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옮기고 읍내가 멀어지면서 장 보러 갈 일이 점점 줄어드는데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 정기적으로 시장을 보려고 한다. 허나 마음뿐 이래저래 핑계를 만들다 결국 냉장고가 완전히 텅텅 비어야 행장을 꾸린다. 지난 목요일 냉장고에 도대체 먹을 게 없어 금요일엔 꼭 장을 봐야지 했는데 하루종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오늘로 미뤘다. 오호 통재라, 비는 아직도 내리는 중이다. 이런 날 읍내까지 걷기엔 무리니 버스를 타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내려도 너무 내린다. 방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다보면 흠뻑 젖을 게 뻔하다.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글을 읽어도 맛, 음식, 미각 이런 게 눈에 먼저 띈다. 로알드 달(Roald Dahl)의 얇은 단편집도 후다닥 읽었다. 제목이 <맛 Taste>이었는데 와인맛 내기하는 Taste 이외에는 음식자체에 관한 글은 안 나온다.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페이지는 잘 넘어간다. 부인이 양다리 뼈로 남편을 가격해 죽인 후 증거인멸을 위해 경찰들에게 그걸 끓여 먹이는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사건보다는 그 맛이 궁금해서다. 맛에 관해서 감칠맛나게 글을 쓰는 황교익씨가 쓴 <미각의 제국>도 다시 훑어봤다. 한국음식의 제왕은 참기름과 고추장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실 난 한 방울, 한 숟가락으로 음식맛을 평정해버리는 참기름과 고추장을 좋아한다. 이런, 김치비빔국수가 땡긴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 더 많은 비가 쏟아져서 오늘도 난 시장 가기를 포기해야할 것 같다. 월요일은 뱅크 홀리데이라서 모든 숍의 문이 닫히는데 기숙사 일 때문에 내일도 , 모레도 못 움직이니 화요일까지 버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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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블로그 업데이트도 잘 안하는데 대문에 불미스러운 내용이 오랫동안 버티고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쓸까 고민했는데 만만한게 날씨다. 그 중에 영국의 여름 날씨. 그동안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해 기록차원에서 영국의 여름 날씨에 대해 적어본다.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가 96년 여름이었다. 아주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북쪽 스코틀랜드까지 올라갔었는데 추워서 목도리도 사고 그랬었다. 그 다음 온 게 2009년. 여름 지나 가을에 와서 여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10월 초였는데 하-, 하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역시나 추웠다. 2010년 여름은 한국에 들어가 있던 관계로 완연한 여름은 만끽하지 못했다. 작년엔 에티오피아에 있었고. 2011년에 여기서 여름을 보낸 한국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아주 추워서 전기장판도 돌렸단다. 그리고 2012년 여름. 


올해는 다른 나라에 갈 계획이 없어 영국 엑시터의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특징이라면 거의 날마다 비가 온다. 연중 우기라고 할 수 있는 나라지만 정말 징그럽게 내린다. 폭우가 쏟아질 때도 많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내리지는 않는데 밖에 나가기 겁날만큼 엄청나게 내릴 때도 많다. 주변에 숲이 많아 비 온 후에 세상이 맑아진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 그게 적지않게 위로가 된다. 기온은 확실히 올라간 것 같지만 습하지 않아 그래도 견딜만하다. 며칠 비가 왕창 쏟아지고 나면 제법 쌀쌀해져서 긴소매 옷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저녁엔 열대야 같은 건 상상하기 힘들만큼 서늘하다. 며칠 여름이 왔나, 싶었던 날들이 있었지만 난 이 여름에도 여전히 밤에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잔다. 


1960년대 일본 외교관들이 일본을 홍보하기 위한 표현으로 "일본은 겨울에 눈이 내린다"고 했었단다. 대개 개도국들이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겨울에 눈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은데 (기상이변을 제외하고) 우린 북반구에 위치한 잘 사는 나라라는 걸 에둘러 그리 표현한 것이다. 요즘의 한국이나 일본의 여름 날씨는 동남아를 방불케한다. 겨울엔 눈도 별로 없고. 기온이 높은데다 습하기까지해서 에어콘 없이는 못 견딘다. 홍콩에 갔을 때 아는 분이 "홍콩에서 남편(혹은 아내) 없이는 살아도 제습기 없이는 못 산다"고 했을 정도니 날씨가 상상이 가지 않나. 싱가포르나 홍콩이 내 공부유랑지 예정 리스트에 빠진 이유도 이 놈의 날씨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 보니 한국이나 일본도 빼야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비오는 영국도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몇개월 동안 습한데다 기온까지 높은 나라는 이젠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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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당장 한국에 들어가도 특별히 할일도 없는데 가족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다. 가서 푹 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사실, 한 1년 정도는 눈치밥 먹으면서 버틸 자신이 있지만,  지금 하는 연구가 재미있고, 또 의미있는 일이라서 쉽게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지속적으로 연구자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하는데 어디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커피 투어리즘이라는 내 연구테마에 관심있을만한 곳이 한국에 있으면 좋을텐데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여기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영국을 떠나고 싶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졸업하고도 신이 여전히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다. 습기도 없고, 적당히 따뜻한게 딴짓 안하고 논문쓰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커피 한잔 마신다는 핑계로 딴짓 중이다.

