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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4 리틀 티베트 랑무스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돌아 중국 한 바퀴 

2001년 여름, 석달간 기차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중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행하면서 내내 침이 나올 만큼 중국이 부러웠다. 문명의 세례를 흠뻑 받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여전히 한없이 미개해 보이는 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사는 터전인 천혜의 자연을 훔쳐올 수도 없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너무 배가 아팠다

 

가진자들에게는 확실하게 서비스를 해주는 나라가 중국이다. 기차를 한 번 타봐도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여행 안내 책자에는 대개 기차를 네 종류로 등급을 구분해 놓는데 경험에 의하면 다섯 종류다. 제일 비싼 자리는 침대가 푹신한 곳, 그 다음은 딱딱한 침대, 그것보다 싼 자리는 뒤로 꺾을 수 없는 약간 푹신한 의자, 그리고 우리가 중국을 소개하는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90도 각도의 자로 된 딱딱한 의자, 마지막이 입석이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남쪽 끝에서 북쪽으로 한 번 이동하려면 며칠이 걸린다. 이렇게 멀리 움직이는 기차에 입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른 네시간 짜리 입석을 타본 적이 있는데 이건 타 본 사람만 알리라.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어 걷기가 힘들 정도다.

 

내가 본 중국사람들은 새벽 두 시에도 해바라기씨를 까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를 안고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담이지만 담배 한 대가 그냥 놔두면 7분이면 다 탄다는데 이 사람들은 한 대로 20분을 즐길 수가 있단다. 무서운 사람들. 컵라면을 먹고 국물이 질질 흐르는 바닥을 슥슥 발로 비비고는 그 기차 바닥에 몸을 부리는 사람들이다. 아직은 과일껍질이고 PET병이고 플라스틱 도시락이고 무조건 기차 밖으로 던지는 사람들이다. 급하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고, 볼 일을 보다가 자기 것(?)이 옆사람한테 튀어도 미안하단 말을 안 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차가 고장이 나서 여섯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아도 승객들끼리 여유있게 담소를 즐기고, 그러다 차가 움직이면 운전기사한테 박수를 보내고 먹던 과일까지 전해주는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지리 선생님이 중국은 전형적인 서고동저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늘 헷갈렸는데 내가 밟아 본 중국은 확실히 동쪽은 평야가 많고 서쪽은 고산지대가 대부분인 서고동저형이 맞다. 선생님 말씀을 수십년이 지나 몸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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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blog.naver.com/rockcap

해발 고도 2,800m 산골짜기 랑무스(朗木寺)

도대체 어디까지 버스가 올라 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도착한 곳은 리틀 티베트라고도 부르는 랑무스(朗木寺)라는 곳이다. 시아허(夏河)에서 남쪽으로 버스로 5~6시간 더 내려가면 랑무스라는 작은 산골동네가 있다. 나는 위에서가 아니라 아랫동네인 송판이란 곳에서 위로 위로 올라가 이 곳에 도착했다. 해발 고도 2,800m. 도착하기 전까지 좌우로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몽고에 도착한 후 그때까지 내가 봤던 초원은 진정한 초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은 아직도 원시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이름이 랑무스가 아니라 마을 안에 있는 절 이름이 랑무스였다. 라마교 6대 사찰 중의 하나로 작은 마을 규모에 비하면 제법 큰 절이었다.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 안에 여름에도 봄 가을 겨울 계절을 다 가지고 있는 나라다. 여행하고 싶어하는 나라들의 좋은 풍광에 계절마저 다 가지고 있으니 부러워할 수밖에. 내가 찾아간 랑무스는 바깥이 여름이라도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스위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만 슬프게도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다. 해발 3,000m에 육박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비로소 나는 나를 버릴 수 있었다.

 

