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374건

  1. 2008.02.16 안녕, 내 친구들아!! 8
  2. 2008.02.05 다시 후지산 10
  3. 2008.02.03 두번째 눈 13
  4. 2008.02.02 망중한-피오렌차 코소토 공연실황 8
  5. 2008.01.15 2008년 화두 11
  6. 2008.01.14 친구, 남한산성 3
  7. 2008.01.12 다시 도쿄 11
  8. 2007.12.22 여기는 하라르 18
  9. 2007.12.19 다시 에티오피아
  10. 2007.12.08 아프리카의 카멜롯-곤다르기행(3-3) 2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냥 친구들이 무작정 보고 싶었다. 오늘 그랬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에도 눈이 온다  (13) 2008.03.03
모국어의 힘  (2) 2008.02.24
다시 후지산  (10) 2008.02.05
두번째 눈  (13) 2008.02.03
2008년 화두  (11) 2008.01.15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일요일엔 하루 종일 눈이 내려 월요일에 학교를 땡땡이 칠 생각이었는데 이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는데 후지산이 보이는 거라. 날씨가 맑다는 싸인이다. 핑계거리도 없으니 학교를 가야했다. 주섬주섬 챙겨 차전거를 끌고 나가 한 5분을 달렸나. 도로는 눈이 녹았는데 보행자와 같이 사용하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전혀 눈이 녹지 않은데다 바퀴가 자리를 못 잡을 정도로 얼어 있었다. 돌아가기 귀찮아서 그냥 밟아 가는데 결국 빙판에 자전거와 함께 뒹굴고 말았다. 어디 부러진 데는 없는데 지금도 욱신욱신 온 몸이 쑤신다. 나이는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선생한테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고, 그러지않으면 빙판을 달려야 한다고 엄살 떨고 내 맘대로 일찍 끝내고 집에 왔다. 오늘도 날씨는 엄청 맑은 데 후지산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영산이라는데 민감하기까지 하다.

한국은 낼 모레가 설날이라는데 여긴 뭐 특별할 게 없다. 어쨌거나 이곳에 오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분발할 테니 제 블로그에 많이 놀러 오시고요.

내 사랑하는 친구들아, 올해 결혼 안한 친구들은 빨랑빨랑 결혼하고, 신혼인 친구들은 부지런히 서두르고, 학부모들은 뭐 나보다 생활인들이니까 얘기할 필요없고, 다들 잘 살아 보자고.

가족들은 오늘이랑 내일 저녁 네이트온에서 만나 화상채팅하면서 한꺼번에 인사하기로 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사진설명: 내 방 베란다에서 바라 본 후지산 풍경. 이곳에 와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 밖에 후지산을 못 봤다. 아무 때나 얼굴을 내밀지는 않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찍어서 올릴 생각이다. 후지산 보고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국어의 힘  (2) 2008.02.24
안녕, 내 친구들아!!  (8) 2008.02.16
두번째 눈  (13) 2008.02.03
2008년 화두  (11) 2008.01.15
후지산, 눈에 넣다  (15) 2007.11.21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의 도쿄는 눈도 잘 안오고 기온도 영하까지 내려가는 일이 없단다. 그렇게 듣고 겨울 옷도 제대로 안챙겨가지고 왔는데 1월 초순부터 시작됐다는 강추위가 아직까지에다 오늘 두번째 눈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주 푸짐하게 내리고 있다. 폭설로 전철이 연착에 정체에 하루종일 뉴스에서도 난리다. 중국은 폭설로 이재민이 1억이나 발생했다고 하는데 일본은 그런 사태까지는 안가겠지? 어쨌거나 전세계가 이상기온으로 난리다. 이런 추세라면 난 내일 학교에 안 갈 생각이다.

*사진설명:내방 베란다에서 바라 본 눈오는 날 풍경이다. 날 좋은 날은 저 너머로 후지산이 보이는 데 함박눈으로 오늘은 꿈도 못 꾼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 내 친구들아!!  (8) 2008.02.16
다시 후지산  (10) 2008.02.05
2008년 화두  (11) 2008.01.15
후지산, 눈에 넣다  (15) 2007.11.21
인터넷 접속 기념 포스팅  (1) 2007.10.17
Posted by 윤오순
정신없이 바빴다. 당연한 일이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오자마자 가기전에 비디오로 찍어두었던 90분짜리 테이프 2개를 10분짜리로 편집해서 지난 일요일에 상영을 했다. 반응은? 비디오에 출연한 사람들이 모두 관객으로 오는 바람에 아~~주 좋았다.

