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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2 네팔 S.E.A Center
  2. 2015.01.10 다시 유랑의 길목에서 4
  3. 2014.12.31 안녕, 2014년!
  4. 2014.12.11 NGO 취업 분투기 5
  5. 2014.11.29 어차피 해야할 일은 미루지 맙시다!
  6. 2014.11.21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7. 2014.10.17 가을 나들이
  8. 2014.09.11 업데이트 2
  9. 2014.07.09 서울살이 신고식
  10. 2014.06.11 다시 일상

지난 주말 무사히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짐을 어떻게 싸야 초반에 고생을 많이 안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매연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않아 도착하자마자 인후통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카트만두 시내의 공기오염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마스크로 해결될 수준은 이미 넘었다. 


각설하고, 관광과 쇼핑의 중심지인 카트만두 시내의 타멜에서 택시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 라짐팟(Lazimpat)이라는 곳에 우리나라 세 개의 사회적기업들(오요리아시아, 트래블러스맵, 페어트레이드코리아그루)이 S.E.A Center라는 사회적기업활성화센터를 만들었다(참고: http://www.seacenternepal.com). 바다가 없는 네팔에 바다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염원을 담아 센터 이름을 지었다고 들었는데 영어 이름 '씨 센터'는 한국어 설명 그대로 Social Enterprise Activation Center(사회적기업활성화센터)를 줄인 표현이다. 2015년 5월 4일 2주년이 된다고 하니 아주 젊은 조직이고, 실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개 젊다. S.E.A Center는 다시 4개의 부서 - 카페 미뜨니, 수공예품 숍, 디자인 아카데미, 맵 네팔이라는 여행사 - 로 나뉜다. 각 부서에는 매니저 역할을 하는 분들이 따로 있고, 네팔 현지에서 이 프로젝트 전체를 매니징하는 일을 이번에 내가 하게 되었다. 내 전임자는 사회적기업과 비영리기구의 현장활동 경력만 11년이 넘는, 이 분야의 완전 베테랑으로 현지에서는 타멜의 여신으로 통하는 분이다. 앞으로 일 하려면 이것저것 챙길 게 많은데 전임자 근무 날짜가 내일까지라는...ㅠㅠ 인수인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꼼꼼한 전임자가 매뉴얼을 잘 만들어 둔 덕분에 요즘 그 매뉴얼들을 들여다보며 내가 할 일들을 공부하는 중이다.


내가 한국에 없으면 에티오피아에 있겠지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앞으로는 이곳에 네팔 소식을, 네팔의 사회적기업활성화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소개하려고 한다. 기대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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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이번엔 네팔이다. 지인들 중에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여행지 혹은 나라로 네팔을 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난 여행하고 싶은 곳 리스트에 네팔을 포함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네팔에 가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3개의 사회적기업들이 네팔에 만든 또 다른 사회적기업 활성센터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가게 되었다. 막상 가기로 했지만 제안이 왔을 때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공부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1년 동안 헤매긴 했지만 뭔가 다시 시작해도 아프리카 지역연구와 관련된 일일 거라 내심 믿고 있었는데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네팔이라고 해서 고민을 안할 수가 없었다. 허나 가는 지역이 에티오피아가 아닐 뿐 기회가 되면 에티오피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회사라 결국 가기로 했다. 다음 주 출국 예정이라 이번에도 여유있게 준비하긴 그른 것 같다. 회사에서 티켓은 끊었다고 연락이 왔고, 전임자가 사는 숙소를 내가 쓰기로 해서 일단 한시름 놓은 상황이다. 


