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국을 많이 다녔고, 한곳에 몇년씩 살기도 했지만 영문이름으로 골치 아파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대개 다녔던 나라가 영어권 국가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문이름 때문에 신경쓸 일이 드디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동안 여권에 있는 그대로 Yun, Oh Soon 이렇게 영문이름을 표기하곤 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써도 알아서 Ohsoon Yun 혹은 Ohsoon YUN으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지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졸업장에도 영문이름이 들어갈 텐데 확인해보니 학교마다 다 다르다. 당연히 학교에서 발행해주는 증명서에도 내 영문이름은 제각각이다. Yun Oh Soon, Yun Oh-soon, Oh-Soon, Yun, Oh-soon, Yun, Oh-Soon, YUN, OHSOON YUN 등등. 내가 착각한 건지, 행정업무를 보던 사람이 실수했는지 잘 모르겠다. 신용카드를 보니 거기도 영문이름이 제각각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영어권 국가로 유학준비를 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처음 깨달았다. 내 이름을 보고는 다들 성은 Yun으로 중간이름은 Oh로 그리고 내 진짜 이름은 Soon으로 인식을 해버린다. 온라인 신청서에 서류를 작성하는데 이름에 스페이스가 있으면 아예 입력이 안되고 어떤 사이트는 중간이름 마지막이름으로 지가 알아서 분류가 되기도 했다. 이거 안되겠다 싶었다. 여권을 새로 신청하면서 영문이름을 정정했다. Ohsoon Yun으로 이름 사이의 공백을 아예 없애버렸다.

얼마전에 영문으로 작성된 몇가지 서류가 필요해 한국 집에 부탁을 했다. 혹시 몰라 서류를 보내기 전에 스캔해서 메일로 먼저 보내라고 했다. 과연, 영문 이름이 Oh-soon Yun으로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여권 복사본을 확인한 후 그것과 똑같이 변경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기관에 가서 발행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Ohsoon Yun과 Oh-soon Yun은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서류를 받았다. 서류는 확실하게 이름이 바뀌어서 왔는데 딸려 온 카드에 내 이름이 버젓이 OH SOON YUN으로 되어 있었다. 같은 기관인데 담당자의 영문이름 짓는 기준이 다르다보니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 같다.

한국은 이름의 로마자 표기부터 들쭉날쭉인데, 우리집의 경우 나는 YUN이라고 쓰는데 가족 중에 몇명은 YOON을 본인들의 영문 성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이런 경우가 없는데 유독 한국사람
들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문제가 생긴다.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은 대개 넉자의 한자를 이름으로 사용하는데 일본어일 경우 앞의 두자가 성이고, 뒤의 두자가 이름이다. 영어로 이름을 표기할 때는 뒤의 두자가 앞으로, 앞의 두자가 뒤로 그 순서를 바꾸어 표기한다. 메이지유신부터 마련된 이 규칙은 외국 미디어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어 이름 때문에 사람들을 혼동에 빠뜨리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미디어에서도 그 이름의 순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게 과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이름표기에 관해서만큼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반 혹은 기문을 이름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을 기문이나 문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이 분은 외교관 생활도 오래하셨고 외국생활 경험이 많으신데, 왜 처음부터 본인의 이름에 대한 기준을 홍보담당자들한테 얘기해주지 않았나 싶고, 기준을 이야기했는데 안지켜지고 있는 거라면 왜 정정하지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한국과 관련된 사건이 났을 때 영자신문을 보면 가관이다. 이름 표기가 전부 제각각이다. 국제경기에 참가하는 스포츠 선수들 이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본인이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영어로 그 사람 이름를 쓸 수 없는 사회다. 왜 이렇게 이름표기가 자유로워졌는지 모르겠지만 민족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비겁한 이유이고, 하루 빨리 정책결정자가 질서를 잡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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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