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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1 빨간 자켓 아가씨
  2. 2013.02.19 이런 문화교류
  3. 2013.02.19 유기농 꿀
  4. 2013.02.16 한국문화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5. 2013.02.14 신뢰, 박완서, 그리고 목련 2
  6. 2013.02.07 레 미제라블
  7. 2013.02.07 엄마 이야기
  8. 2013.01.31 1월을 마무리하며
  9. 2013.01.29 기숙사 백태-아프리카 학생들
  10. 2013.01.25 새 친구들

운동겸, 산책겸 시장에 다녀왔는데 갈 때 만났던 빨간 자켓의 아가씨를 집에 오는 도중에 또 만났다. 갈 때는 서로 모른 척 했는데 돌아오던 길에는 그 아가씨도 날 알아보고 살짝 웃어주는 바람에 가벼운 목례와 함께 서로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가씨는 여전히 쏟아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가씨가 내 앞에서 10미터도 더 된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웃으면서 건너는 모습을 볼 때만해도 그런가 보다 그랬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어 슬슬 아가씨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빨간 자켓의 아가씨는 도대체, 오늘, 아니 지금,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저렇게 혼자 즐겁게 웃을까에 대해 10가지만 생각해 보자며 손가락을 꼽아봤다. 시험에 합격? 그럴 수 있지. 취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이패드 미니가 갖고 싶었는데 누가 선물한다고 했나? 인도 너머의 아시아 지역 배낭여행을 위한 항공기 티켓을 방금 끊었나? 장거리 연애 중인 남자친구를 지금 만나러 가나? 로또 당첨? 아니야, 엄청난 상금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저 정도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이지. 오매불망 좋아하던 남자를 좀 전에 만났나, 그것도 우연히? 자기를 예뻐해주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웃는 게 좀 오바고. 친구의 저녁 초대, 혹은 친구들의 파티 초대? 복장이 쪼옴 아니지...


이렇게 계속 생각을 이어가다 결국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고 말았는데 그 아가씨를 또 만나니 내가 몇가지를 생각해냈지, 하면서 손가락을 다시 꼽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내가 내린 결론은 한가지. 박사논문이 통과되어 학교에서 증명서를 받아오던 길이 아니었을까. 논문 제출하고 나면 나도 누가 보던말던 좋아서 거리를 활보하며 미친듯이 웃을 것 같다. 오늘 만난 빨간 자켓의 아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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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복도를 지나다가 그 학생을 또 만났다. 비자 문제때문에 다른 학생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착한 학생이었다. 사실 내 담당구역이 아니라 늦게 도착했는지도 몰랐는데 전할 말이 있어 갔다가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이 살기 전 아주 시끄러운 중국학생이 살고 있어서 당연히 중국학생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는데 새 학생이었다. 미얀마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버마? 그랬더니 그것도 맞다고 그랬다. 영국 사람들은 이 나라를 미얀마라 안 부르고 버마라 부른다. 우리나라는 이 나라를 아웅산 테러사건과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아웅산 수 치 여사의 나라로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내 친구의 여자친구가 여기 사람이라 이 나라의 관광명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지만 별로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간사이에 있을 때 여기 외교관이랑 좀 친하게 지냈지만 이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싶지가 않았다. 한류 광팬이라서 만나기만 하면 질문을 쏟아내 많이 귀찮아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직업의식이 전혀없는 빵점짜리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연이 있는 나라인데도 어쨌거나 지금까지 그 나라가 궁금한 적이 없었다. 내 성격에 관심이 동했다면 직접 가 보기도 하는데 인터넷에 글자 몇 자만 치면 나오는 나라인데도 별로 궁금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 때문에 버마라는 나라가 참 궁금해졌다. 멀리서 나를 봐도 가까이 뛰어와 꼭 목례를 한다. 담배를 피다가도 끄고는 뛰어와 고개숙여 인사한 적도 있다. 어제 저녁에도 복도를 지나다 만났는데 또 그렇게 인사를 했다. 잘 자라는 말도 덧붙였고. 그래서 버마라는 나라를 찾아봤다. 아시아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지, 어떤 말을 쓰는 지, 주식으로 뭘 먹는 지 등등. 긴 목에 링을 감고 사는 카렌족이 인도네시아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버마에도 살고 있었다. 1989년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버마가 아닌 미얀마가 되었고, 유엔은 미얀마라고 부르지만 미국도 영국처럼 버마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나도 존중해주는 의미로 앞으로는 버마라 불러주기로 했다. 




