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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1 후지산, 눈에 넣다 15
  2. 2007.10.17 인터넷 접속 기념 포스팅 1
  3. 2007.10.09 기숙사 입주 보고 2
  4. 2007.09.29 2003년 9월 29일-친구여 3
  5. 2007.07.15 잘 지내십니까? 2
  6. 2007.07.08 감사합니다 10
  7. 2007.07.07 5000년 전 악기 '우드' 2
  8. 2007.06.24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9. 2007.06.15 아름다운 모녀 6
  10. 2007.06.09 두번째 레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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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쓰레기 분리수거 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보였다. 너무 일에 열중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 '오하요우 고자이마스!!'하고 크게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도 반갑게 인사를 하셔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뭘 잊었다가 생각났다는듯이 내게 다가오셨다. 아주 좋은 걸 보여주겠단다. 그리고 계단참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저걸 보란다. 아, 후지산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도쿄를 떠날 때 혹은 도쿄로 돌아 올 때 하늘에서만 봤던 후지산이 내 앞에 보였다.

날씨가 아주 좋으면 기숙사 B동 6층 이상의 방에서 후지산이 보이는데 방의 위치상 내 방이 후지산 구경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란다. 두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그걸 몰랐다. 내 방에서는 야경만 근사한 줄 알았는데 만년설에 덮인 후지산을 병풍으로 두고 살고 있었다. 다시 방에 들어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남향이 아니라고 속으로 좀 투덜댔었는데 신은 언제나 내 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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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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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접속을 기념할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어쨌거나 그동안 불편한 생각하면 아주 쎄게 기념하고 싶습니다.

기숙사 관리실은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데 수위실은 아저씨들이 24시간 근무를 합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수위실에 가서 인터넷 접속회사에서 보낸 모뎀을 찾아와 부리나케 접속을 해버렸습니다. 속도는 만족스럽지 않은데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네요.

이사를 하고 나서 학교는 자전거로 통학을 합니다. 경사가 심한 언덕이 하나 있는데 아침엔 신나게 달려주고 저녁엔 힘껏 패달을 밟아 줍니다. 그러지않으면 저도 자전거도 올라가지 않거든요. 오늘은 저도 자전거도 지쳐서 그냥 둘이 나란히 언덕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죠.

오늘은 숙제가 많아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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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사를 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학교의 기숙사로 방을 옮겼습니다. 거리는 살던 곳과 멀지 않은데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히토쓰바시대학 코다이라 기숙사에는 4개 학교의 유학생들이 모여 삽니다. 전기통신대학교, 농업대학교, 학예대학교, 그리고 히토쓰바시 대학입니다. 히토쓰바시 대학 선배들이 쟁쟁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현재 도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도 여기 출신이라네요.) 학교 기숙사도 크고 좋습니다. 여기에 400명 정도의 유학생들이 삽니다. 저는 8층에 살고 있는데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중국인들이 자기 어필에 아주 뛰어나 공모 같은 데 당선이 잘 됩니다. 수가 많기도 많지만 자기 어필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방값이 대폭 절감이 되는 기숙사 입주 경쟁은 무지하게 치열하거든요. 저는 자기 어필이라기보다는 소설 한 편을 써서 입주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무슨 소설이냐고요? 비밀입니다.

중국인들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살면 일단 지저분한 걸 감수해야 합니다. 부엌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쓰는데 날마다 기름에 볶아먹고 튀겨먹는 음식이 많고 위생 개념이 투철한 사람들이 드물어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쓰레기 분리수거가 아주 철저한데 아무데나 버리는 습관들이 있어서 분리수거하라고 표딱지 다 붙여놓은 쓰레기통 앞이 무지하게 지저분합니다. 그냥 계속 섞여서 살아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기숙사는 방도 크고 넓어 좋은데 아쉽게도 인터넷이 안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피씨방이 흔한 곳이 아니라 인터넷이 방에서 안되면 접속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듭니다. 무선랜카드를 사용해도 남의 회선 그냥 쓸 수가 없는 곳이라 무용지물입니다. 인터넷을 신청하면 보통 한달이 걸린다는데 오늘 업자랑 전화를 몇 번이나 해서 저는 다음주 쯤이면 문명세계와 조우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안되니 단전, 단수될 때 꼭 그 느낌입니다.