중국으로, 일본, 영국, 에티오피아로 처음 출발할 때 무슨 준비를 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예방접종은 필수사항이 아니고 권장사항이라고 해서 구충제나 준비할 생각이다. 개도국의 경우 뭘 신청하는 데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사진은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우편으로 보내는 짐을 까다롭게 체크해서 얼토당토않은 세금을 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이번엔 할 수 없이 3단 이민가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야 할 것 같다. 보통은 국제우편이나 선편으로 짐들을 보내놓고 공항에는 간편하게 갔었는데 이번에는 귀찮아도 어쩔 수가 없다. 공용어가 네팔어라고 하니 네팔어를 배워야 하는데 가기로 결정하고부터 기본적인 표현들과 네팔어 자모음을 매일 공부하는 중이다. 취미나 시험이 아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우는 내 인생 다섯번째 외국어이다. 문자가 완전 예술이라서 '옴마니반메훔' 하면서 한자한자 쓰다보면 수행하는 느낌이 든다.


에티오피아나 중국 갈 때와 비교하면 네팔 관련 자료는 넘치고 넘쳐 네팔이 어떤 나라인지 찾아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 사이 히말라야 트레킹, 자원봉사 등을 통해 네팔에 다녀 온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이 쏟아낸 자료들이 아주 유용해 보인다. 그런 정보에 따르면 음식도 밥을 먹는 데다 다른 아시아 지역 보다 향신료를 덜 쓴다고 하고, 게다가 현지에는 한국 식당도 여러 곳 있는 것 같아 먹는 걱정도 덜었다. 베이스 캠프가 수도 카트만두라서 탁한 공기가 걱정이지만 지방 보다는 살기가 수월할 것 같다. 거기서 3년을 지낼 예정이다. 어떤 일들, 어떤 사람들이 네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학생 신분이 아니라서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히말라야 정기를 받으며 내 인생 2막을 잘 준비하고 싶다. 



*지도정보: http://www.worldatlas.com/webimage/countrys/asia/np.htm 

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12. 31. 23:59

2014년은 모두에게 힘든 한해였나 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말 힘들었다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해였다고 그런다. 2014년에는 누가 나쁜 사람인지 알았으니 이제 나 자신만 알면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2014년은 나에게도 참 힘든 한해였다. 봄도 여름도 마치 겨울처럼 추웠던 것 같다. 2015년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건강한 한해였으면 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한해. 그런 마음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했으면 좋겠고.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잘했던 일, 못했던 일들을 꼽아봤다. 여기다 풀어놓을만한 내용이 아니라 소개는 안할란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기대치를 낮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그럴필요 있나요.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 비록 2014년은 지난했을지라도 밝아오는 새해에는 우리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잘~ 살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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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12. 11. 15:46

한국에 와서 세 군데의 대학부설 연구소에서 일을 했다.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쏟아놓겠다. 그리고 세 군데의 NGO(비영리기구)에 진지한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었다. 첫 번째 NGO는 면접을 위해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면접 본 날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려 떨어진 걸 알았다. 에티오피아에 파견을 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내부 사정으로 파견지가 케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면접일 바로 전날 알았지만, 이왕 원서를 넣었으니 합격하면 케냐에 갈 생각이었다. 이때만 해도 불합격의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


