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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난 것 같다.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슨 지금쯤 메일을 한 번 보내야 내가 그 친구를 잊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카톨릭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이미 돌아가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침을 공짜로 준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한테 물어봤더니 스시집을 하나 추천해줬다. "미노부스시'라는 곳인데 한 접시에 100엔이라고 해서 처음엔 회전초밥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반 스시집 같은 곳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스시는 무조건 한 접시에 100엔이라는 거.

아직 일본 스시 이름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막 고민하고 있는데 외국인 하나가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 잘난 척을 하면서 스시를 고르더니 종이에 스시 이름을 쓰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영어로 쓰고 있었다. 참치 스시면 "MAGURO", 요렇게. 뭐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나도 한 두어개를 그런 식으로 시켰다. 그러나 스시 두 개로 한끼를 떼우기엔 난 너무 허기져 있었다.

내가 주문에 허우적대는 걸 보고 이 친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스시는 말이지...일장 연설을 해준 덕에 겨우 4개를 더 시킬 수 있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맞춰 보라는 거 아닌가. 바로 그냥 "Where are you from?" 해버릴 생각이었는데.

딱 생긴게 유럽풍이다. 그것도 저 동유럽풍이다. 러시아 쪽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일단 발틱 3국부터 훑어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이 친구 좀 놀라는 거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내려 오려고 하던 차에 그냥 "나 벨로루시에서 왔어." 실토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에서 아직 한번도 자기 나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댄다. 이런... 내가 그 심정 좀 알지. 모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어 있어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모르던 나라에 내가 있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대화의 물꼬가 스르르 풀리던 차에 일본에서 뭐하냐, 학교 다니냐, 어느 학교 다니냐까지 왔다. 그리고 내 입에서 히토쓰바시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냥 놀라더니 자기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 말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벨로루시 말이란다. 그리고는 10분도 안 되어 또 한 명의 벨로루시 청년을 만났다. 히토쓰바시라는 대학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5명의 사람한테 추천을 받았고 이제 한번만 더 인연을 만나게 되면 이 학교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었단다. 이런.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첫번째 만난 친구는 'IIYA'라는 친구로 현재 나가사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두번째 만난 친구는 'PASHA'라는 친구로 일본에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올해 4월에 나처럼 일본에 왔다. 우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아주 수다스럽게 떠들었고, 스시집에 왔으면서 스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학회가 끝나 나른하던 차에 실컷 떠들어 피곤하기까지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내일 또 보자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이야'가 조용히 있는 '파샤'를 가르키며 이 친구는 늘 한가하니까 내일 네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파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그래서 뭐 시간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교황이 머문 곳도 내가 머문 이 다다미방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그날 아주 푹 잤다.
Posted by 윤오순
요 며칠 날씨가 맑아 이 상태로만 쭉-, 이랬었는데 또 여지없이 쏟아지고 있다.
동경의 날씨는 요즘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한낮에 천둥을 동반한 비를 쏟다가는 금방 쨍-하고
해를 내보내기도 한다. 우산 안 가져 간 날 서캠퍼스에서 동캠퍼스로 넘어가야 할 때는 오만가지 상상에
갑자기 피로가 엄습한다. 폭우를 뚫고 교실로 들어가 축축한 상태로 90분간을 앉아 있을 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십편의 영화를 찍는다. 한국에서는 비오는 날 학교 정문에 우산 파는 아점마,
아저씨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학교 생활은 이제 점차 적응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맨 낯선 것 투성이였는데 이제 익숙한 게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대학원 생활을 해봤는데 거저였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건 단순하게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떻게 저떻게 하다보니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뭐, 이 학교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매시간 발표가 있고, 그 발표를 위해 읽어야 할 책이 매주 몇권씩
할당된다. 읽고 코멘트하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이게 이 학교의 수업 방식이다. 교수의 역할은
방송프로그램의 사회자 정도다. 막 가나 싶으면 커트, 말도 안된다 싶으면 또 커트, 정도.
난 처음에 내가 바보인 줄 알았다. 한과목의 수업 준비를 위해 며칠씩 낑낑대도 결과물은 늘 초라했다.
여기서 만난 유학생한테 이게 정상이냐고 하소연했더니, 자기도 한과목 수업준비를 위해서는
3,4일이 걸린다는 얘기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나의 일상은 이렇게 채워지고 있다.

