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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2 산책
  2. 2012.09.09 가을에 듣는 겨울
  3. 2012.09.07 내 손이 하는 기억들
  4. 2012.09.06 후루룩 국수 시식기
  5. 2012.09.05 9월 망중한 2
  6. 2012.09.01 새로운 커피투어리즘 연구자 2
  7. 2012.08.31 러시아에서 온 E를 보내며
  8. 2012.08.28 태풍 볼라벤
  9. 2012.08.27 내 인생의 로또
  10. 2012.08.26 일요일 오후

자주 다니는 산책로가 있는데 걷다가 말을 탄 아줌마들 두명을 만났다. 여긴 자전거 탈 때도 눈에 잘 띄게 형광색으로 된 조끼를 입는데 말탄 아줌마들도 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말꼬리에도 형광색의 띠가 부착되어 있었고. 하이, 하고 먼저 아는 체를 해서 나도 얼떨결에 하이, 하고 말았지만 아주 큰 말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그 말 위에 앉아 있어 눈을 마주치기위해 고개를 버쩍 들어야 했다. 


기숙사 컴파운드를 나와 한 30분쯤 걷다보면 목장이 나오는데 말들도 보이고, 양들도 보인다. 처음엔 내 발소리에 움직이는 시늉들을 했었는데 요즘은 아는 체도 안한다. 내가 왔는지, 지들을 지나가는지....걸으면서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까, 오늘 여기에 쓴 부분을 저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내가 이나라저나라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은 지금 뭘 할까,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들을 다 하는 날도 있고, 정말 아무 생각없이 쭉 걷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도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도중에 말탄 아줌마들을 만난 것 빼면. 


날씨는 어제보다 더 쌀쌀해졌다. 어제는 반소매 티셔츠 위에 자켓을 걸치고 나갔는데 오늘은 긴소매 티셔츠에 같은 자켓을 입었어도 약간 추위가 느껴졌다.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나 아직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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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내 유랑의 동반자 목록에 늘 빠지지 않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라디오다. 물건 사면서 경품으로 따라 온 것 같은데 건전지 네개만 넣으면 거의 1년을 들을 수 있다. 낯선 나라에 갈 때도 들고 가는데 프로그램 정보를 몰라도 그냥 잡히는 주파수를 듣는 편이다. 라디오가 낯선 곳이 금방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영국에 있는 동안은 집에 있을 때 늘 BBC 라디오 클래식 채널을 틀어 놓는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즐겨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 행운에 감탄한다.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다. 영국, 한국, 일본의 선호하는 클래식 음악들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 자주 듣던 에릭 사티를 여기서는 자주 못 듣는다. 모짜르트도 자주 안 나오는 것 같고. 조지 거쉰이나 림스키 코르사코프, 비발디, 베토벤은 여기서도 자주 듣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번이나 베토벤의 합창을 들을 때도 있다. 방송국 내에서 그날 내보내는 음악에 대해 미리 상의를 하지는 않나 보다.     


방금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악장이 끝났다. 색다르게 편곡되어 내 귀를 확 잡아당겼다. 곡이 끝나자 진행자가 "으흐흐흐"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 추위에 떠는 모습을 소리낸 것이겠지. 공연기획자로 일할 때 한 해에 20회 넘게 서로 다른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공연장에서 비발디 <사계>를 연주한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이 곡은 어떤 장이 나와도 반갑다. 방금 전처럼 가을에 듣는 '겨울'도 좋고, 겨울에 듣는 '봄'도 좋다. 보통 공연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연주되는 곡들을 귀가 닳도록 듣는다. 회사에 있는 음반이면 그걸로 듣고, 음반이 없으면 사서 듣는다. 그렇게도 못 구한 음반은 연주자들에게 미리 부탁을 해서 씨디를 받기도 한다. 공연 당일 공연장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리허설에도 배석을 해야했으니 비발디 <사계>는 곡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주 스타일까지 아주 달달 외울 정도다. 그래서 색다른 편곡의 비발디 <사계>가 나오면 반갑고, 전에 순회공연하던 생각이 많이 난다. 이 블로그에도 아이리시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시골 동네에 공연 갔던 에피소드를 올려놓은 적이 있다. 그때도 <사계>가 연주되었다. 


