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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한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가와노 씨의 배를 타고 어망이 설치된 바다까지 나갔다. 아들과 함께였는데 봉오도리를 같이 준비하면서 안면을 터서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청의 직원이 이 지역 출신이라서 분위기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사투리들을 아주 심하게 써서 머리가 좀 아팠지만...

이 동네에 바다에서의 어업활동 허가를 받은 사람이 세 사람이라는데 가와노씨도 그중 한 분이다. 이 넓은 바다에 아무데나 가서 물고기를 잡아도 되는 거 아닌가 그랬었다.

그물이 아주 넓게 쳐져 있어서 물고기들을 잔뜩 건져올릴 거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40마리가 넘는 가오리 덕분에 망쳤다. 이런저런 크기의 가오리 구경은 실컷했지만. 날깨를 폈을 때 길이가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것도 잡혀서 현의 수족관에 연락을 해서 가져가라고 했다. 가끔 그렇게 잡힌 가오리나 특이한 물고기들이 현의 수족관으로 향한단다. 물론 공짜로. 가오리가 40마리나 되니 도저히 그물을 들어올릴 수가 없어서 가오리들 쫓아내느라 오전을 다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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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와서 난생 처음하는 경험들이 많은데 내겐 생활이 아니라서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생활이 된 이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가오리가 그렇게 많이 걸린게 내 책임이 아닌데 말이다.

가오리를 쫓아내느라 그물 밖으로 내보낸 물고기들 덕분에 오전의 어획량은 며칠 전 낚시로 건져올린 전어보다 양이 적었다. 사시미를 해 먹으라고 전부 아이스박스에 담아주셔서 미안해하며 들고왔다.

저녁엔 극장이 없는 이곳에서 혼자 영화제를 개최하는 분이 있다고 해서 만나러 갈 계획이다. 직업이 따로 있으면서 취미로 한다는데 가끔 유명한 영화감독들을 초대해 지역주민들에게 교류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단다. 어디나 적응하면 다 살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며칠 동안 인터넷 접속할 수 있는 곳을 발견 못해서 오늘 한꺼번에 올린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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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석회석 광산을 보러 산비탈을 한참을 올라갔다. 15미터 높이의 계단으로 깎아 내려가고 있는
광산 현장을 보면서 츠쿠미의 경제는 조상한테 물려받은 수려한 자연을 이래저래 이용해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세대들에게는 뭘 남겨 줄 수 있을까. 다 깎아내고 파헤치면 말이다.

점심은 배를 타고 호토지마라는 섬을 방문했다. 일본인들이 사는 집을 토끼장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실체를 볼 수 있었다. 섬의 토지가 넉넉하지 않아서 우리나라 방한칸 정도 되는 넓이로 건물을 2층, 3층 올려서 지은 주택들이 섬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집과 집 사이는 아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온 동네를 연결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어찌나 건강하신지 바구니들을 하나씩 지고 산비탈로 연결된 골목을 쉬지도 않고 올라다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경사가 높아서 머리에 이기도 힘들고 들기도 힘들어서 여기 사는 할머니들은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어 그곳에 짐들을 넣어 다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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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톤의 배로 미크로네시아까지 가서 참치잡이를 하신다는 원양어선 선장님을 한분 만났다. 7년만에 아주 젊은 사람이 배를 타게 돼서 요즘 살맛이 난다고 하셨다. 인도네시아에서 연수를 온 젊은 사람들 말고는 그동안 맨 60, 70 넘은 사람들 뿐이었단다. 배 타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자꾸 딴 생각을 했다.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그물을 내리고 남는 시간엔 뭘 할까 등등.

너무 더워서 츠쿠미시 출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어찌나 반갑던지. 물 한잔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배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왠 개들이 배안에 그렇게 많던지. 이런저런 배들을 많이 타봤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저녁엔 저 멀리 오오이타현의 농림청 직원을 홈스테이 하는 곳으로 초대해 농산물 판매 촉진활동에 대해 밤 11시가 넘도록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정된 월급을 현으로부터 받지만 과외로 현내에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날밤을 잊고 뛰어다닌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한테 들었다.

어디나 지역혁신의 핵심은 사람이었다. 미야자키현의 후쿠다씨를 새롭게 알게되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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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오늘 시내 견학을 했다.
섬 이쪽에서 저쪽까지. 물론 차로 이동했지만 날씨가 이글이글 완전 찜통이었다.

