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일본'에 해당되는 글 124건

  1. 2007.08.05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4
  2. 2007.07.15 잘 지내십니까? 2
  3. 2007.07.08 감사합니다 10
  4. 2007.07.07 5000년 전 악기 '우드' 2
  5. 2007.06.24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6. 2007.06.15 아름다운 모녀 6
  7. 2007.06.11 2007년 5월 나가사키(3) 2
  8. 2007.06.09 2007년 5월 나가사키 (2) 4
  9. 2007.06.09 두번째 레서피
  10. 2007.06.03 2007년 5월 나가사키 (1)



드디어 방학이다. 한학기를 어떻게 버틸까 내 스스로가 의심스러웠는데 결국 시간이 해결해줬다.
바쁘다는 핑계로 블로그 관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날마다 60 정도에서 조회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고 이곳에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살짝 궁금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라주쿠의 오모테산도 힐즈 내부

지난 주 대학원 다닐때의 선생님이 도쿄에 오셨었다. 자칫 못 만날 수도 있었는데 연락이 겨우
닿아 만나뵐 수 있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오셨는데 내게까지 연락을 해 주신 덕분에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오랜만에 눈요기도 실컷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까지의 차비만 달랑 들고 갔었는데 가난한 유학생의 지갑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짧지만 내겐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다.

롯본기 힐즈 52층에 있는 모리 미술관에 가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들을
보며 오감이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건축가들이 이 사람에게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 건축은 아직도 이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산토리 미술관에서는 '물과 삶'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전시를 감상했다. 흔한 테마인데 전시
구성이 독특해 아, 또 감동받았다. 물이 주는 그 다양함이라니.  무리를 해서 들어간 신국립미술관의
'일본 미술 100년전'도 역시나 가기 잘한 전시였다. 우리나라 미술대전이 여전히 일본의 그늘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의 착각인가.

참고로, 롯본기역을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많아 동선을 잘짜면 하루에도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전시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는데 쇼핑을 가면 언제 뒤에 따라오셔서 내가 집었던 물건들을 다
계산하시는 통에 돌아오는 길에 가방이 묵직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잔돈까지 탈탈 털어서 돌아가는 길에 차비에 보태라고 하신 후 선생님은 떠나셨다. 내가 지지리
궁상을 떨지 않았음에도 원래 유학생은 가난한 법이야, 이렇게 즐겁게 뭔가 베풀 수 있게 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마워, 이러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고학하는 유학생을 만나면 꼭 갚아야지,
그랬다. 한 여름에 도쿄를 다녀가신 산타클로스 덕분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채널24: 일본 >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상한 식사초대  (2) 2009.09.29
기니아에서 온 '알리'  (1) 2007.11.28
다시 인연(2)  (4) 2007.11.08
인연(1)  (8) 2007.10.21
Posted by 윤오순

며칠째 내리는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태풍의 영향인가?
비가 그친 줄 알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아주 흠뻑 젖었다.
어디 잠깐 세워놓고 기다릴 걸 하다 냅다 그냥 달렸더니...그래도 기분은 좋다.
비를 좋아하는 거랑 철드는 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신정아 관련 글을 올렸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내려버렸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어디 있지, 하시는 분들 있을 지 모르겠다.
나까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충격은 충격이다.

이제 몇 번의 발표와 레포트를 제출하면 두달 간 방학이다.
1년에 몇 개월씩 공식적인 방학이 있어 난 학생이 좋다.
공부는 별로 체질에 안 맞는 것 같고. 학교라는 공간이 좋을 뿐이다.

올 여름엔 저 남쪽 큐슈에 있는 쭈꾸미라는 데를 간다.
인구는 2만 3천 정도 되는 시골마을인데 바다가 있단다.
축제, 관광 이런 걸로 지역개발 프로그램을 짜 본다는데
나도 참가하기로 했다. 회를 좋아하냐고, 스시 같은 것 먹을 줄
아냐고 조심스럽게 묻길래 나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없어 못 먹어요.

