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신청도 끝냈고, 짐도 다 부쳤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야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많이 불안하다. 일본에 올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당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가서 개고생할 걸 생각하니 두려운 건지 내 마음이 정리가 잘 안된다.

이것저것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를 하나로 통일하면서 나한테 한번이라도 메일을 보낸 사람들 중에 연락을 꼭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어제 메일을 죽 보냈다. 반송된 메일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것밖에 연락처가 없는 사람들은 이제 연락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아쉽다.

의외로 여전히 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속속 답장들이 도착하는 중인데 사람들 사는 게 참 재미있다. 여자인 친구들은 대개 결혼을 해서 애가 하나 혹은 둘 이상이 되어 물어보지 않아도 아줌마생활에 완전히 적응들을 한 것 같고, 남자인 친구들은 문장에서 아저씨 필이 마구마구 느껴진다. 나처럼 여전히 헤매며 사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대학 때 내 지도교수님은 내게 4년 내내 반말을 하셨었는데 지금은 깍뜻한 존칭어로 반가움을 표시해주셨다. 

10년도 전, 지금처럼 모두가 인터넷이랑 친하기 전에 웹진을 하나 만들다 결국 포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필진으로 참여했던 분들 중에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서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는 안부 메일을 띄웠는데 이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인터넷 카페 비슷한 것을 운영하던 분이 계셨는데 좋은 추억이었다며 개인블로그를 알려주셨다. 여전히 마음이 따뜻한 글들을 업데이트하고 계셨다. 웹진에 문화계 기대주를 인터뷰하는 코너가 있어 첫 인터뷰 대상자로 장진 씨를 선정해 기사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시 장진씨를 인터뷰했던 친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머리 숱이 적은 장진씨가 사진은 꼭 이것으로 실어달라고 직접 찍은 사진을 여러장 줬었는데 지금은 사진도 인터뷰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내 떠돌이 생활에 최후까지 살아남는 물건들이 뭐가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난 그때 석공예가 곡천 김봉준 선생을 인터뷰했었는데 이분은 몇년전 돌아가셨다. 장지가 강원도 인제라서 친구와 새벽에 거기까지 가면서 곡천 선생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만날 때마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한국의 아름다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 등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몹시 선명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필진 중에 일본인도 한명 있었는데 다음주에 같이 밥 먹자는 답장이 왔다. 당시에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몰랐는데 10년이란 세월동안 아주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웹진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나를 도와줬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때론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세월은 변함없이 흘렀고, 나도 시간을 따라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내가 잘 왔는지 잘 모르겠고, 지금 잘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확실히 아는 한가지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난 여전히 내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덕분에 어제 오늘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칭찬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도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때 만난 그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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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