지난 학기 내가 들었던 모든 과목의 레포트 마감일이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 있어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 이제 겨우 절반이 끝났다. 월요일이 원고 마감인 것도 있어서 아조 돌아버리겠다. 뭐 그래도 시간이 다 해결해주겠지, 하고 있다.

각설하고,

금요일은 밤 10시 25분부터 NHK 교육채널 3번에서 <예술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조 소프라노 피오렌차 코소토(Fiorenza Cossotto)와 매력적인 목소리의 그레이스 범브리(Grace Bumbry)다. 책이고 뭐고 한쪽으로 치워놓고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30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피오렌차 코소토의 공연이 있었는데 오늘 방송은 그 공연실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전주곡도 연주되었다. 70이 넘었는데 목소리가 아주 짱짱하다. 앙코르 곡으로 '기미가요'를 불러 좀 깼다.

그레이스 범브리도 1937년생이니 70이 넘었는데 참 곱게도 늙었다. 우리나라도 70이 넘은 음악가들이 콘서트를 열고 있던가? 국내 공연 말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해외 무대에서 말이다. 사랑많이 받았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하고 물러앉는 게 아니라 60대의 연주, 70대의 연주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 이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늘은 나도 잠깐 쉴란다.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늘 나는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쁜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 덕분(?)에 가족 행사는 형제들에게 떠 넘기고 친구들 모임은 나 아닌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까, 하고 몰라라하고. 그렇게 아주 밥맛 떨어지게 오래도 살았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썩 좋았느냐, 그러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결론이 나버린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가 바쁜 사람이라고 인정을 아예 해버려서 가족들 친구들 생일도 한참이 지난 후에 알고 명절도 연말연시도 이젠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나보다 더 바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친구들과 적당히 엉겨가며 우정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가족들과 친밀감도 유지해가는 그런 삶이 의미가 있는 거지 닥친 일에 코박고 하루하루 넘기는 게 이게 결코 사람 할 짓이 못 된다는 것도.

친구들이 블로그를 하나씩 오픈했다. 작년까지만해도 좁아터진 플톡 안에서 놀다가 다들 지쳤는지 교류 장소를 옮겼다. 덕분에 이제 친구들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언제 생일이고, 누구네 애기가 얼마나 컸고, 눈이 왔는지, 비가 왔는지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에 마실 갔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감동해서 찔찔짜기도 하면서 내가 마늘이랑 쑥도 안 먹고 며칠 만에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2월부터는 가족들이 일본에 오게 될 것 같다. 내가 못 가니 오는 거지만 자꾸 만날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사람은 결국 혼자지만 혼자 살 수 없는 동물 아닌가. 그래서 나도 내 소소한 일상을 가족들, 친구들과 자주 공유하리라 마음 먹었다.

2008년 내 화두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다.


사진: 하라르 올드시티 골목에서 만난 꼬마들. 다리찢기를 비롯해 아주 다양한 곡예를 10분 정도 보여 준 후 지쳐있길래 초콜릿을 하나씩 나줘준 후 자세를 정비하고 한 컷 찍었다. 이 꼬마들은 내가 지나가면 나를 '태권도'라고 불렀다. 어릴 때 나랑 놀던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내가 사람이 된 걸 아는지 원.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후지산  (10) 2008.02.05
두번째 눈  (13) 2008.02.03
후지산, 눈에 넣다  (15) 2007.11.21
인터넷 접속 기념 포스팅  (1) 2007.10.17
기숙사 입주 보고  (2) 2007.10.09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든 기념하기 좋아하는 내 친구가 지난해 가을에 선물한 김훈의 남한산성이다. 긴줄을 서서 이 싸인을 받았단다. 김훈 씨는 이 책으로 인세만 20억을 벌었다지? 받고나서 바로 읽을까하다 아껴뒀었다. 넘기면 금방 읽어버릴 것 같아 미뤄두다가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하면서 짐가방에 챙겨 넣었다.