츠쿠미는 옛날에는 귤과 참치가 유명했지만 이제 농사짓는 사람들도 없고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어 어디다 이거다 하고 내놓을 게 없는 곳이다.
그런 이 도시에 양질의 석회석이 생산되는 덕분에 일본 국내 톱 3에 해당하는
태평양 시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앞으로도 200년 정도는 생산할 수 있단다.
산을 파 헤쳐서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츠쿠미시 도시 경관 일부는 좀 흉물스럽다.
어쨌거나 시내 견학을 하면서 이 공장의 높은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궁금한 이야기들을 물어봤다.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면서 자연파괴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더 이상 시멘트를 파낼 수
없는 곳은 녹지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도 최근에 쓰레기를
버릴 때는 쓰레기 봉투를 사야 하는데 츠쿠미시의 경우 돈을 주고 봉투를 사긴 사지만
종이 이외의 모든 쓰레기는 시멘트 공장이 처리를 해준다. 시에서는 상징적인 금액을
내고 쓰레기 전량을 소각해 시멘트 공장에 보내면 공장에서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시멘트 원료로 만들어 사용한다는데 품질은 전혀 차이가 없단다. 우리나라 시멘트 회사에서도
가끔 견학을 온다는데 이 시스템은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뭐 했더라. 더우니까 생각이 잘 안난다. 아, 이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근사한 공공도서관을 방문했다.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깥보다 시원해서 한참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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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집을 나와 배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츠쿠미 시청 직원 중에 이번 프로그램 담당 과장이 배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 배를 탔다. 배멀미 안하느냐고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햇빛만 강하지 않았으면 더 버텼을 텐데 10시까지 낚시를 하고 접었다.

이미 통에는 전어가 100여마리 담겨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해야하나. 넙치가 많다고 했는데 그건 한마리도 못 잡았다.

화천에서 산천어축제가 끝나고 얼음판에 나가 산천어를 열심히 건져 올리려 노력했지만 실패해서 내심 낚시에 자신이 없었는데 이게 왠걸. 낚싯대를 담그기만 하면 주루룩 달려 올라오는데 낚시의 묘미가 이런 거구나,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작은 새우를 아주 조그만 바구니에 담아 미끼로 썼다. 낚싯대에 바늘이 여섯개 달려 있어서 이런 저런 고기들이 따라 올라 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넷이 가서 둘만 성공했다. 과장이 어제 잡은 5킬로 정도의 도미를 선물로 줘서 저녁에 회를 떠서 먹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맛에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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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빼물만큼 날씨가 더웠는데 저녁엔 옆 마을 봉오도리에 참가했다. 프로그램에 춤대회가 있어서 팀을 짜서 참가했는데 심사위원 할아버지들이 한국에서 이 시골까지 왔다고 가산점을 주는 바람에 우리 팀이 1등을 먹었다. 상금을 5천엔 받았는데 이번주에 부침개 파티에 쓰기로 했다.

일본의 유명한 페스티벌은 이곳저곳에서 많이 구경했지만 지역주민들이 만드는 봉오도리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춤대회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 좀 썰렁했다. 가장행렬을 연상케하는 의상들을 전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준비해서 입고 있었는데 좀 서글프기도 했다.
관객이 다 떠나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동이 틀때까지 자리를 지킨단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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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찍부터 옆 마을의 봉오도리를 도회에서 고향을 찾은 젊은이들과 같이 준비했다.
노인회에서 만든 다양한 종이장식들을 여기저기에 달고 붙이고 땡볕에서 정신이 없었다.
종이학도 있었고, 꽃송이도 있었고, 오징어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오징어 모양의
종이장식도 있었다. 노인네들이 둘러 앉아 이걸 만들면서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찌나 꼼꼼하게 만들었는지 한번 쓰고 말 거라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8월13일부터 일본의 여기저기는 봉오도리 준비로 아주 분주하다. 오봉이라고 하는 절기다.
분위기가 딱 우리의 추석같은 데 이때가 되면 도회로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하나둘씩 모인다.
게스트하우스도 지방에 사는 애들은 지난 주말에 고향을 찾아 다들 떠났다.
이 시기에 일주일씩 휴가를 받기도 한다. 보통 8월 15일에 끝나기 때문에 대개 그 앞뒤를 쉰다.
츠쿠미시까지 올때 신간센을 타고 왔는데 객차가 아주 미어 터졌다.
방송에서는 몇 시에 사람이 몰리고 몇 시에 한가한 지를 중계할 정도다.