라디오 덕분에 일요일 오후 갑자기 내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천상병 시인이 살아계실 때 93.1 클래식 채널을 즐겨 들었다고 하셨는데 10년 이상 꾸준히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분이 느낀 재미나 내가 느끼는 재미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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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외국어를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요. 일본국제교류기금 간사이센터에서 일본어 공부할 때 내 튜터가 그랬다. 네가지를 동시에 해야한다고. 읽기, 쓰기, 말하기, 그리고 듣기. 읽을 때는 소리내서 크게 읽고, 손이 다 기억하기 때문에 쓰면서 공부하고, 좋아하는 목소리를 정해 그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라 그랬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데는 같은 단어를 적어도 1000번 이상 반복해서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지. 네가지 방법 중 손이 기억하니 쓰면서 공부해야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 다들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계를 사용하니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니 손이 내가 한 공부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확인해볼 기회 또한 거의 없다.


카레 만들어 먹는다고 양파를 썰다 한순간이었다. 왼쪽 검지에서 피가 막 뿜어져 나왔다. 한시간이 넘도록 지혈이 안돼 걱정스런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심장 위쪽으로 손을 들라고 그런다. 입은 옷으로 피가 흘러 내릴까봐 베인 곳을 그냥 손으로 꾹 누르기만해서 지혈이 안되었던 거다. 화장실 세면대에 몸을 기대고 손을 번쩍 들고 있은 지 얼마 지나지않아 다행스럽게 지혈이 되었다. 상처가 심해보여 걱정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더니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 않는 한 수술같은 건 필요없단다. 2주 정도 물이 안닿게 잘 관리를 하라며 반창고 하나 붙여주고는 그냥 가라는 거다. 기뻐해야할 것 같은데 혼자 소동피운 생각을 하니 뭔가 좀 억울했다. 떨어진 살이 보이니 적어도 몇바늘은 꼬매야되는 줄 알았다. 


일본에 있을 때 자전거 사고로 왼쪽 장지를 다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검지 손가락 끝의 베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장지 마디 끝, 그러니까 바닥과 연결된 곳이라 왼쪽 손을 전혀 쓰지 못했다. 샤워할 때도 요리할 때도 물이 닿을까봐 장갑을 껴야했다. 의사가 그러라고 그랬다. 근데 검지는 간단했다. 이번에도 샤워할 때, 요리할 때는 라텍스 장갑을 사용하긴 했는데 낫기까지 확실히 수월했다. 손 씻을 때도 손가락 보호대를 끼거나 아니면 손가락을 살짝 들면 그만이었다. 2~3일에 한번씩 반창고만 갈아주면서 그렇게 조심한 끝에 상처가 아물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싶게 감쪽같다.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에 감동을 했더랬다.


근데 문제는 요즘도 손을 씼을 때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들거나 하면서 베었던 자리에 물이 닿을까 조심을 한다는 거다. 거참 신기하다. 일본어 선생님이 얘기했던 손이 기억한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아침먹고 노트에 히라가나를 한번 죽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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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지난주에 아시안마켓에서 사온 후루룩국수를 오늘 점심에 드디어 개봉했다. 일반라면에 비해 먹기가 엄청나게(?) 번거로웠다. 동시에 국수도 삶고, 장국도 끓여야 하는데 그러면 냄비를 두개나 사용해야 하고, 또 국수를 삶아 건져 찬물에 행궈야하니 나같이 게으른 자취생한테는 영 안맞는 음식이었다.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 같고. 


편법으로 국수 삶는 동안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고, 국수를 건져내 찬물에 행궈 물기가 빠지는 동안 포트의 끓인 물을 부어 국물을 만들었다. 맛은 예상외로 괜찮았다. 화학조미료의 승리겠지. 국수면발도 적당했고, 식감도 좋았다. 봉지 뜯었을때 면발이 가늘어 보여서 볶음용 쌀국수나 팔도비빔면을 떠올렸는데 삶아 건져놓으니 보통 국수면발 정도였다. 


유럽용이라 설명이 전부 외국어로 되어있는데 외국애들이 잘 알아서 끓여먹을지 궁금하다.국수를 건져내지않고 일반라면처럼 그냥 끓여먹으면 맛이 없을려나? 국수 개념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말에 나가서 몇개 더 사와야겠다. 


사진출처: http://0sunsee.tistory.com/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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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마음은 아직도 7, 8월인데 벌써 9월에다 가을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한다. 아메리카노 한잔 만들어 마시면서 딴짓 중이다. 어제 같이 일하던 사감 하나가 그만두면서 조촐하게 파티(라기 보다는 조촐한 뒷담화 모임)를 했는데 남겨둔 사과파이도 함께 처리 중. 맛이 좀 되네? 


