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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0 2013년 6월 즈음에 3
  2. 2013.06.04 기숙사 풍경 - 퇴실 6
  3. 2013.05.24 걱정하지 말아요...
  4. 2013.05.23 5월 봄, 업데이트
  5. 2013.05.04 어른들의 세계
  6. 2013.04.29 크레타 골목식당
  7. 2013.04.28 여행 에피소드
  8. 2013.04.14 호기심
  9. 2013.04.08 우연이 만든 사연들
  10. 2013.04.05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

유학생활을 슬슬 마무리하려다 보니 일상으로 겪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늘 다녔던 길도 새롭고, 자주 가던 슈퍼의 상품들도 마치 처음 본 느낌일 때가 많다. 늘 보던 간판도 익숙한 게 아니라 낯설게 느껴지고, 기분이 참 묘하다. 남자들 병장으로 만기 제대할 때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본격적인 유학생활이 시작되기 전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가 직접 쓴 글들,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다산에 관해 쓴 글들. 유학이 마무리 될 때 얼마나 많은 저작물을 내 손에 쥐게 될까 궁금했는데 난 다산이 아니었다. 김화영 교수가 쓴 <행복의 충격>도 기억에 남는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 유학생활 중에 읽으니 유학을 시작하기 전에 읽었을 때와 그 느낌이 다르다. 김화영 교수 덕분에 엑상 프로방스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데 나 때문에 영국의 엑시터에 온 사람들이 있을까?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은 죽음을 많이 연습한 사람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 이유가 떠나는 연습을 많이 해서라고...어디든 도착할 때는 낯설고 떠날 때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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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작년 9월에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학생들이 과정을 마치고 떠나는 시즌이 돌아왔다. 대규모로 왔기 때문에 대규모로 떠난다. 그 중에는 오는 9월에 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엑시터를 찾는 학생들도 있다. 이번엔 어떤 학생들이 올 지 궁금하다.


기숙사 사감의 업무 중에 하나가 떠나는 학생들 방을 체크아웃 하는 일인데 이때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도나 파키스탄, 중동에서 온 학생들 중에는 생활하면서 가끔 학생들끼리 주종관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체크아웃 할 때도 마찬가지다. 네다섯 명의 학생이 한 방에 찾아 와 떠나는 친구의 짐을 싸주고, 떠나는 친구는 주인처럼 그걸 지켜보기만 한다. 파키스탄에서 온 학생 하나가 아프다고 해서 새벽 3시쯤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세 명의 학생들이 그 시간에 아프다는 친구 옆에 있었다. 남학생 방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옷장안 마저도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상황은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위태로웠는데 한 학생은 옷장에서 아픈 친구의 겉옷을 챙겼고, 또 한 학생은 서랍에서 여권이랑 신분증을 챙겼다. 둘 다 아주 익숙해 보였다. 학생 둘이 구급차에 동행하기로 했고, 나머지 학생은 그 방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규정상 방 주인 없이 머물 수 없다고 쫓아내야 했다. 며칠 전 체크아웃 하면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또 만났다. 인도에서 온 학생이 방 주인이었는데 여자 친구까지 네명의 학생이 작은 방에서 짐을 챙기며 체크아웃을 기다리고 있었다. 떠날 때 보니 그 친구는 장지갑만 달랑 들었고, 나머지 학생들이 그 친구의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끌고 갔다. 


