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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05 9월 망중한 2
  2. 2012.09.01 새로운 커피투어리즘 연구자 2
  3. 2012.08.31 러시아에서 온 E를 보내며
  4. 2012.08.28 태풍 볼라벤
  5. 2012.08.27 내 인생의 로또
  6. 2012.08.26 일요일 오후
  7. 2012.08.25 불쌍한 유학생의 넋두리
  8. 2012.08.23 영국의 여름 날씨 2
  9. 2012.07.26 빨리와, 빨리와!!
  10. 2012.07.15 빨래방 다녀오면서

마음은 아직도 7, 8월인데 벌써 9월에다 가을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한다. 아메리카노 한잔 만들어 마시면서 딴짓 중이다. 어제 같이 일하던 사감 하나가 그만두면서 조촐하게 파티(라기 보다는 조촐한 뒷담화 모임)를 했는데 남겨둔 사과파이도 함께 처리 중. 맛이 좀 되네? 


어제 그 자리에 미국에서 온 사감도 있었고, 영국인 사감도 있었는데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둘다 학생들이 놀라워하면서 네 영어는 '거의' 완벽하다고 했을 때란다. 영어공부 하러 오는 애들이 많은데 네이티브 스피커들한테 참나. 사감들 중에는 나 같은 외국인들이 많아서 다들 그러려니 했겠지. 그래도 참 맹랑한 학생들이다. 미국에서 온 사감은 평소에도 모국 유나이티트 아메리카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인데 얼마나 나 미국에서 왔어요, 하고 싶었을까. 할줄 아는 요리, 자기네 나라 대표음식, 여행했던 나라, 공부했던 나라, 할줄 아는 외국어, 요즘 흰머리가 늘어나는 이유 등등에 대해 사정없이 수다를 떨다보니 금방 11시. 우리의 본격적인 업무는 밤 11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새벽 3시가 다 될때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통에 단단히 혼내 줄 생각으로 나갔는데 결국 어떤 방인지 못찾았다. 방에서는 들리는데 나가서 찾으면 잠잠. 결국 잠만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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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그동안 에티오피아 커피투어리즘 연구는 혼자하고 있었는데 교토대학의 시게타 마사요시 선생이 공동연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유럽의 몇개 대학 젊은 연구자들이 공동연구에 대한 관심 메일을 보내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커피나 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망설이는 중이었다. 


지난해 출간한 공부유랑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게타 선생은 에티오피아 관련 연구만 30년 이상 하셨고 엔셋(enset)이라는 식물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실천적인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이다. 엔셋은 가짜 바나나 (false banana)라고도 부르는데 멀리서 보면 꼭 바나나 나무처럼 생겼다. 에티오피아 남부, 서남부 지방에 가면 엔셋이 지천이다. 대개 엔셋 아래에 커피를 키우는 농가들이 많다. 잎은 음식을 싸거나 비올때 우산의 용도로, 뿌리는 꼬쪼라는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다. 테프(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의 원료)가 자라지 않는 곳은 인제라 대신 꼬쪼를 만들어 먹는다. 인제라나 꼬쪼를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더러 있긴 한데, 딱 하루 신기한 기분에 먹는 게 아닌 이상 그게 맛있다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 난 둘다 별로라서 에티오피아 연구자들이랑 얘기할 때 그런다. 난 절대 에티오피아 지역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카파에서도 인제라가 안 나오는 날은 거의 매일 꼬쪼를 먹었다. 가장 신선한 재료로 만든 꼬쪼라며 그릇에 담긴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걸 권해도 맛있게 먹기가 힘들었다. 초대된 집에서 내 몫으로 나온 꼬쪼를 다 먹으면 다들 박수를 치는 통에 쑥쓰러워하곤 했다. 한덩어리 먹고 나면 그걸로 식사 끝이다. 모양은 우리나라 감자떡 같이 생긴 것도 있고, 시루떡같이 생긴것도 있고 다양하다. 


시게타 선생은 자주 에티오피아에 가시는데 엔셋과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서 앞으로는 커피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보겠다고 하셨다. 엔셋이 있는 곳엔 거의 커피가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해야하나. 본격적으로 에티오피아 커피투어리즘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외국인 연구자가 생겨 기쁜 마음에 몇자 적는다.  