혼자 인터넷에서 버마라는 나라를 찾아보면서 우리나라도 타임스퀘어에 비빔밥을 광고하는 것 보다 국민에티켓을 가르쳐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줌으로써 그 나라가 궁금해지는 게 더 큰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난 그 친구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지, 교우관계가 어떤 지 잘 모른다. 키도 작고 외소한 그 친구가 늘 내게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준 덕에 난 버마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고, 이제 난 누군가를 만나 버마라는 나라가 화제가 되면 미얀마가 아닌 버마여야하는 이유를 이야기해 줄 테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인사하고, 어떤 음식을 먹는 지까지 얘기해 줄 것이다. 앞으로 그 친구를 기숙사 주변 어디에서 만나면 난 버마식으로 인사해주며 그의 목례에 답할 것이다. 진정한 문화교류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사진출처: 구글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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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몇 주 전에 꿀 한 병을 선물 받았는데 잊고 있다가 오늘 처음 시식을 했다. 아주 잊은 건 아닌데 먹던 게 있어 다 먹으면 뚜껑을 따야지 했던 꿀이다. 상표가 하도 후져서 먹기에 좀 찜찜했는데 맛을 보니 진짜 유기농 꿀인 것 같다. 슈퍼에서 산 싸구려 꿀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조사지역을 옮기기 전에 알고 지내던 한국인한테 꿀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약 2킬로그램 정도 됐지 아마? 뭐라도 주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면서 꿀이랑, 쌍화탕 한 병, 청심환 한 알을 일하는 친구를 시켜 보내주셨다. 꿀은 현지인한테 선물로 받은 건데 직접 먹어보니 좋은 꿀인 것 같다고 그러셨다.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이라 많이 감격했었다. 허나 큰 배낭에 2킬로그램이나 되는 꿀은 큰 짐이었다. 사람을 불러 다시 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변엔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꿀을 처분할 방법을 못 찾고 매일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한스푼씩 마시기로 했다. 처음 뚜껑을 딸 때만해도 이 꿀을 언제 다 먹나 했는데 매일 그렇게 떠 마시니 부피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맛없는 빵을 만났을 때도 난 냉큼 꿀병을 땄다. 유기농 꿀이라고 딱지 붙은 걸 이나라저나라에서 많이 먹어봤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내가 몇 개월 먹은 그 꿀이 진짜배기 유기농꿀이 아닌가 싶다. 아주 달지 않으면서 그래도 달긴 단 그런 꿀. 비는 날마다 쏟아졌지만 닦고 마실 물은 마땅찮은 곳에서 피부에 심각한 트러블도 없었고, 무엇보다 손발 차가운 증상이 싹 없어졌다. 꿀 말고는 따로 보약 비슷한 것도 챙겨먹은 적이 없으니 모든 공을 꿀에 돌릴 수밖에. 


선물 받은 꿀을 한 스푼 떠 먹으면서 에티오피아에서 먹던 꿀이 생각났다. 잡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것 같다. 저 아래 지중해에서 건너 온 1킬로그램 조금 못되는 꿀인데 아껴서 조금씩 먹어야겠다. 새봄이 오기 전 면역력 증강을 위해 뭘 좀 먹어줘야하지 않을까 고민했었는데 아주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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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친구들이랑 가볍게 차 한잔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리스 친구가 내게 묻는다. 한국문화 관련 된 책에서 보니 기독교인 비율이 25% 정도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두 종교 모두 30% 이상 되지 않나? 내가 직접 안 찾아봐서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인구 절반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데다 여자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 K-POP의 주인공들은 한국인이 맞느냐고... 왜 다 얼굴이 똑같고, 보여주지 못해 안달을 하느냐고 하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옆에 있던 홍콩 친구는 자기 얼굴과 가슴 쪽을 두손으로 과장해 훑어 주면서 한국은 성형수술 세계 1위 국가라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한국 여자들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고, 스킨십도 자유롭고, 잠자는 것도 자유로워 처음에 당황했다고 그랬다. 난 아직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구분 못하는데 그 친구들은 애들 이름까지 다 알고 있어 좀 놀랍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뭐 이런 말들은 깨끗한 발음으로 아주 쉽게 했다. 유튜브에 다 있단다. 걸그룹의 무대위 모습에서 한국의 군대문화가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한번 찾아봐야겠다. 둘 다, 한국 정부는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홍보를 도와주느냐며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그런 식으로 자국문화를 홍보하는 나라는 처음 봤다고도 그러는데 한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혼자 부끄러웠다.


