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향으로 돌아돌아 중국 한 바퀴
2001년 여름, 석달간 기차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중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행하면서 내내 침이 나올 만큼 중국이 부러웠다. 문명의 세례를 흠뻑 받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여전히 한없이 미개해 보이는 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사는 터전인 천혜의 자연을 훔쳐올 수도 없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너무 배가 아팠다.
가진자들에게는 확실하게 서비스를 해주는 나라가 중국이다. 기차를 한 번 타봐도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여행 안내 책자에는 대개 기차를 네 종류로 등급을 구분해 놓는데 경험에 의하면 다섯 종류다. 제일 비싼 자리는 침대가 푹신한 곳, 그 다음은 딱딱한 침대, 그것보다 싼 자리는 뒤로 꺾을 수 없는 약간 푹신한 의자, 그리고 우리가 중국을 소개하는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90도 각도의 ‘ㄴ’자로 된 딱딱한 의자, 마지막이 입석이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남쪽 끝에서 북쪽으로 한 번 이동하려면 며칠이 걸린다. 이렇게 멀리 움직이는 기차에 입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른 네시간 짜리 입석을 타본 적이 있는데 이건 타 본 사람만 알리라.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어 걷기가 힘들 정도다.
내가 본 중국사람들은 새벽 두 시에도 해바라기씨를 까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를 안고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담이지만 담배 한 대가 그냥 놔두면 7분이면 다 탄다는데 이 사람들은 한 대로 20분을 즐길 수가 있단다. 무서운 사람들. 컵라면을 먹고 국물이 질질 흐르는 바닥을 슥슥 발로 비비고는 그 기차 바닥에 몸을 부리는 사람들이다. 아직은 과일껍질이고 PET병이고 플라스틱 도시락이고 무조건 기차 밖으로 던지는 사람들이다. 급하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고, 볼 일을 보다가 자기 것(?)이 옆사람한테 튀어도 미안하단 말을 안 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차가 고장이 나서 여섯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아도 승객들끼리 여유있게 담소를 즐기고, 그러다 차가 움직이면 운전기사한테 박수를 보내고 먹던 과일까지 전해주는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지리 선생님이 중국은 전형적인 서고동저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늘 헷갈렸는데 내가 밟아 본 중국은 확실히 동쪽은 평야가 많고 서쪽은 고산지대가 대부분인 서고동저형이 맞다. 선생님 말씀을 수십년이 지나 몸으로 확인했다.
출처: blog.naver.com/rockcap
도대체 어디까지 버스가 올라 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도착한 곳은 리틀 티베트라고도 부르는 랑무스(朗木寺)라는 곳이다. 시아허(夏河)에서 남쪽으로 버스로 5~6시간 더 내려가면 랑무스라는 작은 산골동네가 있다. 나는 위에서가 아니라 아랫동네인 송판이란 곳에서 위로 위로 올라가 이 곳에 도착했다. 해발 고도 2,800m. 도착하기 전까지 좌우로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몽고에 도착한 후 그때까지 내가 봤던 초원은 진정한 초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은 아직도 원시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이름이 랑무스가 아니라 마을 안에 있는 절 이름이 랑무스였다. 라마교 6대 사찰 중의 하나로 작은 마을 규모에 비하면 제법 큰 절이었다.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 안에 여름에도 봄 가을 겨울 계절을 다 가지고 있는 나라다. 여행하고 싶어하는 나라들의 좋은 풍광에 계절마저 다 가지고 있으니 부러워할 수밖에. 내가 찾아간 랑무스는 바깥이 여름이라도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스위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만 슬프게도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다. 해발 3,000m에 육박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비로소 나는 나를 버릴 수 있었다.
랑무스에 있는 성도식당에서 젊은 친구를 하나 만났다. 쓰촨대학에 다니는 이 친구는 방학이 되면 식당을 하는 엄마를 도와주러 이 마을에 머문다고 한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식당이 되나 싶었지만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식당이랑은 많이 달랐다. 주문하면 재료가 없어 요리 할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결국 가지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시켜 먹을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 주문을 했는데 개념이 없는 두 모자는 도대체 그런 음식이 어디 있느냐는 거다. 팬을 기름에 달궈서 달걀 노른자가 가운데 동그랗게 살아있게 가져오면 된다고 설명했는데도 그게 없다는 거다. 기름에 범벅이 된 달걀 요리에 결국 내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직접 들어가서 반숙으로 된 달걀 프라이 요리를 해 오니 그렇게 익지도 않은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난리였다. 감자를 채 썰어 대충 볶아 먹었던 것도 같고, 이름도 모르는 밀가루 음식을 내와서 간신히 넘긴 기억도 난다. 내가 경험한 랑무스는 그런 곳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겁 없이 그곳에 갔었는데 여름인데도 야크 똥을 태워 난방에 쓰는 난로를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 식당 안에도 난로가 있었다. 내가 하도 춥다 춥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겨울도 아닌 여름에 뭐가 그리 춥다고 난리냔다. 근데 비스듬히 들어올린 그 총각 바지 속에 내복이 들어있었다. 랑무스는 그렇게 여름에도 추운 곳이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오호 통재라.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미
장례식을 놓쳐서 안 됐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일 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냥 ‘천장天葬’이 있는 장소나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장례식이
photo by jaychen
고산지대 천장(天葬) 풍경
천장은 죽은 사람의 뼈를 잘게 부숴서 매나 독수리들이 먹을 수 있게 던져 놓는 것으로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장례 풍습의 일종이다. 땅도 척박하고 묻어도 썩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는가 보다. 고산지대에 '조장鳥葬' 풍습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외부인에게 공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천장이 치러지는 곳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으로 그곳에 제단이 있었다. 총각이랑 빨치산처럼 비탈을 돌아 능선을 타고 제단에 도착했다. 피 묻은 도끼도 그대로 있고 잘게 부순 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주변으로 오색 찬란한 헝겊들이 날리는 중간에 제를 지내는 단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 자리에서 내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 사는 마을인데 뭐, 그러면서 금방 긴장을 풀어버렸다.
밤이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 아래에서 라마승들이랑 동네아저씨들이 낯선 이방인 아가씨에게 쏟아 내는 질문을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답하면서 황하 맥주에 취해 랑무스에서의 며칠이 그렇게 흘러갔다.
떠나던 날 다행히 시간에 맞춰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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