다녀와서는 에티오피아의 밀레니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에티오피아는 서력을 사용하지 않고 고유의 달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올해 9월 11일에 새 천년이 시작된다.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호텔이란 호텔은 죄다 예약이 꽉 찼단다.
일본에서는 도쿄 대사관을 중심으로 관련 단체들이 각자 보탤 수 있는
힘들을 보태서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그리고는 다시 가을 학기가 오겠지.

여러분은 올 여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숙사 입주 보고  (2) 2007.10.09
2003년 9월 29일-친구여  (3) 2007.09.29
감사합니다  (10) 2007.07.08
5000년 전 악기 '우드'  (2) 2007.07.07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2007.06.24
Posted by 윤오순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묻길래 다 풀리는데 돈 문제만 안 풀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런다. 넌 돈만 없고 남들이 갖고 싶은 걸 다 가졌잖아, 라고. 그건 결코 돈으로는 안되는 그런 것들인데 어떻게 넌 다 가졌느냐고. 그러면서 난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도 그랬다. 해가 갈수록 그리운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인복이 많다는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필요할 때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난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내 인생 그리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쁜 인생도 아니다.

오늘부터 영어 과외를 받기로 했다. 아주 즉흥적이었는데 손을 잡아 줄 사람이 또 바로 나타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이 선생님이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실 줄 몰랐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하루종일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고, 또 힘들 것도 같은데 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그게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난 한가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 또 그것만 생각한다. 이번 일은 학위논문으로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랍쇼는 내 삶이 단순하다고 그랬고, 이외수 선생님은 미련하다고 그러셨다.
둘 다 맞는 것 같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아주 미련한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10년 전보다 내 인생의 포커스 반경은 확실이 좁아졌고
아울러 그 초점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는 그 사람들 때문에 난 오늘도 한눈 팔지 않고 산다. 모든 게 내 인생의 과제려니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어려울 때 손 내밀면 선뜻 받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 잊지 않으련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3년 9월 29일-친구여  (3) 2007.09.29
잘 지내십니까?  (2) 2007.07.15
5000년 전 악기 '우드'  (2) 2007.07.07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2007.06.24
아름다운 모녀  (6) 2007.06.15
Posted by 윤오순

012

사진 출처: 핫산의 홈페이지
               http://www.hasanhujairi.com/

우드(Oud)라는 악기를 난생 처음 봤다. 음색은 보통의 클래식 기타 같았는데 생김새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올 5월에 바레인에서 왔다는 핫산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취미가 우드라고 해서 그게 뭔가 그랬었다. 지난주에 국제교류클럽 파티에 갔었는데 중간에 우드 연주시간이 있었다.

아라비아 전통(사실은 바레인) 의상을 입고 짜잔, 등장한 핫산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일본 노래도 두곡 정도 연주했는데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라서 감흥이 떨어졌지만 이라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본인에게 우드를 처음 가르쳐 준 선생이 작곡한 곡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풍의 곡이 아주, 정말 아주 인상적이었다. 연주 실력은 프로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충분히 감동적인 무대였다.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우드가 어떤 악기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oud라고도 함.

중세와 근대 이슬람 음악에서 유행한 현악기.

유럽 류트의 조상인 우드는 오목한 배 모양의 몸체에 줄받이가 없는 지판, 짧은 목, 유럽 류트보다 급하게 굽은 줄감개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율하는 줄감개는 줄감개집 옆면으로 부착되어 있으며, 플렉트럼으로 뜯어서 연주하는 양장현은 (기타처럼) 악기의 앞판에 있는 접착식 줄받침에 고정되어 있다.

우드는 크기나 현의 수에서 다양하다. 4쌍(고전적인 수)의 현이 가장 보편적이나 간혹 5~6쌍도 있다. 조율법도 다양하며 음역은 기타 또는 류트와 유사하다. 우드는 터키에서는 라우타로, 발칸에서는 오우드 또는 우티로 알려졌다. 7세기 중세 페르시아에서는 바르바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드'(아랍어로 '나무'라는 뜻)라는 악기의 이름은 가죽으로 앞판을 댄 초기 류트와는 대조적으로 앞판을 인도산 향나무로 만든 데에서 비롯되었다.