두번째 NGO는 아프리카 연구분야의 박사급을 채용하겠다고 해서 지원했었다. NGO지만 직책은 선임연구원이고, 연봉은 5,100 정도를 주겠다고 했다. 돈 때문은 아니고, 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지원을 했는데 전부 석사급만 채용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고, 면접한 사람(들)이 내가 이전에 일했던 곳에 가서 내가 이곳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걸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다. 이 바닥이 이렇게 좁다. 합격자 발표가 난 이틀 후 다른 장소에서 이 NGO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옆에 있는 교수에게만 자기 명함을 주고 나는 모르는 체해서 재미있는(?) NGO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떨어진 게 몹시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NGO는 이름은 많이 들어본 곳이었는데 실제 가서 보니 좀 웃기는 곳이었다. 프로젝트 매니저 포지션에 지원했는데 일단 1차 서류는 통과되었는지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다른 NGO의 같은 포지션에서 지원해주는 정도의 지원은 힘든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게다가 건강검진도 내가 해야하고, 파견지역에서 요구하는 주사도 내 돈주고 직접 맞아야 한단다. 직원의 복리후생에 전혀 관심이 없는 NGO라는 생각이 들어 왜 그렇게 공지를 했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일단 면접을 보고 싶었다. 그 포지션의 재원출처를 알고 있었지만 설마 굶겨 죽이기야 하겠나, 합격하면 2년간 에티오피아에 파견이 되는데 하는 생각에 면접에 가겠다고 했다. 면접관은 두 명이 나왔는데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두 사람은 출퇴근은 8시에서 5시까지이지만 야근이 많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할 때가 많고,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하지만 다른 NGO와 다르게 내가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꾸리는 게 아니라 잡일(그렇게 표현은 안했지만)을 하게 될 거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애초에 내가 1차 합격하면서 들었던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기는 힘들고 그것보다 금액이 훨씬 적을 거라는 걸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적은 금액을 주기에 그렇게 박봉을 강조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보통 기업에서 아프리카에 직원을 파견하면 위험수당에 이것저것 챙겨주는 게 많은데 해외에 직원을 파견하는 NGO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착취모드를 고수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내가 파견기간 동안은 직원이지만 장차 그 NGO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도 있고, 홍보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면접만 보는 줄 알았는데 필기시험이 있었다.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쓰라는 문제도 있었고, 태극기를 그려보라고도 했고, 애국가 2절 가사를 쓰라고도 했다. 내가 그걸 다 했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미쳤다고들 그랬지만 진짜 그걸 했다. 애국가 2절 가사에 '바람서리'를 '바람소리'라고 써서 잠시 쪽팔리기도 했다. 영어문장을 한글로 번역하는 40점짜리 문제도 있었는데 그건 그냥 안해버리고 거길 나왔다. 어차피 합격해도 일할 생각이 없는 곳이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만약 '합격하셨습니다' 라는 연락이 오면 '미안하지만 합격을 취소해달라'라는 말과 함께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을 생각해놓기까지 했다. 면접장에서 합격자 발표는 2~3일 후면 해주겠다고 했는데 거의 20일이 지나서 그 NGO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은 했지만 내가 에티오피아로 파견을 하기에 경력도 모자라고, 부족한 게 많아 프로젝트 매니저는 힘들고 일반봉사단 자격으로 가란다. 내가 합격이 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준비한 말들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에티오피아에 가고 싶었지만 가서도 계속 이랬다저랬다 할 게 뻔한 단체다.


열정페이, 열정페이 정말 말은 많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뻔뻔한 지 잘 몰랐다. 위에서 언급한 세 곳 말고, 사실 일하고 싶은 NGO가 있어 인사채용 담당자에게 영국에서 메일을 서너 번이나 보낸 적이 있다. 기부를 한다고 연락을 한게 아니라서 그런지 단 한번도 답변을 못 받았다. 그러다 올해 우연히 어떤 이벤트장에서 거기서 일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대뜸 하는 말이 "그때 답장을 안 보냈었던가요? 이쪽이 진입장벽이 높아 일하고 싶다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였다. 일 자리를 달라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졸지에 나는 넓은 세상에서 배운 것들을 고국에 와서 나눠보고 싶은 사람이 아닌 일자리를 구걸하는 '저쪽' 사람으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이쪽' 사람 앞에서 말이다. 들여다보면 다 거기가 거기인데 파이를 키워 더 나은 걸 모색해보자가 아니라 눈 앞의 내 파이들에만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공부할 때 금의환향해서 꼭 폼나는 일을 해야지, 그 따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 그런 목적들이 있었다면 내가 수년간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면서 공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다. 공부가 끝나면 현장에서 일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데 NGO가 적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을 두드렸었다. 굴욕적인 과정들을 겪으며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내가 가진 것들을 많이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은 곳을 만나지 못했고, 이제 다시는 NGO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내 뒤에서 비슷한 길을 밟는 후배들에게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하러 오라고 해서 가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강의를 시킨 후, 신분증에 통장사본, 이력서까지 요청해서 달랑 10만원을 입금시키는 곳들에서(세금 떼면 10만원이 안되는데 개인정보를 다 주고 과연 저걸 받아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지식을 풀어놓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다.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하던말던 그냥 하던 연구나 계속하면서 덜 상처받기로 했다. 가급적 평온하게 지내고 싶다. 물론 내가 기꺼이 일하고 싶은 곳을 만난다면 지금 한 이야기는 다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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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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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관심있게 보는 드라마 '미생'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하고, 직원들이 카드와 선물들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이 실감났다. 어영부영하다가 12월 31일을 맞는 것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해 일단 to do list를 만들어봤다. 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가장 찔리면서도 응급상황이라고 느꼈던 게 역시나 무심했던 인간관계. 그동안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뜬금없이 미안하다고 그랬다. 사랑한다고도 그랬다. 올해는 엄마랑 병원갈 일도 많았는데 내년에는 그 수가 줄었으면 좋겠다고도 그랬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러는데 그냥 보고 싶다고 또 그랬다. 올해는 정말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뭔가 안타깝고 그렇다. 얼마 전에 엄마의 심장을 열 일이 있었던 친구가 내가 부럽다고 그런 적이 있다. 난 그래도 엄마와 단 둘이 해외여행도 가고 같이 도란도란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은데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고. 그렇게 여행도 같이 하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맛있는 것 해달라고 투정도 부리면서 거의 10년 만에 말 안듣는 딸노릇도 해 본 한해였지만 그래도 뭔가 아쉽고 그렇다. 그래서 전화 끊으면서 바쁜 일 정리되면 한번 찾아가겠다고 그랬다. 


