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러 나가다가 기숙사 앞에서 같은 층에 살던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다.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왔었는데 모든 과정이 끝나 오늘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나리타공항까지 같이 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잠도 안오고 방에서 할 일이 없어 일찍 나와 그냥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를 만난 거였다. 산책은 좀 늦게가지, 하면서 그친구와 두런두런 몇마디 나누었는데, 만날 때마다 늘 느낀 거였지만 참 야무진 학생이다.

유학와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느냐고 물었더니, 후회는 하지말아야지 했는데 후회없으니 그런 것 같다고 당차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연구와 별개로 일본에 와서 책읽는 습관이 생겨서 좋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게 되어 그것도 큰 소득이란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닌데 이 친구는 1년만에 그걸 터득했단다. 자기가 확실하게 내적으로 성장했음을 느꼈다고 말했을 때, 이 친구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난 아직도 유학생이지만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났다. 학위취득 과정이 아닌 유학생들 중에는 외국에 왜 나왔나 싶을만큼 엉망진창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다. 특히 언어연수생이나 교환유학생들의 경우 현지에 적응하자마자 떠나야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인 계획없이 유학을 왔다가는 시간낭비하기 딱 좋다. 윗층에 사는 일본학생 하나는 꿈이 컸는데 사귀던 외국여학생이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모두 접고 여학생이 사는 나라에 가서 결혼해 아이 키우면서 영어교사로 살겠단다. 이제 스물이 좀 넘은 여학생은 일본어 공부하러 왔다가 1년동안 일본어도 못 배우고 아이만 하나 얻어 돌아갔다.

중국에서 유학생활 할 때는 나이 먹어서 유학 온 한국 남자들이 술마시고 추태부리는 게  늘 거슬렸는데, 일본에 유학와서는 이제 갓 스물 넘은 학생들이 이 사람 저 사람과 쉽게 동거하며 학업과는 거리가 멀게 생활하는 게 내 눈에 많이 거슬린다. 외국인과 사귀는게 무슨 훈장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제 남자친구가 외국인이거든요, 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한국인 여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며칠전 우리학교 유학생과의 과장님이 식사초대를 해서 만난 적이 있는데, 과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유학까지 와서 공부보다 아르바이트에 더 치중하는 학생들도 많고, 내가 유학을 왜 왔는지 방황하다 자살을 하거나 본국으로 그냥 돌아가는 학생들이 최근에 늘고 있단다. 유학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학생들도 불쌍하지만, 자기관리 못하면서 문란하게 생활하는 애들 만나면 진짜 욕나온다. 

모든 유학생들이 오늘 아침에 만난 한국인 학생처럼 성실하게 유학생활을 한다면 유학은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전히 쟤는 왜 일본까지 와서 지 부모망신, 나라망신을 시키나 싶은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것도 타인의 취향이니 인정해줘야 하는 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친구의 앞날에 다시한번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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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