오늘 모처럼 인터넷 접속한 김에 포스팅 합니다. 이제 수업 들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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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친구여
/ 최돈선

이제야 잠든 풀잎으로 그리워한다 친구여
모래 속에 묻어둔 잊혀진 이름들은
젖은 밤 강바람에 불려 반딧불 반딧불로 떠오르나니
사금파리 박힌 하늘의 숨은 별이 되나니
친구여
어디메 들메꽃으로 자욱히 피어나 빛나는 건지
마음 속 뻐꾸기 울음 하나 놓아두고 가리라
가리라 친구여
바람 한 갈피에 감추운 노래는
버리고
인생은 마침내 독한 풀잎에 돋는 한 방울 이슬인 것을
그리운 날 비가 오고
어깨가 쓸쓸한 사람끼리 눈맞춰
한 줌 메아리로 부서지리라

가을 햇볕을 동무삼아 동네 한바퀴 돌기에 안성맞춤인 하루다.
친구야, 아무 걱정 해주지 말고 몽상만 해주렴.
우리들이 지금 '할 것이 많은' 것들이 모두 '한 것이 많은' 것들이 될 때까지...
너의 마음이 따뜻해서 나는 이미 '든든'하다.^^
잘 지내자...이곳에서의 겨울 풍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0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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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4년 전 친구에게 이런 엽서를 받았다. 책꽂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뽑아 온 책 속에 정말 우연하게도 이 엽서가 들어 있었고, 하필 오늘 그 책을 열어 보게 되었다. 주소는 춘천시 후평동. 친구가 그 곳에 살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동네 이름 조차 문학적으로 다가온다. 친구는 신춘문예로 등단을 해서 이제는 작가다. 내게는 그 옛날부터 작가였지만.

말이 더 이상 필요없는 친구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나는 내 엄마가 그 누구도 아닌 내 엄마라서 늘 행복하고, 이 친구가 내 친구라서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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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며칠째 내리는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태풍의 영향인가?
비가 그친 줄 알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아주 흠뻑 젖었다.
어디 잠깐 세워놓고 기다릴 걸 하다 냅다 그냥 달렸더니...그래도 기분은 좋다.
비를 좋아하는 거랑 철드는 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신정아 관련 글을 올렸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내려버렸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어디 있지, 하시는 분들 있을 지 모르겠다.
나까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충격은 충격이다.

이제 몇 번의 발표와 레포트를 제출하면 두달 간 방학이다.
1년에 몇 개월씩 공식적인 방학이 있어 난 학생이 좋다.
공부는 별로 체질에 안 맞는 것 같고. 학교라는 공간이 좋을 뿐이다.

올 여름엔 저 남쪽 큐슈에 있는 쭈꾸미라는 데를 간다.
인구는 2만 3천 정도 되는 시골마을인데 바다가 있단다.
축제, 관광 이런 걸로 지역개발 프로그램을 짜 본다는데
나도 참가하기로 했다. 회를 좋아하냐고, 스시 같은 것 먹을 줄
아냐고 조심스럽게 묻길래 나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없어 못 먹어요.

다녀와서는 에티오피아의 밀레니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에티오피아는 서력을 사용하지 않고 고유의 달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올해 9월 11일에 새 천년이 시작된다.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호텔이란 호텔은 죄다 예약이 꽉 찼단다.
일본에서는 도쿄 대사관을 중심으로 관련 단체들이 각자 보탤 수 있는
힘들을 보태서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그리고는 다시 가을 학기가 오겠지.

여러분은 올 여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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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묻길래 다 풀리는데 돈 문제만 안 풀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런다. 넌 돈만 없고 남들이 갖고 싶은 걸 다 가졌잖아, 라고. 그건 결코 돈으로는 안되는 그런 것들인데 어떻게 넌 다 가졌느냐고. 그러면서 난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도 그랬다. 해가 갈수록 그리운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인복이 많다는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필요할 때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난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내 인생 그리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쁜 인생도 아니다.