연구실의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영국학생이 내게 처음 했던 질문이, 그것도 몇달만에, 너네 나라 사람들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느냐, 였다. 무식한 인간 같으니라고. 우리가 남아시아 너머에 있는 나라들에 별로 관심이 없듯 사실 영국 사람들도 인도 너머의 나라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그루지아 사람들이 그루지아 말을 쓰는 지 러시아 말을 쓰는 지 잘 모르지 않나. 그래도 무식한 건 무식한 거지만. 싸이 덕분에 한국인이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게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와 연락하기 위해, 그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분명 한류의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경덕 교수는 왜 또 비빔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알려서 외국인들이 비빔밥이 한국문화라고 알면 좋을 건 또 뭔가. 사람들이 비빔밥을 좋아해 이나라저나라에 비빔밥 집이 생기면 우리가 로열티를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일에 에너지를 쏟는 지 원. 그렇게 홍보하고는 꼭 한국매체에 홍보를 다시 하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어차피 쓸 돈도 있고, 홍보도 할 계획이라면 광고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한 방향으로 쏟아낸다고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긍정적인 효과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많은 세계지도들이 여전히 Sea of Japan 아래 Sea of China (황해쪽)를 표기하고 있는데 왜 굳이 Sea of Korea도 아닌 East Sea 표기에만 목을 매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지도 볼 때마다 바다도 없는 대한민국이 불쌍하긴 하다. 어쨌거나 좋은 일 한다고 광고도 몰아주고,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무조건 포장해주고, 뭘 좀 잘못해도 무조건 칭찬해주고 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민간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도 잘못된 건 말려야 할 판에 정부도 이 운동에 밥숟가락을 얹을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벌써 얹었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있을 때 이주노동자들에게 매주 일요일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몇년 한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는 아주 엘리트 계층이라는 사실을. 당연하지 않나. 인터넷도 안되고, 정보접근도 쉽지 않은 나라에서 먼 나라까지 올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는...밥벌이랑 연관되니 절실한 이유도 있겠지만 머리가 좋아 말도 금방 배운다. 오히려 영어 가르치러 한국에 와서 몇년씩 체류하는 영미권 사람들이 한국어를 더 못한다. 알아서 통역도 해주고, 이래저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이 많아서겠지만. 금발에 백인이라면 국적불문, 배경불문하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해지는지 다들 알지 않나. 


이야기가 좀 산만해지긴 했는데 결론은, 내가 한국문화홍보 관련 일을 해야한다면 난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이나 K-POP의 해외마케팅 도와주는 일 등에 절대 돈이나 에너지를 쓸 생각이 없고,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신장에 더 힘을 쏟을 것 같다. 한국에서 유람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생활을 했던 이 사람들이 돌아가서 한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공장에서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팔 잘리고, 다리 잘리고 그 나라에 돌아가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한국에서 일하는 누이가 보내 준 삼성 카메라, 엘지 핸드폰 만지작거리며, 한국은 어떤 나라야, 라고 분명 물어볼 텐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비빔밥을 먹어, 이거 완전 코메디 아닌가. 왜 우린 여전히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한테는 기도 제대로 못 펴면서,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온 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대접을 안 해주는 지 잘 모르겠다. 몽고에서 대학교수하던 분이 한국의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면서 겪은 일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치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도 그 분이 겪은 부당한 처우에 몹시 부끄러웠다. 그 사람이 살았던 나라가 가난한 거고, 그 나라가 가난한 게 그 사람의 죄는 아니지 않나. 


대선 이후 한국포털도 아예 안들어가고, 뉴스도 읽지 않는데 이러다 5년 후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들리면 여전히 솔깃해진다. 한국 소식으로 우울한 날 난 주로 한국이 배출한 넘사벽들 -  세리공주, 유나퀸, 빅토르 안 등등 - 의 황홀한 포퍼먼스를 좀 오래 감상하곤 한다. 오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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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리스트에서 지워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의 여유가 있기를 바라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안되는 것 같다.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 예의가 없는 사람, 폭력적인 언사를 아무렇지도않게 자행하는 사람과는 좀처럼 잘 지내지 못한다. "저렇게 못 생긴 사람은 내 기준에는 인간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정말 있다. 게다가 가방 끈도 엄청 길다. 지금 보다 훨씬 어릴 때는 마음고생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아둥바둥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런 게 다 귀찮다. 나이를 먹은 게지. 여러사람으로 마음이 번잡해지기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좋은 시간을 쌓고 싶다. 