평소 베프라면서도 무심하게 지냈던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전시회에 갔는데 좋았으니 아들 데리고 너도 한번 가 보라면서 연락을 했는데 그사이 부쩍 큰 아들 사진을 보내줬다. 그렇게 오래 무심하게 지냈으면서 갑자기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당장 만나자고 했지만 그러기는 둘 다 힘들어서 일단 12월 초에 만나 맛있는 것 먹으면서 회포를 풀어보자는 말은 전했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전화를 끊고나서 괜히 설레고 흥분되고 기분이 묘한 걸 느꼈다. 진작 연락을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왜 생각만하고 미뤘는지 후회가 되었다.


어제 외대 용인 캠퍼스에서 아프리카 관련 학회가 열려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아주 조금헀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아프리카 관련 학술대회는 어떻게 열리나, 또 어떤 사람들이 오나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조금 망설였는데 운좋게도 외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친절히 운전을 해 준다고 해서 편하게 다녀왔다. 생각보다 참가자들이 많았고,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에서 아프리카 이슈로 한국 학자들과 토론도 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게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학회가 끝나고 이런 느낌도 곧 잊을 판이었는데 리스트 작성하면서 찔리는 게 있어, 올해 아프리카 이슈와 관련해 만난 분들에게 뜬금없이 고맙다는 연락을 돌렸다. 전에 일했던 직장에도 연락을 했다. 그냥 모두모두 오겡키데스카.


언론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어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외수 선생님이 위암 투병 중이시다. 춘천 한림대 병원에 계실 때 병문안을 다녀온 후 한동안 연락을 못했다. 내가 이래도 되는지 죄책감이 들었는데 그냥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잘 버티고 계시냐고, 보고 싶으니 곧 가겠다고, 그랬다. 선생님이 감성마을로 이사가신 후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갈 일이 없었는데 춘천행 기차를 타니 춘천의 선생님 댁 찾아가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났고. 내가 가을을 타는 건지, 겨울을 타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때쯤이면 누구나 다 그렇게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그러지 않을까 위로해 본다.


지난 여름부터 몸도 안 좋고 해서 아주 힘든 일은 안 하려고 몸을 바짝 사리고 있었는데 최근 좋은 조건으로 '자리'를 제안해주신 분이 계신다. 덥썩 제안을 물어도 쉬원찮을 판에 말이 나온 자리에서 거절해버렸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두번씩이나. 건방져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제안이 고맙지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못해 그 일이 신경이 쓰였었는데 조금 전 전후상황을 설명하면서 오해를 푸시라는 연락을 했다. 부디 오해를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설사 오해를 하셨더라도 내 메일로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다.


