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374건

  1. 2012.11.14 겨울예감
  2. 2012.11.11 거절하기 힘든 호의
  3. 2012.11.05 오지랖 열전-그리스인 조르바 2
  4. 2012.10.30 생존점 3
  5. 2012.09.13 장래 희망
  6. 2012.09.13 배신감 2
  7. 2012.09.12 산책
  8. 2012.09.09 가을에 듣는 겨울
  9. 2012.09.07 내 손이 하는 기억들
  10. 2012.09.06 후루룩 국수 시식기

기숙사에서 멀지 않는 곳에 걷기 좋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비가 온 뒤에도 그리 많이 질척거리지않은 데다 적당히 오르막이 있어 한번 걷고 나면 등에 땀이 찰 정도다. 흐느적흐느적 걷는 것 같은데 운동이 된다는 증거다. 영국 숲길에서 다람쥐나 청솔모들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인데, 어제는 처음으로 꿩을 만났다. 내가 무섭지도 않은지 도망가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당황했다. 전에 살던 기숙사 주변에서 작은 여우를 봤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그 여우도 재빨리 사라질 줄 알았는데 도망가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길 한복판에서 난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했다. 30분쯤 걸으면 2차선 도로가 나오기 때문에 되짚어 돌아오곤 하는데 한시간 산책로로 딱이다. 여름내 자주 다니던 길을 잠시 잊고 새로운 산책로에서 요즘 가을 단풍을 즐기는 중이다. 전에는 오후 5시나 6시쯤 산책을 시작해 좀 걷다 들어오면 저녁먹을 시간이 되곤 했는데 요즘은 해가 일찍 떨어져 오후 3시쯤이면 어두워지기 시작해 오후 5시쯤 되면 이미 깜깜해져 산책은 꿈도 못 꾼다. 바람이 차가워지긴 했지만 아직 둘둘 말고 다닐 정도로 춥지는 않다. 허나, 후-, 하면 뽀얀 입김이 나오는 게 겨울이 오는 중임이 확실하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19일 꼭 투표하세요!!!  (0) 2012.12.14
키리모찌 먹는 법  (1) 2012.12.07
거절하기 힘든 호의  (0) 2012.11.11
오지랖 열전-그리스인 조르바  (2) 2012.11.05
생존점  (3) 2012.10.30
Posted by 윤오순

어제 밤늦게 수제 컵케이크가 두개 배달되었다. 일부러 가져왔는데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데다 방금 저녁 먹었다고 하면 내일 먹으라고 하는 통에 일단 받아둬야했다. 가끔 이런 식으로 케이크나 쿠키 등이 배달이 될 때가 있는데 마냥 기쁘지가 않다. 원래 간식을 안 좋아하지만, 단맛으로 먹기에도 솔직히 그 케이크들은 맛이 별로다. 늘 느끼지만 반죽이 잘 못된 것 같기도 하고. 여유 생기면 베이커리 숍 오픈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일도 아닌데 걱정스러울 정도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류가 많이 포함된 음식들을 받을 때도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들고 온 성의를 생각하면 맛있게 먹어줘야 하는데 뚜껑도 안 덮은 채 그냥 들고 온 향신료 범벅의 그런 음식들은 그릇을 돌려줄 때까지 온 방안에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릇 돌려줄 때 빈그릇만 돌려주기 뭐하니 답례를 해야하는 데 괜히 억울해지기까지 하다. 