이 때 70, 80이 넘은 노인들만 지키던 마을이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는다.
8시간, 10시간씩 차를 운전해서 고향에 도착한 젊은이들은 봉오도리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준비한다.
봉오도리는 조상에 대한 제례의식인데 우리처럼 경건하게 치르는게 아니라 다들 한군데 모여 춤을 춘다.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전통을 지키는 마을에서
어떻게 봉오도리를 준비하고 주민들이 참가하는지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난생 처음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다인데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어 마치 프라이비트 비치처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늘 바다를 두려워했었는데 무슨 용기로 오늘
풍덩 빠져버렸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간단한 동작을 익힌후 혼자 10미터를 넘게 헤엄쳤다.

해수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해변에서 가족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이 동네 시보에 얼굴이
실린 덕분에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한다. 한잔 하고 가라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척 하고 주저 앉았다.

여행 오면 부끄러운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다는 데 이거 너무 자유로운 거 아닌지.
내일은 새벽 일찍 넙치를 잡으러 갈 것이다. 쓰고 나니 웃긴데 진짜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넙치를 잡을 것이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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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방법이 없다. 몇년 만인지 원.

아침 일찍 시청으로 출근해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과 출입증을 받았다.

츠쿠미시의 ADSL사업에 대한 설명을 2시간 정도 듣고 관광 프로그램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했다.
어딜 가나 이런 이야기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달라서 귀를 쫑긋하며 들었고 또 나름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풀어놨다.

점심을 푸지게 먹고 오후에는 센스이(仙水)라는 곳에서 <히마츠리火祭り>를 같이 준비했다. '히'는 일본어로 불을 의미한다. 불꽃놀이도 하고 뭔가 요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 그냥 감동 먹었다. 70대의 아라키 할아버지가 8년전에 사람들과 힘을 모아 시작한 페스티벌이란다. 요란한 폭죽도 없었고 수백개의 램프가 방파제 위에 죽 놓여지고 오후 7시가 되어 이 램프에 일제히 불이 켜졌다. 작은 어촌 마을이 별 세상이 되는 순간이다.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올라가 보았는데 10미터에 하나씩 놓인 램프에 어떤 노력이 숨어있는지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다. 낮에 땡볕 아래서 할아버지들이 모여 램프에 기름을 넣고 손질을 할 때만 해도 이게 어떤 페스티벌이 될까 궁금했는데 술도 없고, 흥청망청하는 것도 없이 아주 조용한 페스티벌이 밤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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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벚꽃이 이 마을을 덮는단다. 아직은 애기 벚꽃 나무들이지만 10년 후를 내다보고 몇 년 전에 심었단다. 물론 아라키 할아버지가.

아라키 할아버지는 좀더 근사한 히마츠리를 위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보다가 말레이시아에 근사한 불꽃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올해 1시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오오이타현의 대학에 유학을 온 말레이시아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내년 쯤에는 이런 마츠리를 열 거라고 오늘 자료들을 죽 보여주는데 시간이 되면 내년에도 한번 와 보고 싶다. 시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 30여 명이 모여서 매년 이 행사를 조용히 연단다.

세상은 조용히 자기를 태우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살만한 게 아닐까. 오늘도 푹 잘 잘 것 같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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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신간센을 타고  무려 8시간이나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
중간에 갈아타는 걸 헷갈려서 안가도 되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오면서 신간센 안에서 4시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친 하카다의 아가씨한테 핸드폰으로 메일이 왔다.
도쿄에서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뮤지컬을 배우는 학생이라서 음감이 발달되어서인지 발음도 깨끗했고, 바로 글자를 읽는 게 아닌가.
헤어질 때 자기 이름과 내 이름을 한글로 쓰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었다.

츠쿠미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에 화천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감이 넘친다.
오후 6씨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더니 성대한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윤오순님, 이런 플래카드까지 만들어놓고 기다릴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고 이제 잠자리를 고르기 직전이다.
내일부터 하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는데
나한테는 그냥 놀이같다.

아, 졸립다. 그러나 평화롭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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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회관 벽에 걸린 마리아 상이다. 아, 지극히 일본스럽지않은가. 무라사키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그림들이랑 아주 닮았다.


