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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3 외국인이 본 한국문화 (1)
  2. 2013.09.22 잡스가 바꾼 문화
  3. 2013.09.20 1000 Wilshire, LA
  4. 2013.08.25 일본인에 대한 편견 3
  5. 2013.08.18 반가운 소식
  6. 2013.08.07 빨리빨리
  7. 2013.08.06 다시 일상
  8. 2013.07.23 디지털 장애인 (2탄) 2
  9. 2013.07.13 태양의 계절
  10. 2013.07.09 만시지탄

한국생활 어느덧 2년차에 접어든 외국인 친구가 들려준 한국문화 이야기 1탄.


1. 화려한 등산복

마치 히말라야에라도 갈 것 같은 폼으로 등산 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옷 색깔이며 장비가 너무 화려하단다. 나는 직접 본 적은 없고, 포털사이트에서 관련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전에 비해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고, 속을 채우는 것 보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한국인 속성이랑 잘 맞아 떨어져서이지 않을까. 이곳 영국에서도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아웃도어용 옷들을 일상으로 입고 다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 한국은 아저씨, 아줌마, 청소년들이 그렇게나 많이 입고 사용하는데도 등산복이나 등산장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2. 자전거 장비

위에 등산복과 같은 맥락인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복장이며 장비가 너무 고가에다 부담스러울만큼 화려하단다. 자전거를 일상으로 타는 중국, 일본, 영국에서 살아 본 바에 따르면 자전거에 그리 돈을 많이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자전거가 그리 비싸지도 않고, 복장도 그냥 평상시 입는 옷 그대로 입고 자전거를 탄다. 영국의 경우 스피디하게 차를 모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헬멧을 쓰거나 저녁에 야광조끼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는 자전거를 안 타지만 일본에서는 학교 통학을 2년간 자전거로 했었다. 공부 끝나고 간 유학생이 준 중고 자전거를 아무 무리없이 탔고, 왕복 매일 한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지만 한번도 자전거를 타기 위해 복장을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안전을 위해 복장이며 장비에 신경을 쓴다면 할 말은 없지만 요즘의 한국 풍경은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싶다.


3. 전철에 탄 아기들

외국에서는 지나가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구속이 되는 일도 있는데 한국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관용적인 나라다. 전철에 아기가 타면 그 아기는 모두의 아기가 된다.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아기 옆의 어르신들은 마치 본인들 손주라도 되는양 아기 볼을 만지거나 심지어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안아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친구가 탄 전철에 아기 엄마와 아기가 탔고, 전철에 타자마자 아기가 몹시 울었나 보다. 근처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엄마한테서 아기를 빼앗아 안고는 금방 울음을 그치는 마술을 시전했단다. 울음을 그치자 할아버지는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돌려줬고, 전철 안에서 할아버지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우리에겐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친구는 그 상황에 몹시 놀랐단다. 외국에서라면 사실 큰일 날 일 아닌가.


4. 치맥

한국처럼 닭을 많이 먹어 치우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삼계탕으로 먹어 치우고, 치킨으로 먹어 치우고.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치킨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개사료로 가야하는 닭들이 음식에 사용된다고 해서 닭고기를 먹을 때 좀 찝찝하다. 요즘 한국에 치맥이라는 게 유행이란다. 아마 내가 한국을 떠나고 새로 생긴 문화로, 치킨과 맥주를 일컷는 말인 것 같다. 물론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소주에는 삼겹살, 막걸리에는 파전, 맥주에는 치킨이라는 암묵적인 궁합이 존재했는데 먹기 좋게 치맥이라는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가면 늘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어가곤 하는데 이번에는 치맥이 일순위이다. 독특한 한국문화로 치맥을 언급하는 친구에게 내가 치맥이 뭔지 모른다고 했더니 다음에 한국에 오면 치맥은 자기가 쏜단다. 그 친구 이야기가 닭요리 중 최고는 한국 치킨이란다. 오늘처럼 하늘도 낮고, 안개도 자욱한 날은 치킨이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다.


