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서 빨래방이 좀 멀다. 빨래 돌려놓고 다 되면 드라이까지 해줘야하는데 거기서 뻘쭘하게 앉아있기 뭐하니 다시 방에 왔다가 빨래방에 가곤 한다. 왕복 10여분? 한국에서라면 날씨 더운날 5분도 걷기에는 먼 거리였을 텐데 영국에 와서는 왠만한 거리는 다 그냥 걸어다녀서 그런지 이 정도는 그 까짓것, 하게 된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 여명을 가르며 빨래짐과 세제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그 거리는 솔직히 멀다. 그래도 빨래를 돌려놓고 방에까지 빈손으로 걸어 올때는 여유까지 생겨서 곧잘 딴 생각을 한다. 아침은 뭘 먹을까, 오늘은 논문의 어느 부분을 고칠까 등등.
요즘 한국은 '치유'가 대세라고 들었다.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대거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했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여유없이 살아서 그런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다들 참 바쁘다. 애들도 바쁘고, 어른도 바쁘고. 고정된 직장이 없는 내 부모님도 전화를 하면 늘 바쁘다 그러시고, 아직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들도 뭘 하는지 늘 바쁘다 그러고, 친구들도 여간해서는 나 요즘 한가해, 그런 소리들을 안한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한국에서는 늘 바빴었던 것 같다. 실속도 없이 말이다. 밖에 나와 공부하면서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하늘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늘 가던 길에 어제 없던 꽃이 새로 피었으면 아는 체도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여유없이 사는 생활 이제는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다. 공부 끝나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한국에 가서 또다시 실속도 없이 바쁘게만 사는 것 아닌지,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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