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직접 하는 것 보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 보다 구석구석 다 보여주는 TV 시청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해설자가 혀가 짧지 않아야하고, 수다스럽지 않아야하고, 너무 대한민국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집에 스포츠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보는 거에 익숙한데, 내가 TV를 보다가 박수치며 환호성을 지르면 가족들도 그러려니 그런다. 시차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올림픽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를 밤늦게 거실에 혼자 앉아 보는 나를 가족들은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그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희열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그런 것이다. 

그나마 외국 생활이 오래되면서 이제는 TV로 경기보는 일도 내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동영상 사이트들을 통해 볼 수 있지만, 이미 기사를 통해 경기결과를 알아버려 김이 빠진 상황이고, 그것도 유튜브가 아닌 이상 버퍼링 때문에 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축구 국가대표 A매치 경기는 대부분 봐주는 편이었는데 요즘 그런 건 아예 포기했다. 좀 특이한 스포츠 기자가 그림처럼 경기관련 기사를 썼을 경우, 그 기사를 읽으면서 경기내용을 상상하는 것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 TV에서 찔끔찔끔 보여주는 한국팀 출전 경기를 볼 때는 아주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요즘은 꼭 보고 싶은 경기가 동영상으로 올라오면 그때 혼자 스크린 앞에서 경기를 보며 감격하는 일이 많다.

한국 유학생 하나가 왜 북경올림픽에 김연아와 쇼트트랙팀이 안나왔느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해서 웃다가 내가 너무 오래 쇼트트랙에 무심했구나 하면서 동영상을 찾아봤다. 아직 한겨울은 아니지만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안현수가 뛰는 경기를 다시 못봐서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들 어찌나 잘하는지 원. 순발력이 좋아서? 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쇼트트랙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한국 국가대표 출신 코치가 지도하는 외국 쇼트트랙팀이 일취월장하는 것 보면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비장의 무기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쇼트트랙 장거리 계주 경기는 끝날 때까지 순위를 예측하기 힘든데 언제나 한편의 영화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토리노 동계 올림픽 때는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보려고 수업을 빠진 적도 있는데, 고맙게도 우리 선수들은 수업 한 시간 빼먹은 게 아깝지 않을 명장면을 연출해주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쇼트트랙팀 경기 전략은 장거리 육상경기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 뛰는 전략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계속 뒤따라가다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막판에 발휘, 눈깜짝할 사이 앞의 선수들을 쭈욱- 제치고 결승선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 얼음판도 제대로 없고 선수 풀 자체가 다를 우리나라 선수들이 캐나다, 미국, 중국 선수들을 따돌리고 우승할 때는 내가 직접 경기를 한 것처럼 기쁘다. 

절대강자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개대표팀 출전 경기를 보면서 요즘 내가 시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없는 불안함과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대한민국 만세다!! 
    
*사진출처
http://www.kyeongin.com/news/photo/200711/354403_55260_375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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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