어제 그 자리에 미국에서 온 사감도 있었고, 영국인 사감도 있었는데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둘다 학생들이 놀라워하면서 네 영어는 '거의' 완벽하다고 했을 때란다. 영어공부 하러 오는 애들이 많은데 네이티브 스피커들한테 참나. 사감들 중에는 나 같은 외국인들이 많아서 다들 그러려니 했겠지. 그래도 참 맹랑한 학생들이다. 미국에서 온 사감은 평소에도 모국 유나이티트 아메리카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인데 얼마나 나 미국에서 왔어요, 하고 싶었을까. 할줄 아는 요리, 자기네 나라 대표음식, 여행했던 나라, 공부했던 나라, 할줄 아는 외국어, 요즘 흰머리가 늘어나는 이유 등등에 대해 사정없이 수다를 떨다보니 금방 11시. 우리의 본격적인 업무는 밤 11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새벽 3시가 다 될때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통에 단단히 혼내 줄 생각으로 나갔는데 결국 어떤 방인지 못찾았다. 방에서는 들리는데 나가서 찾으면 잠잠. 결국 잠만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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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그동안 에티오피아 커피투어리즘 연구는 혼자하고 있었는데 교토대학의 시게타 마사요시 선생이 공동연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유럽의 몇개 대학 젊은 연구자들이 공동연구에 대한 관심 메일을 보내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커피나 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망설이는 중이었다. 


지난해 출간한 공부유랑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게타 선생은 에티오피아 관련 연구만 30년 이상 하셨고 엔셋(enset)이라는 식물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실천적인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이다. 엔셋은 가짜 바나나 (false banana)라고도 부르는데 멀리서 보면 꼭 바나나 나무처럼 생겼다. 에티오피아 남부, 서남부 지방에 가면 엔셋이 지천이다. 대개 엔셋 아래에 커피를 키우는 농가들이 많다. 잎은 음식을 싸거나 비올때 우산의 용도로, 뿌리는 꼬쪼라는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다. 테프(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의 원료)가 자라지 않는 곳은 인제라 대신 꼬쪼를 만들어 먹는다. 인제라나 꼬쪼를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더러 있긴 한데, 딱 하루 신기한 기분에 먹는 게 아닌 이상 그게 맛있다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 난 둘다 별로라서 에티오피아 연구자들이랑 얘기할 때 그런다. 난 절대 에티오피아 지역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카파에서도 인제라가 안 나오는 날은 거의 매일 꼬쪼를 먹었다. 가장 신선한 재료로 만든 꼬쪼라며 그릇에 담긴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걸 권해도 맛있게 먹기가 힘들었다. 초대된 집에서 내 몫으로 나온 꼬쪼를 다 먹으면 다들 박수를 치는 통에 쑥쓰러워하곤 했다. 한덩어리 먹고 나면 그걸로 식사 끝이다. 모양은 우리나라 감자떡 같이 생긴 것도 있고, 시루떡같이 생긴것도 있고 다양하다. 


시게타 선생은 자주 에티오피아에 가시는데 엔셋과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서 앞으로는 커피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보겠다고 하셨다. 엔셋이 있는 곳엔 거의 커피가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해야하나. 본격적으로 에티오피아 커피투어리즘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외국인 연구자가 생겨 기쁜 마음에 몇자 적는다.  


사진출처: http://vive-rie-ama.blogspot.co.uk/2010/06/on-our-way-to-omo-valle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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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모스크바에서 3주 일정으로 영어연수를 왔던 E가 드디어 떠났다. 무슨 말을 하면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예스예스, 라고 하지만 눈빛으로는 영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는 표현을 해대는 통에 무척이나 난감했었다. 내가 담당하는 애들 중에 러시아에서 온 학생들이 있나 찾아봤지만 어쩜 한명도 없었고,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학생이 보여서 노크를 했다. 너 러시아어 할 줄 알지, 대뜸 그랬더니 네가 어떻게 그걸 아냐면서 당황스러워한다. E에 대한 사정을 얘기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시내에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비롯해 학교가는 방법, 버스타는 방법 등을 러시아어로 쉽게 설명해주라고 부탁을 했었다. 


지내는 동안 아제르바이잔 학생한테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문은 거의 매일 두드렸다. 첫날 거의 자정무렵에 도착했는데 히터가 안돌아간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 쓰레기통이 안열린다 (발로 눌러야 하는데 그게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계약서에 이런 표현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 등등 쉴새없이 노크를 했다. 기숙사 사감일을 하면서 내가 유학생들의 엄마가 된 느낌을 많이 받는데, E가 내 방문을 두드릴 때도 그 생각이 들었다.


