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좀 뜬금없다. 학교 다닐 때 국사책에서 그 사람을 만났었던 것 같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들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며 그 사람이 했던 말을 읊으면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 정도였다. 쪽팔리지만...그런데 갑자기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게 됐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난 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사진을 사서 모으는 게 유행이었단다. 요즘 여고생들이 스타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모으듯 그 시대 사람들은 그랬단다. 사진관들에는 그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내걸렸고.
도시락 폭탄의 테러리스트.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가면 좀 아찔할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의 일본처럼. 어디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던 그때처럼 요즘 일본에서는 어디서 누가 칼로 나를 찌를 지, 총으로 나를 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의적인 명분없이 그냥 누구라도 죽이고 싶었다거나, 관심받고 싶었다거나 이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크리하라에 갔을 때 한국과 관련된 게 뭐가 없느냐고 시청직원에게 물었더니 크리하라로 시집 온 한국사람들이 더러 있고, 혹시 안중근을 아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그곳에 있는 大林寺라는 곳에 안중근기념비가 있다는 것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난 후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의 千葉十七라는 사람이 간수였단다. 1910년 중국 하얼빈의 뤼순감옥에서 안중근이 처형된 후 千葉씨는 1934년, 49살에 그가 죽을 때까지 이 절에서 안중근의 명복을 빌었단다. 안중근이 살아 있을 때 이 사람한테 자기가 보던 책도 보내주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이 좀 각별했었나보다. 일본인 대 한국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말이다. 최근 일본의 한 유물 수집가가 매물로 나온 벼루를 하나 샀는데 그게 안중근이 쓰던 물건이었단다. 귀한 것 같아 고민하다 크리하라시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보고서 쓰는 것과는 별개로 절 안에 있는 간판과 시청 홈페이지에 안중근 관련 내용을 올리면 한국어로 번역해 주기로 했다. 이건 돈 안 받기로 했다.
사진: 안중근 혈서 태극엽서 www.songpr.com/ taekuk3.htm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난 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사진을 사서 모으는 게 유행이었단다. 요즘 여고생들이 스타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모으듯 그 시대 사람들은 그랬단다. 사진관들에는 그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내걸렸고.
도시락 폭탄의 테러리스트.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가면 좀 아찔할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의 일본처럼. 어디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던 그때처럼 요즘 일본에서는 어디서 누가 칼로 나를 찌를 지, 총으로 나를 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의적인 명분없이 그냥 누구라도 죽이고 싶었다거나, 관심받고 싶었다거나 이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보고서 쓰는 것과는 별개로 절 안에 있는 간판과 시청 홈페이지에 안중근 관련 내용을 올리면 한국어로 번역해 주기로 했다. 이건 돈 안 받기로 했다.
사진: 안중근 혈서 태극엽서 www.songpr.com/ taekuk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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