위에서 언급한 학생들은 예외적인 상황이고, 체크아웃 할 때 방에 가 보면 대개 떠나는 학생 혼자인 경우가 많다. 둘이 부엌을 사용하는 트윈 스튜디오의 경우 한 사람이 떠날 때 남아 있는 학생이 배웅을 해 줄 것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거의 1년을 함께 했을 텐데 나와 보지도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낑낑대고 가방을 드는데 손이 모자라는 학생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건물 밖에까지 나가 배웅해주는 게 어느새 내 몫이 되었다. 사감 하나가 하필이면 이렇게 바쁜 시즌에 휴가를 내는 바람에 그 사감이 담당하는 구역까지 가서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중국인 학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체크아웃 하는 방 여러 곳에 짐을 들어주러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동에 살지만 내가 담당하는 학생은 아니고, 중국에서 왔다는 것만 안다. 중국인 친구들도 있을 텐데 그런 방에는 안 오고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등, 유독 외국인 학생들의 방에만 나타나 관심이 동했다. 남학생인데 어찌나 살갑게 굴면서 배웅을 하는지 소심하고 게으른 내 유학생활과 비교가 되었다. 문득 그 학생은 유학생활을 아주 바쁘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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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에티오피아의 허름한 호텔에서 장기투숙한 적이 있는데 머물던 방에도 거울이 없었고, 화장실에도 거울이 없었다. 빈 벽을 볼 때마다 '거울 좀 하나 달지, 매정한 사장 같으니라고'를 읖조렸다. 평소에 화장도 안하니 거울과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거울이 주변에서 사라지니 불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얼굴에 뭐가 묻지 않았는지, 입고 있는 옷차림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밖을 나설 때면 언제든 호텔 식당을 가로질러 건물 한 켠의 화장실에 들르곤 했었다. 거긴 대형 거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도 문제였다. 문과 변기까지의 거리도 멀었고, 샤워기까지의 거리는 더 멀었다. 샤워 중에 누군가 문이라도 두드리면 당장에 반응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화장실 안에서는 무례해져야했다. 게다가 거울이 없으니 지금 내가 정상인의 모습인지 확인할 수가 없어, 샤워를 끝내고 내 방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를 빌어야했다.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향하는 복도가 가장 멀다고 느낄 때도 그때였다.


어제 어떤 글을 읽는데 작가가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작가가 처한 상황은 나보다 훨씬 낭만적이었다. 거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진과 똑같은 문구의 낙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Don't worry, you look beautiful!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아름다워요!" 그 호텔의 거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저런 낙서라도 있었다면 머무는 동안 난 아마 덜 우울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http://quotesandimages.com/post/35011026904/dont-worry-you-look-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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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요즘 너무 게으르게 살아서 별로 업데이트 할 게 없지만, 게으르고 나른한 생활이 유지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야 하거나, 행사에 참석해야할 때도 있지만 별 감흥은 없다. 대학시절 전공수업 때문에 칸트가 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전기도 읽은 적이 있는데 매일 규칙적으로 산책을 나가는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요즘의 나를 보면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그런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한국에서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 참 번잡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그럴 필요가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언제 올 거야, 라고 묻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가야지, 하면서도 돌아가면 또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그게 사람사는 거지,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는 게 정답이 없으니 살아 볼 만하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때론 궁금하기도 하다. 내 친구가 사는 나라에는 산이 딱 하나 뿐인데 그나마 해발이 200미터도 채 안된단다. 그곳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인생과 내 인생은 확실이 다를 게 분명하지만 그 사람들의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도 없지 않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 헷갈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뭔가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다른 걸 쓰고 말았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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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영감님: 그런 아해가 있긴 하다. 뽕나무밭 있는 새집에 이사 온 여자가 나보고 자꾸 오빠 오빠 하고 찾아와서는 삶은 옥수수, 찐 고구마 이런 거 놓고 간다. 반갑지는 않아. 그냥 젊고 귀여워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지.


사위: 와, 그거 정말 잘됐습니다. 혹시 두 분 같이 사귀시다가 서로 마음이 맞으시면 한집에서 한솥밥을 드시고 김밥 싸서 소풍도 가시고 저녁에는 그냥 한방에서 텔레비전 보시고....이히히히!


눈살 찌푸린 영감님: 자네 당근 잘못 먹었어? 왜 말이 우는 소리를 내고 그래?


사태파악 못하는 사위: 으흐흐흐, 아닙니다. 제가 그냥 듣기만 해도 좋아서 그만.... 그런데 그 여자 분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영감님: 여든 둘이라나 셋이라나. 어려.