사진출처: http://vive-rie-ama.blogspot.co.uk/2010/06/on-our-way-to-omo-valle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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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모스크바에서 3주 일정으로 영어연수를 왔던 E가 드디어 떠났다. 무슨 말을 하면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예스예스, 라고 하지만 눈빛으로는 영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는 표현을 해대는 통에 무척이나 난감했었다. 내가 담당하는 애들 중에 러시아에서 온 학생들이 있나 찾아봤지만 어쩜 한명도 없었고,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학생이 보여서 노크를 했다. 너 러시아어 할 줄 알지, 대뜸 그랬더니 네가 어떻게 그걸 아냐면서 당황스러워한다. E에 대한 사정을 얘기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시내에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비롯해 학교가는 방법, 버스타는 방법 등을 러시아어로 쉽게 설명해주라고 부탁을 했었다. 


지내는 동안 아제르바이잔 학생한테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문은 거의 매일 두드렸다. 첫날 거의 자정무렵에 도착했는데 히터가 안돌아간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 쓰레기통이 안열린다 (발로 눌러야 하는데 그게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계약서에 이런 표현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 등등 쉴새없이 노크를 했다. 기숙사 사감일을 하면서 내가 유학생들의 엄마가 된 느낌을 많이 받는데, E가 내 방문을 두드릴 때도 그 생각이 들었다.


E가 나를 찾아올 때마다 오늘은 뭐 배웠냐,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 시장은 잘 찾아갔냐, 버스는 탈 줄 아느냐 등등을 묻곤 했는데 3주간 영어가 그렇게 많이 는것 같지 않다. 체크아웃 리스트에 싸인을 하면서도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눈빛을 깜빡깜빡, 잘 모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 보면.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네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고 짧은 포옹을 하고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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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리가 뒤숭숭할 듯. 그냥 잘걸 괜히 뉴스를 봤나 싶다. 태풍 볼라벤이 남부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중이란다. 일본의 오키나와가 난리났다는 소식 들었는데 제주를 포함한 한국의 납부지역이 지금 그런가보다. 서울도 안전을 장담 못한다던데 걱정이네. 볼라벤은 지난 매미보다 더 센 태풍이라니 잠이 확 깬다. 태풍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피해가 크지 않아야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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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키다리 아저씨, 우렁각씨. 둘중에 하나만 있어도 인생 땡잡은 일일 텐데 난 그 두가지가 다 있으니 로또도 이만저만 로또가 아닌 거지. 왠만한 일들은 터졌다하면 대개는 이 두사람들 손에서 해결이 된다. 일처리 범위는 실로 다양하다. 


논문쓰기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던 일들이 우렁각씨 덕분에 오늘 깔끔하게 정리됐다. 고마워, 이말밖에 못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우렁각씨 혹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후련한 마음에 오늘 점심은 간만에 포식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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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어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한시간쯤 지났나 싶을 때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신은 역시 내편. 정말 거의 뛰다시피해서 시장엘 다녀왔다. 중간에 가랑비 비스무리한게 내렸지만 내 갈길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시안마켓에 가서 늘 먹던 라면들과 새로 출시한 이름 생소한 라면들을 구입한 후 세인즈베리로 서둘러 움직였다. 허기질 때 장보면 안된다는 거 알면서도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절제하기가 힘들었다. 실로 오랫만에 카트가 넘치도록 장을 봤다. 화장지 한꾸러미, 세제 같은 것도 있었으니 완전 다 먹을 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방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있을 때쯤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회심의 미소를 날렸드랬지. 내 냉장고는 더 이상 어제의 냉장고가 아니었고.


장보면서 거의 반년만에 그라운드 커피 250그램을 샀다. 당근 블랜딩된 아라비카 커피. 커피는 맛있는 커피점에서 사먹자주의였는데 가끔 비도 오고 그럴땐 참아야해서 한번 구입해봤다. 난 커피를 매일 마시는 중독자도 아니고, 하루에 수십잔씩 마셔야하는 바리스타나 콩사냥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땡길 때만 마시는 편이라 한번에 10그램씩 끓여 마신다고 해도 스물다섯잔 다 마실려면 꽤 걸릴듯. 어쨌든 깡통을 땄으니 빨랑 해치워야해서 오늘 당장 한잔 쭉 뽑아봤다.