서날쇠는 눈썰미가 매서운 대장장이였다. 쇠를 녹이고 두드려서 농장기와 병장기를 만들었고, 목수들의 연장까지 만들었다. 왼손잡이 목수들이나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간 석수들을 위해 그 일그러진 손에 맞는 대패며 끌, 징, 송곳, 톱을 만들었다. 깎고 쪼고 뚫고 파고 훑고 후비고 깨고 베고 거두고 찧고 빻고 밀고 당기는 모든 연장들이 서날쇠의 대장간에서 나왔다. 서날쇠는 연장을 구하러 온 사람의 몸매와 근력, 팔다리의 길이와 허리의 곧고 굽음을 잘 살펴서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키 작은 자와 키 큰 자의 연장을 달리 만들어주었다.
-남한산성 P.53-

그가 스타일리스트인 줄 진작에 알았지만 표현의 섬세함에 그냥 뻑 가버렸다. 김훈도 농장기와 병장기를 만들면 서날쇠처럼 만들지 않을까. 작가는 정말 신이 내린 직업이 아닐까 싶다.

언제 떠날 줄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모국어의 성찬에 무우척이나 행복했다. 책 한권으로 이렇게 많은 기쁨을 준 김훈 작가와 내 친구 기정이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그날 에티오피아 디레다와 공항에서 난 김훈 작가와 내 친구 기정이를 만났다.

'채널24: 에티오피아 >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는 에티오피아  (2) 2011.04.15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하라르의 올드시티에는 골목이 300개가 넘는다. 300개가 넘는 골목에 다 이름이 있는데 그 골목을 훑고 다니다 이 소녀를 만났다.


다시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 아바바, 두바이, 간사이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오사카 예술대학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느라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기내에서 읽을 책을 따로 준비했는데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60대 노교수였는데 좌석이 떨어져 있어 아쉬워하길레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했다. 엄마인데 같이 앉아가게 해 달라고.

하라르에서는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도 가고, 우선 피부터 뽑자고 해서 안된다고 버티다 웃기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고,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누워 있으니 호텔에서 메뉴에도 없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어서 사람사는 곳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쨌거나 내겐 이런저런 기억이 많이 남는 도시가 되었다.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같은 호텔에서 4명의 한국인을 만나 연말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밥만 먹고 헤어졌지만. 그 짧은 시간에 통성명을 비롯해 신상조사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에티오피아가 싫다면서 식당 종업원들에게 어찌나 함부로 대하는지 내 얼굴이 다 뜨거워져서 일본인으로 행세하고 싶었다.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가 사용하던 방에 가서 몰래 사진 찍다 걸려서 얻어 맞고 경찰서에 끌려갈 뻔했는데 사진을 삭제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 다 지운 줄 알고 호텔에 와서 확인했는데 화장실의 비대 사진이 딱 한장 남아 있다. 황제라서 그런지 그 시대에 참으로 화려하게 살았다. 10년 후, 아니 20년 후 에티오피아에 관한 기록사진들을 공개할 일이 있을 때 황제가 사용하던 비데 사진을 공개할 예정이다.

에티오피아 시간으로 이제 밤 12시가 다 되어가니 잠이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잠이 안 온다. 큰 일이다. 내일은 지난 여름에 참가했던 지역개발 프로그램 보고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아, 돌아버리겠다.

'채널24: 에티오피아 > 에티오피아문화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짜트, 과연 신의 선물인가  (1) 2008.08.26
컬러플 바빌레  (8) 2008.04.10
여기는 하라르  (18) 2007.12.22
다시 에티오피아  (0) 2007.12.19
아프리카의 카멜롯-곤다르기행(3-3)  (2) 2007.12.08
Posted by 윤오순

 

며칠 안되었지만 하라르(Harar)에서의 생활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여행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동네에 나타나면 가이드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수십 명 모입니다. 괜찮다고 해도 우린 친구니까 안내하고 싶다고 계속 따라오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동네에는 벌써 암하릭어를 하는 한국인인 저에 대해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제가 지나가면 헤이, 차이나!” 혹은 헤이, 파렌지!”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태권도!!”라고 부르거든요. 첫날 동네 꼬마들이 가라데를 보여달라고 해서 발차기를 살짝 보여주면서 태권도라고 그랬거든요.