Posted by 윤오순

내 방에서 빨래방이 좀 멀다. 빨래 돌려놓고 다 되면 드라이까지 해줘야하는데 거기서 뻘쭘하게 앉아있기 뭐하니 다시 방에 왔다가 빨래방에 가곤 한다. 왕복 10여분? 한국에서라면 날씨 더운날 5분도 걷기에는 먼 거리였을 텐데 영국에 와서는 왠만한 거리는 다 그냥 걸어다녀서 그런지 이 정도는 그 까짓것, 하게 된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 여명을 가르며 빨래짐과 세제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그 거리는 솔직히 멀다. 그래도 빨래를 돌려놓고 방에까지 빈손으로 걸어 올때는 여유까지 생겨서 곧잘 딴 생각을 한다. 아침은 뭘 먹을까, 오늘은 논문의 어느 부분을 고칠까 등등.


요즘 한국은 '치유'가 대세라고 들었다.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대거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했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여유없이 살아서 그런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다들 참 바쁘다. 애들도 바쁘고, 어른도 바쁘고. 고정된 직장이 없는 내 부모님도 전화를 하면 늘 바쁘다 그러시고, 아직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들도 뭘 하는지 늘 바쁘다 그러고, 친구들도 여간해서는 나 요즘 한가해, 그런 소리들을 안한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한국에서는 늘 바빴었던 것 같다. 실속도 없이 말이다. 밖에 나와 공부하면서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하늘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늘 가던 길에 어제 없던 꽃이 새로 피었으면 아는 체도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여유없이 사는 생활 이제는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다. 공부 끝나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한국에 가서 또다시 실속도 없이 바쁘게만 사는 것 아닌지,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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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타임스퀘어에 하는 한국문화홍보 광고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에 의문을 던지는 신문기사가 난 김에 몇자 적고 싶어졌다.

http://www.koreatimes.co.kr/www/news/nation/2012/07/117_114835.html


난 개인적으로 서경덕 교수를 잘 모른다. "대한민국 홍보 전문가"라는 직함을 꼭 사용하시던데 이런 직업이 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정부도 하기 힘든 일을 열심히 하시니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원칙없이 작업을 하고 계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왜 하필 타임스퀘어이고, 그 광고효과에 대해 제대로 분석은 하셨는지. 거기서 의미심장하게 독도 광고할 때도 좀 불만이었는데, 비빔밥 광고도 그렇고, 아리랑 광고도 그렇고, 비용대비 효과 생각하면 돈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광고비에 사용되는 돈이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 외부에서 조달되는 돈일 텐데 더 이상 타임스퀘어 고집부리지 마시고 이쯤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게 아닌가 싶다. 한 나라의 문화라는 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많이 노출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관심 갖게 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런 맥락없이 진행되는 노이즈마케팅으로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싶다.


전부 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해외공관 창고에는 제때 사용을 못한 대한민국 홍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달력이며, 근사하게 만든 대한민국 지도 및 안내서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자리만 지키는 곳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홍보 잘하라고 비싼 배송료 지불하면서 해외까지 보냈을 텐데 참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연히 어느 해외공관 창고에 들어갔다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것도 내 세금일 텐데 생각하니 씁쓸했다. 한국식당이나 필요로 하는 교민들에게 선심을 쓰던지, 아니면 열심히 접대하면서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6년 7년 전 자료들이 저렇게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 싶었다. 철지난 홍보물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하는데 내 현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처럼 아깝다.  


