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와서 첫 한달간은 자전거 없이 지냈었다. 통학을 전철로 했었고,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던 습관이 있어 먼 줄도 모르고 처음에는 대개 걸어 다녔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조선족 아가씨한테 자전거를 한대 얻었다. 산악자전거를 사게 되면서 필요가 없어졌단다. 내가 보기에 너무 멀쩡해서 덜컥 받은 후 거의 2년을 타고 다녔다.

그 사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전거가 두대나 생겼지만 전부 옆방의 김상한테 줘 버렸다. 늘 내 자전거를 빌려타는 통에 귀찮아서 내가 타던 헌 자전거가 아니라 새 자전거를 선물로 줬는데 한달도 안되어 잃어버렸단다. 그리고 몇개월간 내 자전거를 다시 빌려 탔었는데 또 한대의 자전거가 내게 생겼다. 이번에도 헌 게 아닌 새 것을 줬는데 그만 또 잃어버렸단다. 

자전거 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면 가끔 날을 잡아 수거를 해가는데 아마 부주의하게 자전거를 세워놓는 바람에 그런 일이 생긴게 아닌가 싶다. 내 친구는 걔 혹시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면서 아마 다른데다 팔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지만 난 김상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의 부주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난 신뢰하지 않는다.

Autumn Cycle
Autumn Cycle by moriza 저작자 표시


올초 공부 끝나고 돌아가는 한국유학생이 자전거를 두대나 선물로 줬다. 일본에 와서 다섯번째 자전거 선물이다. 다들 팔고 일본을 떠난다는데 그런 자전거들이 전부 나한테 돌아왔다. 이 두대의 자전거는 기어도 있고, 산지 얼마 안된 자전거라 내겐 거의 벤츠급이었다. 같은 층의 한국 학생이 돈 아낀다고 학교를 걸어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한대를 냉큼 줘버렸다. 나보다 과정 일찍 끝나면 팔지말고 다시 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헌 자전거를 옆방 김상에게 인도하고 요즘은 그 벤츠를 타고 다닌다.

김상에게 세번째로 자전거를 주면서 그 얘기를 넌지시 했다. 잃어버리지 마라. 누가 그러더라. 너 혹시 자전거 파는 거 아니냐고. 내 자전거 세우는 곳에 아직도 있는 것 보면 이번엔 안 잃어버리고 잘 타고 다니는 것 같다. 내 벤츠와 한국학생이 타던 벤츠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다들 몇대씩 잃어버리는 자전거를 지금까지 난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사고는 몇번이나 경험했고, 수술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도 없어 부러워하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이곳에 마련되어 있지만 좁은 편이라 역주행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위험하기 짝이 없고, 자전거전용도로와 자동차용도로 사이의 둔턱이 높아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오늘 학교에 가다가 자전거를 타기 일보직전의 할아버지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신호가 급하게 바뀌는 바람에 졸지에 할아버지 꽁무니에서 자전거를 멈추게 되었다. 할어버지는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이동하신 상태라 할아버지가 출발하시면 곧 출발해야지, 하고 대기중이었는데 그냥 계속 멈춰서 계시는 거였다. 그 할아버지는 전방의 신호등을 보시고, 앞뒤를 또 몇 번이나 보시고, 크게 숨도 몇번 고르시고, 그러고 나서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으시는 것이었다. 일본의 어른신들을 만나면 한국의 어르신들이 자주 떠오르는데 지혜롭고 매사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서로 꼭 닮았다. 

할아버지가 출발하신 후 뒤따라 나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할아버지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면 사고 날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더불어 했다. 내 경우 쌍방과실이었지만 좀더 여유롭게 출발하고, 저 할아버지처럼 앞뒤를 몇번이나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고 나면? 나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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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