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마련이다. 1998년인가 99년인가 당시 강남의 이스탄불 문화원에서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는 터키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무슬림인 한국인 친구 소개 덕분이었는데 만난 기념으로 서점에서 방금 구입한 아주 따끈따끈한 시집을 선물했다. 중국에 간 이후에도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짦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얼마 안되어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2005년 일본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간사이에 도착한 날, 내 숙소가 있는 건물 3층의 레스토랑에서 난 이 청년을 다시 만났다. 터키 대표선수로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친구는 부산사투리가 능숙한 반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우린 거기서 8개월을 함께 생활했는데 우리 사연을 아는 연수참가자들은 볼 때마다 둘이 결혼을 해야한다고 난리를 쳤다. 이런 우연으로 결혼을 해야한다면 난 100번도 넘게 결혼을 했어야했다. 이 친구 지금은 귀화해 완전 한국인으로 잘 살고 있다.
학회 때문에 나가사키에 갔다가 우연히 한 스시집에서 벨라루스에서 온 청년을 만났고, 이 청년이 소개한 동향의 친구와 다음날 나가사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떠나던 날 그 친구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는데, 난 그 전화를 번번히 못 받았다. 일부러는 아니었고, 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기 진동을 못 느꼈던 것이다. 숙소를 나와 한참을 걷고 있다가 한 교회 앞에서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오던 그 친구와 재회를 했다. 친구는 자전거를 한곳에 세워두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골목들과 나가사키의 명소들을 그날 하루종일 내게 안내해 주었다. 1년 후 그 친구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을 했고, 내가 살던 기숙사 같은 동의 1층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을 하고 싶은데 추천하는 사람이 다섯 명이 되면 원서를 접수한다고 했었다. "난데, 1층으로 잠깐 내려와!" 하며 전화를 하던 날 난 까무러치게 놀랐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벨라루스의 공무원이 되었는데 가끔 메신저에서 만나면, 하루하루 무료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투정한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피아사(Piazza)는 다운타운이라는 예전의 명성은 잃었지만 여전히 할 일 없는 젊은이들의 천국이고, 돈없는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태국의 카오산로드 같은 곳이다. 100년도 넘은 오래된 호텔 따이투(Taitu)도 이곳에 있다. 짐을 풀고 뭘 먹을까 어슬렁거리다 들어간 식당 입구에 아시아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금방 일어났는지 떡진 머리에는 새집이 하나 얹혀 있었고, 음식을 정말 맛없게 먹고 있었다. 꼭 살기 위해 먹는 사람 같았다. 종업원이 안내해 준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데 둘이 눈이 마주쳤고, 우린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식사 후 인터넷카페에 가서 메일을 체크하는데 교토대학의 시게타 선생이 지금 아디스 아바바의 한 호텔에 있으니 혹시 아디스에 있으면 그쪽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셨다. 일본에서도 만나기 힘든 분이었는데 아디스라니...선생님은 피아사의 한 호텔에 제자가 한명 투숙하고 있는데 그 친구와 연락이 되면 호텔을 찾기 쉬울 거라고 하셨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 그리 멀지 않은 호텔이라 배도 부르고 산책도 할겸 흐느적거리며 호텔까지 걸었다. 리셉션(이라고 부르지만 그냥 작은 방)에 가서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좀 불러달라고 하고 호텔 한켠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의 모습으로 좀 전에 식당에서 본 그 떡진 머리의 친구가 나타났다. 이 친구 하는 말이 일본에서 한국인 에티오피아 연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꼭 만나고 싶어 수소문을 했었단다. 그렇게 우린 만났고, 우린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가 에티오피아의 한 시골에서(이 친구 조사지역은 정말 전기도 안들어 온다)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어야 한대나 뭐래나. 당시 그 친구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정말 죽는 거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지금 잘 먹고 잘 산다. 나이 먹어서도 오래오래 친구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 안 싸우고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T상. 에티오피아의 곤다르에 처음에 갔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음악을 연구하는 일본 연구자인데 이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들어 나름 기대가 많았다. 곤다르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T를 만나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내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과 이름은 다르지만 나같이 생긴 사람이 자주 그 사람을 만나는가 본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난 곤다르에 대한 지역정보가 많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아무렇지도않게 그렇다고 했더니 대뜸 나를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 갔다. 2006년 가을, 난 그렇게 T를 만났다. T는 그 음악하는 친구와 오랜 지기였고, 그 음악연구자는 이미 에티오피아를 떠난 뒤였다. T를 못만났다면 곤다르에서 난 참 난처할 뻔했다. 그 친구 덕분에 쉽게 호텔도 예약할 수 있었고, 곤다르는 물론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일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건축을 연구하는 이 친구는 당시 곤다르 지방정부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과 관련한 정보와 에티오피아 연구자가 알아야 할 팁들을 많이 알려줬다. 사실, T와의 인연은 또 있다. 에티오피아를 떠나던 날 T가 두명의 여학생을 소개해줬는데 시간이 없어 만날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만났다.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내 일본 유학생활은 도쿄가 아니라 교토에서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 중 한 학생 덕분에 히토츠바시대학 사회학연구과의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되었고, 난 다음 해에 그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봄. 정말 외진 곳에 자리잡은 아디스 아바바의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얀 밥이 너무 먹고 싶어 찾은 곳이었는데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이 친구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근데 도무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둘이 눈이 마주쳤고, 살짝 웃어주는 데 나를 아는 눈치였다. 계산을 하고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가는데 그 친구가 먼저 묻는다. "윤상, 겡키?" T였다. 곤다르에서 T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아디스에서 만난 T는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댄디한 옷차림새였다. 그새 얼굴이 너무 많이 변해 처음에 잘 못 알아본 건데 분위기는 몇년 전 만났을 때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그 낯익은 분위기 때문에 내가 혹시나, 했었던 것 같다. 그날은 서로 바빠 긴 이야기는 못했고, 다음 날 아디스에 있는 그리스 식당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우린 그동안 지난 세월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그 중국식당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에티오피아 공무원들 인터뷰하는 법, 그들과 잘 지내는 법, 시골에서 조사를 하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 등등은 덤이었다. T는 짧은 출장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거였고,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그 중국식당에 가지 않았으면 정말 영영 못만날 뻔한 사람이었다.
내가 길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추억이 되고 사연이 되는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우연들 덕분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