에티오피아에 있을 때 킨들에 담아간 책을 다 읽어 버리고 책장 한장한장 넘겨가며 한국어로 된 책을 정말 너무너무 읽고 싶을 때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만났다. 다음 날 돌려주겠다고 하고는 밤새 읽고, 그 다음 날 또 읽고 돌려줬더랬다.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 만난 그 책은 마치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상 같아 아무렇게나 읽을 수가 없었다. 장정일 씨가 <생각>이란 책에서 그랬지. 자기는 두번 본 영화만 영화라고. 난 그런 철학은 없지만 어쨌거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연이어 두번이나 읽은 덕분에 내 소중한 책 목록에 오르게 된다. 며칠 전 그 생각이 나 선생님 돌아가시고 나서 새로 나온 책이 없나 찾아봤더니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패드로 읽을 수 있는 버전이 있어 얼른 대출해 읽었다. 선생님 작품은 몇 개 안 되고 큰 딸인 호원숙씨, 그리고 주변 사람이 기억하는 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해산바가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내가 참 좋아했던 작품들이었는데 이 책에 수록되어 있었다. 개인사를 작품에 많이 노출시켜 마치 내가 잘 아는 사람 같은 느낌을 선생님 생전에도 많이 받았는데 전쟁 때 잠깐 말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참 여유롭게 사셨던 분인 것 같다. 안정된 가정생활 - 남편의 사랑, 자식들의 존경 - 이 늦은 등단이었지만 선생님의 오랜 작품활동의 버팀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언제나 당당했던 작가로 기억하는데, 선생님의 분신 같은 주인공들이 작품 속에서 내뱉는 까칠한 대사들, 그러면서도 몹시 쿨한 태도들이 결국은 그런 여유로운 배경에서 탄생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위선적인 주인공의 뒤틀린 모습도 너무 가난해서 배배꼬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오히려 박경리 선생보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이 좋은 것 같은데 평단은 박완서 선생을 늘 두번째로 쳐주는 것 같아 좀 서운하다. <토지>의 위력이겠지만...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산책을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엔 우산을 들고 나갔다. 아직도 바람은 쌀쌀한데 달빛 사이로 목련이 개화를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빗물을 흠뻑 머금은 저(?) 목련들이 곧, 정말, 엄청나게 필 것 같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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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분명 작년 대선이후부터였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매체에서 기사가 계속 쏟아져나오는 것 보면 아직도 열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트위터의 네임드들 멘션에서 심심치않게 레 미제라블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메일함을 열었는데 간사이센터에서 내 튜터였던 선생한테 메일이 왔다. 메일 말미에 영화 <레 미제라블>을 봤느냐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2010년 봄 태국에서 교사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나를 보러 일부러 영국에 오셨었다. 둘이 어렵게 시간을 맞춰 우린 런던에서 만났고, 선생님이 예약해놓은 호텔에 묵으며 우린 런던 여행을 했다. 선생님은 태국에서 출발하기 전 메일로 조심스럽게 어디를 갔으면 좋겠느냐고 물으셨고, 난 런던이 내 베이스 캠프가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처지가 비슷하니 어딜 구경해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면서 난 개인적으로 런던의 무대예술에 관심이 있다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갑자기, 혹시 뮤지컬을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난 러브한다고 대답했다. 우린 모든 관광일정을 취소하고 3일 동안 여섯 편의 뮤지컬을 보러다녔다. 표를 미리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떨이로 나온 표를 구하느라 줄을 서 있으면서 길가에서 식사를 해결해야했고, 극장을 이동하면서 보던 명소들로 런던 관광을 대신해야 했지만 선생님은 몇번이나 정말 행복하다고, 그리고 많이 고맙다고 그러셨다. 테스코, 세인즈베리 등등에서 샌드위치를 사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며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우리가 보았던 가장 긴 시간의 뮤지컬이 레 미제라블이었고, 끝나고 나서 우느라 자리를 못 떠나는 선생님을 위해 난 한참이나 옆에서 기다려야했다. 다른 곳에서는 DVD만 사시더니 레 미제라블은 책이며 티셔츠 등 여러가지 기념품을 구입하시는 걸 보고 감동이 컸구나 싶었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DVD를 돌려보며 런던 여행도 생각나고 나도 많이 생각난다는 연락을 하셨는데 이번 메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레 미제라블은 볼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그러셨다. 나도 판틴이 노래할 때, 그리고 마지막 군중이 노래하는 장면을 보면 여전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오늘 트위터에서 만난 우리나라 공군의 레 미제라블 패러디(일명 '레밀리터리블')는 진짜 쩐다. 타이틀을 제대로 안봐서 처음엔 그냥 뮤지컬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흉내를 내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 우리나라 공군들이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는 거였다. 가사가 웃겨서 몰입하기가 힘들었는데도 진짜 뮤지컬 장면과 겹쳐지면서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정말 즐기는 사람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요즘 내 주변엔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느무느무 많아 좋다.참고: youtu.be/lZunEARBb6I