랑무스에 있는 성도식당에서 젊은 친구를 하나 만났다. 쓰촨대학에 다니는 이 친구는 방학이 되면 식당을 하는 엄마를 도와주러 이 마을에 머문다고 한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식당이 되나 싶었지만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식당이랑은 많이 달랐다. 주문하면 재료가 없어 요리 할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결국 가지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시켜 먹을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 주문을 했는데 개념이 없는 두 모자는 도대체 그런 음식이 어디 있느냐는 거다. 팬을 기름에 달궈서 달걀 노른자가 가운데 동그랗게 살아있게 가져오면 된다고 설명했는데도 그게 없다는 거다. 기름에 범벅이 된 달걀 요리에 결국 내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직접 들어가서 반숙으로 된 달걀 프라이 요리를 해 오니 그렇게 익지도 않은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난리였다. 감자를 채 썰어 대충 볶아 먹었던 것도 같고, 이름도 모르는 밀가루 음식을 내와서 간신히 넘긴 기억도 난다. 내가 경험한 랑무스는 그런 곳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겁 없이 그곳에 갔었는데 여름인데도 야크 똥을 태워 난방에 쓰는 난로를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 식당 안에도 난로가 있었다. 내가 하도 춥다 춥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겨울도 아닌 여름에 뭐가 그리 춥다고 난리냔다. 근데 비스듬히 들어올린 그 총각 바지 속에 내복이 들어있었다. 랑무스는 그렇게 여름에도 추운 곳이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새벽 6시 반에 딱 한 대밖에 없는 마을이라 하루만 묵을 생각이었는데 나흘을 더 묵는 바람에 추억 거리가 많아졌다. 그 총각이 언제 떠나느냐 묻기에 내일 떠난다 그랬더니 몹시 아쉬워하면서 하루 더 머물고 가면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나를 잡았다. 아침 8에 절의 주지스님이 죽어서 장례식을 거행하는데 볼 생각이 있느냐는 거다. 배낭여행객들한테 마을의 행사는 그게 뭐가 되었든 봐주어야 한다는 게 내 여행철학이다. 결혼식이 되었든 그게 장례식이 되었든. 그러마 그러고 하루 종일 동네 구경을 했다. 동네라고 해 봤자 양떼들이 환장하고 뛰어 노는 동산 위에 올라가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랑무스에 오기 전에 샀던 천도복숭아를 먹으면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오호 통재라.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미 10다. 장례식을 놓쳤다. 한없이 게으른 자세로 느리적 거리며 식당엘 갔더니 총각 어머니가 끓는 물에 쌀을 집어넣고 있었다. 죽을 먹고 싶다고 그랬더니 아침 일찍 오면 된다고 그랬는데 그 때까지 두 모자가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나한테 무슨 이런 복이 있나 그러면서 죽을 후후 불어 넘겼다. 북부의 서민들은 아침에 대부분 죽이랑 속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만토(밀가루 빵)를 주식으로 먹는다. 남쪽 사람들은 밥을 주로 먹지만. 한 일년 북쪽에 살았더니 나도 그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죽이 먹고 싶어 그냥 한 말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날 감동시켰다. 죽에 대한 답례로 앞으로 이 동네에 외국 여행객들이 많이 올지 모르니까 메뉴판을 정비하자고 총각을 설득해 성도식당 메뉴판을 점검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를 부록으로 가르쳐 주었다.

 

장례식을 놓쳐서 안 됐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일 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냥 천장天葬이 있는 장소나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장례식이 8 있으니 그걸 보려면 천상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데 고민이 됐다. 천천히 생각하자 그랬는데 며칠을 더 묵고 그 곳을 떠나면서 알았다. 나도 참 순진하기는. 어떻게 주지스님 장례식이 매일 있을 수가 있겠는가. 여행객이 뜸한 그 곳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내일도 또 내일도 장례식이 있으니 그걸 보고 가라 그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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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ychen


고산지대 천장(天葬)
 풍경

천장은 죽은 사람의 뼈를 잘게 부숴서 매나 독수리들이 먹을 수 있게 던져 놓는 것으로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장례 풍습의 일종이다. 땅도 척박하고 묻어도 썩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는가 보다. 고산지대에 '조장鳥葬' 풍습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외부인에게 공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천장이 치러지는 곳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으로 그곳에 제단이 있었다. 총각이랑 빨치산처럼 비탈을 돌아 능선을 타고 제단에 도착했다. 피 묻은 도끼도 그대로 있고 잘게 부순 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주변으로 오색 찬란한 헝겊들이 날리는 중간에 제를 지내는 단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 자리에서 내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 사는 마을인데 뭐, 그러면서 금방 긴장을 풀어버렸다.

 

밤이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 아래에서 라마승들이랑 동네아저씨들이 낯선 이방인 아가씨에게  쏟아 내는 질문을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답하면서 황하 맥주에 취해 랑무스에서의 며칠이 그렇게 흘러갔다.


떠나던 날 다행히 시간에 맞춰 일어나 새벽 6 30 차를 탈 수 있었다. 난 지금 그 친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랑무스의 성도식당만을 기억하고 있다. 언제 또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1년,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01.7~9 중국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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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