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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2.07 엄마 이야기
채널24: 한국/2014 2014. 3. 30. 14:27


*사진: 엑시터에서 내가 좋아하던 소나무. 이 소나무를 보면서 연구실과 기숙사를 오갔고, 시험 전에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다시 갔었다.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했었는데 자주 오는 분들이 얘가 죽었나 살았나 할 것 같아 몇 자 적는다. 그 사이 엄마랑 약 20일 정도 국내 배낭여행을 했고, 일주일 정도 일본 가나자와에 다녀왔다. 엄마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엄마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엄마가 매우 사교적이란 사실을 알았고,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데는 아빠 피가 아니라 엄마 피가 한 몫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배낭여행을 원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성수기가 아닌 탓에 가격이 저럼한 이유도 있었지만 엄마랑 좋은 곳에서 자고 싶었고,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소개해 주고 싶어 알차게 프로그램을 짰고 엄마도 만족스러워하셨다. 관광을 공부하는 딸이 안내하는 여행프로그램에 내심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나도 아주 만족스럽다. 여행 끝내고 기분이 좋아진 엄마 덕분에 인천공항내 워커힐에서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둘이 거하게(?) 뒷풀이를 했다. 여행 내내 온천을 자주 가서 그런지 둘 다 10년 묵은 때가 빠진 것 같다. 공부가 이제 끝났으니 조용히 쉬면서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후 엄마랑 여행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 내친김에 다녀오기 잘 한 것 같다. 심장이 안 좋아 갑자기 쓰러진 친구 엄마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같이 했을 여행이었다. 


그렇게 놀다 보니 논문 구두시험이 다가왔고, 영국에 가서 잘 보고 왔다. 엑시터는 변한 게 없었고, 머무는 내내 비도 오지 않고 화창해서 좋았다. 자주 다니던 길도 걸어보고 자주 다니던 수퍼에서 과일이랑 물도 사보고,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늘 마시던 커피도 마셔보고,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에서 안 먹던 음식도 시켜보고 그랬다. 시험은 거의 세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다 끝난 후 지도교수님 방에서 기다리니 외부심사위원과 내부심사 위원이 우리 둘을 데리러 왔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조용히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데 "축하합니다!" 그런 소리를 누군가 했던 것 같고, 그 뒷 말은 잘 안들려서 나중에 지도교수님께 다시 여쭤봐야 했다. 에티오피아 커피관광으로 난 이제 박사가 되었다는...


친구한테서 햇살이 너무 좋으니 밖에 나가보라는 전화가 온 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난 방 안에 있다. 창 밖으로 봄햇살이 넘실대는데 나가보긴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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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엄마가 인터넷을 배우고 처음 이곳에 글을 남겼을 때 깜짝 놀랐었다. 제목: 엄마다, 요렇게 말이다. 집 근처에 평생교육원 비슷한 교육기관이 있는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나보다. 수영, 영어, 노래교실, 요가, 사교댄스 등등.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엄마는 컴퓨터강좌를 선택했고, 1주일에 4번이나 되는 수업을 한 학기동안 빠짐없이 참석했단다. 아빠는 중간에 포기했는데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개씩 눌러 도저히 안되겠다고 핑계를 대셨다) 엄마는 끝까지 과정을 마쳤고, 내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한테서 오는 이메일은 절대 백지를 배경으로 해서 온 적이 없다. 언제나 봄을 닮은 꽃 편지지. 편지지도 편지지지만 어디서 그 많은 아이콘들을 찾아내 보내는지 신기하다. 컴퓨터를 배우기시작하고나서 매일 일정시간 자판 연습을 한 덕에 컴퓨터를 아주 오래 다뤘을 내 지도교수도 손가락 두개로 타이핑을 하는데 엄마는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 타이핑을 하신다. 엄마 입에서 유에스비, 딜리트, 드래그, 쉬프트키,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 난 꼭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든다. 스카이프에 나를 등록해 화상통화를 처음 하던 날 난 너무 신기해 몇번이나 전화를 껐다가 켰었다.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가족들,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도 하신다고 들었다. 우리 딸 모해?, 이런 메시지가 엄마한테 오면 아무리 바빠도 답장을 안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가끔 엄마가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시작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혼자 상상해볼 때가 있다. 두렵지 않았을까. 갑자기 전기가 나가 플러그 같은 거 확인해볼 때도 난 겁이 나던데 엄마한테 컴퓨터란 물건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런 두려움을 없애고 엄마가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했을까. 엄마가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휘휘 움직이며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걸고 받는 걸 보는 게 여전히 낯설다. 얼마 전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영어수업 광고를 우연히 보셨다면서 날이 풀리면 곧 영어를 배우신단다. 내가 이 나이에 돈 벌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이 먼 나라에 와서 이렇게 공부로 소일하고 있는 데는 엄마 피가 한몫을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엄마처럼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난 과연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그 '무엇'을 배우려 도전할 수 있을까. 엄마가 무척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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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