이래저래 오늘은 레 미제라블을 봐줘야하는 날인 것 같다.


사진: 구글 이미지 (뮤지컬의 막이 오르기 전 내려진 무대의 커튼 한가운데에 저 코제트 사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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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엄마가 인터넷을 배우고 처음 이곳에 글을 남겼을 때 깜짝 놀랐었다. 제목: 엄마다, 요렇게 말이다. 집 근처에 평생교육원 비슷한 교육기관이 있는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나보다. 수영, 영어, 노래교실, 요가, 사교댄스 등등.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엄마는 컴퓨터강좌를 선택했고, 1주일에 4번이나 되는 수업을 한 학기동안 빠짐없이 참석했단다. 아빠는 중간에 포기했는데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개씩 눌러 도저히 안되겠다고 핑계를 대셨다) 엄마는 끝까지 과정을 마쳤고, 내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한테서 오는 이메일은 절대 백지를 배경으로 해서 온 적이 없다. 언제나 봄을 닮은 꽃 편지지. 편지지도 편지지지만 어디서 그 많은 아이콘들을 찾아내 보내는지 신기하다. 컴퓨터를 배우기시작하고나서 매일 일정시간 자판 연습을 한 덕에 컴퓨터를 아주 오래 다뤘을 내 지도교수도 손가락 두개로 타이핑을 하는데 엄마는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 타이핑을 하신다. 엄마 입에서 유에스비, 딜리트, 드래그, 쉬프트키,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 난 꼭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든다. 스카이프에 나를 등록해 화상통화를 처음 하던 날 난 너무 신기해 몇번이나 전화를 껐다가 켰었다.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가족들,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도 하신다고 들었다. 우리 딸 모해?, 이런 메시지가 엄마한테 오면 아무리 바빠도 답장을 안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가끔 엄마가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시작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혼자 상상해볼 때가 있다. 두렵지 않았을까. 갑자기 전기가 나가 플러그 같은 거 확인해볼 때도 난 겁이 나던데 엄마한테 컴퓨터란 물건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런 두려움을 없애고 엄마가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했을까. 엄마가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휘휘 움직이며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걸고 받는 걸 보는 게 여전히 낯설다. 얼마 전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영어수업 광고를 우연히 보셨다면서 날이 풀리면 곧 영어를 배우신단다. 내가 이 나이에 돈 벌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이 먼 나라에 와서 이렇게 공부로 소일하고 있는 데는 엄마 피가 한몫을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엄마처럼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난 과연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그 '무엇'을 배우려 도전할 수 있을까. 엄마가 무척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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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어영부영한 1월이었다. 어제 지도교수가 우리 열심히 잘해보자고 해서 그러자고 대답은 하고 나왔는데 좀 미안했다. 벌써 끝낼 수 있었는데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내가 당근보다는 채찍이 많이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모조(mojo, 여기에서는 마력을 지닌 물건 정도의 의미)를 주입해 줄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이셨다. 멋진 교수님!! 연구실 우편함 체크를 못했는데 아마존에서 주문한 책도 두권이나 있었고, 지도교수님이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카드도 있었다. 한국에서 보낸 잡지도 두권이나 있었고. 책이 도착할 때가 됐는데 안와서 계속 기숙사 우편함만 체크했었는데 좀 쪽팔렸다. 주소지를 학교로 했었나보다. 요즘 내가 제정신이 아닌듯.



