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3.20 책읽기 추억
  2. 2008.10.25 책읽기의 효용

대학시절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헌책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책방이라기에는 좀 부족한 작은 서점이 하나 있었다. 시간이 나면 들어갔다 그냥 나오지 못하고 서너권씩 구입을 했는데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갔으니 그때 책을 꽤 사서 모았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비를 타는 날이면 10권짜리 대하소설도 큰맘 먹고 샀고, 이런 날 서점 주인부부는 아예 양손으로 들고가기 좋게 책을 묶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가는 동안 몇번이나 손을 바꿔야했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가벼웠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산 책들중 대하소설들은 주로 중간고사기간에 해치웠다. 교양수업을 다른 과 전공으로 대체를 하면서 교양시험 일주일(앞뒤 주말을 포함하면 열흘쯤 된다) 동안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먹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참 태백산백, 아리랑을 읽을 때 나를 만난 사람들은 고향이 전라도냐고 자주 물었었다. 책 속의 사투리 지문을 혼자 따라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그게 입에 붙었었나 보다. '몰입'과 관련된 책이 불티나게 팔렸었나 본데 난 그 시절 폭발적인 독서를 통해 몰입을 경험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을 비롯해 좋은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못 먹는 것, 다른 자식들 보다 부모님 잔소리를 덜 듣는 것, 그리고 모국어로 된 책을 많이 못 읽은 것 등은 유랑생활이 길어지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들이다. 그중 모국어로 된 독서는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시나 소설같은 문학작품은 20대 이전에 다 끝내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건 그 사람들 이야기고, 난 여전히 한국어로 된 시나 소설읽기를 좋아한다. 번역서들은 대개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데 한국 문학작품들은 그때그때 챙겨보기가 쉽지 않다. 사실 중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그런 독서는 거의 포기를 했던 것 같다. 가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보내주는 책들, 한국에 들어갔을 때 챙겨오는 책들이 있지만 일주일을 못 넘긴다. 요즘도 전자책을 비롯해 인터넷 읽을 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는 모국어의 성찬이 그리운 게 사실이다.


박사과정 학생이 주로 해야하는 일이 늘 읽고, 쓰고, 생각하는 건데 지금도 난 여전히 소망한다. 한 일년만 그냥 아무 걱정없이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뒹굴뒹굴 지냈으면 좋겠다. 대학시절 교양시험 주간에 그랬던 것처럼. 특히 2000년 이후 쏟아져나온 젊은 작가들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주 많이....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맞이  (0) 2013.04.01
2013년 3월말 업데이트  (0) 2013.03.28
지도교수님들  (0) 2013.03.15
현미밥 단상  (0) 2013.03.12
얼 그레이 추억  (0) 2013.03.08
Posted by 윤오순
약 살 돈이 없어 어머니도 그냥 떠나 보냈단다. 시집간 누이가 병에 걸려 집에 와 있었는데도 결국 가난 때문에 먼저 보낼 수 밖에 없었단다. 책 읽는 것이 좋아 책 밖에 모르며 지낸 이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지. 소매 안에는 늘 메모할 수 있는 종이와 붓을 챙겨 가지고 다녔고,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내용의 글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출신 성분 때문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이 사람, 책 밖에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놀림받던 이 사람은 39세가 되던 해에 눈 밝은 사람의 천거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18세기 실학자 이덕무 이야기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지만 집에서는 아주 무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도, 누이도 가난 때문에 먼저 보냈다는 것 보면 말이다. 아무도 자기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 '간서치전'이라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서얼 출신이었던 이덕무는 39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정조의 눈에 띄어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된다. 재야에서 그간 착실히 쌓은 내공이 빛을 발해 재임 기간 동안 정조로부터 500번이 넘게 상을 받았고, 정조는 나랏돈으로 이 사람이 쓴 책들을 출판하게 한다. 박지원을 비롯해 당대의 실학자들이 앞다퉈 이덕무가 쓴 책들을 인용한 것은 물론이었다. 게다가 이덕무 사후 이례적으로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벼슬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남들은 손가락질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덕무의 독서가 그렇게 무익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덕무 이사람 뭘 믿고 그렇게 책만 읽을 수 있었을까.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의 근원이 궁금해진다. 요즘엔 사람들이 빚이 많다고, 누가 싫은 소리를 자꾸 한다고, 그냥 홧김에 세상을 버리기도 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암울한 시기에도 독야청청 기개를 잃지 않았던 한 선비의 성공스토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이덕무 생각하며 난 숨 한번 고른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거리에 대한 단상  (3) 2008.10.27
디지털 장애인  (2) 2008.10.26
시(詩)가 주는 위안  (2) 2008.10.24
글쓰기 연습  (0) 2008.10.23
기숙사 이용 백태  (7) 2008.09.29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