나가사키를 떠나오던 날 세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첫번째 친구
짐을 다 꾸린 후 유스호스텔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계속 이것저것 묻는데 일본에 와서 참 낯선 경험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지 않는가. 가족이 다 있는데 주말에는 이렇게 혼자 산으로 들로, 때로는 좋은 온천을 찾아 여행을 한단다. 나이는 한 50대 정도.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한국의 50대 아주머니가 호텔이 아닌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우를 아직 못 만나서 이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좀 끌렸다. 감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호기심 천국에 사는 소녀처럼 이것저것 묻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나도 여유를 부려가며 이렇게저렇게 대답해줬다. 우린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커피까지 다 마신 후 헤어졌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두번째 친구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평화공원 구역(나가사키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가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과 또 하나가 바로 평화공원 구역이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려는데 한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건다. 거참 아침부터 이상하네. 도쿄 근처의 가마쿠라에 살며 현재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란다. 애들이 자꾸 일본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아 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배낭을 딱 보니 두 서너달 짜리 여행자 같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 떨어져 실의에 젖어 있다가 혼자 영어공부를 해서 대학에 붙었다며 그 부분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봐도 그건 기특하네.
 
일본이 선진국이긴 한데 여러가지로 미국의 안 좋은 부분을 닮아가는 게 안타깝단다.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야.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이 친구와 평화공원 구역에 있는 여러 관광지를 같이 여행했다.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설명까지 곁들여줬다. 외국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면 무조건 칭찬일색으로 가자, 가 내 신조였는데 이 친구랑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일본에 대해 힐난을 해버렸다. 이 친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원폭 자료관이랑 이런 저런 기념관에 갔는데 이런, 온통 주위에 '평화' 밖에 없는 거였다. 왜 일본이 원폭참사의 피해국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평화가 소중하다는 이야기 밖에 없는 거라. 그 친구도 동감은 한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또 다른 기념관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쉽게도 이 친구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여행중일까.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이 친구는 나가사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을까. 교토에서 무려 12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에 왔다고 했는데...

세번째 친구
평화공원 구역 여행을 끝내고 점심은 나가사키역 쯤에서 먹어야지 하고 카톨릭 회관에다 맡긴 짐을 찾는데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이 전화가 처음이 아니고 같은 전화번호가 여러개 찍혀 있었다. 전날 스시집에서 만난 벨로루시 청년 '파샤'였다. 학교가 지금 끝났는데 괜찮으면 나가사키 시내를 안내해주겠단다. 계획한 여행은 이미 거의 끝났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금방이라고 해서 그럼, 금방 오라고 그랬다. 그리고는 파샤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인만 아는 나가사키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날씨는 어찌나 덥던지. 난 crazy wheather을, 파샤는 stupid wheather를 외치며 무슨 숙제하듯이 시내를 훑었다. 첫날 비가 와서 안개 속에 묻혀 잘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마지막 행선지로 잡았다.

바다를 향해 가면서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의 애환, 외국인 유학생으로 사는 사람의 애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 사람의 애환에 대해 들어줬다. 앞으로 국제관계를 공부하려는 파샤는 내가 벨로루시란 나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단다. 그리고 EU에 27개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안다는 사실도 좀 의외였단다. 그러나 어쨌거나 국제개발을 전공하는 사람을 이 나가사키에서 만나 아주 반갑단다.

일본어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가장 높은 등급인 1급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에 아시아 언어과가 있었는데 자기는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선택했고 당시 선생은 벨로루시 사람이었단다.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 일본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며 일본어가 너무 배우고 싶으니 선생과 교재를 좀 보내달라고 했단다. 대단한 열정 아닌가.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일본인 선생이 파견되었고 딱 두명의 학생이 그 선생한테 일본어를 배웠단다. 이것 보면 일본도 또 대단한 나라다. 그 후 자기는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고 일본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지금 일본에 와 있는 거란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생긴 모습이 전혀 아시아쪽이 아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는 것 보면, 그 인연이 참 궁금해진다.

바다를 보고 난 후 우린 헤어졌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나가사키에서 자기를 찾아 온 손님에게 나가사키를 안내할 일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거라 괜찮단다. 너네 학교에 꼭 갔으면 좋겠다, 고 해서 꼭 그러라고 했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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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난 것 같다.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슨 지금쯤 메일을 한 번 보내야 내가 그 친구를 잊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카톨릭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이미 돌아가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침을 공짜로 준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한테 물어봤더니 스시집을 하나 추천해줬다. "미노부스시'라는 곳인데 한 접시에 100엔이라고 해서 처음엔 회전초밥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반 스시집 같은 곳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스시는 무조건 한 접시에 100엔이라는 거.

아직 일본 스시 이름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막 고민하고 있는데 외국인 하나가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 잘난 척을 하면서 스시를 고르더니 종이에 스시 이름을 쓰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영어로 쓰고 있었다. 참치 스시면 "MAGURO", 요렇게. 뭐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나도 한 두어개를 그런 식으로 시켰다. 그러나 스시 두 개로 한끼를 떼우기엔 난 너무 허기져 있었다.