5. 테크놀로지

이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특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문화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스마트폰 문화는 빠른 것 좋아하고, 보여주기 좋아하는 한국인 성격에 딱 맞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블로깅은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도 활발히 하고, 정보공유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친구 말에 따르면 일본이나 미국이 기술에서는 우위에 있을 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일상으로 스마트폰을 즐기고 편하게 사용하는 문화는 한국을 따라올 수 없을 거란다. 이것도 인정.


6. 거리에서 침뱉기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중국의 각종 매체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윗옷을 벗지 말 것, 차를 탈 때 꼭 줄을 설 것, 길 거리에서 침을 뱉지 말 것 등의 교양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쳤었다. 한국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부자 멤버십인 OECD에도 가입을 한 선진국이면서 왜 길 거리에 침뱉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친구가 불만을 토로했다. 아, 그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나도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말할 때마다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게 칙-하고 침을 뱉는 사람을 볼 때도 그냥 혼자 부끄러워하고 만다. 중국처럼 캠페인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부끄러운 한국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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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바꾼 문화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빠 병문안 갔을 때 침상주변에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만지작 거리던 것도 스마튼폰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살 때도 어디가 싼지 금방 검색이 가능하니 단골이라고 들러 기름을 사던 일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전자제품을 사러 용산에 갈 때도 스마트폰으로 대충 가격 검색을 끝낸 후 흥정에 들어간다.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면서 기차 안에서 체크인을 한다. 원하는 좌석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처음 유럽 여행을 갈 때 두툼한 여행서를 사서 필요한 국가만 떼어 바인딩을 해 들고 갔었다. 그 이후 여행서를 들고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일주일 이내 여행을 해야할 때는 현지 여행자 안내 센터에 들러 업데이트 된 지도도 공짜로 얻고, 맛있는 집 소개도 받고, 꼭 가봐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어차피 다 못 보고 올 거라서 별로 아쉬움도 없다. 일주일 이상 좀 더 길게 여행을 떠날 때는 인터넷에서 지명들만 간단하게 찾아 현지에 머물면서 여행정보를 수집하는 편이다. 이렇게 설렁설렁 여행준비를 하다보면 제일 힘들면서 귀찮은 게 숙소찾기이다. 여행문화가 잘 정착된 선진국은 미리 예약을 하고 떠나고, 좀 불안한 곳은 첫날만 비싸더라도 비교적 좋은 숙소를 예약하고 그 이후에는 현지에서 정보를 얻어 해결한다. 역사가 오래된 호텔이라든가, 배낭여행객들한테 유명한 곳이라든가, 주인도 재미있고, 숙소도 재밋거리가 많은 곳이라든가 등등. 인터넷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 (한국 보다 잘되어 있는 곳은 없다고 봐도 된다)으로 여행을 갈 때는 이제 그럴 필요마저 없어졌다. 스마트폰에서 현지 지역정보가 담긴 앱을 다운 받으면 숙소며, 이동거리, 볼거리, 맛집 정보가 모두 해결된다. 커피숍이나 호텔, 레스토랑 등 고객에게 무선인터넷을 공짜로 제공해 주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모국어로 된 읽을 거리에 언제나 목이 말랐는데 이젠 어디서나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있어 여행 날짜에 맞게 넉넉하게 준비를 한다. 


잡스형님은 스마트폰으로 이렇게 우리네 여행문화마저 완전히 바꾼 분이다. 이제 핸드폰 하나만 들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USB 포트 연결로 충전도 가능하니 무거운 글로벌 엑세스 어댑터 같은 걸 들고 갈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왠만한 똑딱이 카메라 보다 성능이 좋으니 프로 수준의 사진촬영이 아니라면 용량 넉넉한 스마트폰 하나면 여행준비 끝이다. 미국에 다녀 오면서 아이패드 미니 하나 달랑 들고 갔었는데 일하는 것도, 여행하는것도 아쉬운 게 없었다. 현재 내 컴퓨터에서는 한글문서 작업이 불가능한데 아이패드미니에는 한글 오피스앱이 있어 문서작성도 뚝딱. 일을 해야하는 빌딩 1층에 커피빈이 있어 머무는 내내 내 전용사무실로 사용했다. 음료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늘 먹을 수 있고, 화장실, 인터넷도 무료도 이용할 수 있고. 도심 한복판이라 찾아오라고 이야기하기도 쉬워 언제든 그쪽으로 오면 날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오다가다 들르면서 친구가 된 사람들도 많다. 디저털 노마드라는 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애플 제품들에  iOS 7을 업데이트 하면서 내 라이프스타일마저 바꿔버린 잡스형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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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24: 미국/사람들2013. 9. 20. 07:53



