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잊고산지 오래지만 그래도 매년 생일을 기념해 새로운 것 한가지씩 시도하려 노력한다. 기념이라고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고, 헌혈을 한다거나, 장기기증서약을 하거나(다 기증했기 때문에 몸관리를 잘 해야한다),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사거나, 여행을 다녀오거나,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를 하거나 평소에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던 일을 그날 해보는 것이다. 살다보니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 기념해주는 습관이 중요하면서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개 내가 먼저 내 생일을 기억하기보다, 전화가 오거나 축하메일을 보고 아, 생일이군, 그럴 때가 많다. 부모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하니 꼭 기억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잘 안된다.
올해는 친구의 권유로 트위터(http://twitter.com/puandma)를 시작했다. 온라인커뮤니티 활동에 거부감이 있어, 계속 미뤘었는데 그날 생일기념으로 첫 메시지를 남겼다. 내용은 몹시 시시한 거였는데 트위터 이용자들 대부분이 다들 나 같은 전철을 밟는 것 같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고, 이외수 선생님(http://twitter.com/oisoo)도 거기 계셨다. 냅다 친구들을 팔로잉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 메시지 남기는 것만으로는 심심해 이외수 선생님 트위터 메시지를 친구와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은 취미였는데 이제는 미루면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하루에 한두개 올라올 줄 알았던 선생님의 메시지가 하루에 열개씩도 올라오니 번역하는 일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번역된 메시지는 트위터와 다른 별도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트위터는 140자 이내에서 생각을 표현해야하는데 영어로 외수샘의 메시지와 같은(그건 사실 불가능하고, 비슷한...) 의미를 표현하려면 140자로는 부족해서 만능재주꾼인 친구 어랍쇼((http://twitter.com/arapshow)가 찾아낸 사이트(http://oisoo.tumblr.com/)이다.
각설하고,
오늘 메시지 번역하는 데 이런 게 있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을 믿지 말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주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에 수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이외수
Never believe the lyrics that say, "you were born to be loved". You are born not to be loved but to give love. If you don't realize this, you will feel betrayed many times by the lyrics: "you were born to be loved". - 번역: 윤오순 / Hasan Hujairi
메시지 의미보다 갑자기 저 노래에 관한 추억이 떠올랐다.
2003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아이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양평에 가서 공연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공연이야기는 이 블로그에도 소개한 적이 있다(http://www.puandma.com/25). 첫날 리허설을 마치고 연주자들을 숙소에 다 데려다 준 후 전화를 받았다. 이외수 선생님과 내 친구들이 근처의 한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거길 찾아갔다. 당시 선생님은 지금의 화천이 아닌 춘천에 사셨는데, 춘천에서 양평까지 한시간 거리라지만 직접 오실 줄 몰랐고, 친구들과 함께 그런 자리가 마련되리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소설가 박민규씨도 그 자리에 수줍게 앉아 있었는데 등단한 후였는지, 그 전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 하나가 이미 결혼한 박민규씨한테 몹시도 들이댔었는데 다른 남자와 결혼해 곧 애기엄마가 된단다. 노래를 시켜서 빼다 결국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중국어로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이 나를 위해 저 노래를 불러줬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기타도 누가 쳤던 것 같은데 그건 기억이 안난다. 선생님이었나? 아니면 철가방프로젝트 멤버였던가? 이외수 선생님의 코러스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봄봄 봄봄~~~".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준 친구들의 좋은 기운 덕분에 그 다음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그후 또 한번 저 노래를 기억할 일이 있었다.
2006년 일본 간사이에 있던 시절 일본인 집에 초대를 받아 하룻밤을 묵었던 적이 있다.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었는데 가족들이 일본에서는 드물게 기독교인들이라 교회에 함께 가게 되었다. 난 종교는 없지만 일본의 교회가 궁금하기도 해서 선뜻 따라나섰다. 교회는 우리나라 개척교회처럼 아주 작은 규모였다. 교회에서 만난 일본인들에게 수천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교회가 한국에 많다고 했더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단다. 사실 나도 믿기가 힘든데 직접 보지못한 그 사람들이야 오죽하려고... 미국의 한 교회에서 온 목사가 이날 영어설교를 하는데 축하노래로 준비된 게 일본어 버전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호스트 패밀리 아주머니가 이 노래 한국어버전도 있지 않느냐며, 오늘 예배에 한국인이 참여했는데 오리지널 한국어버전으로 이 노래를 들어보자는 게 아닌가. 나 그날 진짜 당황했었다. 다들 박수를 치는데 도망갈 구멍이 없었고, 난 신들린 부흥회의 목사같은 포즈로 막상 마이크는 잡았지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저 노래를 간신히 불러야했다. 한국노래가 반주로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래방도 싫어하는데 남들 강요에 의해 무대에 올라 불러야했던 노래가 하필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 트위터 메시지 번역하면서 인터넷에서 다시 저 노래가사를 찾아 읽어봤다. 지금 난 양평의 그날 그 카페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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