성석제의 <인간적이다>에 수록된 '난 아직 어리잖아요'의 마지막 장면인데, 가족모임 중 심하게 건강하신 주인공 영감님과 사위가 나누는 대화이다.


예전에 난 학교 끝나면 집에 가서 엄마한테 그날 있었던 일을 소상히 보고하는 착한 딸이었는데 요즘은 그 관계가 바뀌어 엄마가 내게 학교나 학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신다. 엄마랑 통화하다가 엄마가 어떤 모임에서 나이를 속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70이 되려면 몇년이 더 남았는데도 노인대학에서 만난 송귀래 할머니(73), 전병순 할머니(74), 김순임 할머니(73)와 친해지고 싶어 72살이라고 거짓말을 했단다. 할머니들이랑 같이 있을 때 너무 즐겁고, 막상 나이가 한참 어린 줄 알면 안 끼워줄 것 같아 그랬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들이 막내라고 엄마를 엄청 잘 챙겨주신단다. 


엄마와 자주 대화하는 덕분에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아졌고, 반성할 일도 많아졌다. 노인들은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고, 삶에 대한 의욕도 없는 사람들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든 둘 할머니를 "어려!"라고 뿌리치는 할아버지도 있는 법이고, 친해지고 싶어 나이를 한참이나 올려 친구를 만드는 할머니도 있는 법이다. 72살도 또래 중 막내라고 살뜰히 챙기는 어르신들도 있는 법이고. 어른들의 세계는 한마디로 젊은 사람들의 상상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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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생판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숙소와 먹거리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가 많아 숙소의 경우 예약을 하고 떠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도착해서 구해야할 경우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숙소는 정말 운에 맡겨야 한다. 근사한 사진들로 꾸며놓은 홈페이지를 보고 실물도 그럴 거라 예약하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별 네개짜리 호텔을 예약했는데도 막상 현지에 도착해 후회막급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이 귀해 탱크에 받아놓고 사용하는데 물탱크 청소를 제대로 안해 일주일 내내 냄새나는 물을 사용해야했을 때라던지, 체인 스모커가 방금 떠난 방이라 머무는 내내 담배 냄새로 고생을 해야한다던지...거세게 항의를 해도 대개는 이미 방이 차서 옮길 방이 없고, 환불도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먹거리의 경우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운에 맡겨야한다. 한국 비빔밥이 밖에 많이 소개되었어도 막상 외국인이 한국에 가서 먹게 되면 복불복인 거와 마찬가지다.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면 원하는 걸 설명하기도 어려우니 주는대로 먹을 수밖에 없다.


작년 크레타에 갈 때 내가 가진 정보는 <그리스인 조르바>, 달랑 그것 뿐이었다. 학회가 끝나고 여행일정이 있었지만 상황봐서 그냥 호텔에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도 있어 깐깐하게 여행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내에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건 내 꿈이었고, 다행히 옆자리에 앉은 부부 덕분에 꼭 챙겨먹을 음식들 목록은 만들어볼 수 있었다. 대신 난 그 사람들이 몇년간 여행하면서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다 봐줘야했다. 짬짬이 자식자랑, 사위자랑도 들어줘야 했고.