이런 일을 다 하는데 한시간도 안 걸렸다. 진작 해 버릴 걸 어떤 일은 몇 달을 미루면서 찜찜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가 따로 없다. 이제 마음이 후련해졌으니 '미생'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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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11. 21. 08:28

집에서 멀지 않은 시장 근처에 매주 화요일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 사이에만 사과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큰 도로와 골목 사이에 매주 화요일에만 차를 세워 놓고 사과를 판다는 걸 아는 데 한달이 걸렸고,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 사이에만 사과를 판다는 걸 아는 데는 몇달이 더 걸렸다. 얼굴을 알고 몇 가지 정보를 교환한 후 단골이라 판단을 하셨는지 사과를 덤으로 여러 개 주시는 데다 맛도 있어 될수록이면 아저씨한테 사과를 사려고 한다. 사과 아저씨 주변에 과일차가 여러 대가 있고, 골목을 조금만 더 들어가면 과일가게며 슈퍼가 있어 거기서도 과일을 살 수 있지만 이 아저씨한테 과일을 사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청사과가 나올 때쯤이었는데 봉지에 담아놓은 대로 달라고하자 사기 전에 맛을 보라면서 사과 반쪽을 뚝 떼어주시는 게 아닌가. 어차피 살 거였지만 사과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는 시간을 잘 못 맞춰 한달만에 아저씨를 다시 만났고, 그 후에도 쑥쓰러워 언제 오시냐고 묻지도 못하고 오다가다 마주치면 집에 사과가 있어도 아저씨한테 사과를 사곤했는데 최근에야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사과를 파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여기 언제 오세요, 라고 그냥 물어보면 되는데 그걸 못했다. 예전에는 쉬웠던 일들이 어려워진 게 참 많다.  


한국에 와서 사계절을 다 경험했는데 생활습관 바꾸는 게 참 어렵다. 제일 문제가 사람 사귀기. 밖에서 공부할 때 사람을 안 만났던 건 아니었는데 지나고보니 잠재의식 속에 난 학위가 끝나면 곧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에 친구만들기에 인색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막상 한국에 와서는 마치 유학생활 시절처럼 누가 연락하지 않는 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된다. 지근에 친구가 살고 있는데도 전화도 잘 안 하게 되고, 초여름에 한번 만난 후 통 연락도 안하고 지낸다. 몇년에 한번씩 한국을 방문해 반갑게 만나 식사 한끼하고, 시간여유가 있으면 차까지 마시면 내가 그 친구와 우정을 나누기위해 해야할 일은 다 한 것처럼 지낸 게 너무 오래 되어서인지 낯선 사람들과는 물론 이제는 친구들과도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일이 있어도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지인들과 이걸 어떻게 나눠야하는지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정리하고 연구실(그 사이 연구실을 옮겼다.)로 출근을 해서는 하루 종일 읽고쓰고를 반복하고 오후 6시쯤 되면 다시 집에 와 저녁을 먹고 또 읽고쓰다가 졸리면 잔다. 시간이 없다고도 할 수 없고, 많다고도 할 수 없는데 가끔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일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곧 잊어서 문제이지만.  


최근에 내 주변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내 나이가 이제 죽음과 가까워질 나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암으로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하고, 출장 갔다가 갑자기 심장이 멈추기도 하고 어쨌거나 모두 다시 볼 수 없게 된 사람들로 이 숫자가 점점 늘어간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갑작스럽게 떠난 그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 땅을 떠난 저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있을 때 참 잘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밋밋한 내 삶도 들여다보게 된다. 친구들이 가장 예쁘고, 멋졌을 자리에서 난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고, 가장 슬픈 시간들도 난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이젠 그럴 수 있는 환경이니 부지런히 만나야하는데 그런 자리들이 낯설고 어색해서 영 못하겠다.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 고향에서 이방인이 아닌데 이방인처럼 사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테지.