사실 이렇게 된 건 그릇 돌려주면서 그냥 스쳐가는 말로 "맛있었다"고 한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내가 아무리 착한 여자가 되는 일을 포기했다고 하지만 대놓고, 맛 별로였으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요리에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 본인이 장금이라고 착각하고 하는 요리들은 아주 못생긴 여자가 자기가 예쁜 줄 알고 하는 행동들 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게다가 맛있지, 맛있지, 하면서 권하기까지 하면 공포스럽기까지하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착한사람이 되는 일은 이미 포기했다지만, 갑작스럽게 거절하기 힘든 호의와 맞닥뜰릴 때 여전히 난감하다. 장금이도 아니면서 장금이 흉내를 낸 음식들을 만날 때면 더 그렇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리모찌 먹는 법  (1) 2012.12.07
겨울예감  (0) 2012.11.14
오지랖 열전-그리스인 조르바  (2) 2012.11.05
생존점  (3) 2012.10.30
장래 희망  (0) 2012.09.13
Posted by 윤오순

지난 5월 국제학술대회 발표차 그리스의 크레타에 다녀왔다. 발표가 끝난 후 시내에서 좀 떨어져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The Nikos Kazantzakis Museum)에 들렀었다. 어딘가에 그의 묘지도 있다고 들었는데 시간도 애매하고 교통편도 쉽지않아 포기하고 아쉽던 차에 박물관만 갔었더랬다. 개관은 했지만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여기저기 공사자재들이 널려 있어 밖에서만 보면 실망스러운데 안엔 육필원고들, 각 나라에서 번역된 그의 작품들 등 볼거리들이 꽤 있었다. 일본어, 중국어버전의 <그리스인 조르바 Zorba the Greek>를 보고 한국어 버전도 있겠지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없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이윤기씨도 크레타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고, 조르바 혹은 이윤기씨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이 심심찮게 크레타를 방문한다고 들었는데 아쉬웠다. 그뿐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또 바쁜 일들에 밀려 내가 크레타에 다녀왔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관련 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그리스인 조르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번역은 이윤기씨가 했지만 버전이 다른 책을 가지고 있는데(한국에) 출판사가 '열린책들'인줄 몰랐었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출판사에 메일을 띄웠다.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크레타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한국어 버전의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한권 보내주실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답변을 받을 거란 기대는 안했지만 혹시나 싶었다. 물론 출판사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내가 출판사 담당자라도 왠 오지랖인가 그랬을 것 같다. 가끔 일용할 양식이나 읽고 싶은 책을 보내주던 내 친구 기 노 작가가 생각났다. 특별히 바쁜 일 없으면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고 이윤기씨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책 한권만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덧붙여, 책 받고 놀랄지도 모르니 짧은 메시지도 책 보낼 때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한테서는 "접수!!" 라는 답이 바로 왔다. 그리고 또 잊고 있었다.


얼마 전 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인이 보낸 책을 받았으며, 잘 전시해놓겠다고 했다. 물론 많이 고맙다고 그랬다. 내 오지랖이 결실을 맺은 거다. 언제 한번 크레타에 다시 가고 싶었는데 박물관에 가면 반가울 것 같다. 에티오피아 디레다와 공항에 가면 난 기 노 작가와 김 훈 작가가 생각난다. 허름한 그 공항에서 아디스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친구가 싸인 받은 <남한산성>을 반이나 읽은 기억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가면 난 또 기 노 작가와 고 이윤기씨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예감  (0) 2012.11.14
거절하기 힘든 호의  (0) 2012.11.11
생존점  (3) 2012.10.30
장래 희망  (0) 2012.09.13
배신감  (2) 2012.09.13
Posted by 윤오순

가을이겠지 싶었는데 공기가 차가워진 게 어느덧 겨울문턱에 들어선 느낌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썸머타임이 끝나고, 어수선했던 주변은 내가 머물던 그곳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어 왠지 낯설다. 동기는 무사히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난 1년 넘게 노래를 불렀던 그 '마무리'를 아직도 못하고 있다. 엄마의 '사랑해!'와 친구의 '보고 싶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절하기 힘든 호의  (0) 2012.11.11
오지랖 열전-그리스인 조르바  (2) 2012.11.05
장래 희망  (0) 2012.09.13
배신감  (2) 2012.09.13
산책  (0) 2012.09.12
Posted by 윤오순

심심할 때 즐겨보는 비디오 클립이 여러 개 있는데, 88올림픽 개막식 장면 (다른 올림픽 개막식이랑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운동장에서 태권도 시범장면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우린 그때 저렇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면서...), 98년 박세리 US 오픈, 그리고 연아가 뛰었던 경기 몇가지, 여기에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특히 안현수), 세계육상선수권 장거리 종목의 에티오피아 선수들 뛰는 장면들이 추가된다. 2002 월드컵에도 명장면이 많은데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별 감흥이 없다.  