우리 사는 인생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10년 전 에티오피아 아이들이 보내 준 편지들을 번역하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가 장차 에티오피아 연구자의 길을 걸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가기도 힘든 나라를 몇 번이나 찾아가는 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에 유학까지 하면서 에티오피아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1000 Wilshire, LA. 내게 참 특별한 주소다. 이 주소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배달되었고,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특별한 날에 카드 혹은 엽서들이 배달되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올해는 봄이 한참 지났을 때 작년 크리스마스에 보낸 엽서를 받았다. 보내는 사람 주소는 역시 1000 Wilshire, LA. 미국 스탬프 날짜는 12월인데 아무래도 영국에서 헤맨게 아닐까 싶다. 늦게나마 받은 것만도 고마워서 왜 그런 건지 찾아 볼 생각은 안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특별한 날들에 1000 Wilshire, LA가 적힌 주소에서 배달되는 엽서나 카드는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했다. 


미국 LA의 윌셔대로는 서울의 강남대로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길기도 길지만 왠만한 큰 회사들이 다 이 대로에 자리잡고 있고,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명함에 윌셔 주소를 넣기 위해 애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자주 쉬는 버스 20번, 우리나라 직행버스 같은 720번을 타면 윌셔대로 끝에서 끝까지 구경할 수 있다. 서쪽으로 끝까지 가다 보면 한국총영사관도 만나고, 코리아타운도 만나고, 한국문화원도 만나고, 유명한 대학 UCLA도 만난다. 


1998년 잠깐 만났다가 1999년에 언니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2000년에 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평생 못 볼 것 같았는데 이번에 다시 만났다. 택시 타고 오라면서 불러 준 주소가 바로 저 빌딩이 있는 곳이었고, 난 내가 그동안 받았던 선물들에 적힌 주소를 떠올렸다. 도착해서 서둘러 언니를 만나러 가는 것도 잊고 난 맞은편 도로에서 저 건물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건물 전체가 아닌 내게 특별한, 사진 속의 주소를 카메라에 담았다. '감개무량'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좋은 의미에서) 언니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밝았고, 편한 옷을 입으면 그냥 딱 대학생이었다. 언니가 미국 땅에서 자리잡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생활인이 된 언니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내가 일본에서 고생할 때 힘내라고 총알(?)을 쏴 준 적도 있는데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떠나는 내게 언니가 내민, 몇번이나 고친 흔적이 보이는 카드에는 그런 글귀가 있었다. "20대 끄트머리에서 호기심반 두려움 반으로 각자의 삶을 위해 헤어졌던 우리가 불혹의 나이를 넘어 이렇게 다시 만나 얼마나 반가운가...." 그때는 나도 내가 이런 인생을 살 거라 생각을 못했고, 언니도 물론 그랬겠지. 어제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람처럼 언니와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인연이라는 건 정말 내가 지울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를 다시 찾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난 사진 속의 저 건물 앞에서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Posted by 윤오순

중국에서 유학할 때 일이다. 수업 시간에 각자 자기 나라의 애프터 서비스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제품 구입 후 파손 혹은 고장 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유학 전에 프린터가 고장나 친절한 애프터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어 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중국인 선생님을 비롯해 개도국에서 온 친구들은 그런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다들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서비스라고 했다. 허나 교실에 일본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 한 마디에 난 아주 무안해지고 말았다. 아주 시니컬하게 자기네 나라는 물건이 고장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서비스가 필요없다는 게 아닌가. 일본 제품이라고 왜 다 고장이 안 나겠냐마는 자기 나라 제품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친구의 자신감이 솔직히 부러웠다. 