내가 주문에 허우적대는 걸 보고 이 친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스시는 말이지...일장 연설을 해준 덕에 겨우 4개를 더 시킬 수 있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맞춰 보라는 거 아닌가. 바로 그냥 "Where are you from?" 해버릴 생각이었는데.

딱 생긴게 유럽풍이다. 그것도 저 동유럽풍이다. 러시아 쪽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일단 발틱 3국부터 훑어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이 친구 좀 놀라는 거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내려 오려고 하던 차에 그냥 "나 벨로루시에서 왔어." 실토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에서 아직 한번도 자기 나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댄다. 이런... 내가 그 심정 좀 알지. 모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어 있어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모르던 나라에 내가 있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대화의 물꼬가 스르르 풀리던 차에 일본에서 뭐하냐, 학교 다니냐, 어느 학교 다니냐까지 왔다. 그리고 내 입에서 히토쓰바시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냥 놀라더니 자기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 말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벨로루시 말이란다. 그리고는 10분도 안 되어 또 한 명의 벨로루시 청년을 만났다. 히토쓰바시라는 대학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5명의 사람한테 추천을 받았고 이제 한번만 더 인연을 만나게 되면 이 학교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었단다. 이런.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첫번째 만난 친구는 'IIYA'라는 친구로 현재 나가사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두번째 만난 친구는 'PASHA'라는 친구로 일본에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올해 4월에 나처럼 일본에 왔다. 우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아주 수다스럽게 떠들었고, 스시집에 왔으면서 스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학회가 끝나 나른하던 차에 실컷 떠들어 피곤하기까지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내일 또 보자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이야'가 조용히 있는 '파샤'를 가르키며 이 친구는 늘 한가하니까 내일 네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파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그래서 뭐 시간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교황이 머문 곳도 내가 머문 이 다다미방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그날 아주 푹 잤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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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일본 저 남쪽 큐슈에 있는 나가사키에 다녀왔다. 홋가이도, 오키나와까지 구경을 했는데 큐슈는 영 기회가 없다가 이번에 학회를 한다고 하기에 그냥 냅다 티켓을 끊었다.

44회째 아프리카 관련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있다는 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40년 전이면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아프리카 관련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아프리카 여기저기에 일본인들 없는 곳이 없지. 이틀 동안 진행된 학회에서는 발표자만 150여 명이 넘었고 분야는 농업, 지역개발, 문화예술, 교육, 젠더, HIV/AIDS 등 엄청 다양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대륙 54개 나라 중에 연구자가 하나도 없는 곳도 있을 텐데 여기는 내가 본 것만 해도 한 나라에 수십명의 연구자들이 있다. 자기 돈 주고 연구하기는 힘들테고 어딘가에서 지원을 한다는 건데 참 부럽다. 내가 연구하는 에티오피아 쪽에도 연구자가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그 분야가 참으로 다양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엎고 다시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이틀은 학회 대회장에서 보내고 이틀은 나가사키 여행을 했다. 출발하기 전에 별로 정보를 얻을 시간이 없어서 여행사 앞에 꽂힌 팜플렛에 큐슈 혹은 나가사키라고 적힌 것들을 챙겨 공항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새벽 4시 근방이었지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6시 55분 비행기를 타고는 비행기 앞 좌석에 꽂힌 나가사키 관련 자료들로 대충 지리적인 위치와 관광지 파악을 끝냈다. 그리고 다시 나가사키 공항에서 나가사키 중심에 있는 나가사키 역까지 리무진을 탔다. 편도는 800엔인데 왕복으로 끊으면 1200엔이라는 고급정보를 비행기에서 얻었기 때문에 시키는대로 했다. 나가사키역에 도착해서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데스크에 앉아 있는 아가씨와 가급적 동선을 짧게 하는 여행일정을 도라도란 짰다. 맛집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정신없이 관광을 했다. 이 얼마만인가. 여행이 아닌 관광이. 우울했던 5월을 확실하게 마감하기 위해 습도가 70%가 넘는, 가히 동남아시아의 그 어디를 방불케하는 나가사키 시내를 종횡무진했다. 첫날 오전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3일 동안 비 예보가 없다는 말에 그냥 비를 맞으며 쏘다녔다. 무슨 숙제하듯이 나가사키를 구석구석 훑고 다녔는데 이틀 후 나는 누구를 만나도 나가사키에 관해 잘난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