일본의 오카아상이 요네하라 마리 (米原万里) 여사가 쓴 책을 네권이나 보내주셨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키리모찌와 함께. 먹고 싶은 거 없느냐고 해서 그냥 키리모찌만 생각난다고 했는데 슈퍼에서 파는 대용량이 아닌 어디에 주문하신 듯한 키리모찌를 보내주셨다. 봄이 오고 있으니 우리 기다려보자, 라고 쓰신 종이카드와 함께. 마리여사 책은 진작부터 읽고 싶어 지난 해 친구한테 부탁을 하기도 했는데 드디어 상봉을 했다. 소포 뜯으며 앉은 자리에서 <旅行者の朝食>를 읽기 시작했는데 마리 여사는 참 재미있는 분 같다. 찾아보니 한국에는 <미식견문록: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으로 번역소개되었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이것저것 받은 것만 많은 한달이었다. 2월은 내가 더 많이 주는 달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사진출처: google image (키워드 - 旅行者の朝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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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몇주 전이다. 밤늦게 도착하는 학생이 있어 다른 기숙사 사감한테 계약서 등을 인계해주고 오는데 창문까지 열어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이 내 눈에 딱 걸렸다. 시간은 거의 자정을 달리고 있었다. 담당사감한테 연락을 했는데 마침 방에 있었다. 사감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친구라 좋은 샘플이 될 것 같아 같이 가주기로 했다. 현장에 당도하니 전부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로 정말 엄청나게 떠들고 있었다. 멀리서 음악소리는 못들었는데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학생들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새로 와서 기숙사 룰을 몰랐다고 변명을 하는데 내 학생이 거기 둘이나 있었다. 규정을 다시 이야기해주고, 아이디를 확인하고 모두 돌려 보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헌데 방주인이 나와 다른 사감을 못가게 막고는 아주 격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애들은 떠들어도 그냥 두면서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 거냐, 이건 명백히 인종차별이다, 라는...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게 이 일을 하는 중인데 좀 쇼킹했다. 그 친구 방 바로 윗방은 거의 날마다 떠드는데 왜 단속을 안 하느냐고 그러는데 내 구역이 아니라 나는 모르는 일이었고, 새로 일 시작한 사감도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던 터라 우린 둘다 당황했다. 어쨌거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우린 규정대로 처리한다고 이야기해주고 거길 나왔다.


아 이런, 방으로 돌아가다 또 한 방이 걸렸다. 홍콩 그룹 다섯명이다. 상습범들이다. 그 중 한명은 걸핏하면 뭘 집어던지면서 화를 내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시끄러워 노크를 한 후 방 주인한테 손님이 있느냐고 했더니 저 혼자란다. 방문을 열어달라고 했더니 왜그러느냐면서 주저한다. 화장실에서 네명의 학생이 커튼 뒤에 숨어 있다 멋적어하며 나왔다. 손을 씻고 나오려던 참이었단다. 넷이서? 그리고 자기네들은 방 주인의 손님이 아니고 친구이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규정을 이야기해주고 아이디를 확인하고 있는데 오 이런, 좀 전에 만났던 아프리카 학생이 맞은편 방에 놀러 왔다가 멈춰 서서는 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난 규정대로 처리하는 중이었고, 아이디를 확인한 후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노이즈 이슈는 아니었고, 불쌍한 아프리카 학생들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시간은 오후 10시. 홍콩 그룹이 파티를 하는 지 요란하게 요리를 하는 광경을 저녁 8시쯤 봤는데 그 시간까지 학생들이 공용부엌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부엌 옆의 아프리카 학생들도 요리를 한다고 시장을 봐 온 걸 봤는데 어디서 요리를 했을까 궁금했다. 다른 부엌은 열쇠가 달라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고. 괜한 오지랖에 노크를 했더니 학생들이 아직까지 거기 있었다. 맛있게 저녁 먹었냐고 했더니 다른 학생들이 부엌을 사용하고 있어 떠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벌써 두시간째란다. 아, 이런 불쌍한 친구들. 당장 부엌에 가서 파티가 끝났는지 홍콩 그룹에게 물었다. 부엌을 쓰고 싶다면 다른 부엌이라도 열어 줄 생각에서였다. 왜 그러냐고 퉁명스럽게 묻길래, 다른 친구들이 요리를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네들이 더 부엌을 사용하면 다른 부엌을 이용하게 해주려고 한다고 설명해줬다. 다행히 홍콩 그룹은 주섬주섬 그릇들을 챙겨 서둘러 부엌을 떠났고, 저녁 10시 반이 되어서야 아프리카 친구들은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같이 인사하고, 요리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뭐 괜찮단다. 아프리카 지네 나라 가면 가드에 메이드가 수명이 딸린 왕자님들일 텐데 먼나라 와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해야하는 데 사람들이 많아 불편하다 싶으면 우리 건물의 아무 사감이나 연락하라고 그랬다. 당장 요리를 할 수 있게 해줄 거라고. 그리고 다른 사감들에게 이런 학생들이 있으니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는 메일을 띄웠다.    