겨울 초입인데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낮은 것 같다. 연구실 히터가 빵빵하긴 한데 오며가며 걷는 길이 추워 어제보다 조금 더 챙겨입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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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10. 17. 22:27



서울 시청에서 공정무역 관련 행사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세계공정무역기구 아시아(WFTO-ASIA) 서울 컨퍼런스. 사진 속의 연사는 WFTO-ASIA 상임이사인 Christine Gent인데 얼굴이 너무 작게 나왔다. 행사 소개 책자에 "소비국가에서 열리는 최초의 컨퍼런스"라는 표현이 있고, 오늘 발표자들도 여러 차례 이 표현을 썼는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공정무역 관련 행사가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열리지 않았을 리가 없고, 소비국가라면 어떤 소비국가를 의미하는지. WFTO-ASIA가 공정무역 상품 소비국에서 처음 열렸다는 말인가. 커피 같은? 그래도 말이 안되는게 요즘에 커피를 생산만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고, 커피를 소비만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다른 공정무역 상품들도 마찬가지고. 글 쓴 사람이 귀찮아서 생각하다 말았나보다. 박사 논문 쓸때 드래프트에 공정무역, 윤리여행 부분이 조금 추가되었다고 하면 지도교수인 폴 선생이 참 좋아하셨더랬지. 내가 오늘 이런 행사에 다녀왔다면 반가워하지 않으셨을까. 


점심은 서울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 덕분에 시청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메뉴는 아래 사진처럼 나오는데 3,300원 정도 한단다. 남기지않고 다 먹고 시민청 지하 1층의 <지구마을>에 가서 '공정무역' 커피도 얻어 마셨다. 백순데 이 정도는 신세져야하지 않겠나. 대신에 오늘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공정무역 상품들(초콜릿, 커피, 티, 쿠키 등등)은 아낌없이 친구에게 넘겼다. 그건 그렇고 오늘 행사를 통해서 안 사실인데, 시청 건물 안에 커피를 비롯한 공정무역 상품들이 진열되고 판매되는 곳이 전 세계에서 서울시가 유일하단다. 박 시장님이 밀어부치셨나? 


 

행사가 끝나고 서울도서관에 들러 책도 세 권 빌려왔다. 서울시민이거나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바로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고, 당일 책도 빌릴 수 있다. 한 번에 세 권까지 대출이 가능하고, 빌린 책들은 14일 동안 볼 수 있는데다, 다 못 보면 다시 일주일간 연장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이 확실히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시민 입장에서는 자잘한 거 잘 챙기는 시장님이 만만세이지만, 직원들은 일하기 참 힘들 것 같다. 서울도서관과 시민청 사이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에서 자원봉사 중인 시청직원들도 엄청 힘들 것 같고.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6개월이 넘어갈 거라 상상이나 했겠나.


결실의 계절 가을인데 올해는 별로 추수할 게 없구나. 올해도 두 달 조금 더 남았는데 여기 오시는 분들, 우리 분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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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9. 11. 23:47

1.

길거리에 아직도 반소매를 입고 다니는 건강한 청년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러기에는 좀 춥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기에도 너무 추워졌고. 얄포름한 스카프를 하나 장만했는데 이런 계절에 딱이다. 저녁을 일찍 챙겨먹고 커피 잘 뽑는 커피숍에 와서는 잠이 안 올까봐 카모마일 티를 한 주전자 시켜 마셨다. 계산하는데 종업원이 도장을 한 개만 더 받으면 공짜로 차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씐난다.


2.

계절의 변화를 모를만큼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닌데 좀 무심했다. 노트북을 안 열어보고 산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구글 이메일 계정 비번 500만개가 러시아에서 유출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이메일 계정 비번이나 바꿔야지 하는 생각에 열었는데 아 내가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도 너무 게을렀다.


3.