서경덕 교수가 앞으로 타임스퀘어 보다는 돈 많이 안쓰면서 한국문화홍보하는 방법들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홍보 전문가 아니신가. 그 직함 덕분에 나 같은 일반인 보다는 훨씬 한국문화홍보 작업하기가 쉽지 않으신가라는 의미다. 해외 여행할 때마다 대한민국 홍보물 취급하는 기관에 연락해서 홍보물을 부탁할 때가 많은데 어찌나 뻣뻣하게 구는지 내가 거지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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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바쁘게 걷던 중이었는데 영국 아가씨가 내팔을 쓰윽 잡더니 다짜고짜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왜 그러냐고,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꼭 그런건 아닌데 하면서 근처 벤치에 잠깐 앉겠냐고 권한다. 아니, 그 정도 여유는 없고, 필요한 일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그랬다.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는데 조그만 수첩이었다. 길을 물어 보려고 그러나, 아니면 무슨 중국어 용어를 물어 보려고 그러나, 그것도 아니면 이런 중국인 아냐고 물어 보려고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아가씨 동작을 유심히 지켜봤다. 수첩 사이에는 여러가지 언어의 브로셔가 가득 꽂혀 있었는데 한국어로 된게 보여 이게 뭐냐고 했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얼핏 보니 브로셔 앞면에 성서의 이해, 뭐 그런게 적힌 거 같았다. 무슨 종파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 전도를 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들어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없어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종각역 지하를 지나갈 때 예외없이 '도를 아십니까' 팀한테 잡혔었는데 내 어수룩해보이는 외관은 국제적으로 통용이 될 정도인가보다. 반성해야겠다.

Posted by 윤오순

속썩이던 애들이 모두 떠나고 기숙사에 새로운 학생들이 도착했다. 요리할때 그렇게 신경을 쓰라고 했는데도 음식을 태우고, 냄비를 태우는 애들 덕분에 하루에도 몇차례씩 밖으로 나가야한다. 음식이 타고, 냄비가 탈때마다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공동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채팅을 하거나, 게임을 하다가 본인이 요리를 하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었거나, 아예 잠이 드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오 마이 갓인 상황이다.


매 학기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번에는 유달리 영어를 안쓰고 그냥 중국어를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응급상황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화가 있는데 응급상황에만 쓰라고 그렇게 주지를 시켰는데도 별것 아닌 걸로 전화하는 학생들이 많다(본인들이 생각했을 때는 그게 응급상황이겠지만). 대뜸 전화하자마자 중국어 하는 사람 없냐면서 중국어 하는 사람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한다. 이 또한 오 마이 갓인 상황이다. 여긴 중국이 아니고 영국이고, 학생들이 이곳에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닌지 원.


박사과정을 시작하려는데 영어점수가 모자라서 온 아줌마가 있었는데 첫날 애기를 데리고 왔다. 기숙사 규정상 외부인은   함께 머물 수가 없는데, 다음날 가보니 애기가 안 보였다. 남편이 데려갔다는데 옆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사람만큼 대단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점수를 채워서 올 가을에는 무사히 가족과 합류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사는 기숙사에는 방안에 욕실, 부엌이 다 있어 혼자만 생활하는 방도 있지만 욕실과 부엌을 둘이 나눠서 쓰는 쉐어드 플랫 타입 방도 있다. 둘이 잘 맞으면 좋은데 안 맞으면 계약 끝날 때까지 아주 고생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학기부터 계속 살고 있던 중국인과 이번에 새로 온 대만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이 있는데 대만 학생이 계속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도착한 첫날부터 대판한 것 같은데 한쪽편만 들어줄 수 없어 아주 난감하다. 대만학생은 중국학생이 옥스포드에 다닌다는 남자친구를 자랑하면서 자주 초대하는 게 싫단다. 공동욕실에 남자친구 칫솔 꽂힌 것도 싫고, 부엌문 활짝 열어놓고 중국음식(?) 냄새 피우는 것도 싫단다. 볼일 보고 화장실 물 안 내려서 아주 미치겠단다. 일단 중국학생한테 대만학생으로부터 이런저런 불만사항이 접수되었는데 반복되면 네가 나가야하니 주의하라고 했더니 그걸로 또 대판 싸웠나보다. 왜 대화로 해결하지 사감한테 보고를 했냐는 거겠지. 다시 대만학생을 만나서, 영국에 온 목적이 영어를 배우기위해서만은 아닐 것이고, 서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랑 살아가는 것도 공부라면 공부니까 상부상조하면서, 고칠 수 있는 건 고쳐가면서 한번 잘 지내보라고 부탁(?)을 했다. 반복되면 강력하게 조치를 취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물론 그랬지. 오늘 복도에서 대만학생을 만났는데 중국학생한테 서로 잘 지내보자고 그랬단다.  대놓고 중국을 싫어하는 대만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터라 좀 불안하다.