오늘부터 영어 과외를 받기로 했다. 아주 즉흥적이었는데 손을 잡아 줄 사람이 또 바로 나타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이 선생님이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실 줄 몰랐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하루종일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고, 또 힘들 것도 같은데 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그게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난 한가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 또 그것만 생각한다. 이번 일은 학위논문으로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랍쇼는 내 삶이 단순하다고 그랬고, 이외수 선생님은 미련하다고 그러셨다.
둘 다 맞는 것 같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아주 미련한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10년 전보다 내 인생의 포커스 반경은 확실이 좁아졌고
아울러 그 초점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는 그 사람들 때문에 난 오늘도 한눈 팔지 않고 산다. 모든 게 내 인생의 과제려니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어려울 때 손 내밀면 선뜻 받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 잊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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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012

사진 출처: 핫산의 홈페이지
               http://www.hasanhujairi.com/

우드(Oud)라는 악기를 난생 처음 봤다. 음색은 보통의 클래식 기타 같았는데 생김새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올 5월에 바레인에서 왔다는 핫산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취미가 우드라고 해서 그게 뭔가 그랬었다. 지난주에 국제교류클럽 파티에 갔었는데 중간에 우드 연주시간이 있었다.

아라비아 전통(사실은 바레인) 의상을 입고 짜잔, 등장한 핫산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일본 노래도 두곡 정도 연주했는데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라서 감흥이 떨어졌지만 이라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본인에게 우드를 처음 가르쳐 준 선생이 작곡한 곡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풍의 곡이 아주, 정말 아주 인상적이었다. 연주 실력은 프로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충분히 감동적인 무대였다.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우드가 어떤 악기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oud라고도 함.

중세와 근대 이슬람 음악에서 유행한 현악기.

유럽 류트의 조상인 우드는 오목한 배 모양의 몸체에 줄받이가 없는 지판, 짧은 목, 유럽 류트보다 급하게 굽은 줄감개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율하는 줄감개는 줄감개집 옆면으로 부착되어 있으며, 플렉트럼으로 뜯어서 연주하는 양장현은 (기타처럼) 악기의 앞판에 있는 접착식 줄받침에 고정되어 있다.

우드는 크기나 현의 수에서 다양하다. 4쌍(고전적인 수)의 현이 가장 보편적이나 간혹 5~6쌍도 있다. 조율법도 다양하며 음역은 기타 또는 류트와 유사하다. 우드는 터키에서는 라우타로, 발칸에서는 오우드 또는 우티로 알려졌다. 7세기 중세 페르시아에서는 바르바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드'(아랍어로 '나무'라는 뜻)라는 악기의 이름은 가죽으로 앞판을 댄 초기 류트와는 대조적으로 앞판을 인도산 향나무로 만든 데에서 비롯되었다.

핫산이 연주한 우드는 줄이 11개로 구성되었다. 얼핏보면 여섯 줄로 보이는데 맨 윗줄을 뺀 나머지 줄들이 두겹씩이었다. 줄감개집은 마치 부러뜨리다 만 것처럼 뒤로 꺾여 있었다. 악보가 궁금해 보여달라고 했는데 일반적인 서양 악보에서 쓰지 않는 1/2b 도 보였고, 한 마디 안에 표현하는 박자의 리듬도 빠른 게 많았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악보의 제목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지만 악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려나간다는 것이었다. 5천년 전부터 사용된 악기며, 기타처럼 생긴 모든 악기의 원조라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던 핫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가 왜 객국에서 그 생고생을 하면서 지내냐고,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없느냐고 자주 묻는데 일상에서 가끔씩 이렇게 만나는 문화적 충격들이 나를 계속 떠나게 만드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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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생일인 줄도 몰랐다.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사는 건 아니었는데 올해도 또 그랬다.
밖에 있다 보니 생일도 잊고 명절도 잊고 중요한 많은 날들을 잊고 산다.
그러면서 뭔가 새롭게 얻는 게 있지 않을까 오늘도 두리번거리며 살고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소심남이 부르는 오페라'의 한대목을 보고 아주 심한 감동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 열번은 본 것 같은 데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 공연을 직접 하기도 하고 아티스트가 좋아 콘서트장을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지만 이런 감동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남자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해서 나도 처음엔
그냥 심사위원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훈련받지 않고
그 정도 키를 소화해낸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무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게 내겐 더 대단했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지만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이 또 한번 있었다. 지금부터 한 6,7년 전인 거 같은데 이외수 작가의
팬 사인회가 끝나고 인사동 어느 식당에 모여 식사가 끝났을 즈음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즉석 판이 벌어져 재주꾼들이 나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갑자기 내 관심을 확 끌어들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아주 앳돼보이는 한 친구가 부채를 쫙 펴들고 판소리를 하려고 목을
푸는 참이었다. 춘향가 중 '사랑가' 한 대목이었던 것 같은데 아, 난 그냥 감동에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서편제의 '송화'처럼 그 친구도 참 한이 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꺾여야 할 때 탁탁 꺾이는 것 말고도 짧은 순간에 목소리로 많은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아마추어라지만 내겐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진정한 예술이었다.