막상 도착한 크레타의 수도 헤라클레온은 좀 황량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어딜 가서 허기를 채우나 둘러 보다 어느 골목에 접어 들었다.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딱 한군데 뿐이어서 그 앞에서 얼쩡거려봤다. 나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말고는 아는 그리스어가 없었고, 식당 주인도 할 줄 아는 영어가 없는 눈치인데 이상하게 그곳이 끌려 아무 데나 자리를 잡았다. 엄마랑 아들이 번갈아가며 메뉴판을 가지고 오는데 좀 당황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허나 앉았다 그냥 일어나기도 뭐해 기내에서 부부에게 들었던 크레타 음식이름을 몇개 얘기해줬다. 두 사람들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테이블 한가득 음식들이 나왔는데 돼지고기 요리도 있었고(밥이 있으면 맛있게 먹었을 음식인데 그냥 먹기에는 너무 짰다.), 달팽이 요리도 나왔다. 빵요리도 있었고, 샐러드 요리도 있었다. 아주머니가 샐러드, 라고 직접 물어보셔서 반가운 마음에 시켰는데 큰 볼 한가득 크레타 스타일 샐러드가 나왔다. 와인도 한 잔을 시켰는데 유리주전자로 한가득 담아 오셨다. 내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걸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내 옆에 뒤늦게 자리잡은 프랑스 그룹도 나랑 사정이 비슷해 보여 내 자리에 온 음식들을 절반씩 덜어 그 자리로 넘겼고, 그 사람들도 괜찮다고 몇번이나 거절하는 내게 자기네가 주문한 음식들을 큰 접시에 담아 보내줬다. 환할 때 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사를 끝냈을 때쯤 밖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란다. 유명한 그리스의 가정식 디저트가 연이어 나왔다. 메인 요리는 배가 불러 다 못 먹었는데 서너가지의 그 달달한 디저트는 다 먹을 수 있었다. 계산할 즈음 주인아저씨가 어딘가에서 오셨고, 짧은 영어로 네가 여기 문화를 잘 몰라 이것저것 많이 시킨 것 같은데 남김없이 다 먹은 샐러드 값만 내고, 나머지 음식은 자기 집에 온 손님한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겠단다. 내가 와인도 시켰고, 디저트도 너무 맛있게 먹어서 값을 드리고 싶다고했더니 그걸로 충분하다면서 받지 않으셨다. 


크레타에 일주일 머물면서 그 집을 자주 갈 기회는 없었다. 학회장소가 호텔이랑 떨어져있었고, 대부분의 식사가 다른 곳에서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 비행기를 타기 전 시간이 남아  그 집에 잠깐 들러 그릭 스타일 커피와 디저트를 다시 대접받았다. 내가 커피관광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그릭커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친히 부엌으로 초청을 해주셔서 '레알' 그릭커피를 구경해볼 수 있었다. 다시 크레타에 올 기회가 있으면 그 집에 들르겠다고 했지만 그럴 날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싶다. 그리스 샐러드를 만들려고 수퍼에서 두툼한 페타치즈를 살 때마다 그 골목식당 가족들이 생각난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으니 그렇게 우연히 우린 만났을 테지. 크레타에서 처럼 아무 준비없이도 그렇게 잘 챙겨먹고 온 여행이 있는 반면에 준비를 잘 하고도 정말 쫄쫄 굶고 여행을 하게되는 경우도 있으니 여행엔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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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단수비자로 홍콩에 갔다가 마카오를 들렀다 오느라 대륙에 못 돌아가고 홍콩세관에 잡혔던 적이 있다. 세관직원이 벽에 세워놓고 막 사진을 찍어대는데 무척 공포스러웠다. 해결되고 대륙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먹던 단팥빵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 서부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갔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혼자 세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다. 막상 버스가 도착하자 어디선가 승객들이 나타났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버스사고가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낙석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도로 한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서너시간을 기다려야했다. 한밤중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다음날 아침에야 난 겨우 요기를 할 수 있었다. 그후 어딜 가든 간단한 요기거리와 물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여행지로써 나폴리를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난 집시에 대한 기억때문에 별 감흥이 없다. 떼로 나타나 가방을 뺏으려고 덤비던 집시들로 난 혼비백산했었다. 피자고, 두오모 성당이고, 나폴리의 모든 게 사소해져버렸다. 지금도 안 땡기는 도시 중 하나다.


