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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1 2007년 5월 나가사키(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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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회관 벽에 걸린 마리아 상이다. 아, 지극히 일본스럽지않은가. 무라사키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그림들이랑 아주 닮았다.


나가사키를 떠나오던 날 세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첫번째 친구
짐을 다 꾸린 후 유스호스텔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계속 이것저것 묻는데 일본에 와서 참 낯선 경험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지 않는가. 가족이 다 있는데 주말에는 이렇게 혼자 산으로 들로, 때로는 좋은 온천을 찾아 여행을 한단다. 나이는 한 50대 정도.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한국의 50대 아주머니가 호텔이 아닌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우를 아직 못 만나서 이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좀 끌렸다. 감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호기심 천국에 사는 소녀처럼 이것저것 묻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나도 여유를 부려가며 이렇게저렇게 대답해줬다. 우린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커피까지 다 마신 후 헤어졌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두번째 친구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평화공원 구역(나가사키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가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과 또 하나가 바로 평화공원 구역이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려는데 한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건다. 거참 아침부터 이상하네. 도쿄 근처의 가마쿠라에 살며 현재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란다. 애들이 자꾸 일본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아 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배낭을 딱 보니 두 서너달 짜리 여행자 같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 떨어져 실의에 젖어 있다가 혼자 영어공부를 해서 대학에 붙었다며 그 부분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봐도 그건 기특하네.
 
일본이 선진국이긴 한데 여러가지로 미국의 안 좋은 부분을 닮아가는 게 안타깝단다.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야.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이 친구와 평화공원 구역에 있는 여러 관광지를 같이 여행했다.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설명까지 곁들여줬다. 외국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면 무조건 칭찬일색으로 가자, 가 내 신조였는데 이 친구랑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일본에 대해 힐난을 해버렸다. 이 친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원폭 자료관이랑 이런 저런 기념관에 갔는데 이런, 온통 주위에 '평화' 밖에 없는 거였다. 왜 일본이 원폭참사의 피해국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평화가 소중하다는 이야기 밖에 없는 거라. 그 친구도 동감은 한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또 다른 기념관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쉽게도 이 친구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여행중일까.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이 친구는 나가사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을까. 교토에서 무려 12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에 왔다고 했는데...

세번째 친구
평화공원 구역 여행을 끝내고 점심은 나가사키역 쯤에서 먹어야지 하고 카톨릭 회관에다 맡긴 짐을 찾는데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이 전화가 처음이 아니고 같은 전화번호가 여러개 찍혀 있었다. 전날 스시집에서 만난 벨로루시 청년 '파샤'였다. 학교가 지금 끝났는데 괜찮으면 나가사키 시내를 안내해주겠단다. 계획한 여행은 이미 거의 끝났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금방이라고 해서 그럼, 금방 오라고 그랬다. 그리고는 파샤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인만 아는 나가사키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날씨는 어찌나 덥던지. 난 crazy wheather을, 파샤는 stupid wheather를 외치며 무슨 숙제하듯이 시내를 훑었다. 첫날 비가 와서 안개 속에 묻혀 잘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마지막 행선지로 잡았다.

바다를 향해 가면서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의 애환, 외국인 유학생으로 사는 사람의 애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 사람의 애환에 대해 들어줬다. 앞으로 국제관계를 공부하려는 파샤는 내가 벨로루시란 나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단다. 그리고 EU에 27개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안다는 사실도 좀 의외였단다. 그러나 어쨌거나 국제개발을 전공하는 사람을 이 나가사키에서 만나 아주 반갑단다.

일본어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가장 높은 등급인 1급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에 아시아 언어과가 있었는데 자기는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선택했고 당시 선생은 벨로루시 사람이었단다.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 일본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며 일본어가 너무 배우고 싶으니 선생과 교재를 좀 보내달라고 했단다. 대단한 열정 아닌가.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일본인 선생이 파견되었고 딱 두명의 학생이 그 선생한테 일본어를 배웠단다. 이것 보면 일본도 또 대단한 나라다. 그 후 자기는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고 일본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지금 일본에 와 있는 거란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생긴 모습이 전혀 아시아쪽이 아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는 것 보면, 그 인연이 참 궁금해진다.

바다를 보고 난 후 우린 헤어졌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나가사키에서 자기를 찾아 온 손님에게 나가사키를 안내할 일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거라 괜찮단다. 너네 학교에 꼭 갔으면 좋겠다, 고 해서 꼭 그러라고 했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