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숙사 사무실의 라운지에 유학생들이 모여 올림픽 개막식을 함께 봤다. 프로젝터를 벽에 쏴서 좀 큰 화면으로 봤는데 중국인 유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한민국이 입장할 때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이 입장할 때도 환호를 날려줬다. 작년 이맘때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이후 거의 1년만에 보는 국제규모의 스포츠 이벤트인지라 기대를 잔뜩 안고 마지막 성화 주자 리닝에 의해 성화가 점화될 때까지 스크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장이모의 스케일 큰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개막식 공연은 별로 감흥이 오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는 빨랑 다음을 보여줘, 를 외치고 있었다. 독주회 하면 딱 좋을 무대에서 풀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까지 들었다. 돈도 많이 썼다고 그러더만 와우, 할 만한 크리에이티브한 건 별로 없었다. 인구 5만, 6만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은 메인스타디움에 모인 관중 수와 운동장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무용수들의 수에 우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개막식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이 자랑하는 인해전술로 그~~냥 밀어부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참가 선수가 달랑 하나, 혹은 두 셋인 나라가 등장하면 무조건 유학생들로부터 박수를 유도하며 환호를 세게 날려줬다.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갔을 때 그곳엔 분명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60여 년 전 거기가 왜 참혹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알 수가 없었다. 어제 북경의 올림픽 주경기장에도 '평화'는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평화는 아니었다. 개막식에서 미국의 성조기 기수는 수단의 다르푸르 출신의 난민이었다. 티벳이나 위구르의 소수민족(이 표현은 말도 안된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전국토의 1/6을 점하고 있는데 어디 여기 사는 사람들이 소수민족인가?)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다. 그 모든 사태의 중심에 중국이 있지만 개막식 어디에서도 그런 메시지는 읽어낼 수 없었다. 중국국기가 소수민족 어린이들 손에서 로보트 같은 군인들 손에 넘겨지는 것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세계는 하나'라고 하지만 제 29회 북경올림픽 개막식에도 여전히 네셔널리즘은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한민국, 이 소리만 나와도 벌써 박수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1988년부터 올림픽 개막공연을 쭈~~욱 봐주고 있는데 올림픽 주제가는 누가 뭐래도 그룹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가 베스트인 것 같다. (어제 사라브라이트만은 왜 등장했대?) 정적 속에 지구 이미지를 표현한 건 뭐니뭐니해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아이디어라고 하는 그 굴렁쇠와 소년. 파워풀한 태권도 퍼포먼스가 끝나고 갑자기 운동장이 조용해진 후 등장한 굴렁쇠 소년 윤태웅 군. 지구와 관련된 건 운동장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메시지의 울림은 무우척이나 크고 강했다. 어제 리닝이 성화를 손에 들고 줄에 메달려 유영한 것 보다, 땅 속에서 지구가 솟아 오른 것 보다 훨~~씬 더. 당시 한국에 맥도널드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는 데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어제는 올림픽 주제가도 시시했고, 심하게 넘치는 디지털 기술과 무조건 인해전술로 밀어부치는 매 씬에 눈도 쉬 지쳐버려 경기까지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최민호가 유도에서 따낸 금메달로 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조금 증폭됐다. 나의 아조 뜨거운 여름은 올림픽과 함께 흘러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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