E가 나를 찾아올 때마다 오늘은 뭐 배웠냐,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 시장은 잘 찾아갔냐, 버스는 탈 줄 아느냐 등등을 묻곤 했는데 3주간 영어가 그렇게 많이 는것 같지 않다. 체크아웃 리스트에 싸인을 하면서도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눈빛을 깜빡깜빡, 잘 모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 보면.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네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고 짧은 포옹을 하고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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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리가 뒤숭숭할 듯. 그냥 잘걸 괜히 뉴스를 봤나 싶다. 태풍 볼라벤이 남부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중이란다. 일본의 오키나와가 난리났다는 소식 들었는데 제주를 포함한 한국의 납부지역이 지금 그런가보다. 서울도 안전을 장담 못한다던데 걱정이네. 볼라벤은 지난 매미보다 더 센 태풍이라니 잠이 확 깬다. 태풍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피해가 크지 않아야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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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키다리 아저씨, 우렁각씨. 둘중에 하나만 있어도 인생 땡잡은 일일 텐데 난 그 두가지가 다 있으니 로또도 이만저만 로또가 아닌 거지. 왠만한 일들은 터졌다하면 대개는 이 두사람들 손에서 해결이 된다. 일처리 범위는 실로 다양하다. 


논문쓰기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던 일들이 우렁각씨 덕분에 오늘 깔끔하게 정리됐다. 고마워, 이말밖에 못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우렁각씨 혹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후련한 마음에 오늘 점심은 간만에 포식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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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어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한시간쯤 지났나 싶을 때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신은 역시 내편. 정말 거의 뛰다시피해서 시장엘 다녀왔다. 중간에 가랑비 비스무리한게 내렸지만 내 갈길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시안마켓에 가서 늘 먹던 라면들과 새로 출시한 이름 생소한 라면들을 구입한 후 세인즈베리로 서둘러 움직였다. 허기질 때 장보면 안된다는 거 알면서도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절제하기가 힘들었다. 실로 오랫만에 카트가 넘치도록 장을 봤다. 화장지 한꾸러미, 세제 같은 것도 있었으니 완전 다 먹을 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방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있을 때쯤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회심의 미소를 날렸드랬지. 내 냉장고는 더 이상 어제의 냉장고가 아니었고.


장보면서 거의 반년만에 그라운드 커피 250그램을 샀다. 당근 블랜딩된 아라비카 커피. 커피는 맛있는 커피점에서 사먹자주의였는데 가끔 비도 오고 그럴땐 참아야해서 한번 구입해봤다. 난 커피를 매일 마시는 중독자도 아니고, 하루에 수십잔씩 마셔야하는 바리스타나 콩사냥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땡길 때만 마시는 편이라 한번에 10그램씩 끓여 마신다고 해도 스물다섯잔 다 마실려면 꽤 걸릴듯. 어쨌든 깡통을 땄으니 빨랑 해치워야해서 오늘 당장 한잔 쭉 뽑아봤다.


일본에 살때 옆방의 김상 남친이 이탈리아 갔다오면서 선물로 준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 (흔히 모카포트라고 부르는)가 있는데 아직도 여기저기 나를 따라 다닌다. 아래쪽에 정수된 찬물을 채우고, 커피가루를 느낌상 10그램 조금 못되게 담아 살살 흔들어 준 다음 커피메이커 위 아래를 아주 힘껏 돌렸다. 추출하면서 단 한방울의 커피도 흘리고 싶지 않아서다. 커피메이커에서 돌돌돌 소리가 날 정도의 시간이 지나 불을 끈후 여열 위에 커피메이커를 그대로 올려놓은 채 우유 반잔을 전자렌지에 돌렸다.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올 정도로. 추출한 커피를 데운 우유에 부으면 즉석 카페라떼. 뜨거운 물에 부으면 카페 아메리카노. 커피마시면서 어제 주전부리할 것좀 사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엄마가 빨리 논문 끝내고 공부하듯이 연애 열심히 하라시면서, 사랑이 식으면 사람이 더위 먹은 개가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긴장감도 없고, 모든 게 다 귀찮아지고, 해야할 일을 안해도 별로 데미지도 없고. 생각해보니 그러네. 외교통상부 표절사건 후에 이외수 선생님께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는 연락을 드렸더니, 네가 말 안해도 요강 뚜껑에 물마신 기분일 거라며 선생님 스타일의 격려를 해주셨다. 맥락은 다른 위로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쩜 다들 저렇게 절묘한 표현들을 힘 안들이고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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