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츠키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내가 이 게스트하우스에 왔을때 가장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해준 친구인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길에서 가끔 만났을 때 인사를 해도 안 받길래 못 봤나보다, 하고 그냥 넘겼는데 며칠 전에는 게스트하우스 내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고 인사를 했는데도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냥 지나쳐버리는 게 아닌가. 너무 황당해서 식당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별로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꽤 됐단다. 누구라도 경계심을 갖게 만들 정도로 인상이 확 변해서 그간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단다. 내가 학교에 다니느라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낮에도 눈에 띄는 것 보면 아직도 취직을 못했던지, 적어도 정규직 일자리는 구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것 때문인가. 글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혹시 글이 잘 안풀려서? 가끔 식당에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으면 시끄럽다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방으로 들어간 적이 여러 번이란다. 그리고 밤엔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옆방에 사는 사람들이 잠을 설치기도 한단다. 증세가 아주 심각한 것 같다. 음식을 해서는 식당에 모여 같이 먹는 게 아니라 따로 상을 차려 자기방으로 가져가서 먹고는 빈 그릇을 들고 다시 나온다. 액면가로도 근 마흔은 되어 보이던데 참 걱정이다.
이른바 우울증이라고도 하는 이 마음의 병은 당사자도 힘들고 주변사람도 아주 돌게 만드는 몹쓸 병이다. 한번 우울증 당사자의 공격대상이 되어버리면 인생이 참으로 피곤해진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당사자는 이 사람만 공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공격대상에게 보여지는 양태는 실로 다양한데 오오츠키의 경우는 공격대상이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사람 모두인 것 같다. 모두를 왕따 시켜버림으로써 본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자가 안나와서 나도 한참을 우울하게 지냈었다.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에서 "환경적응지표"가 일본인의 평균치 보다 월등하게 높은 "Very High Uncertainty"라는 결과가 나와 나 스스로도 내가 환경적응능력이 뛰어난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나도 속수무책으로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오기 전까지 난 내가 굉장히 강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주 사소한 일로도 그냥 무너져버릴 수 있는 아주 약한 사람인 걸 이번에 알았다. 물론 그 상황을 깨닫기까지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은 지도편달을 했지만. 통장에 거침없이 총알을 쏴주는 친구들을 비롯해서.
나는 물론,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이런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다 인생의 목표를 놓쳐 버리면 결국 삶의 끈까지 놓아 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내 경우는 우울해하다가도 하고 싶은 일이 금방 생겨버리는 타입이라 오오츠기의 지경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뭐, 별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마음을 잘 다독여 주는 게 최선일 것 같은데... 그냥 날 보고 모른 체 해도 오오츠키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곤니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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