 강의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여기 문화인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시는 분이 내가 유학길에 오를 때 실력과 성실함만 있으면 영국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그러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신 '성공'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지만 짧은 경험으로 보면 실력과 성실함에다 연구정체성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리셉션이 포함된 강의가 하나 있다. 똑똑하고 재미있는 연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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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무사히 영국에 도착했다. 학교 어드미션 오피스에서 비자레터를 너무 늦게 보내준 데다 일본의 실버위크까지 겹쳐 비자 신청이 한없이 늦어졌는데 역신 신은 내편이었다. 5일만에 비자를 받았다. 영국유학 관련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어느 나라나 영국비자센터의 서비스가 불친절하기 그지없고, 엄청 고압적이라고 들은 터라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영국비자 센터는 내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11시 30분에서 1시 30분 사이에 비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그날 비자를 찾을 수 없다는데 업무가 끝난 후에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쪽 문으로 들어오게 해줄테니 비자를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9월 30일 오후 5시에 비자를 찾았고, 여행사에 들러 그날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10월 1일 아침 일본을 떠났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13년 전보다 훨씬 후졌고 더러웠다. 나는 예외였지만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입국심사 시간이 엄청 길었다. 엑스레이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입국심사관 전공이 Geography였던 덕분에 난 30초도 안걸려 입국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행운을 빈다면서 쾅, 하고 도장을 찍어주는데 정말 내게 행운이 찾아 온 느낌이었다. 두개의 짐가방에 기타를 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본 한 영국청년의 도움으로 런던에서 엑시터까지 오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땡큐, 제임스!! 영국의 친절함은 딱 여기까지였다.

도착하던 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엑시터의 날씨가 나를 맞이했다. 영국은 생각보다 훨씬 춥고, 비도 많고, 더럽고, 불친절하고, 물가는 살인적이고, 중국인 천지다. 내가 사는 층은 나 빼고 전부 중국인인데 이보다 더 더러울 수 없을 정도로 공동시설을 엉망으로 사용한다. 돈 쓰는 것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이 사람들 위생개념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토 나올 정도다. 게다가 예의도 없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영어가 아니라 그냥 중국어로 말해버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영국에 와서 중국어로 말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 정도로 중국인이 많다. 일본에 살 때도 중국학생들은 자기들 방에 세면대가 있는데도 꼭 부엌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가래침을 뱉었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그냥 휴지통에 버리고, 볼 일을 본 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나온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학교 기숙사관련 사무소에 방을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지금 난 난민 신세다.

영국학교에서도 일본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지, 하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는데 언덕 천지라 그건 포기했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 구보를 하는 것 같다. 많이 걸어야 하는 대신에 시에서 관리하는 보호림 지역이 학교안에 있어 마음껏 자연과 친구를 할 수 있어 좋다. 비가 자주 와 우산이 필수라는 게 좀 귀찮지만 비는 내가 맘대로 할 수 없으니 견딜 수 밖에.

학교 홈페이지를 보면 전부 유럽인들 이름뿐이라 좀 쓸쓸하겠다 싶었는데 왠걸, 올해 나를 포함해 세명(박가, 이가, 윤가)의 한국인이 우리 학과의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엔 경쟁하는 분위기에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잘난척으로 분류를 해버려 이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내고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나랑 연구실도 같고, 지도교수도 같다. 무슨 이런 인연이 다 있는지. 이번주 일요일에 연구실 같이 쓰는 이가네 집으로 김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영국 오기 전에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내가 가진 살림살이 전부를 주고 짐 한박스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우송료가 좀 과했나보다. 나보고 반을 부담하라는 연락이 왔다. 살림살이 일부를 주지말고 팔걸, 하고 심하게 후회하고 있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도 우편물이 올지 몰라 일본의 오카아상(일본어로 어머니) 기노시타 씨네로 내 주소를 이전해놓고 왔는데 의외로 우편물들이 많았다. 국민건강보험료와 카드대금이 남아 지불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전부 지불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온 우편물들을 전부 모아 계속 EMS로 보내주신다. 감사합니다!!이건 내게 여전히 남은 행운이다.

방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빨리 난민신세에서 벗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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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내가 일본에서 매달 돈을 내며 사용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 다 끊어진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기숙사 방도 뺀다. 여기서 한 3년은 더 살 줄 알았는데 오늘이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 예정대로 비자가 나온다면 말이다. 예정대로 그렇게 비자가 나오면 난 내일 영국에 도착해 있어야하고 바로 수업을 시작해야한다. 추적추적 비까지 오는데 기분이 묘하다.