에미레이츠 항공의 배려로 장거리를 비즈니스석에 앉아 여행해 본 적이 있다. 이코노미석의 진상 고객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얻은 행운이었다. 두세시간 이내의 단거리 비행 때 비즈니스석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던 터라, 당황하지않고 당연히 누릴 권리라며 여유있는 표정을 만들기가 솔직히 힘들었다. 이코노미석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 덕분에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다든지....분위기도 조용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잡지로 승무원을 때리고, 라면을 여섯번이나 끓여오게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기내식 인증사진도 그렇고. 내 옆엔 프랑스 기자가 앉아 있었는데 몸 뒤척일 때도 방해가 될까 신경이 쓰였다. 그 친구도 몹시 미안해했고. 다양한 종류의 빵, 치즈, 와인 앞에서 조금먹기 신공을 펼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운좋아 비즈니스석에 앉아가게 되어도 그냥 잠을 잘 때가 많다. 도착해서 시차적응없이 바로 움직이고 싶어서다.


여행하면서 당황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누가 묻기에 생각해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다녀오면 써야 하는 보고서에 대한 부담없이 여행하고 싶다. 그런 여행해 본 지 오래다. 어떤 황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여행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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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지난 여름 자주 다니던 산책로 한쪽에 큰 건물이 올라가는 게 보였는데 가을이 되니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본 건 아니고 길가의 낙엽을 치우는 사람도 본 적이 있고, 집 주변의 공사자재를 정리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옷차림이 평상복인 걸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다락방으로 보이는 층까지 합하면 지상 4층의 웅장한 저택인데 세탁실이나 와인저장을 위해 지하에도 한층 정도 더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담장이 아주 낮아 집 외관이 훤히 보이는데 지날 때마다 여기저기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아무래도 집안 식구 중에 건축가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벽난로가 있는지 건물 외벽에 굴뚝이 보이는데 그냥 밋밋한 굴뚝이 아니라 돌을 하나하나 깎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형태다. 외관이 그 정도이니 실내는 훨씬 더 섬세하게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까. 어느새 산책하면서 뭐가 새로 생겼나 기웃기웃해보는 취미가 생겼다. 이른 아침, 오랜만에 그쪽으로 산책을 다녀왔는데 얼마 전까지 안보이던 잔디가 집 앞마당에 깔렸고, 주변 여기저기에 과실수를 심어놓은 것이 보였다. 비치 파라솔과 함께 나와있는 의자와 테이블 디자인이 아주 독특했는데, 분위기가 집이랑 너무 잘 어울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멀리 차를 마시러 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엔 안 보였는데 밖에 나와 있는 것 보면 이 집에도 봄이 온 거겠지. 대저택 여기저기를 소꿉장난하듯 꾸미고 있는 집주인은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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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단상  (0) 2013.04.03
Posted by 윤오순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마련이다. 1998년인가 99년인가 당시 강남의 이스탄불 문화원에서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는 터키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무슬림인 한국인 친구 소개 덕분이었는데 만난 기념으로 서점에서 방금 구입한 아주 따끈따끈한 시집을 선물했다. 중국에 간 이후에도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짦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얼마 안되어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2005년 일본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간사이에 도착한 날, 내 숙소가 있는 건물 3층의 레스토랑에서 난 이 청년을 다시 만났다. 터키 대표선수로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친구는 부산사투리가 능숙한 반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우린 거기서 8개월을 함께 생활했는데 우리 사연을 아는 연수참가자들은 볼 때마다 둘이 결혼을 해야한다고 난리를 쳤다. 이런 우연으로 결혼을 해야한다면 난 100번도 넘게 결혼을 했어야했다. 이 친구 지금은 귀화해 완전 한국인으로 잘 살고 있다. 