좀 전에 밖에 나갔다오다가 빌딩입구의 게시판을 보는데 기숙사 사감리스트에 있는 내 사진 정 한가운데에 누가 압정을 꼽아 놓은 게 눈에 확 띄었다. 얼굴을 도려내거나 아니면 바늘을 촘촘하게 꼽아 얼굴을 분간도 못하게 만들어놓기도 하는데 내 사진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나? 사람 얼굴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난 이해가 안되지만 그런 애들이 종종 있다.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했던 아프리카 학생들일 수도 있고, 홍콩 그룹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학생들일 수도 있다. 압정을 뽑아봤자 또 꼽아 놓을 것 같아 그냥 내버려뒀다. 그런 내 사진을 볼 때마다 부두인형이 된 기분이 든다. 내 코가 제자리에 제대로 붙어 있는지 궁금해 스윽 한번 문질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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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지난 연말 어느 날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산을 안 써도 좋을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냉장고가 텅 비어 시장에 갈까말까 오전 내내 망설였는데 이때다 싶었다. 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신선한 공기 덕분에 밖에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산을 펴지 않아도 걷기에 좋았다. 


길 건너편에서 파란색 우의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쓰레기를 줍다가 내쪽으로 건너오셨다. 나를 만나려고 일부러 길을 건넌 건 아니고 가는 방향이 같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는 연말에 눈이 안오고 비가 오니 영 분위기가 안산다며 지나가는 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를 하시며 씨익 웃으셨다.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어, 그렇죠, 하며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었다. 할머니가 나랑 보조를 맞추시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그냥 지나가는 말로, 빗속에서 뭘하고 계셨느냐고 물어봤다. 쓰레기를 줍고 계신 줄 알았는데 길가에 버려진 공병이랑 찌그러진 캔들을 수거하고 계셨고, 조금만 걸어가면 그것만 모으는 통이 있어 거기에 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거기다 가져다주면 돈을 주느냐고 했더니 버리는 사람은 많고, 줍는 사람이 없어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건데, 빈통에 넣으면 수거하는 사람들이 가져간다고 하셨다. 


한 5분쯤 같이 걸었나? 사실 할 말도 별로 없었고, 난 다른 길로 가야해서 인사를 하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펜이 있느냐며 물으셨다. 할머니는 주섬주섬 내가 내민 수첩에 주소와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며 시간 날 때 놀러 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물론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슨 공부를 하고 있고, 어디서 사는 지를 다 파악하신 뒤였다. 난 할머니가 할아버지 직업 때문에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 오래 사신 경험이 있다는 걸 안 정도고. 할머니가 주소,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시는 바람에 나도 내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 드리고는 헤어졌다. 시장에 다녀오고 메일함을 열었는데 그새 할머니한테 이메일이 와 있었다.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 적어주셨고, 박사과정생이라 바쁜 줄 알지만 시간날 때 차라도 한잔 하게 놀러오라고 또 그러셨다. 초대해줘서 고맙고, 시간 나면 한번 가겠다고 형식적인 답장을 보내고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한달도 더 지난 오늘 오전에 드디어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구글어스로 주소를 찍었는데 이런,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연락해서 놀러 가는 건데. 초인종을 눌렀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던지 그동안 연락 좀 자주 할 것을...두 분의 아프리카에서의 경험들, 그동안 만났던 외국인 유학생들, 여행했던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도 두 분 이야기 하시는 중간에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들려드렸다. 에티오피아 이야기, 커피 이야기 등등. 할아버지는 나와 할머니의 인연이 신기했던지 둘이서 정말 길에서 만난 게 맞느냐고 몇번이나 물으셨다. 이제 집도 알았고, 기숙사에서 멀지 않으니 자주 놀러 오라고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길에서 만난 우리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분들인 것 같고, 영국의 기노시타 씨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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