요즘 새로 재미 붙인 게 있는 데 런던올림픽 축구 8강전과 동메달 경기 후반전 시작하고 약 15분까지. 특히 동메달 경기 후반전은 전반전에서 박주영이 넣은 환상적인 골을 보여주고 시작하는데 12분쯤 지나면 우리의 구캡틴이 정신없이 또 한골을 넣는다. 그러면 한끼 식사가 끝난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눈여겨보던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 대표를 거쳐 국대 축구선수가 된 것 보고 나도 감개무량이다. 2002 월드컵때 애기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밖에 나와서 공부하면서 제때 챙겨서는 못 보지만 그래도 챙겨보려고 노력 중이다. 우즈베키스탄 전은 문자중계로 보고 하이라이트만 챙겨봤는데 우리 기식빵은 참 어쩜 그렇게 그 긴거리를 한 킥으로 깨끗하게 쏘아 올리는 지. 헤딩이 약하다고 늘 그러더니 아마 이번 실수로 정신 차리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쪽에서 골이 날라와도 무조건 골대위로 다 걷어 올릴 수 있도록. 영국 떠나기 전에 스완지랑 QPR 가서 기식빵이랑 지성이형 응원 쎄게 해줘야지. 


산책말고는 몸 움직여서 뭐 하는 것 딱 질색이다. 스포츠도 직접하는 건 별로고 눈으로 보는 것만 즐긴다. 가끔 경기장을 찾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더 게을러져 주로 지난 경기를 챙겨보는 편이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스포츠 경기 보는 걸 좋아하는데 나이 들면 아이패드 들고 스포츠 중계 보는 걸로 소일하지 않을까 싶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랖 열전-그리스인 조르바  (2) 2012.11.05
생존점  (3) 2012.10.30
배신감  (2) 2012.09.13
산책  (0) 2012.09.12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Posted by 윤오순

어려울 때 많이 도와줬으니 내가 부탁하면 당연히 도와주는 시늉이라도 낼 줄 알았다. 그것도 기대라고 무너지네. 앞에서 온갖 생색은 다 내고, 정작 꼭 해줘야할 일은 깨끗하게 거절해버리네. 난 흉내내고 싶어도 못하겠다. 얼굴이 뜨거워져서. 부끄러운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영악하다못해 너무 이기적이다. 원칙은 안 배우고 요령만 터득해서 잔머리들은 끝내준다. 나도 이제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건가. 어쨌거나 부디 잘 먹고 잘 살기를....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존점  (3) 2012.10.30
장래 희망  (0) 2012.09.13
산책  (0) 2012.09.12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내 손이 하는 기억들  (0) 2012.09.07
Posted by 윤오순

자주 다니는 산책로가 있는데 걷다가 말을 탄 아줌마들 두명을 만났다. 여긴 자전거 탈 때도 눈에 잘 띄게 형광색으로 된 조끼를 입는데 말탄 아줌마들도 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말꼬리에도 형광색의 띠가 부착되어 있었고. 하이, 하고 먼저 아는 체를 해서 나도 얼떨결에 하이, 하고 말았지만 아주 큰 말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그 말 위에 앉아 있어 눈을 마주치기위해 고개를 버쩍 들어야 했다. 


기숙사 컴파운드를 나와 한 30분쯤 걷다보면 목장이 나오는데 말들도 보이고, 양들도 보인다. 처음엔 내 발소리에 움직이는 시늉들을 했었는데 요즘은 아는 체도 안한다. 내가 왔는지, 지들을 지나가는지....걸으면서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까, 오늘 여기에 쓴 부분을 저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내가 이나라저나라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은 지금 뭘 할까,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들을 다 하는 날도 있고, 정말 아무 생각없이 쭉 걷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도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도중에 말탄 아줌마들을 만난 것 빼면. 