박사과정 시작하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뚝 끊고 지내는데, 기숙사는 바깥에서 경험하기 힘든 또 다른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Posted by 윤오순

지금 이 블로그를 만들어주고 관리도 해주는 내 친구 어랍쇼 (@arapshow)가 드디어 창업을 했단다. 내 일처럼 기쁘고 또 반갑다. 청년작가들과 함께하는 상품기획 및 디자인회사.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선정되었다는데 이름하여,


어랍쇼 컴퍼니

주소: 춘천시 석사동 642-14 1층

전화: 033 - 263 - 1034


산천어축제, 쪽배축제 등 다년간 화천군에서 진행되었던 문화예술행사 관련 각종 홍보물이 이 친구 손에서 탄생했다. 다수의 외국인 친구들이 현재 한국을 방문해 열심히 한국문화를 체험중인데, 이 회사에서 명함찍으라고 광고해줬다. 음악하는 친구들은 CD 디자인도 어랍쇼 컴퍼니에서 하라고 그랬다. 어랍쇼 컴퍼니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어랍쇼 컴퍼니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서다.


디자인/사진 관련 화보나 서적을 기증받는다고 하니, 혹시 어랍쇼 컴퍼니가 잘되었으면 하는 분들 중에 기증하실 자료가 있는 분들은 위 주소 이용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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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지난달 어느 금요일 오후. 방문을 열자마자 메모가 눈에 띈다. 1층의 파키스탄 M이 원래 오늘 퇴실을 해야하는데 갑자기 런던에 가게 되었고, 일요일에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도 아닌데 이걸 왜 나한테 남겨놨지 싶어서 담당 사감한테 연락을 했더니 난리가 났다. 학생이 떠나야 하는 날 떠나지 않으면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이 생긴다. 새 입주자가 당일 오는 경우도 있고, 당일이 아니더라도 청소업체에 용역을 의뢰했다면 퇴실한 방 청소를 위해 온 여러명의 청소부가 허탕을 쳐야한다. 일단 난 내 할일을 다 했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는데 복도에서 파키스탄 M 친구를 만났다. 혹시 파키스탄 M이랑 연락이 되면 지금 난리가 났으니 빨리 와서 퇴실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부탁했다. 


파키스탄 M이며 복도에서 만난 파키스탄 M 친구, 그외 두명은 벌점이 누락되어 갑자기 기숙사를 떠나게 된 학생들이었다. 사감들은 일주일에 하루 저녁 기숙사를 떠날 수 있는데 영국인이 아닌 이상 대개는 그런 날도 기숙사에 머물기 마련이다. 나도 데이오프인 날은 방문에 방해하지 말라는 메모를 붙여놓고 사감 일에서 잠시 벗어난다. 복도에서 만난 파키스탄 M 친구는 내 담당이었는데 내가 데이오프였던 날 이 친구를 주축으로 애들이 공용부엌에 모여 요란한 파티를 하다 걸렸다. 새벽 3시쯤이었는데 도저히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다른 사감 둘에게 연락을 해서 정리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밖을 내다보며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지 보는데 애들이 담배들을 꼬나물고 아주 신이 났다. 이런 날은 쉬어야하지 않나, 이거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하면서 결국 옷을 챙겨입고 한층 아래에 있는 공용부엌을 가봤다. 이미 다른 두명의 사감이 애들을 잡고 있었다. 스피커를 쾅쾅 울리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카드 게임을 하다 걸린거다. 이 기숙사는 11시가 넘었는데 파티를 하거나, 떠들거나 하면 그냥 바로 보고가 되는 시스템인데 누적되면 강제퇴실을 당한다. 게다가 그날 화재경보기를 비닐로 막아놓고 담배를 폈다고 했으니 단순한 벌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영국은 화재경보기로 장난을 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상황파악을 하고, 어떤 규정을 어겼는지 설명한 후 난 그 자리를 떠났다. 내 담당구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두 사감이 오늘 저녁은 커버를 해야해서 사무실에 보고하는 일도 두 친구들에게 넘겼다.