학회 때문에 나가사키에 갔다가 우연히 한 스시집에서 벨라루스에서 온 청년을 만났고, 이 청년이 소개한 동향의 친구와 다음날 나가사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떠나던 날 그 친구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는데, 난 그 전화를 번번히 못 받았다. 일부러는 아니었고, 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기 진동을 못 느꼈던 것이다. 숙소를 나와 한참을 걷고 있다가 한 교회 앞에서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오던 그 친구와 재회를 했다. 친구는 자전거를 한곳에 세워두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골목들과 나가사키의 명소들을 그날 하루종일 내게 안내해 주었다. 1년 후 그 친구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을 했고, 내가 살던 기숙사 같은 동의 1층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을 하고 싶은데 추천하는 사람이 다섯 명이 되면 원서를 접수한다고 했었다. "난데, 1층으로 잠깐 내려와!" 하며 전화를 하던 날 난 까무러치게 놀랐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벨라루스의 공무원이 되었는데 가끔 메신저에서 만나면, 하루하루 무료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투정한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피아사(Piazza)는 다운타운이라는 예전의 명성은 잃었지만 여전히 할 일 없는 젊은이들의 천국이고, 돈없는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태국의 카오산로드 같은 곳이다. 100년도 넘은 오래된 호텔 따이투(Taitu)도 이곳에 있다. 짐을 풀고 뭘 먹을까 어슬렁거리다 들어간 식당 입구에 아시아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금방 일어났는지 떡진 머리에는 새집이 하나 얹혀 있었고, 음식을 정말 맛없게 먹고 있었다. 꼭 살기 위해 먹는 사람 같았다. 종업원이 안내해 준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데 둘이 눈이 마주쳤고, 우린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식사 후 인터넷카페에 가서 메일을 체크하는데 교토대학의 시게타 선생이 지금 아디스 아바바의 한 호텔에 있으니 혹시 아디스에 있으면 그쪽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셨다. 일본에서도 만나기 힘든 분이었는데 아디스라니...선생님은 피아사의 한 호텔에 제자가 한명 투숙하고 있는데 그 친구와 연락이 되면 호텔을 찾기 쉬울 거라고 하셨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 그리 멀지 않은 호텔이라 배도 부르고 산책도 할겸 흐느적거리며 호텔까지 걸었다. 리셉션(이라고 부르지만 그냥 작은 방)에 가서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좀 불러달라고 하고 호텔 한켠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의 모습으로 좀 전에 식당에서 본 그 떡진 머리의 친구가 나타났다. 이 친구 하는 말이 일본에서 한국인 에티오피아 연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꼭 만나고 싶어 수소문을 했었단다. 그렇게 우린 만났고, 우린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가 에티오피아의 한 시골에서(이 친구 조사지역은 정말 전기도 안들어 온다)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어야 한대나 뭐래나. 당시 그 친구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정말 죽는 거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지금 잘 먹고 잘 산다. 나이 먹어서도 오래오래 친구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 안 싸우고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T상. 에티오피아의 곤다르에 처음에 갔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음악을 연구하는 일본 연구자인데 이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들어 나름 기대가 많았다. 곤다르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T를  만나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내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과 이름은 다르지만 나같이 생긴 사람이 자주 그 사람을 만나는가 본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난 곤다르에 대한 지역정보가 많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아무렇지도않게 그렇다고 했더니 대뜸 나를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 갔다. 2006년 가을, 난 그렇게 T를 만났다. T는 그 음악하는 친구와 오랜 지기였고, 그 음악연구자는 이미 에티오피아를 떠난 뒤였다. T를 못만났다면 곤다르에서 난 참 난처할 뻔했다. 그 친구 덕분에 쉽게 호텔도 예약할 수 있었고, 곤다르는 물론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일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건축을 연구하는 이 친구는 당시 곤다르 지방정부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과 관련한 정보와 에티오피아 연구자가 알아야 할 팁들을 많이 알려줬다. 사실, T와의 인연은 또 있다. 에티오피아를 떠나던 날 T가 두명의 여학생을 소개해줬는데 시간이 없어 만날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만났다.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내 일본 유학생활은 도쿄가 아니라 교토에서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 중 한 학생 덕분에 히토츠바시대학 사회학연구과의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되었고, 난 다음 해에 그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봄. 정말 외진 곳에 자리잡은 아디스 아바바의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얀 밥이 너무 먹고 싶어 찾은 곳이었는데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이 친구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근데 도무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둘이 눈이 마주쳤고, 살짝 웃어주는 데 나를 아는 눈치였다. 계산을 하고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가는데 그 친구가 먼저 묻는다. "윤상, 겡키?" T였다. 곤다르에서 T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아디스에서 만난 T는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댄디한 옷차림새였다. 그새 얼굴이 너무 많이 변해 처음에 잘 못 알아본 건데 분위기는 몇년 전 만났을 때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그 낯익은 분위기 때문에 내가 혹시나, 했었던 것 같다. 그날은 서로 바빠 긴 이야기는 못했고, 다음 날 아디스에 있는 그리스 식당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우린 그동안 지난 세월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그 중국식당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에티오피아 공무원들 인터뷰하는 법, 그들과 잘 지내는 법, 시골에서 조사를 하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 등등은 덤이었다. T는 짧은 출장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거였고,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그 중국식당에 가지 않았으면 정말 영영 못만날 뻔한 사람이었다.  