핫산이 연주한 우드는 줄이 11개로 구성되었다. 얼핏보면 여섯 줄로 보이는데 맨 윗줄을 뺀 나머지 줄들이 두겹씩이었다. 줄감개집은 마치 부러뜨리다 만 것처럼 뒤로 꺾여 있었다. 악보가 궁금해 보여달라고 했는데 일반적인 서양 악보에서 쓰지 않는 1/2b 도 보였고, 한 마디 안에 표현하는 박자의 리듬도 빠른 게 많았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악보의 제목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지만 악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려나간다는 것이었다. 5천년 전부터 사용된 악기며, 기타처럼 생긴 모든 악기의 원조라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던 핫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가 왜 객국에서 그 생고생을 하면서 지내냐고,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없느냐고 자주 묻는데 일상에서 가끔씩 이렇게 만나는 문화적 충격들이 나를 계속 떠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지내십니까?  (2) 2007.07.15
감사합니다  (10) 2007.07.08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2007.06.24
아름다운 모녀  (6) 2007.06.15
두번째 레서피  (0) 2007.06.09
Posted by 윤오순

생일인 줄도 몰랐다.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사는 건 아니었는데 올해도 또 그랬다.
밖에 있다 보니 생일도 잊고 명절도 잊고 중요한 많은 날들을 잊고 산다.
그러면서 뭔가 새롭게 얻는 게 있지 않을까 오늘도 두리번거리며 살고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소심남이 부르는 오페라'의 한대목을 보고 아주 심한 감동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 열번은 본 것 같은 데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 공연을 직접 하기도 하고 아티스트가 좋아 콘서트장을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지만 이런 감동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남자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해서 나도 처음엔
그냥 심사위원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훈련받지 않고
그 정도 키를 소화해낸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무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게 내겐 더 대단했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지만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이 또 한번 있었다. 지금부터 한 6,7년 전인 거 같은데 이외수 작가의
팬 사인회가 끝나고 인사동 어느 식당에 모여 식사가 끝났을 즈음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즉석 판이 벌어져 재주꾼들이 나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갑자기 내 관심을 확 끌어들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아주 앳돼보이는 한 친구가 부채를 쫙 펴들고 판소리를 하려고 목을
푸는 참이었다. 춘향가 중 '사랑가' 한 대목이었던 것 같은데 아, 난 그냥 감동에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서편제의 '송화'처럼 그 친구도 참 한이 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꺾여야 할 때 탁탁 꺾이는 것 말고도 짧은 순간에 목소리로 많은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아마추어라지만 내겐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진정한 예술이었다.

폴 포트의 목소리에 전율하면서 난 20대 초반의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판소리에 감동했을 때, 그때 그랬었다. 난 예술을 할 재주는 없지만 예술가를
돕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그 마음,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그게 어떤 것이 될 지
아직 잘 모르겠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악기인 마싱코를 연주하는 맹인 연주가를
빛 보게 해주고도 싶고, 7명의 어린이 댄스그룹을 한국에 소개하고도 싶은데 내가
받은 감동을 관객들도 받을 지 그건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럴 날이 올 거라는 확신은 있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합니다  (10) 2007.07.08
5000년 전 악기 '우드'  (2) 2007.07.07
아름다운 모녀  (6) 2007.06.15
두번째 레서피  (0) 2007.06.09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0) 2007.06.01
Posted by 윤오순
본격적인 장마시즌이 도래한다고 해서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제 하루 쏟아붓더니 오늘은 다시 쨍-하고
해가 떴다. 어제 같이 앞으로 40일은 쏟아진다고 70이 넘으신 내 일본어 과외 선생이 그러셨는데.

또 다 졌겠다, 하는 마음으로 역에서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왠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건너지 않고 그대로 서있는 게 아닌가.