후임한테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연구소를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백수생활은 생각보다 꿀맛이다. 주변에 연대를 해도 좋을만큼 백수가 많아져서 별로 쪽팔리지도 않다. 엄마가 좀 걸렸는데 오히려 왜 더 놀지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느냐며 이참에 아주 푹놀라고 하셔서 다리 쭉 뻗고 노는 중이다. 책도 읽고, 가끔 자원봉사도 하고, 골목산책도 하고, 졸리면 근심없이 그냥 잔다. 한병철 씨가 <피로사회>에서 언급한 '깊은 심심함'이 자주 찾아와 이러다 예술을 하는 거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다. (엄마 왈: 뭐 하게되면 하는 거지 고민은 무슨...)


4.

추석즈음에 걸린 감기가 아직도 안 떨어지고 따라다닌다. 감기는 약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이라는데 나한테는 더이상 안통하는지 원. 면역력이 확실히 약해지긴 약해진 것 같다. 강철같은 체력을 타고났다고 자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상한 피부질환에 걸리지를 않나 감기도 한번 걸리면 오래간다. 참, 장미색비강진은 언제 그랬냐는듯 흔적없이 나았다. 피부 속은 잘 모르겠지만...운동도 하고, 좋은 것도 잘 챙겨먹고, 마음도 편하게 먹으니 곧 다 좋아지겠지.  


5.

말을 하는 게 귀찮아져서 사람들은 거의 안 만나는 중인데 9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 연락을 해서 정말 9년 만에 만났다. 서로 금방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서 만났는데 기대를 너무 했는지 맛은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았다. 난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만나자마자 메시지와 함께 장 지오노의 <나무 심는 사람>을 전해줬다.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내용은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본 적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감동이다. 요즘 푹 놀다보니 엘제아르 부피에의 고독이 잘 이해가 간다. 이제 나무 심는 일만 남은 건가.


커피숍 문 닫는단다. 슬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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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7. 9. 11:52

겨울철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에 걸리듯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도 감기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른 바 '장미색 비강진'이다. 원발진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건 내 몸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고, 발진이 심해지거나 퍼지기 시작하면 놀라서 병원을 찾는 게 이 병 걸린 사람들의 수순인 것 같다. 모기떼에 물린 것처럼 우툴두툴 두드러기 같은 게 나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의사가 두드러기는 아닌 것 같다고 해 무슨 이런 병이 있나하고 피부과에 같더니 이름도 예쁜 장미색 비강진이란다. 대개 얼굴에는 안 올라온다는데 난 얼굴로 올라와 더 힘든 것 같다.


의사에게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물으니 원인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법이 없단다. 첫번째 간 병원에서는 술만 마시지 말라고 그러고, 두번째 간 병원에서는 밀가루와 유제품, 육류를 끊으라고 했다. 두유도 한살림 같은 데서 나온 거 아니면 시중에서 파는 건 화학제품이 너무 많이 들었으니 먹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몸에 나쁜 건 들어가면 심한 발진이 동반되는데 꾸준히 먹었던 두유들에서 그런 증상이 나와 두유도 멀리하게 됐다. 


병원 서너 군데를 다녀보고 알게된 사실인데, 이 병 증세가 보통 6주에서 10주 정도 가는데 한번 앓고 나면 면역이 생겨서 다음에 안 걸리는 사람도 있고, 환절기만 되면 병이 도져 고생을 하기도 한단다. 바이러스 혹은 면역체계가 무너져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 혈액순환, 독소제거, 면역력 증강이 치료에 도움이 된단다. 유학생활 하는 동안 나쁜 음식들(?)을 많이 먹지도 않았고, 늘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곳에 살았는데 갑자기 바뀐 서울살이가 병의 근원이지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한국에 와서 MSG가 흠뻑 들어간 음식들을 많이 먹기도 했고.