날씨는 어제보다 더 쌀쌀해졌다. 어제는 반소매 티셔츠 위에 자켓을 걸치고 나갔는데 오늘은 긴소매 티셔츠에 같은 자켓을 입었어도 약간 추위가 느껴졌다.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나 아직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래 희망  (0) 2012.09.13
배신감  (2) 2012.09.13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내 손이 하는 기억들  (0) 2012.09.07
후루룩 국수 시식기  (0) 2012.09.06
Posted by 윤오순

내 유랑의 동반자 목록에 늘 빠지지 않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라디오다. 물건 사면서 경품으로 따라 온 것 같은데 건전지 네개만 넣으면 거의 1년을 들을 수 있다. 낯선 나라에 갈 때도 들고 가는데 프로그램 정보를 몰라도 그냥 잡히는 주파수를 듣는 편이다. 라디오가 낯선 곳이 금방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영국에 있는 동안은 집에 있을 때 늘 BBC 라디오 클래식 채널을 틀어 놓는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즐겨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 행운에 감탄한다.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다. 영국, 한국, 일본의 선호하는 클래식 음악들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 자주 듣던 에릭 사티를 여기서는 자주 못 듣는다. 모짜르트도 자주 안 나오는 것 같고. 조지 거쉰이나 림스키 코르사코프, 비발디, 베토벤은 여기서도 자주 듣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번이나 베토벤의 합창을 들을 때도 있다. 방송국 내에서 그날 내보내는 음악에 대해 미리 상의를 하지는 않나 보다.     


방금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악장이 끝났다. 색다르게 편곡되어 내 귀를 확 잡아당겼다. 곡이 끝나자 진행자가 "으흐흐흐"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 추위에 떠는 모습을 소리낸 것이겠지. 공연기획자로 일할 때 한 해에 20회 넘게 서로 다른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공연장에서 비발디 <사계>를 연주한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이 곡은 어떤 장이 나와도 반갑다. 방금 전처럼 가을에 듣는 '겨울'도 좋고, 겨울에 듣는 '봄'도 좋다. 보통 공연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연주되는 곡들을 귀가 닳도록 듣는다. 회사에 있는 음반이면 그걸로 듣고, 음반이 없으면 사서 듣는다. 그렇게도 못 구한 음반은 연주자들에게 미리 부탁을 해서 씨디를 받기도 한다. 공연 당일 공연장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리허설에도 배석을 해야했으니 비발디 <사계>는 곡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주 스타일까지 아주 달달 외울 정도다. 그래서 색다른 편곡의 비발디 <사계>가 나오면 반갑고, 전에 순회공연하던 생각이 많이 난다. 이 블로그에도 아이리시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시골 동네에 공연 갔던 에피소드를 올려놓은 적이 있다. 그때도 <사계>가 연주되었다. 


라디오 덕분에 일요일 오후 갑자기 내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천상병 시인이 살아계실 때 93.1 클래식 채널을 즐겨 들었다고 하셨는데 10년 이상 꾸준히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분이 느낀 재미나 내가 느끼는 재미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신감  (2) 2012.09.13
산책  (0) 2012.09.12
내 손이 하는 기억들  (0) 2012.09.07
후루룩 국수 시식기  (0) 2012.09.06
9월 망중한  (2) 2012.09.05
Posted by 윤오순

외국어를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요. 일본국제교류기금 간사이센터에서 일본어 공부할 때 내 튜터가 그랬다. 네가지를 동시에 해야한다고. 읽기, 쓰기, 말하기, 그리고 듣기. 읽을 때는 소리내서 크게 읽고, 손이 다 기억하기 때문에 쓰면서 공부하고, 좋아하는 목소리를 정해 그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라 그랬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데는 같은 단어를 적어도 1000번 이상 반복해서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지. 네가지 방법 중 손이 기억하니 쓰면서 공부해야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 다들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계를 사용하니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니 손이 내가 한 공부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확인해볼 기회 또한 거의 없다.