시장을 보려고 자전거 바구니에 에코백 하나만 달랑 담아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볼일을 보려고 자전거를 세워놓고 천가방만 들고 들어갔는데 어라, 지갑이 안 보였다. 놀라서 허둥지둥 나와보니 자전거 바구니에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유학시절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간사이에서 연수 받을 때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공중전화기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온 적이 있었다. 지갑에 카드도 여러 개 들어 있고, 일 때문에 현금을 많이 담아 놔 아무래도 찾기 힘들겠죠, 라고 걱정하며 선생님께 묻는데 선생님이 일단 신분증이 거기 들어있다면 기다려 보라고 그러셨다. 오전 수업시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후에 어떤 사람이 그 지갑을 들고 센터 리셉션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카드며 현금이며 모두 그대로라고 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탈리아 친구가 현금의 일부를 사례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더니 지갑을 들고 온 그 사람은 쑥쓰러워하며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전에 살던 기숙사에 일본인 선생님들 20명 정도가 연수를 온 적이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건물의 여러 층을 나눠서 사용했는데 기숙사 공동구역을 함부로 쓰던 학생들만 상대하다 선생님들의 깔끔한 정리정돈에 날마다 탄복을 했었다. 기숙사가 그렇게 깔끔해질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했었는데 "역시 일본인들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떠날 때 체크아웃을 해야하는 데 이름이 일본인이면 일단 안심을 한다. 체크아웃 시간을 엄수하는 건 당연하고, 금방 도착한 방 처럼 정리를 해 놓고 떠난다.


에티오피아 현지조사 가기 며칠 전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일어났었다. 친한 지인들이 많아 연락을 했는데 다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못 할 지도 모르니 전화도 메일도 삼가라고 해서 놀랐다. 게다가 영상으로 본 그들의 극도의 침착함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딸이 안 돌아와 조금 걱정이라던 전의 지도교수는 괜찮을 거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셨고, 차량이 다니지 않아 집까지 걸어가야 하거나, 임시숙소에서 거쳐해야했던 다른 친구들은 마치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에서 지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일본인들의 이미지는 아주 강렬했고, 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었다. 가끔 내가 일본유학을 먼저 했다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일본에 긍정적인 내게 귀국하는 일본인 학생 방을 체크하라는 연락이 왔다.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체크아웃 시간은 물론 지킬 테고, 방은 당연히 깨끗할 테니 시간도 많이 안 걸릴 거라 기대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이런, 방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냄비, 후라이팬 등 기숙사에서 지급한 물건들은 전부 그대로 두고 가야하는데 그걸 가방에 다 쌌다가 풀어놓을 때, 난 그 학생에 대한 기대를 접고 말았다. 카페트를 훼손할 경우 수십만원의 비용을 배상해야 하기도 하는데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자국이 많았다. 없어진 물품도 많고, 방 상태도 엉망이라 벌금이 통상의 보증금 500파운드를 훨씬 넘을 걸 생각하니 나중엔 그 학생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났던 그 어떤 학생보다 더러운 상태로 자기가 머문 자리를 떠난 사람이 일본인 학생이라 사실 당혹스러웠다. 아마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밖에 나오면 일부가 전체로 여겨질 때가 많은데 오늘 만난 게으른 일본 학생 덕분에 일본에 대한 그간의 우호적인 감정이 신속하게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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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유학할 때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이 북경에 놀러오신 적이 있었다. 중국어로 이제 겨우 몇 마디 할 때라서 그 분들과 난 거의 매일 나폴레옹 놀이를 해야했다. 저긴 거 같아 가보면 아니고, 혹시 여긴 가 싶어 들르면 또 역시 아니고. 북경오리구이 전문점을 찾아 헤매다 들른 곳에서는 제대로 된 식기도 아닌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오리구이고기를 먹어야했고, 제일 유명한 곳이 왜 이 모양이냐는 사모님 불만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그날 식사가 끝난 후에 '뒤끝'을 걱정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사모님이 슬쩍 다가오시며 물으신다. 중국유학하면서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네 친구들에게 물으니 남자 아니면 돈일 거라고 그랬다는데 사실이냐고. 그러시더니 내가 남자를 구해 줄 능력은 없으니 유학생활하는 데 보태라며 생각지도 않은 금일봉을 주시는 게 아닌가. 2010년에 한국에 들렀을 때 감성마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요즘 선생님 잘 나가, 그러시면서 아주 두툼한 금일봉을 주셨다. 공부 끝나고 한국에 가면 나도 두툼한 금일봉을 사모님께 드려야 할 텐데...호텔에서 같이 묵자는 걸 굳이 기숙사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그렇게 호텔과 기숙사를 며칠간 출퇴근하다 보니 몸무게가 5킬로가 넘게 빠졌다. 