내가 길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추억이 되고 사연이 되는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우연들 덕분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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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일본 전통무대예술 장르 중 하나인 노(能)를 처음 감상했을 때 그 느림에 충격을 받았다. 극도로 절제된 배우의 움직임에 침을 삼키기도 힘들 정도였다. 느려도 너무 느린 내용에 대개 객석엔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코까지 골고 자는 관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노(能)에 등장하는 다양한 가면들과 복색들, 몽환적인 분위기도 인상적이지만 난 무엇보다 그 느림이 좋다. 일본이 자랑하는 전통문화들에 그런 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다. 화도, 서도, 다도, 정원양식 등등. 전국시대에 사무라이들이 이런 예술장르를 즐겼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피철갑 전투를 끝내고 마음을 다독일 이런 것들이라도 없었다면 사람으로서 그런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겠나. 매일 같이 전투를 치러내는 심정으로 사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해독주스보다 더 필요한 게 결국 마음을 다독일 시간 같은 게 아닐까. 창밖의 파란 하늘에 유장하게 흐르는 구름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 열심히 할 때 하루 중 내가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란 게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잠깐, 샤워하면서 잠깐, 전철타고 이동하면서 잠깐, 그리고 잠들기 전 잠깐이었다. 그나마 정신없이 일어나는 날은 샤워할 때도 비몽사몽, 전철에서도 비몽사몽, 그러니 깨어있을 때 나와 대면할 시간을 전혀 못 만들고, 그런 날은 대개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내 내면은 점점 마른 북어를 닮아갈 수밖에 없었다.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めがね>이라는 작품에서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 한테 묻는다. "사색이란 게 뭐죠?" 일상에서 속도가 완전히 제거된 이 영화에서는 독서도 불가능하다. 사색이 특기가 아닌 사람들은 버티기 힘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냥 멍하니 사색을 즐기는 일일 뿐. 영화를 보면서 바빠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이상한 말을 입에 달고 사는(그러나 사실은 이해가 되는) 내 가족들, 친구들에게 이런 심심한 시간과 공간을 선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식사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노트북 화면을 덮고 밥을 먹기로 했다.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바람에 춤을 추는 장대같은 소나무들도 구경한다.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얻었다. 가로로 된 창틀, 세로로 된 창틀, 두개의 창틀을 통해 본 바깥 풍경들은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가로로 보다 지겨우면 의자를 옮겨 세로로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땐 어린왕자가 자리를 옮겨가며 해가지는 걸 감상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생텍쥐 페리도 사색이 특기였던 것 같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쏟아낸 바람에 너무 일찍 바닥을 마주한 친구가 있어 메일을 썼다. 내가 좀더 일찍 마음을 다독일 시간을 가져보면 어떻겠니, 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하고 후회했다. 허긴 한창 승전보를 울리는 전쟁터에 있을 때는 친구도 가족도 잘 안 보이고, 그런 충고도 잘 안들린다는 걸 내가 더 잘 알지 않나. 슬기롭게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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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