폴 포트의 목소리에 전율하면서 난 20대 초반의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판소리에 감동했을 때, 그때 그랬었다. 난 예술을 할 재주는 없지만 예술가를
돕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그 마음,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그게 어떤 것이 될 지
아직 잘 모르겠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악기인 마싱코를 연주하는 맹인 연주가를
빛 보게 해주고도 싶고, 7명의 어린이 댄스그룹을 한국에 소개하고도 싶은데 내가
받은 감동을 관객들도 받을 지 그건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럴 날이 올 거라는 확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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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0) 2007.06.01
Posted by 윤오순
본격적인 장마시즌이 도래한다고 해서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제 하루 쏟아붓더니 오늘은 다시 쨍-하고
해가 떴다. 어제 같이 앞으로 40일은 쏟아진다고 70이 넘으신 내 일본어 과외 선생이 그러셨는데.

또 다 졌겠다, 하는 마음으로 역에서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왠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건너지 않고 그대로 서있는 게 아닌가.

아,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초등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멈칫, 하는 사이에 둘은 만났고, 내 바로 앞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거셌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우산 사이로 두 손을 내밀어 꼭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내 앞을 걸어갔다.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거리를 좁혔는데 아무래도 모녀 사이 같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초등학교 4, 5학년 쯤. 아니어도 할 수 없고.

오늘 요시다가 학교에 안왔어.
왜?
감기에 걸렸대.
이런.

오늘까지 내기로 했던 숙제는 선생님이 내일 내도 된대.
잘 됐네.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
오늘 저녁에 좀 봐 줘.
그래.

엄마가 같은 학급의 학생 이름을 다 알고 있나보다. 아니면 특별히 친한 학생 이름일 수도 있고. 그리고 엄마랑 상의하면서 같이 숙제를 하기도 하나보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인 것 같다. 가끔 나 오늘 엄마랑 싸웠어,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이게 말이 되나 말이다. 엄마한테 대들었어, 라고 해야 옳지. 난 내 엄마가 세상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엄마인 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제 만난 빗속의 저 학생은 엄마를 좋은 친구로 둬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저 친구도 아마,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의 뒷모습은 정말 자유로운 체형의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딸과 손을 맞잡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빗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아,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문득 내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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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5월의 파티  (2) 2007.05.31
Posted by 윤오순


게스트하우스의 사토 상은 닉네임만 요리사인 줄 알았는데 정말 전직 요리사란 사실을 어제 알았다.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데 미국에서 10년간 스시집 요리사였단다. 생선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않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서도.

부엌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식기며 요리 도구들도 전부 같이 사용하는데 이 곳에 사토 상만 사용하는 사시미용 칼이 있었다. 이걸 누가 사용하나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어제 풀렸다. 사토 상은 일반 칼보다 길고 몸체가 아주 날렵해 딱 보기만 해도 아찔한 이 칼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며 요리를 하는 것 아닌가. 스윽스윽, 칼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뭔가 재료의 형태가 바뀌어 있다.