그때 선생님 중국방문으로 만난 인연들이 여럿인데 유랑생활을 하면서 연락이 모두 끊어져 아쉬워하던 차에 한의사 아저씨 한분이 연락을 하셨다. 부산에서 한의사로 열심히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상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단다. 늦깎이 박사학생이 주변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자주 연락을 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때 갓 태어난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제 아가씨 '삘'이 나는 14살이 되었단다. 메일에 여전히 "오순여왕님 잘 지내시나요?"라고 물으셔서 혼자 부끄러웠다. 같이 한국에 있었을 때는 가끔 전화로 문진도 해주시곤 하셨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오래 잊고 지냈다. 입안이 헐어 아프다고 하면 죽염으로 가글을 해주세요, 같은....화장실은 잘 가세요, 생리는 규칙적인가요, 이런 이야기도 아무렇지않게 해주셨고, 북경에서는 놀러온 친구들과 아저씨네 방에 한데 모여 등짝에 부황을 떴던 기억도 있다. 물론 위옷을 훌렁 벗고 다들 누워 킥킥 대면서...


부황 뜨는 우리 주변을 돌아다녔던 그 아이가 벌써 14살이 되는 동안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북경에서 공부가 끝나고 상해로 떠날 때 북경역까지 나와 환송해주던 그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보고싶기도 하고. 감성마을의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은 요즘도 잘 지내시겠지. 정리하고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이랑 정신없이 수다도 떨고. 요즘 부쩍 쓸쓸해하는 엄마 위로도 많이 해주고. 쌀 한말이 8만원이라면서 밥값이 아니라 쌀값만 내면 백수로 지내도 뭐라고 안 한다고 약속을 해서 한국에 가면 남들이 기대하는 훌륭한 일 하는 대신에 엄마랑 팡팡 놀며 지낼 생각이다. 이른 아침 반가운 소식에 내 마음은 중국에 갔다가 어느 새 한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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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 중 제일 좋아하는 것 하나가 바로 배달문화이다. 늦은 밤에도, 밖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전화 한통이면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고, 주문한 책들도 대개 하루 안에 받을 수 있다.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혹사시키는 문화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건을 보내고 받을 때도 다양한 서비스가 있어 골라서 이용할 수 있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일본도 영국도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배달과 관련해서는 한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 같다. 일단 비슷한 서비스들이 있다고 해도 비용이 너무 비싸고, 절차도 복잡해서 이용할 때마다 분노게이지가 높아진다. 그런 복잡한 내용이나 느린 절차를 마주할 때마다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서비스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불만일 때가 있다. 