일본에 살때 옆방의 김상 남친이 이탈리아 갔다오면서 선물로 준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 (흔히 모카포트라고 부르는)가 있는데 아직도 여기저기 나를 따라 다닌다. 아래쪽에 정수된 찬물을 채우고, 커피가루를 느낌상 10그램 조금 못되게 담아 살살 흔들어 준 다음 커피메이커 위 아래를 아주 힘껏 돌렸다. 추출하면서 단 한방울의 커피도 흘리고 싶지 않아서다. 커피메이커에서 돌돌돌 소리가 날 정도의 시간이 지나 불을 끈후 여열 위에 커피메이커를 그대로 올려놓은 채 우유 반잔을 전자렌지에 돌렸다.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올 정도로. 추출한 커피를 데운 우유에 부으면 즉석 카페라떼. 뜨거운 물에 부으면 카페 아메리카노. 커피마시면서 어제 주전부리할 것좀 사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엄마가 빨리 논문 끝내고 공부하듯이 연애 열심히 하라시면서, 사랑이 식으면 사람이 더위 먹은 개가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긴장감도 없고, 모든 게 다 귀찮아지고, 해야할 일을 안해도 별로 데미지도 없고. 생각해보니 그러네. 외교통상부 표절사건 후에 이외수 선생님께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는 연락을 드렸더니, 네가 말 안해도 요강 뚜껑에 물마신 기분일 거라며 선생님 스타일의 격려를 해주셨다. 맥락은 다른 위로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쩜 다들 저렇게 절묘한 표현들을 힘 안들이고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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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기숙사 옮기고 읍내가 멀어지면서 장 보러 갈 일이 점점 줄어드는데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 정기적으로 시장을 보려고 한다. 허나 마음뿐 이래저래 핑계를 만들다 결국 냉장고가 완전히 텅텅 비어야 행장을 꾸린다. 지난 목요일 냉장고에 도대체 먹을 게 없어 금요일엔 꼭 장을 봐야지 했는데 하루종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오늘로 미뤘다. 오호 통재라, 비는 아직도 내리는 중이다. 이런 날 읍내까지 걷기엔 무리니 버스를 타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내려도 너무 내린다. 방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다보면 흠뻑 젖을 게 뻔하다.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글을 읽어도 맛, 음식, 미각 이런 게 눈에 먼저 띈다. 로알드 달(Roald Dahl)의 얇은 단편집도 후다닥 읽었다. 제목이 <맛 Taste>이었는데 와인맛 내기하는 Taste 이외에는 음식자체에 관한 글은 안 나온다.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페이지는 잘 넘어간다. 부인이 양다리 뼈로 남편을 가격해 죽인 후 증거인멸을 위해 경찰들에게 그걸 끓여 먹이는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사건보다는 그 맛이 궁금해서다. 맛에 관해서 감칠맛나게 글을 쓰는 황교익씨가 쓴 <미각의 제국>도 다시 훑어봤다. 한국음식의 제왕은 참기름과 고추장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실 난 한 방울, 한 숟가락으로 음식맛을 평정해버리는 참기름과 고추장을 좋아한다. 이런, 김치비빔국수가 땡긴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 더 많은 비가 쏟아져서 오늘도 난 시장 가기를 포기해야할 것 같다. 월요일은 뱅크 홀리데이라서 모든 숍의 문이 닫히는데 기숙사 일 때문에 내일도 , 모레도 못 움직이니 화요일까지 버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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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가뜩이나 블로그 업데이트도 잘 안하는데 대문에 불미스러운 내용이 오랫동안 버티고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쓸까 고민했는데 만만한게 날씨다. 그 중에 영국의 여름 날씨. 그동안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해 기록차원에서 영국의 여름 날씨에 대해 적어본다.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가 96년 여름이었다. 아주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북쪽 스코틀랜드까지 올라갔었는데 추워서 목도리도 사고 그랬었다. 그 다음 온 게 2009년. 여름 지나 가을에 와서 여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10월 초였는데 하-, 하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역시나 추웠다. 2010년 여름은 한국에 들어가 있던 관계로 완연한 여름은 만끽하지 못했다. 작년엔 에티오피아에 있었고. 2011년에 여기서 여름을 보낸 한국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아주 추워서 전기장판도 돌렸단다. 그리고 2012년 여름. 