 

 

지금 와 있는 하라르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하자면 에티오피아의 9개의 주() 중에 하나인 하라리주의 주도입니다. 2006년 유네스코는 하라르의 도시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성벽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5개의 게이트(Assum Gate, Asmaddin Gate, Bedro Gate, Suqutat Gate, Argob Gate)가 있습니다. 도시 안에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90개가 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 교회가 10개 정도 있습니다. 이슬람교 4대 성지 중 하나라고 하네요. 도시는 크게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나뉘어져 있고 볼거리는 올드 시티에 많습니다.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아버지의 출신지가 이곳이고 올드 시티에 가면 황제가 궁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있는데 관리 소홀로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시 쓰기를 멈추고 아프리카 어딘가로 떠났다는 사실을 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 아프리카가 바로 이곳 하라르입니다. 이곳에서 랭보는 11년간 무기 거래상을 하며 엄청나게 돈을 벌었다고 하네요. 랭보가 밀매한 무기로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와 싸워 이긴 전투가 아도와 전투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을 상대로 싸움을 해 이긴 건 이 전투가 유일하다고 하네요. 에티오피아는 이 승전의 날을 매년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올드 시티에는 랭보 박물관이 있는데 사실 랭보는 이 건물에 산 적이 없다고 하네요. 프랑스 정부차원에서 현재 랭보 박물관을 중심으로 하라리 문화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자문화 우월주의가 극심한 프랑스다 보니 관광안내 책자를 프랑스어로만 제작해 배포하고 있네요. 게다가 아무리 에티오피아가 개발도상국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를 개발하겠다는 저 발상은 아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라르에 유명한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커피입니다. BBC 다큐멘터리에서 스타벅스의 커피 감별사가 커피 맛을 보고 세계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 후 브랜드를 보여주는데 에티오피아의 하라르산 커피더군요. 현지에서 커피 제조 공장을 방문해 물어보니 커피 1Kg 40~50birr 정도 거래되고 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비싸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번에 하라르에 오면서 시간이 없어 연구조사허가서를 받지 않고 와서 사실 불안해하면서 동네들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관광객이라면 보통 길어야 3일을 머물고 떠나는데 저는 그 날짜도 넘긴 상태고 계속 이상한 것만 물어보고 다닌다면서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는데 머무는 동안 경찰서 구경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지도교수가 그걸 제일 걱정하고 있거든요.

Posted by 윤오순
지난 10일 월요일 도쿄를 출발, 간사이와 두바이를 거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습니다. 계절은 냉건기라서 낮에는 무지하게 뜨겁고 밤에는 두툼한 자켓이 필요할 만큼 아주 춥네요.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제가 다니는 학교에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하나 제공했고, 제가 첫 수혜자가 되어 이번에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좀 앓았습니다. 기후탓인지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호텔에서 그저 잠만 잤는데 역시나 몸이 안 좋을 때는 수면탕이 최고더군요. 끊어놓은 비행기표를 변경할 수가 없어 몸을 대충 추슬러 지난 주말에 하라르라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디레다와(Dire Dawa)라는 에티오피아의 제 2도시까지 비행기를 탔고, 디레다와에서 버스로 다시 하라르까지 왔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하라르까지 버스가 다니지만 저 같은 외국인이 혼자 가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일부 노선만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디레다와는 작년 여름에 홍수피해가 심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입니다. 작년에 TV에서 헬기로 유엔 구호물자가 도착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주 평화롭네요. 참고로 디레다와는 에티오피아의 국내 도시지만 디레다와행 비행기는 국제선 청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독일인 친구를 만났는데 기내에서 제공한 빵과 주스를 먹는 저를 아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사실 작년에 저도 저걸 어떻게 먹나 그랬었거든요. 1년 반을 이곳에 있었다면서 암하릭어로 숫자를 10까지 세어 주면서 중요하니 배우라고 해서 제가 100까지 세어줬습니다. 디레다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객꾼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지만 뭐 이젠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공항에서 디레다와 시내까지 가는데 40birr(1USD≒9.04birr)를 요구해서 못 들은척 하고는 결국 10birr에 해결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왔는데 친절한 젊은 친구가 가방을 들어주길래 고마워했더니 하라르행 버스에 가방을 싣자마자 20birr를 내라고 하네요. 음…5birr 줬습니다. 가방이 무거우니 두 사람 몫의 차비를 달라고 해서 가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고, 나보다 가볍다고 그냥 20birr만 내고 배째라고 했습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 버스 요금은 11birr.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을 그냥 주고 말지 그러느냐고요? 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돈 버는 것도 원하지 않고, 제 연구지역이 이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서 지낼 날이 몇 년이 될 지 모르거든요. 처음부터 포지셔닝을 잘 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계속 돈을 쏟아 부어야 할 겁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는 중국인들이 도로를 싹 포장해놔서 그냥 씽씽 달렸는데 중간에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그만 차도 길 바닥에 퍼져버렸습니다. 도로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저를 구경하더군요. 같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데 그냥 포즈 잡아줬습니다.

