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엑시터에서 내가 좋아하던 소나무. 이 소나무를 보면서 연구실과 기숙사를 오갔고, 시험 전에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다시 갔었다.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했었는데 자주 오는 분들이 얘가 죽었나 살았나 할 것 같아 몇 자 적는다. 그 사이 엄마랑 약 20일 정도 국내 배낭여행을 했고, 일주일 정도 일본 가나자와에 다녀왔다. 엄마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엄마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엄마가 매우 사교적이란 사실을 알았고,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데는 아빠 피가 아니라 엄마 피가 한 몫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배낭여행을 원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성수기가 아닌 탓에 가격이 저럼한 이유도 있었지만 엄마랑 좋은 곳에서 자고 싶었고,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소개해 주고 싶어 알차게 프로그램을 짰고 엄마도 만족스러워하셨다. 관광을 공부하는 딸이 안내하는 여행프로그램에 내심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나도 아주 만족스럽다. 여행 끝내고 기분이 좋아진 엄마 덕분에 인천공항내 워커힐에서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둘이 거하게(?) 뒷풀이를 했다. 여행 내내 온천을 자주 가서 그런지 둘 다 10년 묵은 때가 빠진 것 같다. 공부가 이제 끝났으니 조용히 쉬면서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후 엄마랑 여행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 내친김에 다녀오기 잘 한 것 같다. 심장이 안 좋아 갑자기 쓰러진 친구 엄마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같이 했을 여행이었다.
그렇게 놀다 보니 논문 구두시험이 다가왔고, 영국에 가서 잘 보고 왔다. 엑시터는 변한 게 없었고, 머무는 내내 비도 오지 않고 화창해서 좋았다. 자주 다니던 길도 걸어보고 자주 다니던 수퍼에서 과일이랑 물도 사보고,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늘 마시던 커피도 마셔보고,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에서 안 먹던 음식도 시켜보고 그랬다. 시험은 거의 세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다 끝난 후 지도교수님 방에서 기다리니 외부심사위원과 내부심사 위원이 우리 둘을 데리러 왔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조용히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데 "축하합니다!" 그런 소리를 누군가 했던 것 같고, 그 뒷 말은 잘 안들려서 나중에 지도교수님께 다시 여쭤봐야 했다. 에티오피아 커피관광으로 난 이제 박사가 되었다는...
친구한테서 햇살이 너무 좋으니 밖에 나가보라는 전화가 온 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난 방 안에 있다. 창 밖으로 봄햇살이 넘실대는데 나가보긴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