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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9 2007년 5월 나가사키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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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난 것 같다.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슨 지금쯤 메일을 한 번 보내야 내가 그 친구를 잊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카톨릭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이미 돌아가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침을 공짜로 준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한테 물어봤더니 스시집을 하나 추천해줬다. "미노부스시'라는 곳인데 한 접시에 100엔이라고 해서 처음엔 회전초밥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반 스시집 같은 곳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스시는 무조건 한 접시에 100엔이라는 거.

아직 일본 스시 이름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막 고민하고 있는데 외국인 하나가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 잘난 척을 하면서 스시를 고르더니 종이에 스시 이름을 쓰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영어로 쓰고 있었다. 참치 스시면 "MAGURO", 요렇게. 뭐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나도 한 두어개를 그런 식으로 시켰다. 그러나 스시 두 개로 한끼를 떼우기엔 난 너무 허기져 있었다.

내가 주문에 허우적대는 걸 보고 이 친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스시는 말이지...일장 연설을 해준 덕에 겨우 4개를 더 시킬 수 있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맞춰 보라는 거 아닌가. 바로 그냥 "Where are you from?" 해버릴 생각이었는데.

딱 생긴게 유럽풍이다. 그것도 저 동유럽풍이다. 러시아 쪽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일단 발틱 3국부터 훑어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이 친구 좀 놀라는 거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내려 오려고 하던 차에 그냥 "나 벨로루시에서 왔어." 실토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에서 아직 한번도 자기 나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댄다. 이런... 내가 그 심정 좀 알지. 모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어 있어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모르던 나라에 내가 있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대화의 물꼬가 스르르 풀리던 차에 일본에서 뭐하냐, 학교 다니냐, 어느 학교 다니냐까지 왔다. 그리고 내 입에서 히토쓰바시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냥 놀라더니 자기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 말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벨로루시 말이란다. 그리고는 10분도 안 되어 또 한 명의 벨로루시 청년을 만났다. 히토쓰바시라는 대학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5명의 사람한테 추천을 받았고 이제 한번만 더 인연을 만나게 되면 이 학교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었단다. 이런.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첫번째 만난 친구는 'IIYA'라는 친구로 현재 나가사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두번째 만난 친구는 'PASHA'라는 친구로 일본에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올해 4월에 나처럼 일본에 왔다. 우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아주 수다스럽게 떠들었고, 스시집에 왔으면서 스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학회가 끝나 나른하던 차에 실컷 떠들어 피곤하기까지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내일 또 보자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이야'가 조용히 있는 '파샤'를 가르키며 이 친구는 늘 한가하니까 내일 네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파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그래서 뭐 시간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교황이 머문 곳도 내가 머문 이 다다미방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그날 아주 푹 잤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