어제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두개의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사란 사실을 알고난 바에야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기회가 되는 대로 그냥 보는 요리 공부를 하기로 했다. 사토 상도 맘대로 하라면서 전혀 개의치않고 착착 요리를 하더니 마치 선생이 된 것처럼 이 조미료는 이래서 사용하고, 요건 또 저래서 사용하는 거다, 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줬다.

요리 1
1) 양파를 반을 쪼갠 후 반 쪼갠 상태의 양파를 아주 잘게 썬다. 얇은 초승달 모양의 양파가 수북히 쌓일 거다. 이걸 올리브유에 잘 볶는다. 내가 양파를 볶으면 이상하게 색이 노래지던데 양파를 색깔 그대로 볶으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설명은 힘든데 이제 난 양파 색깔 그대로 양파를 볶을 수 있을 것 같다. 팬을 불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끝까지 볶는 게 아니라 팬을 불에 잠깐 잠깐 떼어 가며 볶으니 색다른 양파 볶음이 탄생되었다. 뭐 요리 잘하는 사람들한테는 이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볶은 양파를 오븐용 그릇에 담는다.

2) 그리고 한쪽에서는 오징어를 잘 손질한다. 살들을 평평하게 깐다음 여기에 아주 잘게 칼집을 낸다. 왜 내냐니까 먹기 편하게 하려고,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항~. 그리고는 볶은 양파 위에 쭉 올린다. 이 칼집 때문에 열이 가해진 오징어 몸체에는 자잘한 돌기가 오톨도톨 생긴다. 오징어를 양파 위에 올린 후에 허브며 화이트페퍼 등을 위에 뿌린다. 그런 다음 오븐에 집어 넣는다. 오븐이 없으면 전자렌지에도 무방.

3) 다음은 여기에 하룻동안 생강에 재운 닭가슴살을 올려 다시 오븐에 돌린다. 그리고 이 위에 또 이것저것 뿌리는 데 일반인과 요리사의 요리 차이가 바로 여기서 생기는 것 같다.

4) 피망, 마요네즈 혹은 치즈로 정성껏 모양을 낸 후 또 오븐에 돌린다. 요리 끝.


요리 2
이건 한국에서 소고기 무국을 끓이는 거랑 비슷한데 그러면서 쫌 다르다.

1) 돼지고기를 (부위는 잘 모르겠는데) 3 X 2 X 2 정도로 썬다. 그냥 비계가 달린 채 두툼한 느낌으로 썬다.

2) 무우를 원통 채 1cm 굵기로 썬 후 위아래에 십자형으로 칼집을 낸다. 오뎅국에 보이는 그런 무우를 상상하면 된다.

3) 1)의 돼지고기를 참기름에 볶는다. 거의 익을 때까지 볶은 후 찰랑찰랑하게 물을 부은 후에 2)의 무를 집어 넣는다.

4) 그리고 끓이기 시작하는데 이때 요리용 술을 물 분량의 1/4 정도 집어 넣는다. 돼지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란다.

5) 물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졸인 후 몇 가지 양념을 더 한다고 했는데 바빠서 내 방으로 올라왔다.  어쨌거나 이걸로 요리 대충 끝.


난 요리사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재료를 딱 보고 요리를 생각하지? 나 같은 사람은 요리를 떠 올린 후 재료를 생각하는 데 말이야. 수퍼의 야채코너에 있는 재료들을 보면 내가 해먹을 수 있는 건 다 거기가 거기고, 장을 볼라고 치면 그냥 막막하기만 한데 요리사란 사람들은 재료를 딱 보면 바로 요리를 떠올리지 않는가.

난 천재도 아니지만 쓸데없는 걸로 바빠서 앞으로도 요리사는 못 될 것 같다. 그러나 맛있는 요리를 보면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정도는 가끔 생각한다. 오다가다 요리하는 사토 상이 보이면 어제처럼 참관을 할 생각이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보시고 요리가 잼병인 이 사람을 위해 레서피를 공개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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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