아,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초등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멈칫, 하는 사이에 둘은 만났고, 내 바로 앞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거셌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우산 사이로 두 손을 내밀어 꼭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내 앞을 걸어갔다.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거리를 좁혔는데 아무래도 모녀 사이 같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초등학교 4, 5학년 쯤. 아니어도 할 수 없고.

오늘 요시다가 학교에 안왔어.
왜?
감기에 걸렸대.
이런.

오늘까지 내기로 했던 숙제는 선생님이 내일 내도 된대.
잘 됐네.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
오늘 저녁에 좀 봐 줘.
그래.

엄마가 같은 학급의 학생 이름을 다 알고 있나보다. 아니면 특별히 친한 학생 이름일 수도 있고. 그리고 엄마랑 상의하면서 같이 숙제를 하기도 하나보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인 것 같다. 가끔 나 오늘 엄마랑 싸웠어,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이게 말이 되나 말이다. 엄마한테 대들었어, 라고 해야 옳지. 난 내 엄마가 세상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엄마인 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제 만난 빗속의 저 학생은 엄마를 좋은 친구로 둬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저 친구도 아마,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의 뒷모습은 정말 자유로운 체형의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딸과 손을 맞잡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빗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아,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문득 내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00년 전 악기 '우드'  (2) 2007.07.07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2007.06.24
두번째 레서피  (0) 2007.06.09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0) 2007.06.01
게스트하우스 5월의 파티  (2) 2007.05.31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톨릭회관 벽에 걸린 마리아 상이다. 아, 지극히 일본스럽지않은가. 무라사키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그림들이랑 아주 닮았다.


나가사키를 떠나오던 날 세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첫번째 친구
짐을 다 꾸린 후 유스호스텔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계속 이것저것 묻는데 일본에 와서 참 낯선 경험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지 않는가. 가족이 다 있는데 주말에는 이렇게 혼자 산으로 들로, 때로는 좋은 온천을 찾아 여행을 한단다. 나이는 한 50대 정도.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한국의 50대 아주머니가 호텔이 아닌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우를 아직 못 만나서 이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좀 끌렸다. 감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호기심 천국에 사는 소녀처럼 이것저것 묻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나도 여유를 부려가며 이렇게저렇게 대답해줬다. 우린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커피까지 다 마신 후 헤어졌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두번째 친구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평화공원 구역(나가사키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가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과 또 하나가 바로 평화공원 구역이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려는데 한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건다. 거참 아침부터 이상하네. 도쿄 근처의 가마쿠라에 살며 현재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란다. 애들이 자꾸 일본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아 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배낭을 딱 보니 두 서너달 짜리 여행자 같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 떨어져 실의에 젖어 있다가 혼자 영어공부를 해서 대학에 붙었다며 그 부분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봐도 그건 기특하네.
 
일본이 선진국이긴 한데 여러가지로 미국의 안 좋은 부분을 닮아가는 게 안타깝단다.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야.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이 친구와 평화공원 구역에 있는 여러 관광지를 같이 여행했다.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설명까지 곁들여줬다. 외국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면 무조건 칭찬일색으로 가자, 가 내 신조였는데 이 친구랑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일본에 대해 힐난을 해버렸다. 이 친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원폭 자료관이랑 이런 저런 기념관에 갔는데 이런, 온통 주위에 '평화' 밖에 없는 거였다. 왜 일본이 원폭참사의 피해국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평화가 소중하다는 이야기 밖에 없는 거라. 그 친구도 동감은 한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또 다른 기념관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쉽게도 이 친구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여행중일까.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이 친구는 나가사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을까. 교토에서 무려 12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에 왔다고 했는데...

세번째 친구
평화공원 구역 여행을 끝내고 점심은 나가사키역 쯤에서 먹어야지 하고 카톨릭 회관에다 맡긴 짐을 찾는데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이 전화가 처음이 아니고 같은 전화번호가 여러개 찍혀 있었다. 전날 스시집에서 만난 벨로루시 청년 '파샤'였다. 학교가 지금 끝났는데 괜찮으면 나가사키 시내를 안내해주겠단다. 계획한 여행은 이미 거의 끝났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금방이라고 해서 그럼, 금방 오라고 그랬다. 그리고는 파샤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인만 아는 나가사키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날씨는 어찌나 덥던지. 난 crazy wheather을, 파샤는 stupid wheather를 외치며 무슨 숙제하듯이 시내를 훑었다. 첫날 비가 와서 안개 속에 묻혀 잘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마지막 행선지로 잡았다.