내 오랜 유학생활은 신청서 만들기로 점철된 세월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 접수하면 발표가 나기까지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유학준비처럼 한달도 안되어 뚝딱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지만 일본국제교류기금 프로그램도 거의 그 정도 기다렸고, 프로그램 시작까지 따지면 거의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국은 배달문화만큼 공고/공모 문화도 이 보다 빠를 수 없는데, 느닷없이 발표해서 순식간에 결과를 매듭지어버린다. 공고 후 접수마감까지가 일주일이 안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런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결과까지 빨리 알 수 있어 초조해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좋기는 하다. 한국정부기관에서 초청하는 6개월짜리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해 마침내 한국에 가게된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공고, 접수, 면접, 발표, 파견이 한해에 다 이루어져 그 친구도 나도 아주 놀라했더랬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국에 가볼래, 한 게 엊그제인데 그 친구 벌써 한국대학의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 배우는 중이란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내용과 상관없이 피드백도 빠르다. 뭐 궁금해서 메일을 띄우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답을 보내준다. 운전면허 합격하고 사진까지 들어간 운전면허증을 그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외국 친구들은 놀라 자빠진다. 물론 다 빠른 건 아니다. 예외도 더러 있는데 바로 대학교수들이다. 궁금하다고 자기네들이 먼저 연락해서 이것저것 잔뜩 물어봐 나도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답변을 해주면 그걸로 끝이다. 메일을 잘 받았다,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 아니면 이건 이해가 잘 안가니 다시 설명을 해달라, 뭐 이런 게 없다. 그냥 답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사람들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해 오는 것 보면 내 메일을 받은 것 같긴 한데 왜 함흥차사인지 모르겠다. 메일 잘 받았는냐 또 연락하긴 그렇고, 메일 쓰느라 시간투자한 것 생각하면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대학교수라고 소개하고 연락오는 사람들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일본은 우리와 좀 비슷해 공공기관의 피드백이 빠른 편이고 (실제 일처리는 엄청 느리지만...), 영국도 업무관련한 내용들은 대개 48시간 이내 답을 해 주는 게 문화인 것 같다. 내 지도교수도 별 내용없는 내 이메일에 네 메일 읽었다, 식으로 달랑 한줄이라도 꼭 답변을 보내주신다. 프로젝트 같은 데도 요구조항에 보면 48시간 이내에 답변할 것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못할 경우 대개 부재중 메시지를 띄운다. 현재 부재중이라 빨리 답장을 못하지만 돌아오는대로 바로 연락해주겠다, 등등. '빨리빨리'에 익숙해있다가 게으른 문화와 조우하면 몹시 당황하게 되는데 한국교수들과의 이메일 소통이 그런 예 중에 하나다. 물론 이런 분들 중에도 예외가 있으니, 최근 일로는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의 김준엽 교수가 그 예다. 문의사항이 있어 메일을 띄웠는데 상세한 내용으로 바로 답장을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답변받고 감사하다고 연락을 했더니 그 메일을 잘 받았다는 연락도 바로 해주시는 게 아닌가.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그런 사례가 없어 혼자 감동까지 하게 되었다는 슬픈....이럴 때 다시 답장을 하는 건 오버고 거기서 멈추는 게 이메일 에티켓이다. 


며칠 전 산책을 다녀오다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는데 오늘 아침 다른 자리에서 또 발견했다. 토끼풀 많은 곳에서 일부러 네잎클로버를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냥 걷다가 잘 만난다. 두툼한 책이 있어 두 장 모두 거기에 넣어놨다. 잘 말라야 할 텐데...사실 이 이야기를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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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암투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빠(이 나이가 되도록 난 아버지를 '아빠'라 불렀다.)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와 또 열심히 읽고, 쓰고, 걷고, 생각하는 중이다. 두렵고, 어렵고, 아프고 뭐 그랬는데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다. 

  

   "아빠 사랑해! 

   "뭐라고?" 

   "아빠 사랑한다고!!!"

   "나도 사랑해!"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 박사된 거 축하한다. 또 연락하자."


수화기 너머로 아빠와 나눈 마지막 대화다. 그날 마음이 참 이상해 여기에 글을 남겼었는데 그리고 며칠 후 아빠는 돌아가셨다. 공부가 다 끝나면 같이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건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아빠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일찍 아버지를 잃어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 비하면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뒤늦게 연락을 받고 슬퍼하는 엄마한테 메일을 썼다. 엄마랑 아빠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나를 낳고 키운 일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고...미뤄서 좋은 일도 더러 있지만 절대 안되는 일 한가지가 부모에 대한 효도가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고향을 혼자 여행하던 날 길가의 사과나무를 보면서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다. 그 날 두 사람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인생을 가볍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아빠가 떠나던 날 다시 단순하고 소박하고 심심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여전히 내 주변은 너무 부산스럽고, 난 가진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낮에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던 비가 저녁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하다. 덥다고 징징댔는데 이젠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징징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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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해외 체류중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MS워드가 아닌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만 떡 하니 올려놓는 공공기관들이 많다. 1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한 경험자로서 아래아한글은 한국 바깥에서는 쓸 일이 없다. 꼭 아래아한글을 사용해야한다면 소프트웨어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뷰어를 링크해 주던지, 아니면 PDF로 같은 내용의 파일을 동시에 올려주면 좋을 텐데 그런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쨌거나 문서를 보기만 할 경우 뷰어를 다운해 내용을 볼 수 있다. 물론 다운로드할 뷰어가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줘야 한다. 문제는 굳이 보는 것만이 아니라 문서 작성까지 MS워드가 아닌 아래아한글을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공공기관들이다. 이유인즉슨, 워드로 만들어진 한글문서는 보기에 불편하단다. 정 보기에 불편하면 MS워드로 만든 후 PDF로 전환해 보내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꼭 아래아한글을 요구한다면 이찬진의 한컴오피스 웹사이트에서 윈도우용 60일 트라이얼버전을 다운받아 문서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허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맥 사용자들이다. 한컴에서 맥용 아래아한글을 출시하지않기 때문에 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문서작성할 방법이 없다. 문서 하나를 만들려고, 윈도우용 컴퓨터를 찾아야 하고, 또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야 하는 쓸 데 없는 일, 이제 그만하고 싶다. 