카레 만들어 먹는다고 양파를 썰다 한순간이었다. 왼쪽 검지에서 피가 막 뿜어져 나왔다. 한시간이 넘도록 지혈이 안돼 걱정스런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심장 위쪽으로 손을 들라고 그런다. 입은 옷으로 피가 흘러 내릴까봐 베인 곳을 그냥 손으로 꾹 누르기만해서 지혈이 안되었던 거다. 화장실 세면대에 몸을 기대고 손을 번쩍 들고 있은 지 얼마 지나지않아 다행스럽게 지혈이 되었다. 상처가 심해보여 걱정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더니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 않는 한 수술같은 건 필요없단다. 2주 정도 물이 안닿게 잘 관리를 하라며 반창고 하나 붙여주고는 그냥 가라는 거다. 기뻐해야할 것 같은데 혼자 소동피운 생각을 하니 뭔가 좀 억울했다. 떨어진 살이 보이니 적어도 몇바늘은 꼬매야되는 줄 알았다. 


일본에 있을 때 자전거 사고로 왼쪽 장지를 다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검지 손가락 끝의 베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장지 마디 끝, 그러니까 바닥과 연결된 곳이라 왼쪽 손을 전혀 쓰지 못했다. 샤워할 때도 요리할 때도 물이 닿을까봐 장갑을 껴야했다. 의사가 그러라고 그랬다. 근데 검지는 간단했다. 이번에도 샤워할 때, 요리할 때는 라텍스 장갑을 사용하긴 했는데 낫기까지 확실히 수월했다. 손 씻을 때도 손가락 보호대를 끼거나 아니면 손가락을 살짝 들면 그만이었다. 2~3일에 한번씩 반창고만 갈아주면서 그렇게 조심한 끝에 상처가 아물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싶게 감쪽같다.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에 감동을 했더랬다.


근데 문제는 요즘도 손을 씼을 때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들거나 하면서 베었던 자리에 물이 닿을까 조심을 한다는 거다. 거참 신기하다. 일본어 선생님이 얘기했던 손이 기억한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아침먹고 노트에 히라가나를 한번 죽 써봤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  (0) 2012.09.12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후루룩 국수 시식기  (0) 2012.09.06
9월 망중한  (2) 2012.09.05
새로운 커피투어리즘 연구자  (2) 2012.09.01
Posted by 윤오순



지난주에 아시안마켓에서 사온 후루룩국수를 오늘 점심에 드디어 개봉했다. 일반라면에 비해 먹기가 엄청나게(?) 번거로웠다. 동시에 국수도 삶고, 장국도 끓여야 하는데 그러면 냄비를 두개나 사용해야 하고, 또 국수를 삶아 건져 찬물에 행궈야하니 나같이 게으른 자취생한테는 영 안맞는 음식이었다.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 같고. 


편법으로 국수 삶는 동안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고, 국수를 건져내 찬물에 행궈 물기가 빠지는 동안 포트의 끓인 물을 부어 국물을 만들었다. 맛은 예상외로 괜찮았다. 화학조미료의 승리겠지. 국수면발도 적당했고, 식감도 좋았다. 봉지 뜯었을때 면발이 가늘어 보여서 볶음용 쌀국수나 팔도비빔면을 떠올렸는데 삶아 건져놓으니 보통 국수면발 정도였다. 


유럽용이라 설명이 전부 외국어로 되어있는데 외국애들이 잘 알아서 끓여먹을지 궁금하다.국수를 건져내지않고 일반라면처럼 그냥 끓여먹으면 맛이 없을려나? 국수 개념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말에 나가서 몇개 더 사와야겠다. 


사진출처: http://0sunsee.tistory.com/210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내 손이 하는 기억들  (0) 2012.09.07
9월 망중한  (2) 2012.09.05
새로운 커피투어리즘 연구자  (2) 2012.09.01
러시아에서 온 E를 보내며  (0) 2012.08.31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