원인이 없다니 일단 평소 몸에 나쁘다고 하는 음식들부터 끊기 시작했다. 우유를 끊으려면 치즈, 케이크, 각종 커피음료 등을 안 먹어야하고, 밀가루를 끊으려면 빵, 면류 등을 멀리 해야한다. 육류를 끊으니 정말 서울 시내 갈 만한 식당이 없다. 비빔밥이 제일 만만한데 다진 소고기를 넣은 집들이 너무 많다. 콩나물국밥, 이거 괜찮을 것 같아 갔더니 장조림용 돼지고기가 비법인 집이었다. 야채김밥은 괜찮겠지 하는데 양념들에 화학제품이 들어갔는지 발진이 심해져 야채김밥도 못 먹고 있다. 이 병 덕분에 몸에 안 좋거나 몸에 갑작스럽게 열을 올리는 음식들의 구분이 가능해졌다. 설탕이 몸에 나쁜 이유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소 8주 동안 집밥 위주의 아주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되어보자고 마음 먹고 야채, 과일들을 챙기는데 과일도 당도가 높으면 발진이 심해진다. 


생야채, 현미, 된장찌개 같은 걸로 식습관을 개선하고 3주를 보내고 있다. 의사들의 통계에 따르면 아직도 몇주가 더 남았는데 평소 좋아하는 음식 냄새가 어딘가에서 풍겨오면 너무 힘들다. 연구소에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데 가끔 밖에서 밥을 꼭 먹어야할 때는 제대로 된 식당을 못 찾아 일행도 당황스러워하고, 나도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를 때가 있다. 식당을 못 찾아 의도치않게 혼자 금식을 해야할 때도 있고. 무슬림들의 라마단이 시작되었는데 무슬림도 아니면서 무슬림이 된 기분이다. 올 여름계획 중에는 맛있는 치맥집 순례가 있었는데 가을이 될 때까지도 치맥 옆에는 못 갈 것 같다. 이것도 다 서울살이 신고식이라고 위로를 하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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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한국/2014 2014. 6. 11. 19:30

1. 

귀국 기념으로 헌혈을 하러 갔는데 1997년 이후 영국에서 체류한 기간이 3개월이 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헌혈을 할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유학가기 전 헌혈을 자주 했었고, 암투병 중인 친구 아버지를 위해 그간 모아두었던 헌혈증을 기부하기도 했었더랬다. 내가 갔던 헌혈의 집에서는 헌혈을 하면 영화티켓을 준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갔었는데 아쉽게 됐다.


2.

월드컵 시즌이 돌아왔지만 올해는 자중하기로 해서 한국팀이 언제 경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평가전부터 챙겼을 텐데 말이다. 브라질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 말고는 개막식이 언제인지, 우리 팀 라인업이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면서 여름을 맞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

지난 주 일본 엄마가 일본은 이미 장마에 돌입을 했다고 연락을 하셨는데 이번 주 날씨를 보니 한국도 그런 것 같다. 얼마 만에 경험하는 장마란 말인가. 비가 많은 나라에서 공부했지만 비가 오면 가급적 밖에 나갈 생각을 안했었다. 허나 한국에서는 그러기가 힘든 처지. 선물로 무지개 우산을 하나 받았는데 어제 손잡이가 튼튼한 걸로 우산을 하나 더 장만했다. 밖에서 장대 같은 비가 와도 우산 바꿔 쓰는 기분으로 밖에 나갈 수 있을 듯. 오늘도 점심 먹고 스콜처럼 비가 쏟아지다 그쳤다.


4.

내년 봄까지는 여행도 하면서 백수로 지낼 생각이었는데 뜻하지않게 취직을 해버렸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과연 한국에서 아프리카 지역연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다행히 그런 곳이 있었고, 요즘 열심히 출퇴근 전철을 타면서 직장인 흉내를 내고 있다. 낯선 환경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즐겁게 일하는 중이다. 참고로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나이지리아와 알제리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 당분간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이지리아와 알제리에 대한 이야기를 귀찮더라도 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5. 

어제 주문한 <고종석의 문장>이 도착했으니 경비실에서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고 선생은 절필하신다고 하더니 이렇게저렇게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 행복하다고 하겠다. 귀국하고 가장 먼저 주문한 책이 고 선생의 <낭만미래>였는데 연구자의 책임감을 고민하게 해줘서 참 좋았다. 요즘 출퇴근 시간엔 고 선생 책들을, 잠들기 전엔 요네하라 마리 여사 책들을 읽고 있다. 다 재미있다.





이미지: http://surl.kr/1cp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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