그리고 며칠 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애들은 전부 강제퇴실 조치가 내려졌다고 들었다. 바로 그날 파키스탄 M이 나를 찾아와 자기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담배를 피지 않았으니 선처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온 이 악동들은 기숙사에서도 아주 악명이 높은 트러블메이커들이었는데 난 잘 몰랐다. 보고는 내가 안해서 잘 모르지만 알았다고 한 후 내 최고상관에게 선처를 바라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창쪽에 앉은 학생은 원래 담배를 안피우는 학생이라고 들었고, 파키스탄 M이 그 창쪽에 앉아있었다면 그는 담배를 안피웠을 거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상관에게 쓴 내 충정어린 메일은 전혀 약발이 듣지 않았고, 결국 파키스탄 M 일당은 일주일 후에 방을 나가야 했는데 그게 그날 금요일이었나보다. 애들이 잘못해서 내려진 조처라서 내가 미안해할 일은 없었지만 그렇게 공부중간에 떠나는 게 맘에 걸려 어떻게라도 도와주고 싶어 결국 일요일 오후에 떠날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해줬다.


일요일 오후 세탁방에 갔다 오다가 그 애들 일당을 다시 만났다. 빨래를 하러 가는지 양손에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잔뜩이었다. 시간상 파키스탄 M은 벌써 떠나야했는데 그 자리에 있어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사정이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하이' 했는데, 이 인간들이 단체로 얼굴을 싹 돌리며 그냥 지나가는 거다. 배신감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아, 저런 싸가지를 위해 장문의 메일을 쓰고, 전화를 몇통씩이나 하고, 건물 1층에서 3층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했다니 참 나 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애로 몹시 씁쓸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아침 일찍 문을 따달라는 학생이 있어 갔다가 오는데 파키스탄 M과 다른 학생 둘을 또 만났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나는 그를 알아봤고, 아무 말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놈이 먼저 고개를 돌리고는 그냥 쓰윽 내 옆을 지나갔다.


파키스탄 M은 키도 크고 연예인처럼 아주 잘생겼다. 나한테 선처를 부탁하러 왔을 때도 비굴하다싶을만큼 공손했고, 퇴실을 못하게 되었다고 남긴 메모의 내용도 굉장히 공손한 영어였다. 그런데 사실은 시궁창이었던 것이다. 새벽에 떠들면서 담배 한번 핀 걸로 단번에 학생을 퇴실시키다니, 하면서 사무실의 강력한 조치에 좀 놀랐는데 스모킹으로 누적된 보고가 그 이전에도 다섯번이나 더 있었단다. 나를 완전 속인 거였다. 상관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메일에 별다른 답변을 안 했던 거였다.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담배를 폈고, 전부 체인스모커였단다.


난 어떤 학생들에게는 친절하고, 어떤 학생들에게는 엄하게 하고 그러지 않는다. 학생들이 전부 같이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왜 나만 차별해요,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 물어오는 애들한테는 최대한 친절하게 해주고, 규정을 어긴 학생들에게는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나 싶게 엄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입구에 걸린 기숙사 사감 리스트에 내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다. 애들이 핀으로 아주 자글자글하게 구멍을 내 놔서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논문 쓰고 나면 이일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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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어떻게 지내냐고, 죽은 것 아니냐고, 선정적인 삼계탕 사진 좀 치우면 안되겠느냐고, 안부를 대신하는 이런저런 연락들이 오는데도 그냥 모른척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근황을 소개하라고 친구가 만들어준 블로그인데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


학술대회 발표를 핑계로 얼마전 그리스 크레타에 다녀왔다. 커피투어리즘을 주제로 한 첫 발표라서 가기 전 살짝 긴장 했었는데 결론은 잘 놀다 온 것 같다. 이렇게 써도 되나 걱정하며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좀 정리가 된 느낌이다. 


경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막상 현지에 가보니 체감하기 힘들었다. 음식이 완전 감동이라서 나중에 나이들면 크레타에 가서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디저트가 예술이다. 그리스를 400년 넘게 점령했던 터키 음식을 먹으러 다음엔 터키에 가볼 생각이다.


요즘 거의 쉬지않고 비가 오는데 바람 때문에 오늘도 우산살 두개가 우산커버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주 튼튼한 외관을 자랑했는데 지랄같은 날씨에는 제대로 작동을 안하는 우산이었다. 수선을 해서 들고 다닐까, 수선은 어디서 해야하지, 아니야 이 참에 더 튼튼한 걸로 장만해야겠다, 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연구실에 도착했는데 같은 과 동기가 커피마시는 동안 거짓말처럼 수선을 해줬다. 아, 당분간 더 들고 다녀도 될 것 같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