바다를 향해 가면서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의 애환, 외국인 유학생으로 사는 사람의 애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 사람의 애환에 대해 들어줬다. 앞으로 국제관계를 공부하려는 파샤는 내가 벨로루시란 나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단다. 그리고 EU에 27개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안다는 사실도 좀 의외였단다. 그러나 어쨌거나 국제개발을 전공하는 사람을 이 나가사키에서 만나 아주 반갑단다.

일본어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가장 높은 등급인 1급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에 아시아 언어과가 있었는데 자기는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선택했고 당시 선생은 벨로루시 사람이었단다.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 일본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며 일본어가 너무 배우고 싶으니 선생과 교재를 좀 보내달라고 했단다. 대단한 열정 아닌가.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일본인 선생이 파견되었고 딱 두명의 학생이 그 선생한테 일본어를 배웠단다. 이것 보면 일본도 또 대단한 나라다. 그 후 자기는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고 일본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지금 일본에 와 있는 거란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생긴 모습이 전혀 아시아쪽이 아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는 것 보면, 그 인연이 참 궁금해진다.

바다를 보고 난 후 우린 헤어졌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나가사키에서 자기를 찾아 온 손님에게 나가사키를 안내할 일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거라 괜찮단다. 너네 학교에 꼭 갔으면 좋겠다, 고 해서 꼭 그러라고 했다.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가사키에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난 것 같다.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슨 지금쯤 메일을 한 번 보내야 내가 그 친구를 잊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카톨릭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이미 돌아가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침을 공짜로 준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한테 물어봤더니 스시집을 하나 추천해줬다. "미노부스시'라는 곳인데 한 접시에 100엔이라고 해서 처음엔 회전초밥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반 스시집 같은 곳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스시는 무조건 한 접시에 100엔이라는 거.

아직 일본 스시 이름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막 고민하고 있는데 외국인 하나가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 잘난 척을 하면서 스시를 고르더니 종이에 스시 이름을 쓰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영어로 쓰고 있었다. 참치 스시면 "MAGURO", 요렇게. 뭐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나도 한 두어개를 그런 식으로 시켰다. 그러나 스시 두 개로 한끼를 떼우기엔 난 너무 허기져 있었다.

내가 주문에 허우적대는 걸 보고 이 친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스시는 말이지...일장 연설을 해준 덕에 겨우 4개를 더 시킬 수 있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맞춰 보라는 거 아닌가. 바로 그냥 "Where are you from?" 해버릴 생각이었는데.

딱 생긴게 유럽풍이다. 그것도 저 동유럽풍이다. 러시아 쪽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일단 발틱 3국부터 훑어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이 친구 좀 놀라는 거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내려 오려고 하던 차에 그냥 "나 벨로루시에서 왔어." 실토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에서 아직 한번도 자기 나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댄다. 이런... 내가 그 심정 좀 알지. 모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어 있어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모르던 나라에 내가 있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대화의 물꼬가 스르르 풀리던 차에 일본에서 뭐하냐, 학교 다니냐, 어느 학교 다니냐까지 왔다. 그리고 내 입에서 히토쓰바시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냥 놀라더니 자기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 말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벨로루시 말이란다. 그리고는 10분도 안 되어 또 한 명의 벨로루시 청년을 만났다. 히토쓰바시라는 대학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5명의 사람한테 추천을 받았고 이제 한번만 더 인연을 만나게 되면 이 학교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었단다. 이런.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첫번째 만난 친구는 'IIYA'라는 친구로 현재 나가사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두번째 만난 친구는 'PASHA'라는 친구로 일본에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올해 4월에 나처럼 일본에 왔다. 우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아주 수다스럽게 떠들었고, 스시집에 왔으면서 스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학회가 끝나 나른하던 차에 실컷 떠들어 피곤하기까지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내일 또 보자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이야'가 조용히 있는 '파샤'를 가르키며 이 친구는 늘 한가하니까 내일 네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파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그래서 뭐 시간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교황이 머문 곳도 내가 머문 이 다다미방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그날 아주 푹 잤다.
Posted by 윤오순