한국문단을 휩쓸고 있는 젊은 작가한테 오늘 메일을 한통 받았다. 나와 친구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이 작가는 문학상으로 화려하게 등단을 하더니 작가가 탈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가져가면서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홈런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나보고 '노벨공부상' 타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이 작가 혹시 노벨문학상을 꿈꾸고 있는 거 아닌지. 이번에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단다. 그러면서 뭔가 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는데 나도 4년후 노벨공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논문을 마치면서 정말 내가 이겼다는 느낌, 이런 느낌 꼭 받고 싶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 제가 영국에 가서 잘 적응하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기원해 주세요. 요 며칠 전까지 심각하게 불안했는데 이제 그런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대책없는 자신감이 생기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제 영국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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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그간 내가 가진 영국의 이미지는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가 아닌 태양이 자주 뜨지않는 나라였다. 지금부터 10여년전에 방문했던 영국은 하늘이 낮고 또 어두운 날들이 며칠씩 계속되었으며 한 여름인데도 날씨는 내가 가진 옷으로 막아내기에 너무 추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불친절한게 아니었는데도 영국인들이 뱉어내는 차갑고 무뚝뚝하게 들리는 발음들은 이방인을 심하게 외롭게 만들었다. 두툼한 털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추위에 떨던 나는 결국 최선의 선택으로 목도리를 장만해야했다.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도 돈을 내고 볼일을 봐야하는, 우리 정서로는 많이 야박한 나라였고, 음식에 관해서도 영국은 내게 선진국이 아니었다. 광우병 영향도 있어 먹을 것 챙겨먹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선택의 폭을 생각한다면 여행객 입장에서 확실히 먹을 게 없는 그런 나라였다. 당시에는 말이다.


런던을 구경하고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사이에서 갈등하다 캠브리지를 택했고 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달려 캠브리지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면서 이곳에서는 공부밖에 할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학생으로, 비탈에 위치해있던 인문대교실과 도서관을 격한 운동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왕복해야했던 나는 평지 일색인 캠브지리대학 캠퍼스가 참 많이도 부러웠다.

그리고 북상하면서 에딘버러 페스티벌도 구경하고 당시 별볼일 없던 글라스고에도 들렀다. 맥도날드가 배안에 있을 만큼 규모가 큰 페리를 타고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갔었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코크를 거쳐 프랑스로 이동했다. 

그후 영국에 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게 되었다. 내 연구테마로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
견들이 자꾸 나와서 간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영국의 여러 학교에 연구계획서를 보냈다. 생각보다 반응들이 너무 좋았지만 박사과정 내내의 학비며 생활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연구계획서를 보낸 학교 중의 한 교수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내게 컨택을 해왔다. 보통 학생이 나를 받아달라는 입장으로 열심히 학교에 컨택을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두번째 메일에서 장학금 오퍼이야기가 나왔고 네가 바보같은 선택을 하지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메일을 이어서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마치 그곳에 갈 것처럼 안내하는 메일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아는 학교는 내 연구를 지도해줄만한 교수가 없었고, 설사 합격을 해도 당장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도서관 자료가 풍성한 학교, 아프리카 연구가 활발한 학교는 내가 지원이 너무 늦어서 장학금 찾기가 힘드니 같이 한번 찾아보자는 연락들 일색이었다. 지금도 몇몇의 선생들은 장학금을 찾고 계시다.

그런데 다 포기하고 영국 서남부의 엑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서 공부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장학금에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내겐 최상의 연구환경을 제공할 학교라는 확신이 들었고, 무엇보다 향후 내 지도교수가 될 클로크 교수의 적극성에 다른 학교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 교수가 영국의 한 기관으로부터 펠로십 받을 때의 프로필과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아예 마음을 굳혔다. 슈렉 탈을 쓴 사람인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클로크 교수 사진 아래에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 기르고 있는 개라는 내용이 있었다. 보통 제한된 지면에 프로필을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이력을 과대포장 하려고 바쁜데 어떻게 보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을 수 있는 프로필과 푸근하게 웃고 있는 아저씨 같은 이 교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영국의 입학 오퍼에는 언컨디셔널 오퍼와 컨디셔널 오퍼가 있는데 대학이 제시하는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합격을 하더라도 언컨디셔널 오퍼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데 컨디셔널 오퍼만으로는 영국비자신청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원서류에 필요한 게 다 있었는데 영어시험 성적표가 없었다. 한번 보려면 일본돈으로 26,000엔이 넘는 비싼 시험이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영어성적표는 입학사정에 필요한 중요한 서류 중의 하나였지만 내가 이 학교에 올 생각이 있으면 그것 없이 언컨디셔널 오퍼를 줄 것이며, 내가 오케이하면 올해 10월부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단다. 제공되는 장학금이 올해 10월에 반드시 학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은 거라서 빨리 선택을 하라셨다.

유학에 대해 처음 고민할 때 영국 대학들이 대부분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니 빨라도 내년 가을에나 유학을 갈 거라 생각했다. 박사과정의 경우 1월, 4월에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빠르면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너무 빨리 유학이 결정됐다. 어제 드디어 언컨디셔널 오퍼를 받았고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학교에서도 최대한 서둘러 내가 영국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특급우편으로 장학금 관련 서류를 비롯해 비자신청 서류들이 도착하고 있다. 

도쿄에서 지낸 지 올해가 3년째인데 이제 보름도 채 남지않은 기간동안 여기 생활을 다 정리해야 한다. 기내로 혹은 수하물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짐의 무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미련없이 버려야한다. 일본 올 때 단출했었는데 그 사이 살림살이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래도 다 버려야한다. 아무 준비없이 일본유학을 왔었는데 또 아무 준비없이 영국에 가게 되었다. 그간 이곳에서 겪었던 개고생들이 그곳에서의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출처
위: http://rosskendall.com/photos/scenery/misty-morning-view-of-cambridge-university
아래: 엑시터 대학 홈페이지 http://huss.exeter.ac.uk/international/studying.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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