공공기관에서 MS워드가 아닌 아래아한글을 문서표준 포맷으로 정하는데 한컴오피스와 어떤 딜이 있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아래아한글을 공식 표준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상용할 경우 공공기관은 나같은 디지털 장애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컴오피스는 꾸준한 제품 업데이트를 통해 독점적으로 누리는 지위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것이다. 


앓느니 죽는 게 낫다고, 신청서 하나 작성하려다 답답해 죽기 직전이다. '디지털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전에도 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참고: http://puandma.com/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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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엑시터에 오고 나서 여름이 이렇게 더웠던 적이 없었는데 요즘 더워도 너무 덥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습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밖에라도 한번 나갔다 오면 태양이 너무 뜨거워 얼굴이 벌개지는 건 물론, 온 몸이 땀범벅이 된다. 하루에 샤워를 서너 번은 해야 할 정도다. 기숙사 입주할 때 방이 북향이라 좋아했고, 지난 겨울도, 여름도 그다지 바깥 기온 영향을 받지 않아 늘 북향예찬을 했었더랬다. 허나 해가 오후 10시가 되어도 떨어지지 않고 환한데다 기온까지 높으니 방에 있어도 죽을 맛이다. 여름을 더운 줄 모르고 보내면서 영국의 여름 날씨에 홀라당 반했었는데 그것도 이젠 남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름이 이렇게 덥게 느껴지는 게 몸에 열이 많아진 건지 아니면 기후변화 영향인지 잘 모르겠다. 학생들도 덥다고 하는 거 보면 꼭 내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은 바깥이 뜨거울 때 백화점이나 은행 같은 데 들어가면 시원하다못해 춥게 느껴질 정도인데 여기는 공공기관에서도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지않아 덥다고 들어가도 별 효과를 못 본다. 약간 쌀쌀했던 봄까지만해도 엑시터의 '알흠다운' 여름을 잔뜩 기대했었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 빨리 서늘한 계절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 쯤 되면 바쁜 일도 거의 다 끝나 있을 테고 마음껏 엑시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사진출처: http://www.tutorart.com/index.php/daily-inspiration-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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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고요하고자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 자식은 봉양하고자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


'효도'와는 아주 먼 생활들이 이어지면서 이 구절을 떠올릴 때가 많다. 공자에게 이 말을 해 준 사람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만일 이렇게 떨어져 혼자 살지 않고 가족들과 같이 살았다면 정서적으로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족들과 관계된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되지 않았을까. 명절, 혹은 가족들의 생일 등 특별한 날엔 몹시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데 요즘 그 정도가 심해졌다. 암투병 중인 아버지가 점점 기력이 떨어져 전화통화가 매끄럽지않는데 오늘 오랜만에 조금 긴 대화를 했다. 침상에 죽을 엎지 않았으면 좀 더 길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얗게 센 머리, 홀쭉해진 모습이 너무 낯선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은 더 낯설다. 언제나 기운이 펄펄 넘치는 큰 목소리만 기억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전화를 끊으면서 내가 "사랑해, 아빠!"라고 했더니 겨우 "나도 많이 사랑해", 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진작 그런 말을 많이 주고 받았어야 했는데...공부가 끝나면 부모님과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와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2010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남도 보리암에 같이 갈 기회가 있었는데 괜히 고집피우고 같이 가지 않았던 게 마음에 많이 걸린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내 평생 후회될 일 한 가지가 그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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