게스트하우스의 사토 상은 닉네임만 요리사인 줄 알았는데 정말 전직 요리사란 사실을 어제 알았다.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데 미국에서 10년간 스시집 요리사였단다. 생선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않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서도.

부엌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식기며 요리 도구들도 전부 같이 사용하는데 이 곳에 사토 상만 사용하는 사시미용 칼이 있었다. 이걸 누가 사용하나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어제 풀렸다. 사토 상은 일반 칼보다 길고 몸체가 아주 날렵해 딱 보기만 해도 아찔한 이 칼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며 요리를 하는 것 아닌가. 스윽스윽, 칼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뭔가 재료의 형태가 바뀌어 있다.

어제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두개의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사란 사실을 알고난 바에야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기회가 되는 대로 그냥 보는 요리 공부를 하기로 했다. 사토 상도 맘대로 하라면서 전혀 개의치않고 착착 요리를 하더니 마치 선생이 된 것처럼 이 조미료는 이래서 사용하고, 요건 또 저래서 사용하는 거다, 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줬다.

요리 1
1) 양파를 반을 쪼갠 후 반 쪼갠 상태의 양파를 아주 잘게 썬다. 얇은 초승달 모양의 양파가 수북히 쌓일 거다. 이걸 올리브유에 잘 볶는다. 내가 양파를 볶으면 이상하게 색이 노래지던데 양파를 색깔 그대로 볶으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설명은 힘든데 이제 난 양파 색깔 그대로 양파를 볶을 수 있을 것 같다. 팬을 불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끝까지 볶는 게 아니라 팬을 불에 잠깐 잠깐 떼어 가며 볶으니 색다른 양파 볶음이 탄생되었다. 뭐 요리 잘하는 사람들한테는 이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볶은 양파를 오븐용 그릇에 담는다.

2) 그리고 한쪽에서는 오징어를 잘 손질한다. 살들을 평평하게 깐다음 여기에 아주 잘게 칼집을 낸다. 왜 내냐니까 먹기 편하게 하려고,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항~. 그리고는 볶은 양파 위에 쭉 올린다. 이 칼집 때문에 열이 가해진 오징어 몸체에는 자잘한 돌기가 오톨도톨 생긴다. 오징어를 양파 위에 올린 후에 허브며 화이트페퍼 등을 위에 뿌린다. 그런 다음 오븐에 집어 넣는다. 오븐이 없으면 전자렌지에도 무방.

3) 다음은 여기에 하룻동안 생강에 재운 닭가슴살을 올려 다시 오븐에 돌린다. 그리고 이 위에 또 이것저것 뿌리는 데 일반인과 요리사의 요리 차이가 바로 여기서 생기는 것 같다.

4) 피망, 마요네즈 혹은 치즈로 정성껏 모양을 낸 후 또 오븐에 돌린다. 요리 끝.


요리 2
이건 한국에서 소고기 무국을 끓이는 거랑 비슷한데 그러면서 쫌 다르다.

1) 돼지고기를 (부위는 잘 모르겠는데) 3 X 2 X 2 정도로 썬다. 그냥 비계가 달린 채 두툼한 느낌으로 썬다.

2) 무우를 원통 채 1cm 굵기로 썬 후 위아래에 십자형으로 칼집을 낸다. 오뎅국에 보이는 그런 무우를 상상하면 된다.

3) 1)의 돼지고기를 참기름에 볶는다. 거의 익을 때까지 볶은 후 찰랑찰랑하게 물을 부은 후에 2)의 무를 집어 넣는다.

