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썩이던 애들이 모두 떠나고 기숙사에 새로운 학생들이 도착했다. 요리할때 그렇게 신경을 쓰라고 했는데도 음식을 태우고, 냄비를 태우는 애들 덕분에 하루에도 몇차례씩 밖으로 나가야한다. 음식이 타고, 냄비가 탈때마다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공동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채팅을 하거나, 게임을 하다가 본인이 요리를 하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었거나, 아예 잠이 드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오 마이 갓인 상황이다.


매 학기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번에는 유달리 영어를 안쓰고 그냥 중국어를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응급상황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화가 있는데 응급상황에만 쓰라고 그렇게 주지를 시켰는데도 별것 아닌 걸로 전화하는 학생들이 많다(본인들이 생각했을 때는 그게 응급상황이겠지만). 대뜸 전화하자마자 중국어 하는 사람 없냐면서 중국어 하는 사람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한다. 이 또한 오 마이 갓인 상황이다. 여긴 중국이 아니고 영국이고, 학생들이 이곳에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닌지 원.


박사과정을 시작하려는데 영어점수가 모자라서 온 아줌마가 있었는데 첫날 애기를 데리고 왔다. 기숙사 규정상 외부인은   함께 머물 수가 없는데, 다음날 가보니 애기가 안 보였다. 남편이 데려갔다는데 옆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사람만큼 대단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점수를 채워서 올 가을에는 무사히 가족과 합류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사는 기숙사에는 방안에 욕실, 부엌이 다 있어 혼자만 생활하는 방도 있지만 욕실과 부엌을 둘이 나눠서 쓰는 쉐어드 플랫 타입 방도 있다. 둘이 잘 맞으면 좋은데 안 맞으면 계약 끝날 때까지 아주 고생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학기부터 계속 살고 있던 중국인과 이번에 새로 온 대만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이 있는데 대만 학생이 계속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도착한 첫날부터 대판한 것 같은데 한쪽편만 들어줄 수 없어 아주 난감하다. 대만학생은 중국학생이 옥스포드에 다닌다는 남자친구를 자랑하면서 자주 초대하는 게 싫단다. 공동욕실에 남자친구 칫솔 꽂힌 것도 싫고, 부엌문 활짝 열어놓고 중국음식(?) 냄새 피우는 것도 싫단다. 볼일 보고 화장실 물 안 내려서 아주 미치겠단다. 일단 중국학생한테 대만학생으로부터 이런저런 불만사항이 접수되었는데 반복되면 네가 나가야하니 주의하라고 했더니 그걸로 또 대판 싸웠나보다. 왜 대화로 해결하지 사감한테 보고를 했냐는 거겠지. 다시 대만학생을 만나서, 영국에 온 목적이 영어를 배우기위해서만은 아닐 것이고, 서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랑 살아가는 것도 공부라면 공부니까 상부상조하면서, 고칠 수 있는 건 고쳐가면서 한번 잘 지내보라고 부탁(?)을 했다. 반복되면 강력하게 조치를 취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물론 그랬지. 오늘 복도에서 대만학생을 만났는데 중국학생한테 서로 잘 지내보자고 그랬단다.  대놓고 중국을 싫어하는 대만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터라 좀 불안하다.


박사과정 시작하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뚝 끊고 지내는데, 기숙사는 바깥에서 경험하기 힘든 또 다른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