올해는 다른 나라에 갈 계획이 없어 영국 엑시터의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특징이라면 거의 날마다 비가 온다. 연중 우기라고 할 수 있는 나라지만 정말 징그럽게 내린다. 폭우가 쏟아질 때도 많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내리지는 않는데 밖에 나가기 겁날만큼 엄청나게 내릴 때도 많다. 주변에 숲이 많아 비 온 후에 세상이 맑아진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 그게 적지않게 위로가 된다. 기온은 확실히 올라간 것 같지만 습하지 않아 그래도 견딜만하다. 며칠 비가 왕창 쏟아지고 나면 제법 쌀쌀해져서 긴소매 옷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저녁엔 열대야 같은 건 상상하기 힘들만큼 서늘하다. 며칠 여름이 왔나, 싶었던 날들이 있었지만 난 이 여름에도 여전히 밤에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잔다. 


1960년대 일본 외교관들이 일본을 홍보하기 위한 표현으로 "일본은 겨울에 눈이 내린다"고 했었단다. 대개 개도국들이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겨울에 눈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은데 (기상이변을 제외하고) 우린 북반구에 위치한 잘 사는 나라라는 걸 에둘러 그리 표현한 것이다. 요즘의 한국이나 일본의 여름 날씨는 동남아를 방불케한다. 겨울엔 눈도 별로 없고. 기온이 높은데다 습하기까지해서 에어콘 없이는 못 견딘다. 홍콩에 갔을 때 아는 분이 "홍콩에서 남편(혹은 아내) 없이는 살아도 제습기 없이는 못 산다"고 했을 정도니 날씨가 상상이 가지 않나. 싱가포르나 홍콩이 내 공부유랑지 예정 리스트에 빠진 이유도 이 놈의 날씨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 보니 한국이나 일본도 빼야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비오는 영국도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몇개월 동안 습한데다 기온까지 높은 나라는 이젠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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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당장 한국에 들어가도 특별히 할일도 없는데 가족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다. 가서 푹 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사실, 한 1년 정도는 눈치밥 먹으면서 버틸 자신이 있지만,  지금 하는 연구가 재미있고, 또 의미있는 일이라서 쉽게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지속적으로 연구자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하는데 어디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커피 투어리즘이라는 내 연구테마에 관심있을만한 곳이 한국에 있으면 좋을텐데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여기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영국을 떠나고 싶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졸업하고도 신이 여전히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다. 습기도 없고, 적당히 따뜻한게 딴짓 안하고 논문쓰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커피 한잔 마신다는 핑계로 딴짓 중이다.

Posted by 윤오순

내 방에서 빨래방이 좀 멀다. 빨래 돌려놓고 다 되면 드라이까지 해줘야하는데 거기서 뻘쭘하게 앉아있기 뭐하니 다시 방에 왔다가 빨래방에 가곤 한다. 왕복 10여분? 한국에서라면 날씨 더운날 5분도 걷기에는 먼 거리였을 텐데 영국에 와서는 왠만한 거리는 다 그냥 걸어다녀서 그런지 이 정도는 그 까짓것, 하게 된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 여명을 가르며 빨래짐과 세제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그 거리는 솔직히 멀다. 그래도 빨래를 돌려놓고 방에까지 빈손으로 걸어 올때는 여유까지 생겨서 곧잘 딴 생각을 한다. 아침은 뭘 먹을까, 오늘은 논문의 어느 부분을 고칠까 등등.


요즘 한국은 '치유'가 대세라고 들었다.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대거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했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여유없이 살아서 그런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다들 참 바쁘다. 애들도 바쁘고, 어른도 바쁘고. 고정된 직장이 없는 내 부모님도 전화를 하면 늘 바쁘다 그러시고, 아직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들도 뭘 하는지 늘 바쁘다 그러고, 친구들도 여간해서는 나 요즘 한가해, 그런 소리들을 안한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한국에서는 늘 바빴었던 것 같다. 실속도 없이 말이다. 밖에 나와 공부하면서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하늘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늘 가던 길에 어제 없던 꽃이 새로 피었으면 아는 체도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여유없이 사는 생활 이제는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다. 공부 끝나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한국에 가서 또다시 실속도 없이 바쁘게만 사는 것 아닌지,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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