학교가 교외에 있어 공부하기 딱 좋은 환경인데 무엇보다 도서관이 마음에 든다.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하면 여지없이 있다. 일본에서 도서관 하나는 남부럽지않다는 학교관계자의 말을
그러려니하고 넘겼는데 거참, 신기했다. 누가 이렇게 골고루 주문을 해서 관리를 할까, 의문이다.
뭐, 내 관심 분야가 한정돼 있어서 그런가 했는데 학외 이용자들을 만나 물어봐도 공감하는 내용이란다.
혹시 도쿄의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공부할 생각이 있는 분들은 이 학교 강추다.
도쿄대, 와세다, 게이오 외에는 일본에 대학이 없는 줄 아는 분들에게도...

처음에 뭐가 뭔지 우왕좌왕할 때 이 학교에서 내게 내민 카드가 입학금 면제 제도였다.
물론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설득력있게 구구절절 소설 한편은 써야 한다는 게 전제다.
이런 재주가 있는 사람에게는 수업료 면제라는 카드도 주어진다.
그리고 집에 프린터가 없는 내게 A4 500장을 학내에서 무료로 프린트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처음만이 아니라 매 학기 제공이 된단다. 참고로 A4 한장을 프린트 하기위해 학교 근처의
PC방을 이용할 경우 우선 인터넷(컴퓨터) 이용료를 200엔 정도 내야 하고
장당 10엔에다 부가세 1엔을 더 내야 한다. 거의 초죽음의 고물가이다.
복사도 대부분 장당 10엔 정도가 공정시가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1년에 800장을 복사할 수 있는
무료 카드를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저작권 관리가 엄격해서 잡지 한장 카피하려고 해도
신청서 한페이지를 가득 채워 내야 할 만큼 복잡하지만 800장 무료복사카드는 아주 큰 선물이었다.
뭐 그게 별거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모든 유학생들은 가난한 법이다.

한국에서 대학들이 대학원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데 그게 도대체 뭔가 감을 못 잡았었다.
이곳은 확실히 대학원생 중심으로 학교가 돌아간다.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있지만
교수가 학생을 자기 아래의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연구자로 대해준다.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게 없는 건 당연하고 울기 전에는 결코 떡을 주지 않는다.
모든 대학원생들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연구동이 있는데 이 학교에서 제일 좋은 건물이다.
이 안에 8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 연구실이 또 따로 있다.
공동연구실이라고는 하지만 방하나에 큰 책상 하나 놓여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개인 책상에 개인 책장까지 다 갖춰져있다. 이곳에서 밥 먹고 그저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그런 걸 이용해본 적 없는 내게는 이 학생 전용 연구실도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곳에서는 '제미'라고 부르는 세미나 수업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 학교에서 제일
먼저 시작해 이제는 모든 일본의 대학에서 이 수업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제미는 1년 단위로 움직이고 교수 하나에 공통의 관심분야를 가진 학생들이
매주 모여 토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 매주 뭔가를 준비해 발표를 해야 한다.
논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학회나 발표회를 준비하는데 제미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수업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 전사 같다. 싸우기 위해 온 사람들 같은 이미지가 내게 강하다.
보통 90분 정도인데 내가 참여하는 제미는 중간 휴식 20분을 제외하고 180분간 진행된다.
늘 그날 모인 전사들에게 엄청 깨진다. 그러나 깨지고 나서 얻는 게 많기 때문에
매주 깨질 준비를 한다. 한국에서는 지도교수랑 달랑 둘이 논문을 썼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제미에 참가하는 모두와 논문을 쓰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또 제미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대부분 연구실을 같이 쓰기 때문에 제미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면
끝장이다. 그래서 여기서만큼은 독립군으로 살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공부할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아직 난 해결이 안된 문제들 때문에 장학금이 없다.
아예 신청자격이 안되어 널려 있는 장학금이 내겐 그림의 떡이다.
시간만 빨리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인데
그때까지 내가 굶어죽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 죽지 않는게 요즘의 내 소박한 소망이다.

오늘은 발표는 안하고 자료만 제출해야 해서 덜 부담스럽다. 내야하는 레포트를 다 내고
100% 출석하면 C를 준다고 교수가 첫 시간에 얘기했다.

비는 아직 그칠 기미를 보이지않지만 이제 학교에 간다.
여러분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를....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