두어 시간을 땡볕에 서 있었는데 딱 한자리, 빈 좌석이 남은 차가 와서 누구 탈 사람 없느냐고 하는데 같이 길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전부 저를 먼저 보내야 한다면서 양보를 하더군요. 제게는 돈 다시 낼 필요 없고, 잊지 말고 이 친구를 호텔에 내려주라고 운전기사에게 당부까지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에티오피아에는 많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호텔에 투숙을 하기로 했는데 방에 전화도 없고 물도 전기도 제한적으로 공급이 됩니다. 밤마다 바퀴벌레와 기타 등등의 벌레들이 제 신발바닥과 조우를 해야 하고요.

왜 거기 가서 그렇게 고생하느냐고요? 아직은 불편한 게 많지만 에티오피아, 정말 매력적인 곳이거든요.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곤다르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쯤 떨어진 곳에 ‘웰레카’라는 마을이 있다. 지금은 폐허처럼 변모해 관광객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곳이지만 1991년에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정부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스라엘과 외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아베샤(아비시니아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것에 반해 웰레카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깔은 같지만 ‘팔라샤(‘외지인’ 혹은 ‘이스라엘 가문’을 의미)’라고 부른다.

 

19세기 중엽 영국인 선교사들은 외부와 단절되어 1600년 이상 자기들 고유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유대인 신앙을 실천하는 이 사람들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은 언젠가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의 한 뿌리였던 것이다. 4세기에 기독교가 에티오피아의 국교가 되지만 이들은 개종하지 않고 그때까지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믿고, 또 살고 있었던 것이다.

 

1991 5 24 25시간 만에 진행된 엑소더스로 약 10 4천여명의 팔라샤가 에티오피아를 떠났는데 웰레카에 사는 사람들은 그 후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토지를 강제로 몰수당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갖은 종교적인 핍박을 받으면서도 도자기, 대장장이, 천짜기 기술 등으로 생활을 하며 유대인 고유의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간 덕택에 수준 높은 수공예품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이제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어져 마을에는 좀처럼 생기가 없다. 검은 피부의 유대인이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랄리벨라에는 팔라샤 마을 정도는 아니지만 팔라샤가 경영하는 호텔이 있다. 호텔 이름이 ‘ALEF’라는 곳인데 이스라엘어로 ‘first’라는 의미다. 이곳에 가면 이스라엘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주인이 처음부터 본인과 그곳에 드나드는 친구들이 팔라샤임을 실토한 건 아니었지만 호텔 이름과 방문객들의 국적이 연관성이 있어 보여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더니 결국엔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곤다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Km정도 떨어져있는 시멘국립공원을 강추한다. 표고 4,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연이어 이어진 협곡으로 ‘아프리카의 천장’으로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이 되었지만 삼림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현재는 위험유산으로 분류가 되어 있으니 방문을 하더라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자제하기를 권한다. 시멘국립공원은 경관이 수려하고 ‘비비’나 ‘에티오피아 여우’ 등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트레킹 코스로 적당하며, 곤다르 시내의 여행사를 통하면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