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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8 발효된 의문들 답을 얻다 4

1. 닛산 MARCH 오렌지색

한국에서도 박사과정 학생들의 생활은 유학생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단조롭고 때론 심심해보이기까지 하다. 사실 마음은 한없이 조금하고 여유가 없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좀 꿈지럭거리다 밥먹고 학교가서 또 꿈지럭거리다 때되면 또 밥먹고 또 꿈지럭거리다 해 떨어지면 집에 온다.
날마다 주말이라서 토요일 일요일이 특별하지도 않다. 이런 생활에 변화라면 내 경우 집근처 숲길 산책이나 시립도서관에 다녀오는 일이다. 읽을만한 책 수는 학교 도서관과 비교할 수 없지만 영상물 대출도 해주고, 없는 책들은 주문하면 며칠 후에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도서관보다 가깝다.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기숙사 정문에서 출발해 직진 우회전 다시 직진하는 방법, 우회전하다 한없이 직진하는 방법, 수도 없이 우회전 마지막으로 직진하는 방법 등이다. 이 중에서 직진 우회전 다시 직진하는 방법으로 갈 경우 우회전하기 직전에 이 문제의 차를 만날 수 있다. 닛산 MARCH 오렌지색 소형차이다.

내가 지금 기숙사에 온지 올해 3년째인데 이 차는 한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 말이다. 주차장이라지만 천장이 없고 쇠줄 하나로 경계를 표시한 정도인데 내가 그 앞을 지날 때 그 차는 늘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사쿠라가 필 때도 장대비가 쏟아질 때도 찬바람 불고 다시 눈이 내리던 그 때도 오렌지색 그 차는 거기에 있었다.

차는 항상 세차되어 있었고 내가 차의 안위를 걱정할만큼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떤 날은 꿈을 꾼 적도 있다. 이 차가 몇년째 탈출을 시도했는데 그러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을 한 후 도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꿈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이 차가 움직이고 다른 큰 차들이 보디가드처럼 따라가는 걸 보고 안심하며 잠을 깼는데, 싱거우면서 내 스스로 어이가 없어 그날 하루종일 실실 웃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에 가서 그 차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지난 주말에 드디어 이 차의 운전자를 만났다. 운전이 가능할까 싶은 할머니가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옆자리에는 애완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반가워 손을 흔들었는데 할머니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3년째 궁금했던 의문이 그렇게 풀렸다. 좀 아쉽다.




2. 쓰레기통 옆의 물병 두개

기숙사 방에서 나가 엘레베이터로 가는 좌측에는 분리수거함과 함께 몇개의 쓰레기통이 항상 도열해 있다. 빈깡통만 넣는 통, 빈유리병만 넣는 통, PET병만 넣는 통, 그리고 불에 타는 것, 안타는 것을 나누어 담는 통. 외국학생들이 통 표면의 글자를 못 읽을까봐 친절하게 그림도 그려 붙여놨다. 근데 그뿐이다. 시청에서 지적도 받았다고 하고,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더 이상 8층의 쓰레기는 수거해가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데도 소용이 없다.

나도 왜 다들 분리수거에 동참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8층 쓰레기통에 까마귀떼들이 시도때도없이 방문하면서 일이 좀 커졌다. 비닐봉지에 닥치는대로 담은 쓰레기를 제대로 통에 넣지 않아 이 까마귀들이 와서 성찬을 즐기다 돌아가면 쓰레기통 주변이 완전 난지도로 바뀌는 것이다.
관리실에서 경고차원으로 사진을 찍어서 붙이고 이틀전부터는 불투명 쓰레기통이 투명 쓰레기통으로 바뀌어 놓여져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뭘 열심히 배우겠다는 사람들일 텐데, 쓰레기통 앞에 섰을 때, 공동부엌 개수대 앞에 섰을 때 8층 거주자들의 개념없음에 확 밀려오는 짜증을 주체하기 힘들다.

이 쓰레기통 옆에 내가 이사올 때부터 1.5리터 짜리 PET병 두개가 항상 물이 가득 담긴 채 놓여 있었다. 내가 궁금해 몇번 자리를 옮겨 봤는데 다음날 보면 역시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병 표면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지만 물은 누가 갈아 주는지 늘 깨끗해 보였다.
화재예방차원으로 세워 놓기에는 물의 양이 적어 보였고, 누가 저걸 늘 같은 자리에 가져다 놓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물이었다. 그 중의 한 병의 물을 따라 버리고 병을 PET병 수거함에 버린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보면 또 그 자리에 물이 담겨 놓여 있었다.

참으로 의문이로고. 닛산 오렌지색 경차만큼 내겐 미스테리였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그 의문이 풀렸다. 이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들을 꺼내 옮긴 후 손을 닦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아, 쪽팔려. 허무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게 그건가.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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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