4) 그리고 끓이기 시작하는데 이때 요리용 술을 물 분량의 1/4 정도 집어 넣는다. 돼지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란다.

5) 물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졸인 후 몇 가지 양념을 더 한다고 했는데 바빠서 내 방으로 올라왔다.  어쨌거나 이걸로 요리 대충 끝.


난 요리사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재료를 딱 보고 요리를 생각하지? 나 같은 사람은 요리를 떠 올린 후 재료를 생각하는 데 말이야. 수퍼의 야채코너에 있는 재료들을 보면 내가 해먹을 수 있는 건 다 거기가 거기고, 장을 볼라고 치면 그냥 막막하기만 한데 요리사란 사람들은 재료를 딱 보면 바로 요리를 떠올리지 않는가.

난 천재도 아니지만 쓸데없는 걸로 바빠서 앞으로도 요리사는 못 될 것 같다. 그러나 맛있는 요리를 보면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정도는 가끔 생각한다. 오다가다 요리하는 사토 상이 보이면 어제처럼 참관을 할 생각이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보시고 요리가 잼병인 이 사람을 위해 레서피를 공개해 주시기를.






'채널24: 일본 > 일본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 감동 그리고 눈물  (4) 2007.06.24
아름다운 모녀  (6) 2007.06.15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0) 2007.06.01
게스트하우스 5월의 파티  (2) 2007.05.31
내가 좋아하는 길  (6) 2007.05.20
Posted by 윤오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주에 일본 저 남쪽 큐슈에 있는 나가사키에 다녀왔다. 홋가이도, 오키나와까지 구경을 했는데 큐슈는 영 기회가 없다가 이번에 학회를 한다고 하기에 그냥 냅다 티켓을 끊었다.

44회째 아프리카 관련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있다는 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40년 전이면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아프리카 관련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아프리카 여기저기에 일본인들 없는 곳이 없지. 이틀 동안 진행된 학회에서는 발표자만 150여 명이 넘었고 분야는 농업, 지역개발, 문화예술, 교육, 젠더, HIV/AIDS 등 엄청 다양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대륙 54개 나라 중에 연구자가 하나도 없는 곳도 있을 텐데 여기는 내가 본 것만 해도 한 나라에 수십명의 연구자들이 있다. 자기 돈 주고 연구하기는 힘들테고 어딘가에서 지원을 한다는 건데 참 부럽다. 내가 연구하는 에티오피아 쪽에도 연구자가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그 분야가 참으로 다양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엎고 다시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이틀은 학회 대회장에서 보내고 이틀은 나가사키 여행을 했다. 출발하기 전에 별로 정보를 얻을 시간이 없어서 여행사 앞에 꽂힌 팜플렛에 큐슈 혹은 나가사키라고 적힌 것들을 챙겨 공항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새벽 4시 근방이었지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6시 55분 비행기를 타고는 비행기 앞 좌석에 꽂힌 나가사키 관련 자료들로 대충 지리적인 위치와 관광지 파악을 끝냈다. 그리고 다시 나가사키 공항에서 나가사키 중심에 있는 나가사키 역까지 리무진을 탔다. 편도는 800엔인데 왕복으로 끊으면 1200엔이라는 고급정보를 비행기에서 얻었기 때문에 시키는대로 했다. 나가사키역에 도착해서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데스크에 앉아 있는 아가씨와 가급적 동선을 짧게 하는 여행일정을 도라도란 짰다. 맛집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정신없이 관광을 했다. 이 얼마만인가. 여행이 아닌 관광이. 우울했던 5월을 확실하게 마감하기 위해 습도가 70%가 넘는, 가히 동남아시아의 그 어디를 방불케하는 나가사키 시내를 종횡무진했다. 첫날 오전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3일 동안 비 예보가 없다는 말에 그냥 비를 맞으며 쏘다녔다. 무슨 숙제하듯이 나가사키를 구석구석 훑고 다녔는데 이틀 후 나는 누구를 만나도 나가사키에 관해 잘난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osted by 윤오순